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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방, 공기는 건조했지만 침대 위는 뜨겁고, 축축했다. 그는 재이에게 끊임없이 키스하며 몸에 남아 있는 것을 벗겨 내었다. 재이는 극한 긴장과 들뜸으로 맨몸이 되어 가는 것도 모른 채 끙끙 앓았다. 이성의 끈을 놓아 버린 그는 더 이상 머뭇거리거나 빼는 법이 없었다.
재이의 보챔에 드디어 응답하듯 움직였다. 그가 재이의 몸 위로 올라왔을 때, 재이는 흥분에 치밀어 곧장 절정에 도달해 버리고 싶었다. 그간 너무나 많이 참고 인내해 왔다. 그의 마음이 바뀌기라도 할까 조급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는 이제 중간 과정 같은 건 건너뛰고 곧장 그와 연결되고 싶었다.
재이가 흥분에 못 이겨 다리를 바르작거릴 때마다 그의 것이 느껴졌다. 얼핏 느끼기에도 존재감이 대단한 크기였다. 주변에서 그의 컨디션을 걱정하던 걸 봐 왔던 재이는 이렇게라도 확인하자 그간 자신의 걱정이나 추측들은 모두 쓸데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좋아요…….”
“응?”
“아저씨랑, 이러고 있는 거 좋다구요.”
“후우. 그래.”
“나만 그래요?”
“아니. 그런 거 아니야.”
“아, 얼마나, 좋은지 말해 주세요.”
재이가 헐떡이면서도 상기된 얼굴로 맹랑한 요구를 했다. 해준은 조금 어이가 없어 너털웃음을 지었지만 그의 기세는 조금도 꺾이지 않은 상태였다. 오히려 경험이 없는 재이가 무서워하진 않을까 했던 우려가 사라져 안심이 되었다.
“한 번만요.”
재이가 칭얼거리며 그와 눈을 마주친 채 바지 지퍼를 풀었다. 그는 재이를 내려다보면서도 말리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끈적하고 분명한 욕망이 흘러넘쳤다.
꿈을 꾸는 듯 믿기지 않았다. 이토록 바라 왔던 순간이 있었던가. 아주 오래되고 간절한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마음에 따뜻한 무언가가 가득 차는 뿌듯한 느낌에 눈물겹기까지 했다. 어른스럽게 굴고 싶었으나 도저히 이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재이가 그를 보내며 물었다.
“한 번도, 나랑 하고 싶었던 적 없어요?”
“그런 건 묻지 마.”
“나는 매일, 매일 궁금했어요.”
재이가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을 집요하게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이게 꿈도 상상도 아니라는 게 실감 났다. 상대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깝게 마주 보고 있어도 그를 원하는 마음에 애가 탔다.
그와 다시 가까워진 재이는 둘의 상징이었던 단단한 결속으로 엮이고 싶었다. 몸 안 깊숙이까지 그와 이어지고 싶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완전히 자신의 남자로 품고 싶었다.
“빨리 해 주세요.”
재이의 보챔에 그는 재이를 감싸 안으며 허벅다리를 잡고 자세를 고쳤다.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재이는 떨리는 마음으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프면 물어도 돼.”
그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하며 더욱 몸을 밀착했다. 재이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었다. 재이는 눈을 꽉 감은 채 크게 숨을 들이마셨고 그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천천히 밀고 들어왔다.
생경한 느낌에다 통증을 수반했지만 재이에게 이건 아무거도 아니었다. 그간 그와 겪었던 크고 작은 추억들과 사랑이 넘치다 못해 그를 가지고 싶어 마음고생했던 나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드디어. 그런 생각이 들자 재이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재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사랑해요.”
그가 재이가 울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재이의 머리를 사이에 두고 끌어안듯 밀착한 채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며 들락거렸다. 둘의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1cm도 되지 않는 틈을 두고 그가 답했다.
“나도 사랑한다.”
“아 아읏.”
그는 천천히 들어왔지만 치밀고 들어오는 통증에 재이에겐 그가 배려를 하고 있다는 의식을 할 여유가 없었다. 체구가 작고 몸이 약한 재이에게 그의 것은 너무나 버거웠다.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 아니었다면 재이는 그를 밀어 냈을지도 모른다.
재이가 이를 악물고 그를 견뎌 냈다. 그동안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버텨 냈으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완전히 그와 이어진 지금 이 순간 일분일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몸에서 움직이는 그를 영원히 잡아 두고 싶었다.
축축하게 젖어 버린 몸, 그리고 그 안을 가득 메운 채 있는 단단하고 뜨거운 것. 밀착해 있는 벌거벗은 두 개의 몸뚱이. 작은 방에서 둘만의 세상을 찾은 듯 뜨거운 숨을 뱉었다.
통증과는 별개의 묘한 감각이 재이를 간지럽혔다. 나쁘지 않은 느낌에 오히려 고통을 어느 정도 상쇄할 만큼 좋았지만 쾌감이라기엔 흐린 느낌이었다. 재이는 그 옅은 느낌을 좇아가며 긴장을 풀어 갔다.
그는 터질 거 같은 흥분을 억누르며 움직임을 절제했다. 재이의 뻣뻣했던 몸이 풀어지는 걸 느끼며 해준은 조금 더 과감히 움직였다. 자신의 것인지 재이의 것인지 모를 축축한 물기에 침대 시트는 흥건히 젖은 지 오래였다.
“나 사랑해요? 얼마나?”
“……너는 몰라.”
“왜, 왜요?”
“설명해도, 후우. 몰라.”
남녀의 하체가 가까워졌다 멀어지며 규칙적으로 움직이면서도 둘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재이는 그의 애매한 대답조차 불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지점에서 재이의 탄성이 터져 나오자 해준이 속도를 높였다.
재이가 흔들렸다. 해준은 자신의 손바닥으로 그녀의 머리를 덮어 침대 헤드에 부딪치는 걸 막았다. 둘 모두 멈출 생각은 없었다. 철퍽이며 젖은 살의 마찰음이 들렸다. 그 소리가 둘 사이에서 나는 날이 오다니.
“이런 거, 나랑만. 그 여자랑 안 했죠.”
“그래.”
“아, 정, 말?”
“그래. 안 했어.”
재이는 자신의 신음이 민망하게 느껴져 입을 꾹 다물었으나 해준이 입술을 더듬어 만지자 입을 벌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재이의 혀를 꾹 눌렀다. 재이는 얌전한 강아지가 된 듯 그의 손길을 느꼈다. 그가 입이 마른 듯 혀로 입술을 훑으며 재이를 내려다보았다. 재이는 그 모습이 색스러워 그의 허리를 끌어안아 더욱 깊게 유도했다.
둘의 잠자리가 무르익었다. 해준은 둘의 잠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언급하고 싶지 않아 보였지만 재이는 확실히 못을 박고 싶었다. 그간의 맘고생을 떠올린다면 절대로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제 입에서 놀던 그의 손가락을 빨며 눈을 마주쳤다. 재이의 핏기 없는 흰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달뜬 채 색스러웠다. 해준은 눈을 떼지 못하며 볼을 쓰다듬었다. 그녀가 다시 물었다.
“왜, 왜애?”
“뭐가?”
“왜, 왜 안 했어요. 아!”
“그럴 마음이, 안 들어서.”
순간순간에 집중하며 섬세하게 움직이는 그의 대답은 화난 듯 무뚝뚝하게 들렸으나 재이는 그마저도 좋았다. 재이가 보채듯 크게 움직이며 말했다. 그가 이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하게 더욱 깊게, 더욱 강하게 자신을 탐했으면 했다.
“나랑만. 나한테만 해요. 응?”
그는 대답 대신 더욱 속도를 높였다. 해준에게는 대답할 필요도 없을 만큼 당연한 것이었다. 이런 파렴치한 욕심은 그가 모두 재이에 한해서 품은 마음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여태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일 없는 해준답지 않은 비합리적이고 간절한 욕망.
두 사람 사이에서 나는 마찰음은 뺨을 내려치는 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빈틈없이 딱 맞는 퍼즐처럼 치밀하게 이어진 둘 사이는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재이는 더욱 짙어지는 묘한 기분에 인상을 찌푸리며 종착지를 예감했다. 그의 몸을 빈틈없이 단단히 끌어안자 그가 화답했다. 둘은 부서질 듯 끌어안은 채 절정에 달했다.
* * *
매번 재이에게 상처를 주며 돌아서던 해준도 아무렇지 않던 건 아니었다. 재이가 힘들어할 걸 알면서도 결혼을 진행할 때, 우는 걸 볼 때, 그리고 그런 아이에게 모진 말을 뱉어 내야 할 때 그는 모든 걸 그만두고 싶었다.
매 순간이 위기와 고난이었다. 그는 유례없이 세차게 흔들렸으나 역설적으로 중심을 잡게 해 주었던 것도 재이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이 잠깐의 상처가 아물면 너만큼은 행복했으면 했기에.
하지만 때때로 혼자 있으면 강한 회의감과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안아 주세요.”
재이가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건 당연했다. 재이는 그의 마음에 난 실금도 놓치지 않고 스며들어 갔다. 점점 그 틈을 확장해 나가며 재이는 다시 한번 해준의 심장 안에 자리를 잡았다.
재이를 침대에 눕히고, 마음껏 끌어안고, 하얀 나신을 온몸으로 느꼈다. 재이는 얼굴뿐 아니라 가슴팍까지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했으나 그는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처음 들어 보는 재이의 애달픈 신음은 자신의 남아 있는 이성을 동내 버렸다. 우습게도 그가 재이를 탐하며 움직일 때마다 망가져 갔다. 너의 곁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겠다는 약속도 귀한 너를 절대로 욕심내지 않겠다는 다짐도.
“후우.”
그는 재이가 처음임을 기억하며 이를 악물고 움직임을 절제했다. 재이를 배려하는 것만이 자신의 죄스러움이 덜해지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주 섬세하게 반응을 살피며 움직였다.
“나 사랑해요? 얼마나?”
재이가 자신을 품은 채로 물었다. 잠자리를 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에 확신을 얻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가 고민하다 허스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는 몰라.”
“왜, 아읏, 왜요?”
“설명해도, 후우. 몰라.”
할 말이 없어서도 아니었고, 말하기 싫은 것도 아니었다. 정말로 그뿐이었다. 간신히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며 절제하고 있는 와중에 재이를 붙잡고 구구절절 사랑을 알아 달라고 말할 수 없을 뿐이다.
재이를 부서뜨릴 듯 끌어안으며 절정에 다다랐을 때, 그는 재이를 두고 ‘너무 멀리 와 버렸다.’고 생각했을 때를 회상했다.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실감했다.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하며 이제 진짜 시작임을 깨달았다.
첫 경험이 고단했는지 재이는 금세 잠들었다. 해준은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아이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주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재이는 중간중간 뒤척거리며 해준이 옆에 있음을 확인한 후 도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