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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준이 이렇게 능숙했던가?
재이는 달뜬 숨을 쉬어 가며 버겁고 아찔한 키스를 이어 나갔다. 그를 절대로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와 몸을 섞을 때마다 느끼는 쾌감이 자연스레 떠오르자 자신도 참을 수 없었다. 머릿속으로 지나가는 몇몇 장면들과 그의 단단한 몸, 자신을 쾌감으로 몰아붙이는 힘, 진득하게 느끼는 단단한 결속감까지……. 재이는 제풀에 몸이 달아올라 뜨겁고 더웠다.
자신의 욕망을 더 이상 숨길 생각이 없어진 해준은 그동안 재이에게 보란 듯이 굴었다. 재이의 옷을 벗기는 것도, 침대에 눕히는 것도, 그녀의 곳곳을 손에 틀어쥐고 만끽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죄스러울 정도로 구체적인 자신의 욕망을 낱낱이 드러냈으나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해준은 자신이 드디어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는 완전히 비이성적인 짐승이라도 된 듯 잔뜩 흥분해 있었다. 재이에게 키스하고, 품에 터질 듯이 끌어안아도 갈증이 해결되지 않았다.
자신과 한 침대에 있을 때 재이는 여전히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리고 몸을 뒤척였으나 그는 여유가 없었다. 점잔 뺄 시간에 조금이라도 재이를 탐하고 싶었다. 옷을 막무가내로 벗겨 버리고 재이를 거칠게 소파에 눕혔다.
재이가 얼굴을 가린 손 틈 사이로 천장의 전등이 눈부셨는지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너무 밝은, 데.”
숨이 찬 듯 헐떡이는 목소리는 묘하게 들떠 있었다. 해준이 퉁명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단언하며 본인의 손으로 재이의 눈을 가려 주었다.
“오히려 좋아.”
그 말에 재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으나 귓바퀴가 불에 덴 듯 붉어졌다. 해준은 재이의 목덜미를 파고들었고, 재이의 입이 벌어졌다.
“아……!”
애달픈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런 소리가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게 낯설고 민망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해준은 자신을 너무나 손쉽게 연주했다. 그의 밑에 있다 보면 참아야 한다는 생각마저 흐려져 허우적거리기 일쑤였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를 알았고 10여 년간 그의 옆을 지켰으나 자신이 몰랐던 모습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항상 단정하고 흐트러짐 없는 그가 이를 갈며 흥분감을 억누르는 걸 보면 짜릿하기까지 했다. 스스로를 다스리다 못해 자신을 안고 아주 강하게 움직일 때마다 재이는 죽을만치 좋았다.
두 사람 다 하고 싶고 묻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불쑥 솟아 버린 욕망을 주체하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뭘 물어야 할지도 까맣게 잊은 채 뜨거운 숨결만이 오고 갔다.
어느새 나신이 된 몸이 소파 위에서 바쁘게도 얽혔다. 이렇게 훤한 거실에서 그와 엮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고, 평소처럼 침대가 아닌 곳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몹시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환경적 요소가 자극을 부추긴 건 해준도 마찬가지였으나 그는 여전히 끓는 소유욕과 씨름하고 있었다. 단순히 분노라고 치부했던 감정은 훨씬 더 이기적이고 추접한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젠장.”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기 어려웠지만 부인하기엔 너무나 확실했다. 사실 둘의 사진을 볼 때부터 질투와 소유욕에 속이 뒤집어졌던 것이다. 본인도 이런 평범한 감정에 연연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계면쩍으면서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그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재이를 불렀다.
“안재이.”
“에, 예?”
신음이 섞인 어설픈 대답은 그의 욕심을 부추겼다. 그가 계속해서 재차 재이를 불렀다.
“안재이.”
“아, 네에…….”
“안재이.”
“으응. 왜……!”
재이는 힘겨워하면서도 곧이곧대로 대답을 해 주었다. 해준은 발갛게 달아오른 재이를 내려다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너 내 거잖아.’
‘별 병신 같은 새끼한테 못 빼앗겨.’
‘어떤 놈이 와도 못 내어 줘.’
그런 유치하고 노골적인 속내를 차마 내뱉을 수 없었다. 상상만 해도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추할지 실감되어 재이의 이름 뒤에 속으로 삼켜야 했다. 재이는 자신의 이름을 여러 번 부르지만 막상 특별한 말을 하지 않는 해준을 바라봤고 둘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아무거도 모르는 재이를 헤치며 들어갔다.
“아……!”
재이는 다급하게 고개를 젖혀 숨을 삼켰으나 그는 파고드는 걸 멈추지 않았다. 끌어안은 작은 몸집과 얇은 뼈대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약한 몸으로 자신을 받아들이다니. 죄스러웠지만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재이 앞에 서면 번번이 자신은 비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고, 어리석어졌다.
재이는 밀려오는 압박감에 이번에도 몸을 굳히며 긴장했으나 이내 이완된 몸으로 그를 받아들였다. 처음엔 아픔이 컸고, 그다음엔 아픔과 묘한 감각이 반쯤 뒤섞였으며 이번에는 쾌감이라고 할 만한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 밀려왔다.
“하윽.”
해준도 여태까지와는 다른 반응을 느낀 건 마찬가지였다. 재이의 몸이 훨씬 편안해 보였으나 한편으로는 자신을 원하듯 쉽게 놓지 않았다. 치솟는 흥분감에 그는 심호흡을 하며 움직임을 멈추고 재이를 끌어안았다.
“왜, 왜…….”
하지만 선뜻 움직이지 않는 그가 의아했던 재이는 눈을 깜빡이다 끙끙거리며 애를 써 움직였다. 서툴고, 어색한 와중에 선명하게 느껴지는 감각에 낯설어 몸서리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느릿한 그 동작이 해준에게 얼마나 자극적일지는 생각도 못 한 채로.
“안재이 너…….”
해준은 이에 놀라 공기를 쓰게 삼켰다. 재이는 자신이 잘못한 줄 알고 눈치를 보며 멈추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과 감각은 재이가 스스로 움직이던 그때를 정확하게 되감는 중이었다.
그건 휘발유를 뿌려 눅눅해진 뇌에 불을 붙인 듯한 효과였다. 해준은 마지막 남은 이성마저 증발해 동나고 말았다.
그다음에는 둘 모두의 기억이 희미할 정도였다. 해준은 아주 깊고, 진하고, 격렬하게 재이를 탐했다. 재이는 이리저리 흔들리며 유례없는 쾌감에 휩쓸려 가듯 몸서리쳤다. 목 놓아 신음하며 울었고 해준은 그런 재이를 봐주지 않고 몰아쳤다.
요란한 몸짓과 더 추접한 소리가 거실을 가득 메웠다. 젖은 살이 부딪치고, 철퍽거리는 소리도 무시할 수 없었다. 재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와 눈을 마주치며 음탕한 순간들에 빠져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 * *
재이는 절정에 다다라 관계가 끝나고도 여운에 빠져 가만히 누워 헐떡거리기 바빴다. 신체 곳곳에는 별개의 생명인 듯 맥박이 펄떡이는 느낌이 선명했다. 입을 벌리고 쌕쌕거리듯 축 늘어져 움찔거리기 바빴다.
간단하게 씻고 뒤처리가 끝난 해준이 소파로 돌아와 재이를 안아 들려고 했다. 그가 다가오자 소파에 엎어져 있던 재이가 몸을 뒤집어 똑바로 누워 그를 올려다보았다.
“파혼했어요?”
“그래.”
넌지시 던진 질문에는 복잡한 의미가 깔린 듯 보였다. 재이는 재차 질문했다.
“왜 말 안 했어요?”
차분히 질문하려 애썼지만 그동안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던 것까진 숨겨지지 않았다. 반면 해준은 별일 아니라는 듯 쉽게 대꾸했다.
“때가 아니었으니까.”
“그럼 언제 말하려고 했는데요?”
“모든 건 적당한 때가 있지.”
모호한 답변에 울컥한 재이가 그를 쏘아붙였다.
“내가 그렇게 맘고생하고 있었다는 거 알면서도 숨길 여력이 있었어요?”
“…….”
“정말 너무하잖아요. 게다가 회사는 안 나가고 있었으면서 왜…….”
얼마 전만 해도 뜨겁게 몸을 섞었지만 정신을 차린 재이는 무척 속이 상하고 못내 그가 미웠다. 그야말로 뒤죽박죽 엉망인 크리스마스이브였다.
그토록 바라 왔던 파혼이었지만 상황 탓에 배신감이 컸다. 특히나 셔츠의 와인 자국과 가윤과의 연락을 보고 둘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마음 졸여 왔기에 더했다. 당장 덩실덩실 춤을 출 정도로 기쁘다기보다는 전에 없이 자신을 속여 온 그의 모습에 당혹스럽고 낯설었다.
해준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별말 않고 자신의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신경질이 난 재이가 자세를 고쳐 앉아 그를 다그쳤다.
“말해 봐요. 적당한 때가 언젠데요? 말하라구요!”
“기다려.”
“아저씨.”
다시 한번 소리치려던 그때, 해준이 재이의 정수리를 크게 쓰다듬으며 볼을 꼬집었다.
“생일 축하한다. 안재이.”
“……예?”
그제야 재이가 퍼뜩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저녁도 뛰어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계를 한 지 몇 시간. 어느새 자정이 넘어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설마 ‘그 때’가……. 그의 이런 의도는 생각지도 못한 재이가 말문이 막혀 어버버거리고 있을 때였다. 해준이 실내복 바지 주머니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내어 재이에게 건넸다.
“이게 뭐예요?”
“이제 반지가 필요한 시기지.”
의도치 않게 해준은 이번에도 재이의 말문을 막아 버렸다. 그는 천천히 재이의 앞에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은 채로 반지 케이스를 열어 보였다. 안에는 알이 굵고 커팅이 화려한 다이아 반지가 재이를 반겼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처럼 극적인 순간이었다. 감히, 감히 자신이 그가 건넨 반지를 받게 될 줄이야. 그 순간 재이는 정수리 위로 전류가 흐르듯 온몸에 전율 같은 게 느껴졌다. 몹시 놀라 뻣뻣하게 굳어 어떤 반응도 하지 못했다. 해준이 평소처럼 아주 차분하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내가 완벽하다고는 말하지 않을게.”
그의 호수같이 잔잔한 목소리를 듣고, 눈을 마주치는 순간 재이의 울음보가 터졌다. 그야말로 눈물이 장마철 차창을 적시듯 볼을 타고 주룩주룩 흘렀다. 재이의 모습이 해준의 마음에도 큰 파동을 일으켜 일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누구도 나만큼 너를 사랑할 수 없을 거다.”
그가 반지를 꺼내어 재이의 손가락에 끼워 주며 평소처럼 아주 차분하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재이가 어깨를 들썩이며 목 놓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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