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늪 속의 불-16화 (16/189)

16화

“난 여기서 사람들을 구할 거야. 이건 내가, 아니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저주의 화신인 나만이 이 죽음의 저주가 가득한 마을을 구할 수 있어.”

마을에 깃든 저주를 모두 빨아들이고, 이 몸이 저주에 잠식되어 죽는다 해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사비나는 어째서 아버지인 콘바야젠 백작이 자신을 이곳으로 보냈는지 깨달았다. 아마도 이곳에 깃든 죽음의 저주가 사비나의 힘을 강하게 할 거라 생각해 보낸 거겠지. 그녀의 힘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만 해 온 아버지니까. 이 마을을 엉망으로 만들어 그녀를 더욱 확고한 죽음의 화신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사비나는 이곳에서 답을 찾았다. 이곳에서라면 그녀는 죽음의 화신이 아니라 저주에 잠식된 이들을 구하는 구원자로 있을 수 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구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저주가 가득한 이 마을에서라면.

“아가씨. 로스카옌 신부님이 말씀하셨다시피 이 마을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걸 중앙에 알리면 분명 감찰관이 파견되어 진상을 밝힐 겁니다.”

“그럼 에르잔은 수도로 가서 진실을 알리세요. 난 이곳에 남을 테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사비나 아가씨, 저는 아가씨를 지키기 위해…….”

“나는 이곳에 있을 거야. 이곳에서 사람들을 구할 거야. 카림을 구한 것처럼. 또, 또 다른 누군가를 구할 수 있을 거야. 그래요, 그 첨탑의 지하에 갇혀 있던 남자도, 내가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사고를 거치지 않고 말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녀 자신도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리라. 큰 충격에 사비나가 착란을 일으키는 거라 판단한 에르잔은 그녀를 다잡아 주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사비나 아가씨, 진정하십시오. 일단 쉬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에르잔은 아니에요. 당신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없어. 마치 태양처럼 빛나는 사람이니까. 당신에겐 내가 필요 없어. 나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곁에 있을 거예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사방으로 흔들리는 사비나의 검은 눈동자에서 위험을 감지한 에르잔이 그녀의 손목을 강하게 붙들었다.

“정신 차리세요, 사비나 아가씨!”

“이거 놔요! 당신은 저주받지 않았으니까, 내게 닿으면……!”

저주에 물들지도 모르니 위험하다고, 그렇게 말하려던 찰나 목구멍이 턱 막히면서 시야가 뒤집혔다.

“허억!”

“사비나 아가씨!”

시야가 까맣게 점멸하면서, 이명이 귓전을 때렸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다. 사비나는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카림의 몸에 가득했던 저주의 주술을 제 몸에 받아들인 대가, ‘저주의 반동’이 일어난 것이다.

“아, 아악……!”

“사비나 아가씨!”

넘어져 다치지 않도록 강하게 붙들자, 사비나는 괴로움에 팔을 허우적거리다가 에르잔의 뺨을 할퀴었다. 단정한 얼굴에 붉은 실선이 그어졌지만 에르잔은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사비나를 진정시키려는 듯, 더욱 강하게 끌어안아 왔다.

“하윽, 하…….”

“아가씨, 조금만 참으세요. 바로 로스카옌 신부님을 불러오겠습니다.”

사비나를 안고 오두막으로 돌아온 에르잔은 그녀를 침대에 눕히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하얗게 눈이 뒤집혀 컥컥거리던 사비나의 시선이 되돌아왔다. 빛조차 반사하지 않는 새까만 눈동자와 마주쳤다고 생각한 것은 찰나였다. 그녀가 달려들 듯이 에르잔에게 입을 맞추었다.

“흡……!”

커다란 주술에는 그만큼의 부작용이 따른다. 아니, 반작용이라고 할까.

생명을 빼앗는 저주의 술법은 주술 가운데서도 가장 고난이도의 술법에 속하므로 반작용의 규모도 범위도 상상 이상이었다.

그렇기에 주술사들은 저주의 술법에 대한 반작용을 ‘업보’라 부르며 금기시했다.

사비나 자신도 저주의 술법을 행하면 타격을 입었다. 처음에는 상처가 터져 피가 흐르는 고통이었다. 고통에 익숙해지기 위해, 그녀의 몸은 채울 수 없는 갈망을 추구하게 되었다. 기실 죽지 못하는 그녀에게 가장 큰 괴로움을 선사하는 것은 살이 베이거나 곪아 드는 통증이 아니라, 채우지 못하는 정욕 쪽이다.

“으음, 읍…….”

사비나는 의미가 이어지지 않는 야릇한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떨었다.

그저 견디기만 하면 되는 고통과는 달리 채울 수 없는 욕구에 대한 갈망은 정신이 나가 버릴 듯한 괴로움을 동반했다. 아니, 이미 나가 버렸는지도 모른다.

사비나는 지금 제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 남자가 에르잔이라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이 몸 안에 들끓는 열을 해소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사비나는 숨을 헐떡이며 에르잔을 향해 팔을 뻗었다. 붉은 혀가 남자의 입술을 핥더니,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뺨을 타고 미끄러져 귓불에 닿았다. 그녀가 요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안아 줘. 안아 주세요, 제발…….”

“아, 아가씨! 이러시면 안 됩니다. 로스카옌 신부님께 치료를……!”

“싫어요, 지금이 아니면…… 안 돼.”

긴장과 당혹감으로 경직된 그의 몸에 제 몸을 맞대고 비비면서, 사비나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사비나 아가씨…….”

그녀의 알몸을 보는 것은 처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도저히 적응되지 않았던 에르잔은 차마 눈을 둘 곳을 찾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채로 난처해했다.

가장 난처한 것은, 이런 난감한 상황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는 자신의 육체다. 밀어내려면 밀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사슬에 묶이기라도 한 것처럼 에르잔은 그대로 굳어 있었다.

“사비나 아가씨…… 읏!”

가느다란 손가락이 바지춤을 건드리자, 허리가 바짝 긴장했다. 자각하지 못했을 뿐 그의 성기는 이미 빳빳하게 곤두서 있었다. 두꺼운 바지 위로도 느껴지는 크고 단단한 남성기의 감촉을 확인한 사비나는 기대감에 들떠 붉어진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이 미치도록 유혹적이었다.

촉촉한 혀가 다시 에르잔의 입술을 핥았다. 그러는 동시에 작은 손이 재빨리 움직여 그의 벨트를 풀고 바지 안으로 쏙 들어와, 에르잔은 숨을 삼켰다.

“크흑……!”

“으응, 여기. 단단해…….”

“아가씨. 그, 그렇게 만지시면…….”

이미 간밤에 한 번 경험했기 때문일까. 그렇게 능숙하게 애무하는 것도 아닌데, 그녀의 손이 닿은 것만으로 온몸이 저릿했다. 마치 온몸이 불에 달궈진 쇠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에르잔은 몸서리쳤다.

이것이 성욕일까? 이 미칠 듯한 기분을, 자신은 이제까지 거부할 수 있다고 자만해 왔던 건가.

머릿속에서는 이래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는데도, 그녀의 손이 제 것을 쓰다듬어 주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에르잔은 무심코 허리를 움직였다.

“아가씨. 사비나 아가씨…….”

“기분, 좋아요……?”

“읏, 미칠 것, 같습니다…….”

너무 자극이 심해 견딜 수가 없는데, 그만두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이것이 대체 어떤 기분인지 에르잔은 설명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바지가 반쯤 벗겨져, 드러난 탄탄한 허벅지 위에 보드라운 여자의 허벅지가 맞닿았다.

에르잔의 위에 올라탄 사비나는 바쁘게 손을 움직이며 그의 날카로운 콧날과 턱, 남자다운 목선을 지나 쇄골까지 할짝거리며 간지러운 입맞춤을 퍼부었다.

견딜 수 없는 자극이었다. 마치 고문이라도 당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런 고문이라면 받다가 죽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황당한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읏, 아가씨…….”

커다란 손이 사비나의 어깨를 감싸고 등을 쓰다듬자, 그녀의 몸이 조금 더 앞으로 기울었다. 두 사람의 가슴이 맞닿았다. 말캉한 가슴이 제 가슴 위에서 뭉그러지는 감촉에 에르잔은 또다시 머릿속이 하얗게 날아가는 듯했다.

거의 반쯤 끊어져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이성의 끈을 붙들고 있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거세게 숨을 몰아쉰 에르잔은 한순간 그것을 놓아 버렸다.

“아!”

삽시간에 자세가 반전되었다. 에르잔이 그대로 몸을 뒤집자, 그의 허벅지에 걸터앉아 있던 사비나는 침대 위로 떨어졌다. 말랑하고 보드라운 여체 위로 단단한 근육으로 꽉 짜인 남자의 몸이 드리워졌다.

“용서하십시오, 사비나 아가씨.”

“뭐를, 응…….”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더 이상의 물음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에르잔의 입술이 사비나의 입을 틀어막았다.

“으응…… 하…….”

망설이던 것은 처음뿐이었다. 혀끝으로 입술을 벌려, 사비나의 작은 입안으로 커다란 혀가 침입할 무렵에는 그녀의 팔도 에르잔의 어깨에 둘려 있었다. 바위처럼 단단한 남자의 등 위에서 새하얀 손가락이 춤을 추었다.

에르잔의 혀가 그녀의 입천장과 치열을 훑을 때마다 사비나는 작게 신음하며 몸을 비틀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품에서 벗어날까 조바심이 났던 에르잔은 품 안의 가느다란 신체를 꼭 껴안았다. 사비나의 키가 그리 작은 것도 아닌데, 에르잔이 끌어안자 그녀는 마치 짐승의 입에 삼켜진 먹이처럼 온몸이 그에게 감싸인 모양새가 되었다.

가슴이 맞닿고, 배가 맞닿고, 옴폭 들어간 아랫배에 불뚝 성이 난 성기가 닿았다. 지난밤, 처음으로 욕정을 알아 버린 남자의 성기는 여자의 몸을 껴안은 것만으로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처럼 꺼떡거리며 사비나의 아랫배를 쿡쿡 찔렀다.

“흣, 아아…….”

흥분했던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던 듯, 사비나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전신이 땀으로 젖어들기 시작했다. 기갈난 사람처럼 하─하─ 숨을 토하는 그녀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음부가 저절로 경련하더니 미끈거리는 애액이 흐르기 시작했다.

“흐아, 읏…… 빨리…….”

더 큰 자극을 원하는 것처럼 그녀의 음부가 끊임없이 실룩거렸다. 갈증이 난 아이가 물을 요구하며 혀를 내밀고 헐떡이는 것처럼, 붉게 충혈이 된 입구가 벌름거리며 자신을 채워 줄 남자의 성기를 요구했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이대로는…….”

두 번째라고는 하나 첫 경험의 충격이 너무도 강렬했던 까닭에, 에르잔에게도 나름대로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처럼 이성을 잃고 그녀를 안았다가는 큰 실수를 범할지도 모른다.

“흣…….”

에르잔은 욕망으로 뜨겁고 단단해진 그것을 손으로 감아 아래부터 위로 훑어 올리면서 거친 숨을 토해 냈다. 정액을 내뿜을 곳을 찾듯이 꿈틀거리는 성기는 금방이라도 사정할 듯이 팽팽하게 부풀어 있었다.

“사비나 아가씨…….”

“빨리, 빨리…… 흐아…….”

성기가 맞닿은 채로 움직이면서 주는 자극에 흥분했는지, 숨을 헐떡일 때마다 사비나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흔들리는 탐스러운 가슴을 손으로 감싸 주며 젖꼭지를 문지르자, 사비나의 입에서 높은 교성이 새어 나왔다.

“앗, 흐앙…… 하윽!”

입구를 두드리던 귀두가 아슬아슬하게 안쪽으로 진입한 것과 동시에, 사비나의 신음이 단숨에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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