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늪 속의 불-1화 (프롤로그) (1/189)

1화

프롤로그

달이 청명한 밤이었다.

그러나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은 사철나무로 감싸인 장소에 위치한 작은 오두막의 창에서는 달빛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남녀의 인영이 하나가 되어 난잡하게 흐트러졌다. 색스러운 신음과 함께 살과 살이 맞부딪히는 적나라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음탕한 본능을 형태로 빚어낸 것만 같은 그 행위는, 연인 사이에 사랑을 나누기 위한 섹스가 아니라 마치 짐승이 먹이를 삼키는 듯한 모습에 가까웠다.

“흐윽, 깊어……!”

덩치가 그녀의 두 배는 됨직한 커다란 남자의 위에 여자가 올라타 있었다. 여자가 헐떡이며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배 속이 꽉 찰 만큼 커다란 남성기가 빠듯하게 안을 넓히며 들어왔다가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빠져나가기를 반복했다.

연결된 성기에서 질척이는 액이 흘러나올수록 정신이 혼미해져, 여자는 제 아래서 애타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의 가슴을 더듬었다.

“읏, 사비나 아가씨…….”

“에르잔…….”

고통인지 쾌감인지 모를 것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에르잔은 제 위에 올라탄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려 했다.

달빛이 방까지 스며들어 왔더라면, 분명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을 터인데.

이런 어둠 속에서는 맞닿은 살의 열기와 젖은 숨소리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에르잔, 괜찮……아요?”

사비나는 에르잔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무엇이 괜찮은지를 묻는 것일까. 에르잔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 없는 남자의 넓고 탄탄한 가슴의 근육 너머로 맹렬하게 뛰는 심장의 고동이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확실한 생명의 증거에, 사비나는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죽음의 화신인 그녀와 몸이 맞닿아도 결코 죽지 않는 남자. 그런 호위기사와 몸을 겹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헝클어진 머릿속을 갈퀴로 긁어내리듯 시원하면서도 짜릿한 감각이 온몸을 훑었다.

동시에 가슴 속에서 아찔한 죄악감이 꽉 차올랐다.

“미안해요, 에르잔. 정말 미안해요…….”

그녀의 허리만큼이나 두꺼운 남자의 허벅지 위에 올라타, 거침없이 허리를 흔드는 모양새와는 달리 사비나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흐느낌을 그림으로 그려 낼 수 있다면 마치 꺼지기 직전의 촛불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에르잔은 쾌감에 잠식되어 가는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사비나 아가씨, 제게 사과하실 것 없습니다.”

“나 때문에, 당신이…….”

“아가씨를 지키는 것이 제 임무입니다.”

임무.

기사로서는 당연한 그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사비나의 마음에 붉은 가시가 돋아났다.

흠칫거리는 그녀의 뒷머리를 조심스럽게 끌어당겨, 에르잔은 입술을 겹쳤다. 보드라운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어 타액을 섞고 뜨거운 점막을 건드리자, 사비나가 약하게 몸을 떨며 에르잔의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뒷덜미를 감싼 손이 목을 타고 내려와 등줄기를 훑어 주자 가느다란 몸이 낭창하게 휘었다.

“흐앗, 아아……!”

에르잔은 한 손으로 침대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 제 품에 무너진 사비나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대로 허리를 퉁기자 사비나의 긴 검은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며 욕정 어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 에르잔……!”

“사비나 아가씨…….”

가리는 옷 하나 없이 탄탄한 남자의 육체 위로 부드러운 여자의 육체가 문질러졌다.

마른 짚을 넣은 침대가 삐걱대는 소리와 거친 호흡이 불규칙하게 섞이는 소리. 체액으로 질척해진 살아 맞닿았다가 떨어질 때마다 철퍽, 하고 추접스러운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에르, 잔, 아흑!”

산골 마을의 밤은 춥다.

입에서는 흰 입김이 나올 정도인데도, 이상하게 사비나는 조금도 춥지 않았다. 옷을 전부 벗어 던진 채인데도 아래에서 차오르는 열기가 제 배 속부터 가슴을 지나 정수리까지 관통하는 것 같았다.

너무 뜨겁고 답답해서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데, 아래에서 굵은 성기가 퍽퍽 치댈 때마다 벌어진 입에서는 군침과 함께 야릇한 신음만 흘러나왔다.

“흐으, 하아…….”

“사비나, 아가씨…… 크흣!”

사정이 가까워졌는지, 에르잔의 숨이 거칠어졌다. 세차게 뛰는 고동이 맞닿은 가슴을 통해 전해졌다. 잔뜩 힘줄이 불거진 남성기가 제 안에서 부피를 키우는 것을 느끼고, 사비나는 잘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을 에르잔의 어깨에 둘러 그를 꼭 끌어안았다.

땀으로 반들거리는 피부가 맞닿아 비벼지는 것마저 아찔하고 황홀했으나, 사비나는 쾌감과 동시에 차오르는 죄책감에 눈물을 흘렸다.

‘미안해요, 에르잔. 나를 만나지 않았으면, 당신이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분노와 욕망과 증오와 체념.

뒤섞인 저주의 힘이 뒤늦게 그녀의 이성을 진득하게 물고 늘어져, 사비나는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입술만 뻐끔거리며 에르잔에게 매달렸다.

“……아, 아아!”

난잡하게 안을 짓치던 단단한 남성기가 완전히 눅진눅진해진 그녀의 안에 정을 토해 내자, 사비나는 에르잔의 등을 손톱으로 할퀴며 절정에 올랐다.

이러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되려던 게 아니었다.

그를 더 이상 끌어들여서는 안 되는데, 이 미칠 것만 같은 격정은 어째서 멈출 수 없는 걸까.

‘왜, 왜 하필 에르잔이어야 했을까.’

자신을 감싸오는 따스한 남자의 팔에 몸을 맡긴 채, 사비나는 흐려지는 의식을 붙잡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렸다.

1. 고요한 마음에 인 파문

소녀의 세상이 한 번 뒤집어진 것은 여덟 살이 되던 해 겨울이었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눈보라가 몰아치던 날, 병든 어머니 옆에서 소녀는 차가운 손을 주무르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갑자기 문을 박차고 들어온 괴한들에 놀라, 소녀는 어머니의 침대로 기어 올라갔다.

기겁하여 이불 속으로 숨으려는 소녀를 끌어낸 괴한들은, 딸을 구하려는 어머니의 배를 발로 걷어차고 방 안을 헤집어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뭔가가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 자신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 비명과도 같은 신음 소리. 소녀의 작은 세계는 괴한들에 의해 너무나도 쉽게 어그러지고 짓밟혔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흔들리는 마차에 난 네모난 창문. 그 너머로 제가 살던 집이 불타는 모습을 보며 소녀는 눈을 감았다.

소녀가 괴한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난생처음 보는 휘황찬란한 방이었다. 제집과 앞마당과 어머니만이 세상의 전부였던 소녀는 웅대하고 화려한 풍경에 기가 질려, 시선을 둘 곳을 모르고 방황했다. 자꾸 고개를 숙이려는 소녀의 턱이 억지로 들어 올려졌다. 눈앞에 피처럼 짙은 붉은색 소파가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깔끔한 인상의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소녀와 같은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을 지닌 남자.

“사비나. 사랑하는 나의 딸.”

남자는 자신이 소녀의 아버지라고 말했다.

***

제국의 귀족 가문이 갖춰야 할 조건에는 세 가지가 있었다.

영지, 작위, 그리고 주술사.

주술사는 귀족을 보필하는 그림자로서 재해를 예견하여 방책을 세우고, 전염병의 확산을 막으며, 영주에게 불만을 가진 불온한 인간을 색출하여 처단하는 역할을 맡았다.

콘바야젠 가문은 제국에서 가장 큰 영토를 영지로 갖고 있음에도 귀족들 사이에서 은근히 무시를 당했다. 가문을 비호할 주술사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소녀의 아버지라는 남자는 그 콘바야젠 가문의 가주로, 어린 나이에 외국으로 유학을 가 이국의 지식을 습득하여 돌아온 명석하고 유능한 젊은이였다.

“사비나. 네가 이 콘바야젠 가문의 주술사가 되는 거란다.”

주술사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읽어 내는 자. 그래서 그들은 미래를 예지하고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불온한 세력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녀에게 미래를 읽어 내는 힘은 없었다.

“나는 주술사가 아니에요. 미래를 읽지 못해요.”

“아니, 사비나. 너는 주술사란다.”

주술사는 미래를 예견하는 자.

“이제부터 네 힘으로 미래를 바꾸게 될 테니까.”

소녀는, 미래를 바꾸는 자였다.

***

정체를 알 수 없는 새카맣고 진득한 것이 소녀를 덮쳤다.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빠져 버리는 늪처럼 차갑고 끈적끈적하며 텁텁한 것이 그녀의 몸속으로 기어들어 왔다. 아버지는 그것을 「저주」라고 말했다.

“히익, 싫어…… 그만해요……!”

“견뎌 내야 한단다. 사비나, 너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입으로, 코로, 귓속은 물론이고 한 번도 무언가가 들어오리라 생각해 본 적 없는 다리 사이의 은밀한 곳으로까지 죽음의 주술이 파고들었다. 죽음의 저주를 내리는 술법은 소녀를 살아 있는 저주의 화신으로 만들었다.

“완벽해. 너는 정말 완벽한 아이였어, 사비나.”

“흐윽, 쿨럭…….”

기침할 때마다 검은 물을 토해 내는 소녀를 보면서, 아버지는 흐뭇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정말 네가 자랑스럽단다.”

“자랑……?”

“그래. 너는 나의, 이 콘바야젠 가문의, 자랑스러운 주술사란다.”

소녀, 사비나는 최고의 주술사였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주술사였다.

사비나의 몸에 닿는 사람은 몸이 썩어 들어갔다. 힘주어 이름을 부르면 병에 걸렸다. 초상화 위에 그녀의 피를 묻히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죽인 사람의 수를 세는 것은 무의미했다. 날짜를 세는 법도 잊어버릴 만큼 오랫동안, 사비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가문의 적」을 죽여야 했다.

그녀의 아버지, 콘바야젠 백작의 명령으로.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외출을 하자꾸나, 사비나.”

황태자의 즉위를 축하하는 연회가 열린다고 했다. 연회에 초대받은 콘바야젠 백작은 일꾼들을 시켜 사비나를 검은 천으로 꽁꽁 싸맨 뒤 부적까지 붙여 마차에 싣고 황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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