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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 속의 불-23화 (23/189)

23화

사비나의 피부는 윤기가 흐르면서도 보들보들했다. 아주 고운 밀가루 반죽 같기도 했고, 생크림 같기도 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부위를 찾기 위해 몸을 쓰다듬으면서도, 에르잔은 제 거친 손바닥이 고운 피부에 상처를 입힐까 걱정이 되어 최대한 힘을 빼고 가볍게 스치듯이 만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지나친 배려에 안달하게 된 것은 도리어 사비나 쪽이었다.

“에르잔, 에르…….”

“죄송합니다. 아프십니까?”

“아뇨. 아픈 게 아니라…….”

풋풋한 향이 코끝에 스쳤다. 다른 남자의 몸에서는 늘 시큼하고 텁텁하고 불쾌한 땀냄새가 났는데, 에르잔의 몸에서는 이상하게 상쾌한 향기가 났다.

‘왜지? 이것도 정화 체질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눈을 깜박이며 얼굴을 가까이하자, 에르잔이 그녀의 입술에 제 것을 살며시 억눌렀다. 촉촉한 혀가 입술 사이로 파고들어, 입안을 살살 훑기 시작했다.

“하응, 음…….”

차라리 이성을 잃을 만큼 강렬한 쾌감이면 그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허덕이기라도 했을 것을, 에르잔의 입술과 손길이 너무나도 은근한 까닭에 그러지도 못했다. 온몸이 따끈따끈해지는 듯한 간지러운 애무에 사비나는 조바심이 났다. 이런 것을 애가 탄다고 하던가.

“에르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말입니까?”

“으응, 그렇…… 흣, 아!”

에르잔은 사비나의 아랫입술을 살짝 빨아 쪽 소리가 나도록 뽀뽀하고는, 고개를 기울여 그녀의 귀를 깨물었다. 분명 아프지 않도록 살짝 깨물었을 터인데도, 사비나는 그 간질간질한 자극에 몸이 떨려 왔다.

커다란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다른 한 손이 다리 사이를 살며시 훑어주는 것이 한숨이 나올 만큼 기분 좋았다.

“앗……!”

예민한 피부와 점막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에르잔은 아주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손가락을 찔러 넣거나 한 것은 아니다. 성적인 행위에 익숙하지 않다고는 해도 제 손이 거칠다는 것 정도는 스스로 알고 있었다.

“사비나 아가씨. 조금만 다리를 벌려 주십시오.”

“네, 네?”

단지 자세를 바꾸기 위해서 하는 지시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사비나는 에르잔의 요구를 듣는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다리 사이에서 시큰거리는 감각이 계속해서 피어오르는 바람에 입구가 조금 젖어 있었다. 그것을 에르잔의 앞에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웠다.

참으로 이상하다. 이미 두 사람은 몸을 섞은 경험이 있고, 이제부터 더욱 적나라한 행위를 할 거라고 하는데, 사비나는 아래가 젖어 있는 모습을 에르잔에게 내보이는 일이 부끄러웠다.

타인에게 알몸을 보이는 수치심에는 익숙해져 있을 터인데, 어째서.

“에, 에르잔. 잠깐만요, 잠깐…….”

“알겠습니다. 천천히 하십시오.”

천천히 하다니, 무엇을 말인가.

사비나는 자신이 말한 ‘잠깐’이 그에게 어떤 의미로 들렸을지 생각해 보았다가, 가벼운 자기혐오를 느꼈다.

에르잔은 지금 그녀의 사정을 알고 저주의 힘이 폭주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다. 먼저 도움을 요청해 놓고 그녀가 부끄러워서 피하고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에르잔은 날 돕기 위해 이런 일까지 하고 있는데…… 내가 피해서는 안 돼.’

결심을 마치자 미칠 듯이 날뛰던 가슴이 아주 약간 진정되었다. 사비나는 깊이 숨을 내쉬고 천천히 다리를 벌렸다. 차가운 바깥 공기가 음부에 닿아, 젖어 있던 입구에 한기가 스미자 무심코 신음이 흘러나왔다.

“흣……!”

“사비나 아가씨, 왜 그러십니까?”

“아, 아뇨. 차가워……서…… 어, 어머나!”

사비나의 몸이 파드득 떨렸다. 그녀는 당황하여 소리를 높이며 상체를 일으켰다가, 따뜻하고 촉촉한 것이 음부를 핥는 자극에 힉, 하고 숨을 삼키며 몸을 비틀었다.

“아, 아, 에르잔! 에르잔, 지금 무슨……!”

“차갑다고 하시기에.”

어느새 그녀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은 에르잔은 살며시 고개를 들어 사비나와 눈을 마주쳤다. 맑기만 하던 푸른 눈동자에 제 벌거벗은 몸이 비치고 있었다. 사비나는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대체 에르잔에게 무엇을 시키고 있는 거지?’

각오가 부족했다. 맨정신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자고 해야 할까. 사비나의 머릿속에서 뒤늦은 후회와 갈등이 고개를 쳐들었다가 도로 무너져 내렸다. 아랫배에서부터 스며든 쾌감이 번민하던 마음을 단숨에 집어삼킨 탓이다.

“하으, 에르잔……!”

고개를 숙인 에르잔은 그녀의 밀부 위에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탄력 있는 입술이 벌어지고 그 사이로 밀려 나온 촉촉한 혀가 미끈미끈한 애액으로 젖은 피부를 훑었다.

“아, 안 돼요. 거기, 더러워요……!”

“더럽지 않습니다.”

“무슨, 으응……하…….”

자꾸 이상한 소리를 내게 될 것 같아, 사비나는 제 손등으로 입을 막았다. 아래쪽에서 느껴지는 쾌감이 너무도 선명하여, 에르잔에게 못할 짓을 시키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다리를 크게 벌리고 말았다.

‘안 돼. 안 되는데…….’

산들바람에 갈대가 흔들리는 것처럼, 가느다란 음모에 따스한 입김이 와 닿았다. 낯선 열기에 당황하는 것은 그녀의 몸도 마찬가지였는지, 입구가 움찔거리더니 수축했다.

꽉 다물린 입구를 에르잔은 억지로 비집고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입술을 가볍게 대었다 떨어뜨리는 정도로, 그다음에는 조금 길게 입술을 억누르고 위아래로 문질렀다. 히익, 하는 소리와 함께 사비나의 허리가 둥글게 휘었다. 저절로 엉덩이에 힘이 들어가며 발가락이 곱아들었다.

애무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민 촉촉한 혀가, 야들야들한 피부에 감싸인 붉은 돌기를 톡톡 건드리기 시작했다.

“에르잔, 하으…….”

“사비나 아가씨, 힘을 빼십시오.”

어느새 긴장으로 단단해진 허벅지를 주물러 풀어 주며, 에르잔은 혀를 길게 빼어 그녀의 클리토리스부터 질 입구까지 천천히 훑어내렸다. 처음엔 빈틈없이 꽉 닫혀 있던 밀부가 조금씩 벌어지며, 새콤한 애액에 젖어 번들거리는 붉은 점막이 드러났다.

“흐앗, 아. 에르잔…….”

“예, 아가씨.”

“기분, 좋아요…….”

그런 곳은 부끄러우니 하지 말아 달라고 말해야 하는데, 정작 입에서 나온 것은 전혀 다른 소리였다. 사비나는 제가 무슨 말을 해 버린 줄도 모르고 본능적으로 허리를 띄웠다. 마치 몸이 조금씩 떠오르는 듯이 기분이 좋으면서도, 감질 나는 자극에 애가 탔던 것이다.

“조금, 조금만 더…….”

“알겠습니다.”

그곳에 사람의 혀가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사비나는 처음 알았다. 어처구니없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었으나 난생처음 느껴 보는 쾌감을 거부할 수 있을 만큼 사비나는 욕망을 억제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에르, 잔, 아흐…… 더…… 아응!”

촉촉한 것이 음부를 간질일 때마다 작게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엉덩이 골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말간 액체가 어디서 흘러나온 것인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허공을 헤매던 하얀 손이 에르잔의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면 아플 텐데도, 에르잔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혀를 움직였다. 젖은 음순을 벌려 비좁은 입구에 혀끝을 밀어 넣자, 붉은 점막이 확 조여들었다가 뻐끔거리면서 말간 액체를 내뿜었다.

“아, 아아…… 좋아…….”

사비나의 신음이 높아지는 것에 맞춰, 그도 점점 혀 놀림을 빠르게 했다. 에르잔은 살며시 혀를 올려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부드럽게 자극하다가, 살짝 부풀기 시작한 그것을 입술로 감싸 쓰읍, 하고 빨아 당겼다.

“아으으응!”

허리를 들썩이며 높은 교성을 지르는 사비나의 음색이 더없이 색스러웠다. 덩달아 에르잔의 가슴속에서도 마치 물결이 치듯, 무언가가 일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은 대체 무엇일까.’

이제 막 욕정에 눈을 뜬 젊은 청년은 아직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다. 다부진 체격에 아름다운 외모 덕분에 그를 흠모하는 여성은 많았으나, 연애에 관심이 없던 에르잔에게 그것은 늘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그러니 사비나의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술렁여도, 그 따뜻한 설렘이 어디에서 기원하는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을 턱이 없었다.

“핫! 에르잔, 으응!”

사비나의 몸을 만지는 것이 좋았다. 살갗을 맞대고 체온을 느끼면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아득했다.

그러나 가장 가슴이 따뜻해질 때는 따로 있다.

바로 그녀가 이름을 불러 줄 때.

“사비나 아가씨.”

“흣, 하으…….”

“제 이름을 불러 주십시오.”

앞선 두 번의 관계에서는, 결코 그녀에게 불리지 못했던 이름을, 지금은 들을 수 있다.

그녀를 기분 좋게 만드는 남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흐, 아, 에르잔…….”

“예, 사비나 아가씨. 에르잔입니다.”

이름을 불린 에르잔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마치 뜨거운 파도에 몸을 얻어맞은 것처럼 황홀해졌다. 소년처럼 수줍은 얼굴에 꽃 같은 미소가 피어났다. 그러나 열에 달뜬 사비나는 몽롱하여 시야가 흐렸던 탓에 그의 미소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상체를 조금 일으킨 에르잔은 사비나의 허벅지를 넓게 벌리고, 제 몸을 더욱 밀착했다.

“흣…….”

“아프면 말씀하십시오.”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 했으나 감격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서투른 기색이 묻어 나오는 제 목소리에 에르잔은 조금 곤혹스러웠으나 싫지는 않았다. 작게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비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

한층 농염한 향기로 가득 찬 여자의 음부에 남자의 뻣뻣해진 성기가 닿았다. 단단한 것이 음부를 압박하는 순간 사비나는 잠시 숨을 멈추었으나, 곧 깊게 내쉬며 몸의 긴장을 풀었다.

“아흣…….”

벌써 세 번이나 받아들였을 터인데도, 의식이 있는 상태로는 처음이기 때문일까. 비좁은 안쪽을 억지로 넓히며 파고드는 듯한 굵은 성기의 움직임에 사비나는 절로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의식적으로 풀어야 했다.

“에, 르잔…… 너무, 커요…….”

“긴장을 푸십시오. 조이지 마시고…….”

“조, 조인 적 없……!”

몸 안쪽이 열리는 듯한 느낌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 사비나는 입안을 깨물었다. 원래도 몸집이 큰 에르잔이지만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숨이 막힐 정도로 안을 압박하는 감각에 허덕이며 사비나는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이면서 호흡을 골라야 했다.

그의 성기를 감싼 질 내벽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뜨거운 애액을 뿜어냈다. 부드럽고 쫄깃하게 감싸오는 속살의 감촉에 흥분한 남성기는 분수를 모르고 더욱 부피를 키워댔다. 그 탓에 사비나는 자지러지게 울면서 허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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