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인간이 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짐승처럼 질주하는 본능을 억누르기 위함이라고 배워 왔다.
아무리 두려운 적을 만나도 물러서지 않고, 주군을 배신하라는 그 어떤 달콤한 유혹에도 빠지지 말고 자신의 기사도를 지켜야 한다. 에르잔은 늘 그렇게 생각했다.
귀부인과 호위기사가 불륜을 저지르는 이야기는 심심찮게 들려왔지만, 에르잔은 그런 이들을 기사의 수치로 여겼다.
주군을 섬기는 데 충성심 이외의 것은 필요 없다. 주군이 여자라면 이성인 만큼 더욱 각별히 언행을 조심할 뿐, 욕망의 대상으로 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에르잔은 이제까지 그 어떤 여자에게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동료들이 성 기능에 장애가 있는 게 아니냐는 농담을 건네도 에르잔은 흘려들었다. 남녀의 교합이란 결혼한 부부가 자손을 보기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언제고 나이를 먹어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자신과 연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앗, 아! 사비나 아가씨……!”
서툴게 성기를 애무하던 손가락의 움직임이 멈추더니, 귀두 끝에 뜨겁고 눅진눅진한 것이 와 닿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눈동자를 굴려 확인한 순간 에르잔은 순간 펄쩍 뛸 뻔했다.
가느다란 허리와 홀쭉한 아랫배와는 달리, 보들보들 통통한 허벅지가 에르잔의 허리에 감겼다. 허벅지가 벌어지고 그 사이로 붉게 충혈된 여자의 성기가 보였다. 아니, 닿았다고 해야 할까.
촉촉하고 따스한 점막에 성기가 감싸이는 느낌이 어떠한지, 몽정조차 해 본 적이 없는 에르잔은 지금 처음 알았다.
“크흑……!”
새하얀 피부와는 대조적인, 붉게 충혈된 여성기가 그의 귀두 끝을 물었다. 미끈거리는 애액이 흘러나와 질척해진 지 오래임에도 에르잔의 것을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었는지, 사비나가 움찔거리며 신음했다.
“아, 너무, 굵어요…….”
사비나는 살짝 허리를 들어 그의 성기 끝을 입구에 걸쳤다가, 스치듯 문질렀다. 한 번에 넣기는 압박감이 있어 아래를 푸는 것이 마치 애태우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작은 물고기가 물장구를 치는 것처럼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 남녀는 낯설고 음란한 자극에 함께 신음했다.
“읏, 사비나, 아가씨…….”
“아아, 기분 좋아…….”
사비나가 허리를 천천히 내려 몸을 가라앉힐 때마다, 흉포하리만큼 뻣뻣해진 남자의 성기가 비좁은 속살을 억지로 넓히며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녀의 안이 녹을 듯 뜨거워서, 에르잔은 입을 벌린 채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미칠 것 같았다.
섹스로 쾌락을 얻는다는 것은 헛소리다.
이런 것은 쾌락이 아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뜨겁고, 부드럽고, 미끄러우면서도 쫀쫀하게 조여드는 속살에 에르잔은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마치 제 몸이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고 할까. 눈앞에 안개가 낀 듯 흐릿한데, 연결된 성기를 통해 느껴지는 사비나의 몸이 너무도 생생했다.
그녀의 심장박동이 제 것과 엇갈려 만들어 내는 불협화음이 귓전을 파도처럼 때렸다.
“아가씨. 사비나 아가씨…….”
“흐읏, 너무, 깊어…….”
자궁경부를 찌르는 것이 아팠는지 사비나가 허리를 움찔거리며 몸을 비틀었다.
요염한 숨소리에 주위의 풍경이 지워져 간다.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온몸의 감각이 엉망진창이었다.
사비나가 허리를 흔들 때마다 에르잔의 눈앞이 하얗게 밝아졌다가 까맣게 흐려지기를 반복했다. 이러다가 정말 미쳐버릴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에르잔은 입술을 꽉 깨물고 허리에 힘을 주었다.
“앗!”
그대로 한 번 허리를 흔들자, 사비나의 몸이 튕겨 오르듯 요동쳤다. 힘줄이 불거진 뻣뻣한 성기가 비좁은 안쪽으로 푹, 박혔다가 뜨거운 내벽을 훑어내렸다.
예상외의 자극에 몸을 일으키려는 사비나의 손목을 커다란 손이 잡아챘다. 그대로 끌어당기자, 사비나의 몸은 에르잔의 몸 위로 쓰러졌다. 한 줌밖에 되지 않는 가느다란 허리를 남자의 손이 붙잡았다.
그대로 한 번 더 허리를 퉁기자, 사비나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경련했다.
“아으응!”
“흣, 아……! 사비나, 아가씨…….”
그것은 본능이었다. 난생처음 쾌락이라는 것을 접한 청년의 귓전에 악마가 속삭였다. 제 성기를 그녀의 안에 쑤셔 넣고 비비면 더욱 기분이 좋아질 거라고.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에르잔은 사비나의 허리를 부여잡고 그녀의 안을 난폭하게 쳐올렸다.
단단한 남자의 성기가 부드러운 여자의 속살을 마구 비비고 찌르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스스로 난폭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어떻게 멈추면 좋은지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내가, 내가 어째서 아가씨를…… 아, 하지만…….’
한 줌도 남지 않은 이성이 욕망과 갈등을 일으켰으나 결과는 뻔했다. 에르잔은 거친 숨을 토하며 사비나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양팔로 그녀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근육이 꽉 짜인 복근이 꿈틀거리더니, 그대로 허리를 쳐올렸다. 제 몸 위에 완전히 몸을 맞대고 엎어진 사비나의 몸이 사로잡힌 새처럼 파드득 날뛰었다.
“아앗! 아아아! 흐앙!”
작은 입술이 한계까지 벌어져, 붉은 혀를 내밀고 숨을 헐떡거렸다. 에르잔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사비나의 눈가에 입을 맞추고 허리의 움직임을 빠르게 했다.
찔걱거리는 물소리가 울리며 체액이 튀어 올라 허벅지를 적셨다. 추접스럽고 음탕하게 들려야 할 소리가 묘하게 유혹적이었다. 그러니 이성을 잃은 남녀가 욕망에 잠식당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리라.
“사비나 아가씨, 아가씨…….”
“흐앙, 아으으응!”
꽉 움켜쥐면 날씬하게 튀어 오르는 고무공처럼 그녀의 몸이 요동쳤다. 에르잔은 사비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놓고 싶지 않았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피부에서 나는 사비나의 체향에 에르잔은 마치 홀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농염한 여인의 향기가 방안에 가득 찼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 그녀와 그 단둘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을 ‘황홀하다’고 표현하는 건가.
에르잔은 고개를 숙여 사비나의 가느다란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 귓전에서 헐떡거리는 사비나의 숨소리에 묘한 고양감이 일어, 에르잔은 사비나의 귓가를 핥았다. 얼굴은 보이지 않아도, 그녀의 맥이 빠르게 팔딱거리는 것은 느껴진다.
가슴이 뜨겁다. 연결된 성기에서 전해지는 뜨거움과는 다른, 애틋하면서도 눈물이 날 것처럼 서글픈 열기가 차오른다.
이것이 대체 무엇일까.
“하으응!”
갑자기 사비나가 격렬하게 날뛰었다. 너무 깊이 찔렀나, 에르잔이 허리를 빼려는 순간 그녀의 내벽이 꽉 조여들며 그의 것을 압박했다.
에르잔이 신음하며 사비나의 허리를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을 빼자, 그녀의 몸이 다시 아래로 내려와 성기가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아앙! 거기, 흐아!”
“이, 이곳, 말씀이십니까?”
“흐앙! 좋아! 아! 아아앙!”
사비나는 에르잔의 몸 위에 손톱을 세우고 사정없이 그를 할퀴었다. 초점 잃은 검은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그녀의 눈에는 에르잔의 모습이 비치지 않았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에르잔의 가슴이 욱신 저려 왔다. 방금까지 마치 하늘을 나는 듯 황홀한 기분이었거늘, 삽시간에 차가운 물에 빠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이곳, 이, 기분 좋으십니까?”
“하응! 아! 좋아!”
새하얗던 그녀의 피부가 어느새 불그스름하게 물들었다. 사비나가 그를 원하고 있다. 그러므로 에르잔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를 기분 좋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자각했다.
“앗, 앗, 아, 좋아, 거기, 거기, 흐아앙……!”
사비나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비명과도 같은 교성을 내지르면서도, 그녀는 그만두기는커녕 계속해 달라며 에르잔을 보챘다.
가녀린 몸이 하반신에서부터 상체까지 벌벌 떨려오기 시작했다. 여성의 성감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던 에르잔은 사비나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그녀가 좋아하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느꼈을 뿐이다.
“좋아, 좋아! 더……!”
사비나를 몸 위에 얹은 채로 허리를 살짝 들어 올리자, 꽉 들어차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귀두가 각도를 비틀어 더 안쪽까지 파고들었다.
“아읏, 아가씨……아, 아아!”
아주 부드러운 어떤 것에 감싸이는 순간, 에르잔도 신음을 터뜨렸다. 말랑말랑하고 촉촉한 속살이 귀두를 감싸며 간지럽히듯 가늘게 경련하자, 에르잔은 본능적으로 허리를 바닥에 퉁겼다가 다시 들어 올렸다.
뜨겁다거나 짜릿하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마치 그녀의 안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아, 흐아앙!”
“크앗!”
자궁경부 뒤쪽의 성감대를 찔리자 사비나가 발작하듯 몸을 떨며 속살을 조였다. 에르잔은 자극을 참지 못하고 사비나를 끌어안은 채 그녀의 안에 파정했다.
* * *
마치 꿈속을 헤매듯 몽롱하고도 황홀한 기분이었다.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해져, 에르잔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기분 좋은 따스함과 적당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이불과는 감촉이 다른데, 라고 생각하며 무심코 제 위에 얹혀 있던 것을 더듬은 에르잔은 녹을 만큼 매끄럽고 부드러운 살결의 감촉에 헉 숨을 삼키며 눈을 떴다.
제 몸 위에 사비나가 엎어져 있었다.
‘맙소사……!’
긴장과 당혹감에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 같았다. 심장이 머리에서 뛰는 것처럼 귀를 울려, 에르잔은 무심결에 사비나의 등을 쓰다듬었다가, 흠칫 놀라 손을 치웠다.
‘정신을 잃기 전에 있었던 일이, 꿈이 아니었구나.’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에르잔은 눈을 깜박여 눈물을 털어 내고는 상체를 일으켰다. 사비나를 조심조심 침대에 눕혀 주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몸을 닦기 위해 시선을 옮긴 에르잔은 사비나의 다리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흰 정액을 보고 헉 숨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긴 검은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며 정신없이 쾌락만을 추구하던 사비나의 얼굴을 떠올리자 다시금 허리 아래가 뻐근해져 와, 에르잔은 얼른 고개를 털어 불온한 생각을 떨쳐 버렸다.
“어쩌지…….”
에르잔은 한 손으로 눈가를 짚었다. 아까는 울 것 같았는데 이제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콘바야젠 가문의 보호를 받는 아가씨와 그녀의 호위기사가 관계를 가지다니, 이 일이 알려지면 에르잔은 기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쫓겨날 것이다.
자신은 괜찮지만, 사비나의 명예는 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결혼하지 않은 귀족 여성에게 스캔들은 치명적이다. 에르잔은 난감해졌다.
병 때문에 요양을 하러 가서는 자신의 호위기사와 성관계를 가진 그녀를 콘바야젠 백작이 어떻게 생각할까.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그녀를 해코지하려 들지도 모른다. 에르잔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가씨를 지켜야 해.’
오늘 일은 비밀로 해야 한다. 사비나의 명예를 위해서도 그러했고, 혹시 모를 불미스러운 사고로부터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도 그러했다.
결심을 마친 에르잔은 서둘러 바지를 입고 헛간으로 건너가 끓인 물과 수건을 가져와 그녀의 몸을 닦아 주었다.
묘한 기분이 들지 않도록 에르잔은 사비나의 몸을 닦을 때마다 훈련소 시절 암송하던 기사의 철칙을 반복해서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