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이는 제가 데리고 있을 겁니다. 그게 재이 팔자입니다.”
일찍이 가족을 잃고 혼자가 된 재이.
그녀는 오랫동안 짝사랑해 왔던 남자, 해준의 손에 맡겨져 그를 부모처럼 의지하고 따르며 또 다른 가족이 되어 자랐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제 보호자가 필요한 나이는 지나 버렸다.
이제 자신의 남자가 필요하다.
모델 같은 실루엣의 긴 팔다리, 떡 벌어진 어깨, 훌륭한 신체 비율. 그리고 가까이서 보면 더 잘나고 수려한 이목구비와 서늘한 분위기까지. 쉽게 대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위압감과 그에 걸맞은 행동 양식은 어떤 여자도 흔들릴 정도였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둘은 단단한 결속으로 묶여 있었고, 서로의 옆에 다른 사람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이때까지는 그랬다.
“그 애가 네 혼삿길을 막는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어.”
참다못한 유 회장은 엄포를 놓았다. 그룹 후계자라는 무거운 짐을 든 해준에게는 많은 책임이 요구되었다. 그 책임이 재이의 안전까지 짓누르는 순간, 해준은 선택해야 했다.
“5년 안으로 부회장 자릴 달면?”
상사의 질문에 권 비서는 물끄러미 해준을 바라보다 어렵게 입을 뗐다.
“……재이 씨가 안전해지겠죠.”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그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재이를 지켜야 한다.
* * *
“……결혼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래.”
여태까지 불확실하게 대답하던 그가 이번에는 확답을 내렸다. 얼음이 된 재이의 심장을 그가 망치로 내리치는 충격이었다.
“하지 마세요.”
작은 얼굴에서 결국 눈물이 툭 터졌다.
“약속했잖아요. 나랑 약속했었잖아요.”
재이는 자신을 욕심내지 않는 해준을 가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