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3. 한 여자의 남자가 되던 날
에르잔이 전속력으로 달린 덕분에 처음 집에서 나설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도착했지만, 그의 팔에 안겨 격렬한 상하운동의 충격을 그대로 받아내야 했던 사비나는 속이 울렁거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R다가 노랬다가 파래지는 사비나의 안색을 본 에르잔은 그녀의 「다른 사람의 몸에 닿으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병」이 도진 줄 알고 허겁지겁 사비나를 침대에 옆으로 눕힌 후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사비나 아가씨. 제가 부족한 탓에…… 참기 힘드십니까? 로스카옌 신부님을 모셔올까요?”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이제까지 사비나가 걱정한 것은 제 몸에 닿아도 에르잔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지 하나뿐이었으나 이것은 좀 예상 밖이었다. 속을 진정시키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자 손끝에 뭔가 축축한 것이 걸려 나왔다. 실지렁이처럼 작은 것이 손가락에 감겨 꿈틀거렸다.
첨탑의 지하에서 남자가 그녀의 몸을 깨물었을 때 흘러들어온 저주의 주술이었다. 이상했다. 그녀 자신은 저주에 걸리지 않는 몸인데, 남자의 주술은 사비나의 몸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 사비나의 눈앞이 핑 돌았다.
“흐윽……!”
“아가씨? 왜 그러십니까!”
몸 안에서 무언가가 억지로 할퀴고 잡아 뜯는 듯한 통증이 시작됐다. 사비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몸속에서부터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이런 고통은 처음이었다. 그녀에게 죽음의 저주를 받았던 인간들은 모두 이런 끔찍한 고통을 겪으며 죽었나.
“아! 아악!”
“사비나 아가씨!”
에르잔은 몸부림치는 사비나를 끌어안았다. 다른 사람의 몸에 닿으면 안 된다는 것은 알지만 그녀를 진정시킬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 로스카옌 사제에게 데려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에르잔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사비나의 손이 에르잔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아가씨? 정신이 드십니까?”
“하윽, 아……!”
사비나의 얼굴은 아직도 괴로워 보였다. 그런데 아까와는 표정이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촉촉하게 젖은 검은 눈동자는 초점이 맞지 않고, 벌어진 붉은 입술에서는 달콤한 향기가 났다.
“하아응…….”
“사비나 아가씨?”
조금 진정이 된 건가. 에르잔이 의아함에 얼굴을 가까이한 순간, 사비나가 에르잔의 목 뒤로 팔을 두르고 달려들듯이 입을 맞췄다.
“헉!”
예상외의 사태에 당황하여 에르잔은 무심결에 사비나를 밀어냈다. 반사적인 행동이라 조금 힘이 들어갔는지, 사비나는 침대에 몸을 부딪치고 말았다.
“죄, 죄송합니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으응, 읏…….”
사비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신음했다. 뺨이 조금 붉었다. 열이 나는지 확인하려 이마를 짚으려던 에르잔의 손을 사비나가 붙잡았다. 그러더니 청년의 손을 제 가슴으로 가져갔다.
“아, 아가씨!”
겨우 몸을 감쌌던 외투마저 몸부림치느라 다 벗겨진 터였다. 커다란 손에 잡히는 풍만한 젖가슴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러웠다.
에르잔은 손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눈을 크게 뜬 채로 굳어 있었다. 사비나가 갑자기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어 사고가 그대로 정지한 탓이었다.
“하읏, 더 세게…….”
에르잔이 손을 움직이지 않자, 사비나가 몸을 비틀어 그의 손바닥에 젖꼭지를 문질렀다. 그 감촉에 날아갔던 이성이 되돌아온 에르잔은 얼른 손을 뗐지만, 물러날 수는 없었다. 어느새 사비나가 그의 허벅지 위에 올라탄 상태였기 때문이다.
“사, 사비나 아가씨?”
“뜨거워요…….”
저주의 화신인 사비나는 칼에 베이거나 찔리거나 맞는 일에 익숙했다. 추위도 배고픔도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첨탑의 지하에서 만난 남자가 그녀의 몸에 박아 넣은 저주는 한 번도 체험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고통이었다.
극도의 고통을 느끼게 되면 인간의 몸은 고통을 지우기 위해 쾌락을 찾게 된다. 고통을 단번에 지워 줄, 가장 강렬한 쾌락을.
“뜨거워요, 너무 뜨거워…… 제발…….”
사비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에르잔의 가슴에 손을 얹고 몸을 기댔다. 단단한 남자의 허벅지 위로 희고 통통한 여자의 허벅지가 내려앉고, 매끄러운 등 뒤로 검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읏, 아, 아가씨…….”
“하아, 응…….”
힘주어 안으면 부서질 듯 가녀린 새하얀 여인의 몸에서는 달콤한 향기가 났다. 가느다란 신음 소리는 검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처럼 덧없었다.
제 몸의 절반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여인의 아래에 깔려서, 에르잔은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사비나가 제 몸 위에서 움직이는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밀어내면 그대로 나자빠질 것처럼 가련한 여인인데 밀어낼 수가 없었다.
마치 온몸이 쇠사슬로 꽁꽁 묶인 것 같다. 독주라도 마신 것 같았다. 온몸이 딱딱하게 굳으면서 머릿속이 멍해져, 에르잔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아니, 눈앞에서 움직이는 여인의 알몸을 보고 가슴이 쿵쿵 뛰며 호흡이 가빠지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사비나는 에르잔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은 채로 허리를 앞뒤로 천천히 움직였다.
“으응, 여기, 여기가 욱신거려요…….”
“아, 아가씨…… 이러시면 안 됩니다…….”
어느새 불뚝 솟아오른 에르잔의 성기가 사비나의 아랫배에 와 닿았다. 사비나는 간지러운 곳을 긁어 주듯 꺼떡이는 성기의 움직임이 기분 좋은지, 옷 너머로도 확연히 형태를 알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그의 것을 허벅지 사이에 끼웠다.
“흐윽……!”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자극이 잇따라 에르잔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아랫도리에 뜨거운 열이 모이기 시작했다. 에르잔은 이를 아득 물었다. 제 몸이 어째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성적인 지식이 전무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으나, 어머니도 없이 내내 기사단에서 자라 온 에르잔은 실제 여자를 가까이해 본 적이 없었다.
여자와 남자의 몸이 다르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으나 그것뿐, 실제로 겪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여자의 몸에 실제로 맞닿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기본의학 시간에 배웠던 것이나 동기나 선배들이 낄낄거리며 음담패설을 들려주던 것 따위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에르잔은 사비나의 밑에 깔려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몸을 움찔거렸다. 밀어내야 하는데, 제 위에 올라탄 사비나가 요염하게 허리를 흔들며 몸을 맞대 오는 기분이 황홀할 만큼 짜릿해서 밀어낼 수가 없었다.
그녀를 말리지도 붙잡지도 못하는 커다란 양손이 허공에서 갈 곳을 잃고 배회했다.
“?, 아, 아가씨……!”
“앗, 아…… 좀 더…….”
엉덩이를 들썩일 때마다 허벅지 사이를 사내의 성기가 문질러 주는 것이 기분 좋은지, 사비나는 양팔을 뒤로하여 에르잔의 허벅지를 짚은 채로 허리를 흔들었다.
새하얀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고, 그녀의 몸이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성기를 마찰하는 열기도 더해 간다. 에르잔은 입을 다무는 것도 하지 못하고 양 주먹을 꽉 움켜쥔 채로 뜨거운 숨을 토했다.
대체 이게 무엇인가.
어떻게 이런 것이 있을 수 있나.
이제 갓 성인식을 올렸을 뿐인 젊은 청년기사는, 난생처음 경험해 보는 성적인 쾌락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었다.
아랫배가 마치 끓어오르듯 뜨거워지며 저절로 허리가 움찔거렸다. 제 몸 위에 걸터앉은 여인의 풍만한 가슴이 부드럽게 출렁였다. 최고급 밀로 만든 새하얀 빵보다도 부드럽고 달콤할 것 같았다.
그 봉긋한 젖가슴을 빨고 싶은 충동이 들어, 에르잔은 황급히 고개를 털었다.
“아, 안 돼……!”
심장이 쿵쿵 뛰며 정신이 혼미해졌다. 눈앞이 어지러웠다. 핥으면 녹아 버리는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살결이 제 몸에 문질러졌다. 꼿꼿하게 선 분홍빛의 유두가 가슴에 닿고, 이내 포동포동한 젖가슴이 제 위로 뭉그러졌다.
에르잔의 위에 완전히 엎드린 사비나는 밭은 숨을 내쉬며 가슴을 문질렀다. 그녀의 피부가 제 피부에 스칠 때마다 머릿속에 벼락이 내리치는 것 같았다.
“사비나 아가씨, 그, 그만하십시오. 이러시면, 자꾸 이상한 기분이…….”
성적인 접촉에 전혀 면역이 없는 에르잔이 완전히 붉어진 얼굴로 헐떡거렸다. 여름 하늘처럼 맑기만 했던 푸른 눈동자가 흔들렸다. 난처함, 혼란스러움, 그리고 약간의 기대감…… 순진한 청년의 애원하는 표정을 마주한 사비나는 그만두기는커녕 생긋 웃으며 그의 하지로 손을 뻗었다.
하얀 손가락이 바지를 고정하던 가는 끈을 붙잡는 순간 에르잔은 저도 모르게 헉 숨을 삼켰다.
사비나를 말려야 한다. 그런데 말릴 수가 없었다. 지금 그녀와 이러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그녀와 몸을 맞대는 것이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허리띠를 풀고 바지 앞섶을 벌리자, 어린애의 팔뚝만 한 붉은 살기둥이 튀어 오르듯 고개를 쳐들었다.
“아……!”
상상 이상의 크기에 당황한 듯 사비나가 작게 소리쳤다. 옷 위로 문지를 때보다도 더욱 커진 것 같았다. 그녀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지는 것을 본 에르잔은 퍼뜩 정신이 들어 허리를 뒤로 빼려 했다. 그러나 에르잔이 피하는 것보다 먼저, 가는 손가락이 커다란 성기에 얽혀 들어왔다.
“헉, 아가씨!”
“하아. 엄청, 커요…….”
사비나는 반쯤 눈을 감고 달콤한 한숨을 흘리며 에르잔의 성기를 쓰다듬었다. 양손으로 쥐어도 감추지 못할 만큼 길고 굵은 남자의 성기는 흉기와도 같았다.
그 크기에 당황한 것은 사비나뿐만이 아니었다. 에르잔도 제 것이 이렇게 커질 수 있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아침에 발기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완만하게 휜 굵은 성기는 에르잔의 얼굴만큼이나 붉었다. 사비나의 하얀 손가락이 그것을 감싸 주무르는 광경을 목도하는 것만으로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다. 에르잔의 입에서 의미가 되지 않는 말이 끊어져 나왔다.
“흣, 아가씨, 제발…… 아, 아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