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늪 속의 불-21화 (21/189)

21화

깨물린 아픔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통증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고통은 분명 이 여인이 이제껏 겪어 왔던 고통에는 차마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흐윽, 읏…….”

팔을 깨물어도 손을 놓지 않고, 오히려 강하게 붙잡는 사비나의 행동에 겨우 정신이 든 건지, 여인의 들썩이던 어깨가 가라앉고 격하게 헐떡거리던 숨소리도 차츰 잦아들었다.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지근거리에 있는 사비나는 그녀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아…….’

얼굴 반쪽이 완전히 일그러진 여인이었다. 화상이라기보다는 뭔가 밀가루 반죽 같은 것이 무너져 내린 듯한 끔찍한 형상이었다.

“안 돼, 싫단 말이야. 이런 끔찍한 모습…… 흐어엉…….”

얼굴 위로 부풀어 오른 살덩이에 짓눌려 피부가 썩고 있는지 뭔가 이상한 냄새도 나는 데다, 눈의 위치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짓눌린 피부 틈새로 흘러나오는 것은 검은 저주의 기운이 아닌 투명한 눈물이었다.

“보지 마, 제발…… 내 얼굴 보지 마…….”

“하지만 보지 않으면, 치료해 드릴 수가 없어요.”

“치료……?”

반사적으로 고개를 든 여인은, 사비나와 눈이 마주치고 얼른 다시 얼굴을 돌려 버렸다. 어떻게든 남의 시야에 제 흉측한 모습이 들어오는 것을 피하려는 듯이.

“이런 모습으로 계속 괴로워하셨군요.”

“동정은 집어치워! 사람을 뭐로 보고……!”

“제가 도와 드릴게요.”

여인의 손목을 살짝 끌어당기자, 상체가 기울면서 그녀가 본능적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사비나는 그녀의 일그러진 얼굴 쪽에 손톱자국이 가득한 제 손을 살며시 가져다 대었다.

만진다, 라기보다는 닿는다고 표현하는 쪽이 정확할까. 그저 가볍게 접촉한 것뿐인데도 살갗이 맞닿는 순간 여인의 얼굴에서 진득한 검은 기운이 흘러나와 사비나의 팔에 휘감겼다.

“악……!”

“아직 조금 더 남았어요. 놓지 마세요!”

여인의 피부, 머리카락, 눈의 점막에까지 엉겨 붙어 있던 저주의 양은 상당했다. 제 몸속으로 파고드는 저주의 기운에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으나 사비나는 입술을 깨물고 버텼다. 절로 숨이 차오르고 눈앞이 흐릿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의식을 잃어서는 안 된다. 사람을 구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나.

얼굴을 보이기 싫다며 절규하던 여인을 붙잡아 마주한 이상, 사비나에게는 그녀의 상처를 치유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아아……!”

마치 몸속의 뭔가가 강제로 뜯겨나가는 듯한, 하지만 괴롭다기보다는 시원한 감각에 여인이 신음했다. 온몸 곳곳에 진득하게 들러붙어 있던 것을, 소름이 돋을 만큼 서늘한 물을 끼얹어 씻어 내려가는 듯한 느낌.

“이, 이게…… 뭐야……?”

살에 짓눌려 오른쪽 눈으로밖에 사물을 분별할 수 없었던 여인의 시야에 원근이 돌아왔다.

코 한쪽이 짓눌려 숨을 쉬기 힘들었던 것이 사라지고 개운해졌다.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끔찍한 느낌과 얼굴을 짓누르던 무게감이 사라졌다.

갑자기 압박감이 사라진 이유를 깨닫지 못한 여인은 무심코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만지다가, 흉측하게 문드러진 상처가 사라진 것을 깨닫고 눈을 크게 떴다.

‘눈동자가 녹색이구나.’

멀쩡해진 여인의 얼굴을 본 사비나가 처음 한 생각이었다. 비명을 지르며 난동을 부리느라 머리는 아직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고 눈물과 콧물로 피부가 얼룩덜룩했지만, 저주를 흡수하면서 피부가 썩어 가던 것도 원래대로 돌아온 덕분일까, 흉측한 살덩이의 흔적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젠 괜찮은가요? 아직 아픈 곳이 있다면…….”

“소, 손대지 마!”

손으로 저주를 흡수했기 때문일까, 여인은 끔찍한 것을 마주한 듯 소스라치게 어깨를 떨며 뒤로 물러났다. 다리에 엉겨 붙어 있던 검은 저주도 사라진 덕분에 그녀는 비틀거리지 않고 바로 설 수 있었다.

“너, 너 뭐야?”

“네?”

“너 대체 뭐냐고!”

저주의 주술에 걸려 얼굴이 일그러지고 다리를 절고 있었으니, 주술에서 해방되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 기뻐할 줄 알았는데. 여인은 마치 징그러운 벌레라도 본 것처럼 양팔을 감싸고 얼굴을 찡그렸다.

“저어…….”

“오지 마! 저리 가!”

사비나가 몸을 일으키자, 여인은 진저리치며 고개를 흔들더니, 곧 몸을 돌려 뛰어가 버렸다. 사비나는 그녀를 쫓지 않았다. 여인의 다리가 멀쩡하게 나아 뜀박질이 빨라진 것보다는, 저주의 기운을 흡수해 몸이 천근처럼 무거워진 탓이 더욱 컸다.

사비나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다가 도로 주저앉았다.

“읏…….”

“사비나 아가씨!”

오지 말라고 명령을 내린 까닭에 가까지 다가가지도 못하고, 여인을 ‘치료’하는 내내 초조하게 멀리서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에르잔은, 사비나의 몸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날듯이 뛰어가 그녀를 부축했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괜찮, 아요. 조금 무거운 것……뿐이라…….”

마치 밑에서 무언가가 잡아당기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위에서 짓누르는 것 같기도 했다.

밭은 숨을 내쉬며 사비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피부 속으로 스며든 끈적끈적한 검은 기운이 속에서 서로 뒤섞이더니 천천히 열기를 내기 시작했다. 배 속에서부터 뜨거운 열이 차오르는 느낌에 사비나는 숨을 삼켰다.

‘설마 이대로 또 어젯밤과 같은 실수를 범하게 되는 건 아니겠지?’

사비나는 이를 악물고 견뎌 냈다. 아버지의 명령으로 자신의 호위기사가 되어 이런 먼 산골까지 따라온 에르잔. 모르긴 몰라도 황궁 기사단 소속이라면 장래가 유망한 청년일 것이다. 저주의 화신이자 콘바야젠 가문 비밀의 주술사인 자신과 가까워져서 좋을 일이 없었다.

정화 체질인 에르잔에게는 어지간한 저주가 듣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가 정화술사가 아닌 한 앞으로도 멀쩡할지는 모르는 일. 최소한 에르잔과의 거리를 벌려야 했다.

“저기, 에르잔. 이제 괜찮으니까…….”

“아직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방까지 모시겠습니다.”

“아니에요. 정말, 정말로 괜찮으니까, 제게 가까이 오지 마세요.”

혹시라도 에르잔이 저주의 영향을 받을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어젯밤처럼 이상한 관계를 가져 버리지 않을까 두렵기도 했다.

‘에르잔을 끌어들여서는 안 돼.’

에르잔이 자신의 호위기사를 자처한다면, 호위기사의 임무 이외의 것을 시켜서는 안 된다. 주문처럼 그 말을 속으로 되뇌며 사비나는 에르잔을 밀어냈다.

“가까이 가지 않으면 아가씨를 지킬 수 없습니다.”

늘 한번 말하면 곧바로 알아듣고 행동하던 그가, 사비나의 명령 아닌 명령을 거부하고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안아왔다.

“불편한 곳을 말씀해 주십시오. 속이 안 좋으시다면 제 옷에 토하셔도 괜찮습니다.”

“아, 아니, 그런…….”

“지켜야 하는 분께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는, 무력한 남자가 아닙니다.”

지켜야 하는 분.

그 말에 조금씩 몸 안에 들끓던 열기가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다.

어째서일까?

이유를 알 수는 없었으나 어깨를 안고 있는 에르잔의 커다란 손에 기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현기증이 가라앉자 조금 멍한 기분이 된 사비나는 저도 모르게 에르잔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기대는 순간 에르잔이 살짝 어깨를 굳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몸을 일으킬 여력이 없었던 사비나는 그대로 가만히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 * *

여자는 숨이 턱 끝에 차오를 때까지 정신없이 달렸다. 도중에 몇 번이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광장을 지나 세 채의 집이 늘어선 제 거처에 다다르자, 간신히 발을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카밀라?”

여자를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밀라’라고 불린 여자는 후우, 숨을 내쉬고는 비틀거리며 제집을 향해 다가갔다. 거미줄이 낀 부연 창문 너머로 흐릿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카밀라는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카밀라의 집은 결코 비좁지 않았으나, 습기 탓에 벽은 온통 까만 곰팡이에 덮여 있었다. 그나마 곰팡이가 슬지 않은, 볕이 드는 한쪽 벽면에 둔 침대는 그녀의 오라비인 카이라트의 자리다.

“카이라트.”

“카밀라 맞구나. 어딜 다녀왔어?”

“그냥, 좀…….”

카밀라는 애매하게 말을 흐리며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던 카이라트에게 다가갔다.

카밀라가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는지, 카이라트가 눈을 뜨고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나 카밀라는 저주의 흔적이 사라진 얼굴을 감추려 들지 않았다.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을 들킬 걱정은 없다.

‘카이라트는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

카밀라는 천천히 다가가,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로스카옌 사제가 놓고 간 듯한 빵과 고기가 놓여 있었다.

“로스카옌 신부님이 다녀간 모양이네.”

“응. 고맙다면서 놓고 갔어.”

“그래…….”

“그런데 카밀라.”

카이라트의 목소리가 묘하게 낮아졌다. 카밀라는 흠칫 어깨를 움츠리며 몸을 뒤로 당겼다. 어째서일까. 카이라트는 분명 눈이 보이지 않을 터인데, 카밀라 쪽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들어 있었다.

“다리가 나은 거야?”

힉, 카밀라가 숨을 삼켰다. 그러고 보니 카이라트는 눈이 보이지 않는 까닭에 귀가 밝았다. 걸음 소리만으로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그가 창문 너머의 그녀를 향해 “카밀라?”라고 의문형으로 불렀던 것을 뒤늦게 떠올린 카밀라는 입안을 깨물었다.

“기, 기분 탓이야. 그냥 좀 컨디션이 좋아서 빨리 걸은 것뿐이라고.”

“거짓말하면 안 돼. 카밀라.”

얼굴 한쪽이 무너져 내려 코를 짓누르고 입도 크게 벌릴 수 없던 까닭에, 원래 카밀라는 호흡도 짧고 발음도 불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숨소리가 편해졌어. 목소리도 맑아졌고.”

카이라트는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카밀라의 걸음 소리, 숨소리,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 그녀의 몸을 짓누르던 저주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누가 너를 치료해 줬지?”

카밀라는 머뭇거리다가, 속일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실토했다.

“마을에 새로 온, 이상한 여자.”

“로스카옌 신부님이 말한 외부인인가…… 그 사람이 너를 고쳐 주었구나.”

“카이라트, 그 여자 진짜 이상한 여자야. 위험하다고! 내 몸에 붙어 있던 끈적끈적한 게, 그 여자가 나를 건드리니까 꿀렁꿀렁하고 넘어가서……!”

“그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는 했어?”

마치 어린 동생을 다그치는 듯한 말투에, 카밀라는 불퉁하게 입을 내밀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흠칫 놀라 어깨를 떨었다.

늘 보던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다.

얼굴이 부풀어 오르지도, 살이 코와 입을 짓누르지도 않는 제 얼굴. 이제는 거의 흐릿할 정도로 오래된, 15년 전 기억하던 자신의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으니까 무서워져서 도망쳤어.”

“그러면 안 되지.”

“하지만 카이라트. 이상하지 않아? 로스카옌 신부님도 고치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 여자는 내 저주를 빨아들였다고! 정상이 아니야. 우리를 죽이려고 중앙에서 보낸 주술사일지도 몰라!”

“우리를 죽이러 온 사람이라면 너를 무사히 돌려보내지 않았을 거야.”

“…….”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카밀라의 녹색 눈이 빠르게 옆으로 굴렀다. 힐끔 제 얼굴을 확인한 그녀는 다시 카이라트를 바라보았다.

15년 전의 악몽 같은 날. 마을을 불태우고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이들이 떠난 뒤, 로스카옌 사제는 살아남은 이들을 불러 모아 말했다.

이제 이 저주받은 마을의 시간은 영원히 멈추게 될 거라고.

저주를 품고 살아난 이들은 끔찍한 고통을 겪었음에도 죽을 수 없었다. 누구는 피부병이 생기고, 누구는 다리를 절고, 누구는 앞이 보이지 않고, 누구는 기억도 의지도 잃은 채 인형처럼 축 늘어진 채로 이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카이라트는 저주에 의해 아내를 잃고 눈이 먼 후로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카밀라는 그가 빛을 잃고 삶에 대한 의지마저 버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카이라트는, 삶의 의지를 잃고 가만히 누워 지내기만 했던 건 아닌 것 같다.

“카밀라. 나, 너를 치료해 줬다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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