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늪 속의 불-17화 (17/189)

17화

“아가씨, 흣……!”

에르잔의 입에서 긁힌 신음이 흘러나왔다. 질퍽거리는 소리와 함께 음부에서 튀는 액이 바닥에 떨어졌다.

“하아, 응! 거기, 너무……좋아……!”

절로 쉰 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비나는 입을 벌린 채로 헐떡거리며 허리를 흔들었다. 흰 피부 위를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반짝이는 빛을 냈다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철썩.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느리게 들렸다.

“아, 아, 아아……!”

허벅지에 절로 힘이 들어가, 여자의 속살이 남자의 성기를 빠듯하게 조였다. 에르잔이 살짝 긁히는 신음을 냈다. 자극이 심했을까. 하지만 에르잔은 허리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안을 억지로 열듯이 힘 있게 안쪽으로 제 분신을 밀어 넣었다.

“하아응……!”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속살을 밀어젖히며 왕복하는 단단하고 굵은 성기의 움직임에 사비나의 다리가 벌벌 떨리고 발가락이 오그라들었다. 젖은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 떨어졌다. 그 눈물의 원인이 고통인지 쾌감인지 파악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이미 그런 것을 판단할 이성은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안쪽에서 꿈틀거리는 남자의 움직임에 여자의 아랫배가 납작하게 들어갔다. 그대로 퍽, 쳐올리자 아랫배가 불룩 튀어나오며 단 신음이 높아졌다.

에르잔은 한 줌도 되지 않을 듯한 그녀의 허리를 한 손으로 부여잡고, 다른 손으로 흔들리는 흰 가슴을 움켜쥐었다. 말랑한 살이 손안에서 뭉그러지듯 형태를 바꾸며 찰싹 달라붙어 왔다. 힘주어 끌어안으면 부서질 듯 가녀린 몸인데, 어째서인지 에르잔은 사비나의 몸에 제가 삼켜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사, 사비나, 아가씨……!”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거나, 이번에는 처음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거나, 어느 쪽이든 무의미한 다짐이었다. 이성과는 달리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에르잔은 한 손으로 사비나의 몸을 번쩍 안아 들었다.

“흐앗, 아! 안 돼…… 하앙!”

안을 찌르는 각도가 바뀌며 깊은 곳까지 단번에 쳐올리자, 사비나는 거의 흐느끼는 듯한 신음을 내지르며 에르잔의 등에 손톱을 세웠다.

이지를 잃은 두 남녀가 서로를 집어삼킬 것처럼 섞여드는 행위는, 하늘 높이 떠올라 있던 태양이 자취를 감추고 새까만 밤이 지상을 덮을 때까지 이어졌다.

5. 인연과 우연 사이의 거리

“으음…….”

물에 젖은 솜처럼 몸이 무거웠다. 불편한 듯이 뒤척거리던 사비나는 문득, 제 허리에 뭔가 굵직한 것이 감겨 있는 것을 눈치채고 흠칫 놀랐다.

‘뭐, 뭐지?’

사비나가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탄탄한 근육으로 감싸인 팔이 제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대로 눈동자를 오른쪽으로 돌리자, 바위처럼 단단한 넓은 어깨가 시야에 들어왔다. 조금 더 오른쪽으로 옮기자, 햇살을 머금은 듯 반짝거리는 금발이 보였다.

‘에르잔?’

당황하던 것도 잠시, 제 허리를 감싸고 잠든 것이 에르잔임을 자각한 순간, 정신을 잃기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카림의 몸에 잠식되어 있던 저주를 흡수하고, 에르잔에게 이곳에 남겠다고 솔직히 말했다. 이곳에서 저주받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이 지긋지긋한 능력으로도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고.

‘그런 뒤에, 어떻게 되었더라?’

갑자기 현기증이 나면서, 구토가 치밀면서, 어찌할 수 없이 괴로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정신을 잃기 직전, 자신을 부축한 채 걱정스레 들여다보던 푸른 눈동자가 보였던 것을 기억한다.

‘정신을 잃고 나서 에르잔이 나를 오두막으로 옮겨 준 것뿐……이라고 하기엔.’

사비나도, 에르잔도 알몸이었다.

이불에 가려져 있지만 하반신에 와 닿는 단단한 남자의 하체를 느끼지 못할 만큼 감각이 둔하진 않았다. 살짝 엇갈리게 얽힌 두 사람의 다리 사이에 옷자락의 감촉은 무엇 하나 없었다.

그렇다는 건.

“……꺄아악!”

“헛!”

상황을 파악한 사비나의 입에서 대뜸 튀어나온 비명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킨 것은 에르잔이었다.

“누구냐!”

아직 잠이 덜 깨었음에도 위험에 대처하는 습관이 몸에 밴 에르잔은 침대에 누워 있는 사비나를 보호하는 형태로 자세를 잡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두 사람이 머무는 오두막에 들어선 수상한 침입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비나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 에르잔이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알몸이었던 사비나는 화들짝 놀라 양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몸을 돌렸다.

“에르잔, 보지 마세요!”

“앗! 죄, 죄송합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에르잔이 다급하게 사과하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침대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사비나도 에르잔을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저 그로부터 등을 돌리고 벽에 꼭 몸을 붙인 채로, 화끈 달아오른 양 뺨을 가렸을 뿐이다.

“…….”

“…….”

한 침대에서 알몸으로 함께 잠든 남녀라고 보기에는 생소할 만큼 어색한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침묵이라고 표현하기에 그것은 구겨진 종이에 마구 흩뿌려진 잉크처럼 어지럽고 혼란했다. 그 답답한 분위기를 먼저 깨려 한 것은 에르잔 쪽이었다.

“저어, 사비나 아가씨. 죄송합니다.”

“……왜 에르잔이 사과하는 거예요?”

“제가 미진하여 주군과 한 침상을 써서는 안 된다는 기사의 계율을 어겼습니다. 게다가 지켜야 하는 분보다 늦게 일어나는 잘못까지…….”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잖아요.

……라고 사비나는 지적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어 가만히 손으로 입가를 매만졌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처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아뇨, 에르잔. 저기, 저는 지금 혼란스러운데요.”

“죄, 죄송합니다…….”

에르잔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그러나 사비나를 더욱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에르잔이 사과하는 내용이었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알몸으로 함께 일어났다. 그것도 서로 몸을 꼭 밀착한 채로.

아무리 상식이 부족한 사비나라도 성적인 지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그녀의 아름다운 육체를 미끼로 저주의 술법을 행해 왔기에 더욱 잘 알 수밖에 없었다.

‘다, 다리 사이가…… 욱신거려…….’

허벅지를 오므리고 엉덩이를 움찔거리자, 안쪽에서 뭔가 미끈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피시식 김이 날 정도로 빨갛게 되었던 사비나의 얼굴이 이번엔 창백해졌다.

“……에르잔.”

“예, 사비나 아가씨.”

당신과 내가 성관계를 가졌나요?

……라는 질문을 던질 만큼 사비나는 순진하지 않았다. 몸에 남은 증거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사비나에게 충격을 준 것은 에르잔과의 섹스 자체보다도 그것이 일어난 경위였다.

설마 저주의 힘이 폭주해서, 성욕으로 변질되어, 이것을 해소해 주지 않으면 그를 저주하겠다고 협박이라도 했던 걸까? 사비나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내가, 당신을 협박했나요?”

“예……?”

에르잔의 목소리가 의아하게 높아졌다. 사비나는 몸을 가려야 한다는 것도 잊고, 비틀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 바람에 얼른 시선을 내리깔아 상대의 몸을 보지 않도록 예의를 지킨 것은 에르잔 쪽이었다.

“안아 주지 않는다면 당신을 저주하겠다고 윽박이라도 질렀나요?”

“예? 저주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면 누군가를 인질로 잡았나요?”

에르잔이 황당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가, 사비나의 알몸을 보고 얼른 다시 고개를 숙였다. 커다란 덩치를 어떻게 감추지도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이 평소의 그와는 너무 달라서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의식을 잃기 전에 당신에게 매달렸던 기억이 나요.”

“사비나 아가씨, 간밤에는…….”

“그리고 깨어났을 때는 우리 둘 다 알몸이었고.”

민망한 듯이 얼굴을 붉히는 에르잔과는 달리, 사비나는 방금까지 부끄러워하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차분했다. 아니, 차분하다기보다는, 냉정했다.

“말해 주세요, 에르잔. 간밤에 내가 당신을 저주하려 했다면 당신 몸에 주술이 남아 있을지도 몰라요. 다시 그것을 거두어들여야…….”

주술. 저주, 협박, 인질.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를 모두 이해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에르잔은 사비나의 당혹스러운 한편 미안해하는 표정에서 그녀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사비나는 지금 자신이 에르잔에게 뭔가 아주 나쁜 일을 했을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

‘나쁜 일이라…….’

귀족 가문에서 보호하고 있던 아가씨와 호위기사가 몸을 섞은 일은 분명 올바른 일이 아니지만, 그것은 사비나의 책임이 아니었다.

“사비나 아가씨, 왜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가씨께서 저주 같은 것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그에게 입을 맞춘 것은 그녀 쪽이었다. 어쩌면 유혹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유혹에 넘어간 것은 자신이지 않은가.

자신이 억지로 범한다면 밀어낼 수 없는 사비나와는 달리, 에르잔 자신은 사비나가 달려들더라도 충분히 밀어내고 피할 수 있는 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당신이 내게 잠자리를 요구했다」고 말할 만큼 에르잔은 뻔뻔하지 못했다. 결국 몸을 섞기로 결정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에.

에르잔은 잠시 입을 다물고 숨을 골랐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협박을 하지도 않으셨고, 인질을 잡은 것도 아닙니다. 주술로 옭아매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래요? 그럼 왜…….”

“제가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저 섬겨야 하는 이의 부탁이기에 따랐던 것은 아니다. 그녀의 몸에 욕정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힘겨워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가씨께서 맨정신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제넘게 나선 것을 사과드립니다.”

에르잔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부끄러워서가 아닌, 명백하게 사죄를 하는 자세였다.

‘내가 힘겨워해서……였다고.’

에르잔의 말은 그녀의 책임이 아니라 자신의 책임이니 다른 곳에서 이유를 찾지 말라는 것이었지만, 사비나는 에르잔의 말 앞부분에만 집중했다.

자신 안의 저주의 힘이 폭주해서 괴로워하다 그에게 매달렸다. 정식 계약은 아니라고는 하나 두 사람의 관계는 일종의 주군과 호위기사의 관계였고, 에르잔은 기사도를 지키는 성실한 청년이었다. 그녀를 위해 다양한 요리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며 옷가지를 구해 올 만큼 세심하기도 했다.

‘나 때문이구나.’

성실하고 세심한 사람을, 부탁을 받으면 차마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난동을 부리며 매달린 것은 자신이다. 주군인 사비나가 매달리는데 호위기사인 에르잔이 어떻게 거절한단 말인가.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 없는 성실한 에르잔은 결국 주군을 위해 잠자리 봉사까지 했다는 뜻이다.

원인을 자기 안에서 찾은 사비나는 또다시 침울해했다.

“미안해요, 에르잔.”

“사비나 아가씨?”

분명 사죄를 했는데 왜 상대 쪽에서 사과를 해 오는지 이해하지 못한 에르잔은 당황했다. 같은 화제를 두고 이야기하는데 어쩐지 말의 내용이 전달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얼굴을 가린 채 작게 신음하는 사비나를 두고 차마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거냐고 캐물을 수도 없어, 에르잔은 난감한 표정으로 양 무릎에 손을 올렸다.

“사비나 아가씨, 사과하지 마십시오.”

“아뇨. 모든 게 나 때문이에요. 내가 거짓말을 해서…… 내 몸에 대해서, 주술에 대해서, 저주에 대해서 비밀로 하는 바람에 이런 일이 일어났어요. 당신을 끌어들인 걸 사과하게 해 주세요.”

“아가씨 탓이 아닙니다.”

“에르잔.”

“아가씨께서 끌어들이신 것이 아닙니다. 저 또한 원했던 일이니까요.”

사비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에르잔과 눈을 마주쳤다.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짜증을 내는 것도 아니고, 얼굴을 찌푸리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욕설을 내뱉으며 매도하지도 때리지도 걷어차지도 않는, 그저 그녀를 염려하는 표정만이 가득한 남자가 그곳에 있었다.

‘왜? 왜 에르잔은 날 경멸하지 않지?’

아무리 주술이나 저주에 대해 무지하다고 한들 그 불온한 단어의 의미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사비나가 위험한 존재이며, 그녀에게 께름칙한 무언가가 감돌고 있다는 것쯤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에르잔은 처음 마주했을 때와 조금도 다름없는 맑은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본다. 그의 푸른 눈을 마주한 순간, 사비나는 가볍게 전율했다.

시선을 마주한 것만으로 제 안의 불안과 미혹이 눈 녹듯 사라지는 듯했다.

가장 숨기고 싶은 사실을 들켰는데, 어째서 홀가분한 기분이 드는 걸까.

사비나는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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