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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에 가까운 새벽, 재이는 휴대폰 진동 소리에 잠을 깼다. 해준이 퇴근한 지 두 시간도 안 되던 때였다. 재이가 대신 발신자를 확인하다 화들짝 놀라 그를 깨웠다.
“아저씨, 아저씨. 일어나 봐요. 회장님 전화 왔어요.”
“회장님이?”
해준이 부스스 눈을 뜨며 재이가 건네준 전화를 받았다. 이 시간에 연락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두 사람 다 의아하게 전화를 받았다. 기차 화통 소리 같은 윽박지름이 휴대전화에서 쏟아졌다.
-이 썩을 놈의 자식아! 네가 보자 보자 하니까 대원을 얼마나 만만하게 보길래 딴 주머니를 차!
스피커 폰도 아니었지만 내용이 훤히 들릴 만큼 큰 고함이었다. 재이는 덩달아 잠이 달아나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해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예?”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더냐? 어? 이제 내가 우스워! 집중하란 소리 분명히 했을 텐데!
“회장님. 일단 진정하시고.”
-그러고 앉았으니 회사에서 기절이나 하고 앉았지. 네 몸이 네 것인 줄 알아? 대원의 후계자란 놈이 사리 분별을 못해서 일을 그르치려 들어! 보자 보자 하니까 지금 이게 장난하는 줄 알아!
회장의 말만으로 재이는 대중의 사정을 가늠할 수 있었다. 들키게 된 경위는 모르지만 그가 개인적인 사업을 준비 중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재이와 해준의 표정이 어두웠다.
“회사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슨 미친 소리야 당장 뛰어와! 당장!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겼다. 쩌렁쩌렁하던 고함이 사라지자 호텔 룸이 허전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재이가 벙한 목소리로 물었다.
“맞아 죽는 거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어.”
짧고 깊은 잠에서 깬 해준은 기분이 썩 좋진 않았지만 감정적으로 대답하는 대신 뼈 있는 농담으로 대꾸했다. 하지만 그건 재이의 불안을 부추기는 효과를 낳았다.
재이는 해준이 정장을 챙겨 입는 내내 주변을 맴돌았다. 가서 회장이 무슨 말을 할지, 어떤 행동을 할지 걱정이 되어 견딜 수 없었다. 정말로 혹여 손자를 두들겨 패기라도 할까 무서웠다.
“괜찮을까요?”
“안 괜찮아도 어쩔 수 없지 뭐.”
해준도 딱히 특별한 방법은 없는 듯 보였다. 재이는 적절한 때가 아닌 걸 알지만 다급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아버님을 서울로 모시는 건 어때요?”
“뭐?”
구두를 고르던 해준이 재이의 말에 의아하게 대꾸했다. 재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했다.
“아버님이요. 시골에서 적적하게 지내시잖아요. 지금이야 정정하시지만 나이 드시고 아프면 시골에서 병이 날지 어떨지 모르고. 아저씨도 마음 불편하고. 언제까지 거기 계시는 게 능사도 아니고요.”
“…….”
“웬만한 사람은 못 미더운 거 알아요. 회장님은 더하시고요. 회장님께 일단 서울로 모실 계획이고, 새로운 회사도 아버님을 대표로 모시려고 준비 중이었다고. 잠시 임시로 있는 거라고 그렇게 말해 보는 건 어때요?”
발을 동동 구르며 두서없이 쏟아 낸 계획이었다. 그가 물어보기도 전에 혼자서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는 게 조금 멋쩍기도 했지만 재이는 진심으로 그가 무사하길 바랐다. 해준은 재이의 의견이 나쁘지 않은 듯 묵묵히 생각하는 듯 보였다.
“회장님도…… 내심 이대로 남처럼 지내는 건 싫으실 수도 있어요.”
재이가 눈치를 보며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해준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다 재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회장의 자택으로 출발했다.
* * *
유 회장은 해준이 도착해서도 쉽게 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괘씸하여 견딜 수 없었다. 모든 걸 준다고 자처해도 엉뚱한 곳에 신경을 쏟고 있던 손자에게 배신감까지 느꼈다.
새벽 여섯 시, 말끔히 정장을 입고 온 해준을 현관문 앞에 세워 둔 채 명령했다.
“들어올 생각 마라. 거기서 무릎 꿇고 이야기해.”
“…….”
해준은 별다른 말 없이 묵묵히 무릎을 꿇었다. 천하의 유해준이 보이는 굴욕적인 모습이었다. 옆에서 초조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조모는 차마 못 볼 걸 봤다는 듯 흐느끼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유 회장은 여전히 고압적인 말투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설명해 보거라. 납득이 안 되면, 너는 오늘부로 대표고 나발이고 없다. 그냥 네가 차린 뭔지도 모르겠는 그 조잡한 사업이나 해.”
“그 자리에는 아버지를 모실 예정입니다.”
“뭐라고?”
이쯤이면 ‘아닙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는 대답이 튀어나올 줄 알았던 유 회장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버린 아들을 다시 데리고 온다는 말은 그에게 내미는 도전장으로 느껴졌다. 턱이 분으로 인해 파들파들 떨렸다.
해준은 그 모습을 보고도 덤덤히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못할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고문으로 작게 도와주며 대원에서 맡은 일에는 지장 주지 않겠습니다.”
“너, 지금 그게 내 앞에서 할 말이냐?”
“이제 서울로 모실 때도 됐습니다.”
“너. 너. 다시 말해 봐!”
결국 고함이 다시 터졌다. 유 회장이 그를 삿대질하며 가리켰다. 해준은 생각지도 못한 재이의 말이 꽤나 와닿았다. 의견을 들으며 떠올랐던 이득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재벌 2세가 서울에서 맨손으로 사업에 뛰어든다면 윤재로 떠들썩했던 화제성도 어느 정도 커버될 수 있을 겁니다.”
“…….”
“애써 지켜 오셨던 이미지, 다시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근까지도 이미지 추락에 대한 스트레스를 안고 살던 회장이 그 말에 멈칫했다. 해준은 잠시 브레이크가 걸리듯 한풀 꺾일 기미를 느끼고 이번에는 감정적인 면을 공략했다.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언제까지 죄책감을 안고 사실 겁니까. 할머니도 생각해 주셔야죠. 앉으나 서나 아버지 걱정뿐이신데요.”
유 회장은 자신의 속을 들여다본 것 같은 손자의 말에 놀라면서도 애써 아닌 척 쌀쌀맞게 대꾸했다.
“죄책감이라니 그런 것 없다.”
하지만 그마저도 해준은 유 회장의 마음을 알아챈 뒤였다. 그가 나직하게 입을 뗐다.
“……매년 어머니 기일에 절에 다녀오시는 것 알고 있습니다.”
* * *
해준은 유 회장과의 독대가 끝난 후 회사에 출근해 재이에게 전화했다. 통화 연결음이 들리기 무섭게 재이가 전화를 받았다. 무척 다급한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아저씨?
“응. 나야.”
-아 다행이다 아!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은 아저씨한테 있었잖아요. 저 정말 두들겨 맞기라도 할까 계속 기도하고 있었다구요.
재이는 정말 내내 맘을 졸였는지 가슴을 쓸어내리며 연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이 상상이 되어 해준이 낮게 웃었다. 재이가 그 소리를 듣고 조심스레 물었다.
-회장님은 뭐라셔요?
“그냥 뭐, 별말 안 하지. 좀 더 생각해 보시고 결정할 거야. 그리고 계열사 창립일 대략적으로 잡혔어. 내년 말쯤으로 될 거 같아.”
-많이 빠듯하네요.
“어떻게든 해 봐야지.”
힘들고 고단한 한 해가 그를 기다릴 예정이었지만 해준은 이번에도 덤덤하게 대답했다. 자신이 굳건해야 재이도 그녀의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해준은 재이와 애틋한 통화를 조금 더 이어 나가다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지만 아버지를 제 손으로 모셔 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감회가 새로웠다. 그가 아침 일찍부터 텃밭을 가꾸느라 정신없이 일하고 있을 부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버지, 마지막으로 아들 한번 도와주세요.]
3년 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지났다. 해준의 계열사는 어느새 업계 1위와 점유율을 다툴 만큼 급격한 성장을 했다.
3년 전 해준이 그렸던 청사진은 어느새 현실이 되어 가는 중이었다. 그가 아버지를 대표로 앉혀 둔 회사는 계열사의 1차 협력 업체가 되어 주목받는 중소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만큼 오기까지 해준은 아주 치열하게 일해 왔다. 그리고 그런 남자를 보고 자란 재이도 3년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재이는 어느새 어린 팀장이 되었다. 해준의 도움 없이 창업 멤버로서 자신이 이룬 성과였다. 처음엔 그녀의 자질을 의심했던 직원들도 입이 벌어질 만큼 악착같은 근성으로 일하는 걸 보며 기함하곤 했다. 그녀는 내‧외부에서 인정을 받아 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간절하게 일하고 싶어 했던 궁극적인 목적, 해준에게 보탬이 되겠다는 결심도 이뤄 냈다.
“안 팀장님 대표님이 부르시는데요?”
“아. 네.”
권 팀장은 권 이사가 되었다. 그가 대표실을 나오며 재이에게 말했다. 재이는 탁상 거울로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대표실로 노크 후 들어갔다.
“부르셨어요?”
해준의 부친이자 회사의 대표인 유성진이 재이를 반겼다.
“우리 며느리, 오늘 첫 결혼기념일이라고 들었다. 오늘 해준이랑 저녁 먹지?”
친딸을 대하는 것 같은 살가운 말투였다. 안 팀장에서 예쁨 받는 며느리로 변한 재이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아, 네. 저 여기서 일하고 있으면 해준 씨가 퇴근하고 온대요.”
“무심한 놈. 걔는 무드를 몰라. 이런 날엔 연차를 써야지.”
재이는 말없이 웃었다. 해준의 스케줄상 이마저도 충분한 성의를 보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둘은 작년 프라이빗한 결혼식을 올렸다. 언론의 취재를 최대한 피해 몰디브까지 갔다. 하객들의 표를 모두 제공하며 축의는 받지 않았다. 아주 호화스럽지만 단출한 결혼이었다. 재이의 네 번째 손가락에는 생일에 받았던 화려한 유색 다이아가 빛났다.
해준의 부친은 재이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서랍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용돈이다. 우리 예쁜 며느리 가서 쇼핑이라도 하고 와.”
“아, 아버님.”
“받아 받아. 이러려고 돈 버는 거지, 이거 아님 내가 낙이 없다.”
재이가 한사코 사양하려 하자 그녀의 재킷 주머니에 억지로 용돈을 쑤셔 넣었다. 더 이상 거절할 수 없던 재이는 허리를 꾸벅 숙이며 깍듯한 인사로 화답했다.
* * *
해준은 아주 특별한 오늘을 위해 야근도 마다하며 ‘칼퇴’를 자처했다. 비록 비서를 포함한 직원들이 6시 30분에 나가는 그를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워하긴 했지만.
재이는 해준의 전화를 받고 쏜살같이 회사를 뛰쳐나갔다. 그의 차에 올라타자마자 터질 듯 반갑고 기쁜 마음을 뽀뽀로 달래며 흰 봉투를 꺼내 자랑했다.
“아버님이 쇼핑하라고 용돈 주셨어요.”
“그래?”
재이가 신난듯 어깨를 들썩이다 봉투를 그에게 쥐여 줬다.
“그런데 문제는, 전 한 백만 원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천만 원이나 넣으셔서…….”
퇴근할 때쯤, 무료한 시간을 달래다 봉투를 열어 본 게 화근이었다. 결혼기념일이라며 천만 원이나 쾌척하실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재이는 뒤늦게 거절하지 못한 게 후회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해준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뭐 어때. 사고 싶은 거 많이 사면 되겠네.”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많이 주셔서. 다시 돌려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됐어. 너 쓰라고 준 건데.”
해준이 자동차 시동을 걸며 도로 재이의 다리에다 봉투를 올려놓았다. 재이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조심스레 가방에 흰 봉투를 넣었다.
해준은 금액을 듣고 전날 오전 뜬금없던 아버지의 연락이 뒤늦게 이해가 됐다.
-야 해준아. 돈 좀 보내라.
“갑자기요?”
-그래. 요새 뭐 가방 사려면 한 천만 원 필요하단다. 네가 오백만 보태.
“네 알겠습니다. 오후 중으로 보낼게요.”
차마 그 돈의 반은 내 돈이니 네 맘대로 쓰란 말은 하지 못했다.
“정말 괜찮으니까, 사고 싶은 거 사.”
그저 재이에게 괜찮다고 안심시킬 수밖에. 사건의 전말을 모르는 재이는 이 돈으로 차라리 다음 달 회장님의 생신 때 선물을 사자며 종알종알 떠들었다. 때마침 재이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Rrrrrrr-
“어. 회장님 전화 오는데요.”
“받아 봐.”
해준이 차 안에서 재즈가 흐르는 오디오 음량을 줄였다. 재이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살갑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래. 재이야.
“회장님. 별일 없으시죠?”
-별일은. 오늘 너희 결혼기념일이라 전화 한 통 했다. 축하한다.
“헤헤……. 감사합니다.”
어느새 재이는 대원의 일원이 되어 완벽히 흡수되었다. 게다가 매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며 해준을 든든히 받쳐 주는 모습에 회장의 기대를 받는 며느리가 되었다.
-요새 회사 일이 바쁘다던데.
“신제품 런칭 때문에 조금 분주한데, 권 이사님이랑 대표님이 워낙 합이 잘 맞으셔서 전보다 수월하게 진행하고 있어요.”
-그래. 네가 항상 해준이 생각하며 일하느라 고생이 많다.
재이를 언제나 눈엣가시로 여겼던 유 회장의 결정적인 태도 변화는 아들을 서울로 데리고 오자는 의견이 재이로부터 시작된 걸 알게 된 후였다. 그녀에게 가지고 있던 편견과 탐탁지 않음은 인정과 고마움으로 변했다. 유 회장은 해준에게 진정한 버팀목이 생겼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작년에 은퇴를 결정했고, 현재는 별장에서 거주하는 중이었다.
“아니에요, 제 할 일인데요.”
재이는 여전히 유 회장의 다정한 말에 적응이 안 되다가도 감격스러울 때가 있었다. 이젠 유 회장 앞에 서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하던 시절이 까마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싸우지 않고 잘 사니 나도 걱정이 없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살아라.
유 회장이 짧은 통화를 덕담으로 마무리했다.
해준은 미슐랭 쓰리스타 파인다이닝 식당을 전체 대관하였다. 스타 셰프가 둘만을 위한 코스 요리를 대접했고, 재료는 모두 재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졌다.
하루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든 남편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재이는 행복했다. 연신 방실방실 웃는 얼굴이자 해준이 흐뭇하게 바라보다 물었다.
“마음에 들어?”
“당연하죠. 너무 행복해요.”
해준은 그쯤에서 준비한 선물을 꺼내 보았다.
“선물이야.”
“어, 난 밥만 먹고 지나가자길래 준비 못 했는데…… 그런데 뭐예요?”
재이가 나이프와 포크를 놓고 냉큼 포장을 뜯었다.
“허! 이거 어떻게 구했어요?”
다이아가 빼곡하게 둘러진 커플 시계였다. 당연히, 재이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의 제품이었다. 몇 달 전부터 구하고 싶었지만 단종이 된 제품이라 중고 시장에서 구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와 아쉽게 포기했던 것이었다.
“주문했어.”
“어, 난 안 된다던데! 우와 그런데 너무 예쁘다. 어떡해요? 아까워서 차지도 못하겠어.”
해준은 새 제품을 받기 위해 자신의 비서와 권 이사가 해외 본사로 넘어가 쥬얼리 브랜드 이사를 만나 정가의 두 배라는 프리미엄을 지불하여 직접 가져온 사실은 생략했다. 한마디로 안 되는 걸 가능케 만드느라 지출된 추가 비용이었다.
보고도 손도 대지 못하는 재이를 보며 해준이 직접 시계를 채워 주었다. 재이는 너무 좋은 나머지 인상을 찡그려 가며 감탄하기 바빴다.
그거면 됐다. 해준은 재이와 같은 시계로 같은 시간에 살고 있다는 의미가 중요했다.
“그리고 소원 하나 들어줄게.”
“어떤 종류요?”
해준의 이벤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선물은 자신이 주고 싶은 걸 주었으니, 이번에는 재이가 바라는 어떤 것이든 들어줄 참이었다. 재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아무거나 괜찮아요?”
“그럼.”
“…….”
재이가 갑자기 말이 없어지더니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해준은 돌변한 재이의 태도에 소원이 가벼운 것이 아님을 직감했다. 하지만 뭐든 괜찮았다.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아. 말해 봐.”
“……정말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재이가 얼굴을 붉히며 조심스레 말했다.
“아이 가지고 싶어요.”
해준의 예상 답안지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소원이었다. 그가 놀라는 바람에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아이?”
“예. 해준 씨 닮은 아기요. 아이가 있는 그런 화목한 가정을 일구고 싶어요. 동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재이의 말에는 한 치의 의심과 흔들림도 없었다. 해준과 함께라면 분명히 가능할 것이다. 해준은 재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손을 잡고 일어섰다.
“가자.”
“예?”
“메인 먹었잖아. 집에 가자.”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귀가를 재촉하는 말이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해준의 눈에 깊은 감정이 일렁였다. 충만한 확신이 두 사람의 마음에 가득 찼다. 재이가 얼굴을 붉히고 선물과 짐을 챙겨 그를 따라 나갔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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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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