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그러고 보니 아이는 죽음의 저주가 깃든 연못 주위를 매일 배회했다. 오늘은 무려 바지를 걷어 올리고 맨다리로 물장구까지 치지 않았나. 보통 사람은 닿는 것만으로 기운이 빨려 나가 기절하거나 병에 걸렸을 터인데, 아이의 기색이 태연했던 이유를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
이 아이마저 저주의 술법을 뒤집어썼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사비나 아가씨, 물러나십시오.”
에르잔은 사비나를 제 몸 뒤로 숨겼다.
주술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는 하나, 상처도 없는데 갑자기 몸에서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우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괜찮으냐고 걱정할 만큼 에르잔은 순진하지 않았다. 호위기사로서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외견을 하고 있으나 눈앞의 존재는 수상하다고.
“너는 누구냐. 이 마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에르잔, 잠깐만요.”
아이를 추궁하는 듯한 에르잔의 질문을 만류하고 나선 것은 사비나였다. 피를 뚝뚝 흘리는 아이를 경계하는 에르잔과는 달리, 사비나는 수상쩍은 아이의 기이한 모습을 보고도 놀라거나 경계하지 않았다.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사비나 아가씨. 위험합니다.”
“저는 괜찮아요.”
만류하려는 듯한 에르잔의 손을 쳐 내고, 사비나는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흐윽, 어떻게 해요? 빨리 구해 줘야 하는데, 다리가 안 움직여…….”
“움직이게 해 줄게.”
“눈앞이 온통 새빨개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눈도 보이게 해 줄게.”
그렇게 말하며, 사비나는 아이의 몸을 끌어안았다. 끌어안는 순간 아이가 잠시 몸을 딱딱하게 굳혔으나, 곧 몸에 힘을 빼고 사비나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이런 주술을 몸에 휘감고도, 아직 어린아이 같은 면은 남아 있네.’
사비나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눈을 감았다. 아이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핏빛 저주의 기운은 의외로 뜨거웠다. 신기한 일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미 주술에 먹혀 목숨을 잃었을 거대한 술법을 몸에 휘감고도 아이는 살아 있었다.
‘그래. 살아 있어.’
저주에 씌어도, 시간이 멈춰도,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멎지 않아도, 땅에 떨어진 피가 검은 저주가 되어도, 그래도 아이는 살아 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게.”
그 말과 함께, 사비나는 아이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저주의 주술을 흡수했다.
“……아…….”
아이가 작게 신음하며 사비나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흠칫거리며 몸을 뒤척이던 것도 잠시, 아이는 곧 편안한 숨을 내쉬며 사비나의 품에 얼굴을 부볐다.
“이제 움직일 수 있겠니?”
“움직여요…….”
사비나는 아이의 몸을 떼어 놓고 얼굴을 마주했다. 갑자기 저주가 빠져나간 영향인지, 아이는 조금 몽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네 이름이 뭐니?”
“……카림.”
아이는 제 이름을 말하는 것이 조금 어색한지 살짝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워, 사비나는 문득 입가가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다.
“카림이구나.”
사비나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양어깨를 놓아주었다. 아이의 몸에서 그녀의 손이 떨어지자 휘감겨 있던 저주의 주술은 한 자락도 남김없이 그녀를 따라왔다. 저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카림은 더 이상 울지 않았고, 피도 흘리지 않았다.
어두침침한 저주의 그늘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이다.
“이젠 괴롭지 않지?”
“네…….”
카림은 피가 흘러내렸던 팔 언저리를 슥슥 문지르고는, 붕붕 휘둘러 보았다. 다리도 멀쩡해졌는지 발끝으로 땅을 톡톡 두드리다가, 무릎을 모아 폴짝 뛰어 본다.
“굉장해……! 몸이 가벼워졌어요! 이전보다 훨씬 더!”
“잘 되었구나.”
“이제 엄마를 구하러 갈 수 있어요. 연못에서 엄마를 꺼내와야지!”
카림은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자마자 연못으로 달려가려 했으나, 사비나는 아이를 만류했다.
“잠깐만 기다려, 카림. 연못에는 가면 안 돼.”
“네? 왜요?”
“아니, 가도 소용없어.”
“빠질까 봐 걱정해서 그러는 건가요? 괜찮아요. 저 수영 잘해요.”
“그런 게 아니야.”
저주의 주술에 씌면 대부분의 사람은 죽지만, 아이는 죽지 않았다. 상당히 드문 케이스다. 기실 사비나는 이런 존재를 처음 목도했다. 그러나 주술에 씌면 살아남는다고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한 번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이상, 더는 ‘보통 사람’이 아니게 된다.
사비나가 상처를 입어도 금방 낫고 목을 졸라도 죽을 수 없는 것처럼, 카림도 분명 보통의 어린아이와는 다른 특성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건…….’
노화 속도가 아닐까.
아이가 엄마를 꺼내 달라며 울었을 때, 연못은 이미 까맣게 물들어 썩어 버린 지 오래였다. 연못의 밑바닥에 가라앉은 시신들은 전부 뼈만 남아 있었으니까.
물속에 가라앉은 시신이 백골이 되기까지는 얼마만큼의 세월이 필요할까. 아이가 저주의 주술에 씐 후로는 적어도 보이는 나이보다도 더 오랜 세월이 흘렀을 것이다. 그렇다면 10년, 15년.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났을지도 모른다.
“카림. 네 어머니는 이제 구할 수 없어.”
“구할 수 있어요!”
“너무 늦었어.”
겉보기에는 어린아이지만, 아마도 이 모습으로 십수 년이나 되는 시간을 더 살았을 것이다. 그러니 카림도 사비나가 무엇을 말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제까지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겠지.
하지만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카림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이윽고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왜……?”
“응?”
“왜, 엄마는 기다려 주지 않았던 거죠?”
주먹을 쥔 작은 손이 부르르 떨렸다. 카림은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기다렸는데, 계속 그대로인데, 왜 엄마는…… 나를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있어 주지 않고…….”
사비나는 카림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자신이 어린아이의 모습인 채로 몇 년이나 시간이 멈춰 있었던 것처럼, 그의 어머니도 시간이 멈춘 채로 살아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로 잔인한 소망이었다.
“카림.”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온 것은 에르잔이었다.
“너는 어머니가 그 차갑고 숨 막히는 연못에서, 계속 괴로워하고 있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에르잔의 지적에 아이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불시에 고개를 들어 에르잔을 노려보고는, 사비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울상을 짓는다.
“엄마가 괴로운 건 싫어요.”
“그럼 이제 너도 괴로워하지 마라.”
“하지만 엄마는 괴로워했잖아요. 어떻게 나만 편해져요?”
“네 어머니는 그러길 바랄 테니까.”
“우으…….”
카림은 어깨를 움츠리며 아랫입술을 꽉 물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사비나는 조금 놀랐다. 자신이 안아 줄 때는 울던 아이가, 에르잔 앞에서는 눈물을 참고 견뎌 내는 모습에.
“그럼 우리 엄마는 계속 저 물속에 있어야 하나요?”
“아니. 장례를 치러야지.”
에르잔은 교회가 있는 쪽을 가리켰다. 장례를 치르는 것은 교회의 사제. 카림은 에르잔의 손짓만으로 의미를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로스카옌 신부님께 말하면 되는 거죠?”
대답을 바라고 물어본 것이 아니었는지, 카림은 에르잔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빙글 돌아 사비나를 향해 말했다.
“구해 줘서 고마워요, 누나.”
“나는 네 엄마를 구하지 못했어.”
“구해 줘서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사비나의 말을 듣지 못한 건지, 카림은 똑같은 말을 힘주어 반복했다. 늪처럼 탁하기만 했던 회색 눈동자에 반짝이는 생명의 빛이 돌아온 것을 마주한 사비나는 그 순간 전율했다.
손끝에서부터 몸이 뻣뻣하게 굳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긴장으로 인한 것도, 공포로 인한 것도 아니었다. 한 번 굳었던 몸이 찌르르한 감각과 함께 시원하게 쓸어내리는 듯한 감각. 이건 대체 어떤 감정일까.
두 사람을 향해 인사한 카림은 로스카옌 사제가 있는 교회를 향해 뛰어갔다. 에르잔은 손을 흔들어 주었지만, 사비나는 멀어지는 카림의 뒷모습을 주시할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마을이 피폐해진 이유가 있었군요.”
에르잔이 착잡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벽지라고는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해 마을 연못에 묻힌 사건이 아무 데도 알려지지 않았다니.
“연못에서 뼈를 건져 내려면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장례를 마칠 때까지만 이곳에 머물고, 다른 마을로 떠나시는 게 좋겠습니다. 수도에도 연락을 넣겠습니다.”
“아뇨.”
사비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돌아가지 않아요, 에르잔.”
“사비나 아가씨?”
저주의 술법. 그것으로는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일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사비나는 그 음험하고 악독한 주술로 숱하게 많은 가문의 정적을 제거해 왔다. 멈추려 해도 멈출 수 없었다. 자신이 싫었다. 누군가를 상처 입히고 목숨을 빼앗는 일밖에 하지 못하는 자신이 저주스러웠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내가 처음으로.’
처음으로 사람을 구했다. 그것은 착각이 아니다. 카림은 분명히 구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엄마의 시신이 묻힌 연못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그 시간을 배회하던 카림이, 살아온 시간 이상으로 현재에 고정되어 있던 어린아이가, 사비나의 품에서 미래를 되찾았다.
저주를 뿌릴 수 있다면 거두어들일 수도 있다.
거룩한 신성마법을 사용하는 사제처럼 저주를 정화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누군가에게 걸린 저주의 술법을 자신의 몸에 옮기는 것은 가능하다.
저주받아 고통스러워하는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
사비나는 카림을 구함으로써, 스스로 구원받았다.
“나도…… 나도, 나도 할 수 있었어요.”
“사비나 아가씨?”
“누군가를 죽이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이 아니라, 돕는 일을 할 수 있었어.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어.”
그제야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 떨어졌다.
“할 수 있었어. 할 수 있었다고요.”
슬픈 것도 아니고, 아픈 것도 아닌데,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한 번 울기 시작하니 멈춰지지 않았다. 사비나가 우는 이유를 모르는 에르잔이 당황해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려 하자, 사비나는 그의 손을 피하려는 듯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당신은 떠나세요, 에르잔.”
“예?”
“난 여기서 사람들을 구할 거야. 이건 내가, 아니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저주의 화신인 나만이 이 죽음의 저주가 가득한 마을을 구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