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늪 속의 불-14화 (14/189)

14화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르는 법이거늘, 그 남자는 대체 얼마나 더 저주의 힘을 강하게 만들어야 만족할는지…….”

“그 남자라뇨?”

“에르잔.”

로스카옌은 사비나를 스쳐 지나가, 멀찍이 서 있던 에르잔을 불렀다.

“저를 부르셨습니까?”

“자네가 모시는 아가씨를 데리고, 이 마을을 떠나도록 하게.”

“예?”

에르잔이 놀란 얼굴로 사비나를 바라보았다. 사비나도 마찬가지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에르잔과 로스카옌을 번갈아 보았다.

“로스카옌 신부님. 콘바야젠 백작께서는 사비나 아가씨의 요양을 위해 이 마을로 저희를 보내신 겁니다.”

“알고 있네. 백작께는 비밀로 해 드릴 테니 산을 내려가 다른 마을로 가 있게나. 본래 이곳은 환자가 요양을 할 만한 곳이 아니니.”

“하지만…….”

“어제 자네와 아가씨께서는 출입 금지 구역에 들어가 계셨지.”

그 말에 두 남녀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지하에서 만난 괴물과 같은 남자. 그를 가둬 두었던 것은 아무와도 만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에르잔과 사비나는 그와 마주쳤을 뿐만 아니라 그를 다치게 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멋대로 그런 곳에 들어가서…….”

“어제 있었던 일이 알려지기 전에 떠나게.”

“갇혀 있던 사람을 만나 다치게 했기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도망치듯 떠날 것이 아니라 사죄를 해야지요.”

“마을 사람들이 자네와 아가씨께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 늦는다는 이야기라네.”

로스카옌의 주름 가득한 손이 사비나를 향해 뻗어 왔다. 사비나는 흠칫 놀라 한 걸음 물러섰다. 닿을 뻔했던 거리가 멀어졌다. 로스카옌은 더 가까워지지는 않았다. 마치 그곳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듯, 허공을 한 번 휘저었다가 제 자리로 되돌아갔다.

“이 마을에는 저주가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저주는 더욱 강한 저주에 이끌리는 법이지요. 아가씨께서는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마는.”

“……!”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걸까? 사비나의 검은 눈동자가 강하게 흔들렸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사비나는 콘바야젠 가문의 최강의 무기였지만, 동시에 최고의 약점이기도 했다.

아무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는데, 겨우 만난 지 이틀 된 이런 마을의 사제가 깨달았을 리가 없다. 사비나는 입안을 깨물었다.

“저, 신부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그럼 모르시는 채라도 좋습니다. 에르잔과 함께 마을을 떠나십시오. 콘바야젠 백작께서 사람을 보내면 제가 잘 둘러대겠습니다.”

로스카옌 사제는 아버지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 걸까.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아버지가 비밀을 아는 사람을 콘바야젠 저택도 아닌 이런 외따로이 떨어진 마을에 둘 것 같지는 않은데. 사비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로스카옌 사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늙은 사제의 검은 눈동자는 마치 깊은 늪처럼 탁해, 속에 무엇이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로스카옌 신부님…….”

“아가씨를 위해서도, 이 마을을 위해서도, 이곳에 머무르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한시라도 빨리 마을에서 떠나십시오.”

로스카옌 사제는 그 말만을 반복했다. 그것은 당부 같기도 했고, 경고 같기도 했으며, 닿을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해 비는 간절한 소원 같기도 했다.

진심 어린 말에 사비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로스카옌 사제를 향해 인사하고, 에르잔과 함께 교화를 나왔다.

* * *

해가 뜬 아침인데도 마을 안은 스산했다. 단순히 검은 사철나무가 우거져 있어 빛이 잘 들지 않아서가 아니다. 저주의 주술에 잠식된 땅은 설령 밝은 햇살이 들더라도 어둡게 느껴진다. 검고 부석부석한 흙을 밟으면 공기 중의 먼지가 피부에 달라붙어 와, 마치 뱀처럼 꿈틀거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것이 제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은 불쾌하지만, 어제처럼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사비나는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천천히 걸었다.

“사비나 아가씨.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저는 괜찮아요.”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려던 사비나는 문득, 어떤 소리를 들었다. 어디선가 물장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 연못인가?’

에르잔도 소리를 들었는지 눈빛이 오갔다. 서로를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두 사람은 연못으로 향했다. 연못은 사비나와 에르잔이 머무는 오두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도착하기까지는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라? 또 오셨네요?”

“너는…….”

어젯밤 보았던 아이가 연못가에 앉아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속이 보이지 않을 만큼 탁한 연못물을 흰 다리가 철썩 내리칠 때마다 검은 물이 튀어 올랐다. 바지를 걷어 올려 드러난 아이의 다리는 뼈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앙상했다. 그런데도 아이는 조금도 지치지 않은 기색으로 열심히 물장구를 쳤다. 첨벙첨벙. 꼭 시계 초침이 돌아가듯 규칙적인 소리였다.

“아가씨. 저 아이를 아십니까?”

“어젯밤에 잠깐 만났어요.”

“어젯밤예요?”

되묻는 에르잔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사비나는 아이에게로 걸어갔다. 그러자 아이는 물장구를 멈추고 양다리를 위로 들어 올리더니, 공중제비를 돌 듯 껑충 뛰어 풀밭 위로 올라왔다.

“엄마를 구해 주러 오신 건가요?”

“……아니.”

“혹시 누나는 헤엄을 못 쳐요? 그래서 그래요? 저 형한테 부탁해서 엄마를 구해 달라고 하면 안 되나요?”

아이는 사비나의 뒤에 있는 에르잔을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에르잔은 아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아이의 얼굴과 검은 연못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뒤늦게 알아차린 듯 얼굴을 창백하게 했다.

“네 어머니가…… 연못에 빠졌단 말이냐?”

“네. 엄마를 구해 주세요. 물속에서 답답할 거예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달라는 것치고는 태도가 너무 태연했다. 흡사 선반 위의 장난감을 꺼내 달라는 듯한 어조에 에르잔은 당황했다.

“우리는 네 엄마를 구할 수 없어.”

사비나의 말에 아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탁한 회색빛의 눈동자가 빙그르르 굴러갔다.

“왜요? 왜 엄마를 구해 주시지 않는 거예요?”

“엄마를 보고 싶니?”

“당연하죠. 엄마인걸요!”

아이는 떼를 쓰듯 주먹을 꼭 쥐고 소리를 높였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에르잔을 뒤로하고 사비나는 연못으로 다가갔다.

“네 엄마가 이곳에 빠진 지 얼마나 되었니?”

“얼마나……? 잘 모르겠어요. 아무도 엄마를 구해 주지 않았거든요.”

“매일 이곳에 찾아왔니?”

“비가 오지 않는 날은요. 비가 오는 날은 연못물이 불어나서 위험하다고 로스카옌 신부님이 나오지 말랬어요.”

“그래…….”

죽음의 저주는 비단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저주가 깃든 연못은 그 연못 속에 살아가던 생물들의 생명까지 빼앗아, 이곳을 죽음의 연못으로 만들었다.

사비나는 연못가에 앉아 가만히 손을 뻗어, 연못물에 손끝을 적셨다. 속이 보이지 않을 만큼 탁한 물이었다.

‘죽음의 저주…….’

사비나는 처음 죽음의 저주를 받았을 때를 기억했다.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무거운 주술이 마치 불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그녀의 몸에 이끌리던 때를. 무섭고 끔찍해서 허우적거려도 저주의 주술은 몸에서 떨어지지 않고, 결국 그녀를 저주의 화신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비나. 너는 죽음의 저주에게 사랑받는 몸이란다.」

그녀의 아버지인 콘바야젠 백작은 그렇게 말했다. 마치 사랑에 빠져 이끌리듯, 죽음의 저주는 그녀의 몸에 흘러들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아무리 저주를 쏟아 내더라도 고갈되는 일 없이 저주로 충만해지는 거라고.

‘저주가 내게 이끌린다고, 분명히 그랬지.’

아버지의 말을 100퍼센트 믿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저택을 떠나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하지만 로스카옌 사제로부터 이야기를 듣고부터는 더는 의심할 수 없게 되었다.

저주는 더욱 강한 저주에 이끌린다.

그렇다는 것은 곧, 강한 저주를 가진 자는 저보다 약한 저주를 흡수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네 엄마를 만나게 해 줄게.”

말을 마치고 사비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연못에 드리워져 있던 죽음의 주술을 거두어들였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헉……!”

에르잔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으나 사비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자석에 철가루가 달라붙듯, 연못물에서 손끝을 타고 죽음의 저주가 흘러드는 것이 느껴졌다.

손끝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야금야금 먹이를 먹어치우듯 올라오는 느낌이 조금 간지러웠다. 마치 실처럼 가느다란 뱀이 피부를 타고 기어오르는 느낌이라고 할까. 저주의 기운은 그녀의 신경을 타고 심장에 도달해 퐁당 빠져들었다. 꼭 물에서 뛰쳐 올라온 물고기가 다시금 물속으로 잠수하는 것을 보는 느낌이었다.

수면에 일던 파문이 사라져 고요해진 뒤에야 사비나는 눈을 떴다.

“……아.”

“이럴 수가…….”

아이와 에르잔이 동시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를 토해 냈다. 사비나는 놀라지 않았다.

저주를 걷어 낸 연못물은 놀라울 정도로 맑았다. 그러나 그들이 놀란 것은 검고 탁한 연못물이 맑아졌기 때문은 아니었다. 맑아져 속이 비치는 연못에서 그들은 보고 만 것이다. 수없이 많은 흰 뼈들이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연못을 가득 메우고 있음을.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연못에 빠져 죽은 것일까.

에르잔이 서둘러 아이의 눈을 가리려 했으나 한발 늦었다. 아이는 입을 틀어막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 엄…… 엄마…….”

어깨부터 시작해서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백골이 되어 버린 어머니를 마주하는 것이 어린아이에게 얼마나 충격적인 일일지, 사비나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연못에 빠진 지 수없이 시간이 흐른 뒤에도 포기하지 못하고 매일같이 나와 연못 주위를 빙빙 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미안해. 우리는 구해 줄 수가 없었어.”

“엄마가, 엄마가 저기에…….”

연못 속의 백골은 한, 두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뼈들이 장례조차 지내지 못한 형태로 연못에 잠겨 있었다. 뼈들의 크기가 제각각인 것으로 보아 분명 아이와 노인도 섞여 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을 희생해서, 저주를 만들려 한 거야.’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여 연못에 빠뜨림으로써 만들어진 죽음의 저주가 연못의 물을 검게 물들이고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토록 지독한 짓을 한 것은 누구일까.

그리고 왜 이 마을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이 알려지지 않았는가.

‘저주란 결국 사람의 원한이니까.’

사비나는 주술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알고 있다. 제 주술로 사람이 죽어 갈 때마다 힘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으니까. 죽음의 저주를 만드는 데는 죽어 가는 사람의 원한이 필요한 법이다.

만드는 법을 아는데, 없애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 원통할 뿐.

‘하지만 흡수할 수는 있어.’

연못에 물든 죽음의 저주를 없애는 방법은 모른다. 그러나 제 몸으로 흡수할 수는 있다. 정화의 술법을 베풀지 못해도 저주를 거두어들이면 연못은 맑아진다.

이제 이 연못에 들어가도 죽음에 사로잡힐 위험은 없으니 뼈를 건져 내는 것도 장례를 치르는 것도 가능해졌다. 망자의 원혼을 달랠 수는 없더라도 살아남은 이들은 먼저 떠난 이들의 시체조차 찾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덜어 낼 수 있으리라.

“미안해. 그래도 이젠 뼈를 건져 낼 수 있으니까…….”

“내가, 내가 구해 줘야 하는데, 연못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들어가면 안 된다고 로스카옌 신부님이, 아아…….”

어깨를 떨며 울던 아이의 몸이 붉게 물들었다. 사비나는 그 자리에서 움찔 굳었다.

“엄마가 저기 있는데, 눈이 안 보여서, 다리가 안 움직여서…….”

바삭바삭. 바닥의 잡초가 빠른 속도로 말라 갔다. 아이의 옷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손가락 사이사이로 흘러나온 붉은 눈물이 팔꿈치까지 주르륵 흘러내렸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구해 주질 않았어. 왜?”

“잠깐, 진정해. 네 엄마는 이미…….”

“연못에 들어가서 구해 줘야 하는데, 다들 다리가 안 움직이는 거야? 엄마, 어떻게 해, 엄마아…….”

아이는 엄마를 부르며 덜덜 떨었다. 가느다란 팔다리에서 붉은 핏방울이 똑, 똑 떨어졌다.

그러나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진 순간, 피는 치익─하는 소리를 내며 ?价?연기로 산화했다.

피가 아니었다. 저주의 주술이었다.

‘이 아이까지 주술에 물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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