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대용품이었다-199화 (199/204)

199화. 알아버렸으니까

* * 木

“거기 문이 있는 건 어떻게 아

셨어요?”

“내가 언제 모르는 게 있었

어?”

“그건 그렇지만

“다른 소리 할 시간에 잘 기억

해둬. 문이 어디 있는지.”

“제가 그걸 기억해야 해요?”

“기억하면,나중에 쓸모 있을

거야.”

나는 태연히 말하며 계단을 내

려 갔다.

비밀창고 문을 여는 내내,잘못

을 저지른 양 우물쭈물하는 아이

를 보니 뭔가 내가 나쁜 짓을 시

키는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그녀

가 과거의 나이기도 하니 참작의

여지는 있겠지.

나는 잘도 합리화하면서 티어

드롭의 보물 창고로 쏙 들어갔다.

얼마나 요정의 물건들이 많은

지 문을 연 순간부터 계속해서

빠르게 힘이 채워지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시도할 만

했다.

“여,여긴……

“티어드롭의 비밀 보물 창고

지.”

“한 번도 안 와봤지?”

“요정님은 와보셨어요?”

"응. 저번에.”

요정의 눈물을 홈치느라 말이

지.

그저,같은 물건을 또 홈칠 요

량으로 다시 오게 될 줄은 몰랐

을 뿐.

나는 정중앙에서 반짝이는 다

이아몬드 목걸이를 향해 성큼성

큼 걸어갔다.

여러 개의 다이아몬드를 엮어

서 만든 목걸이는 언제봐도 변함

없이 아름답고,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지만,전과는 조금 달랐다.

탑과 마찬가지로 목걸이에도

힘이 남아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탑에 남아있

었던 것 그 이상의 힘이.

요정의 눈물에서 별 힘이 느껴

지지 않았던 것도 결국 내 탓이

었나.

나는 알차게 과거의 유물들을

써먹는 것 같단 생각을 지우지

못하며 목걸이에 손을 뻗었다.

요정의 힘 때문인지,탑을 만질

수 있었던 것처럼 목걸이도 쉽게

내 손에 쥐어졌다.

“그거 만지시면 안 되지 않을

까요…….,,

“안 되긴. 지금부터가 중요한

데.”

“네?”

나는 아이의 목에 요정의 눈물

을 걸어주었다. 묵직한 무게에 아

이의 자세가 다소 삐뜰어지기는

했어도 정작 목걸이에 제 주인을

찾은 양 반짝반짝 빛났다.

“앞으로 많은 일이 있을 거야.

그리고,네가 감당할 수 없는 순

간들도 찾아을 테고.”

“그럼에도 잘 해낼 거야. 그것

만큼은 내가 보장할게.”

“왜 그렇게 말씀하세요?”

“말했잖아. 이제 마지막 인사를

해도 될 것 같다고.”

“하지만 저는 요정님이랑 헤어

지기 싫어요. 저는-”

“헤어지지 않아.”

나는 아이의 작은 얼굴을 감싸

쥔 채 눈을 마주쳤다.

딱히 잘해준 것도 없는데,아이

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헤어질 수 없지. 우린 누구보

다 가까운 사이거든.”

“•…"가까운 사이요? 그럼 친

구 같은 거예요?”

“뭐, 비숫할지도. 사실 친구보

다 더 가깝겠지만.”

그렇기에 아는 것이다. 아이가

외롭다는 걸.

잠깐 머물렀을 뿐인 내게 마음

을 많이 내줄 수밖에 없었던 이

유도.

아이는 항상 애정에 굶주려 있

었다.

정작 떼쓰기 위해 옷자락 한

번 잡아보지 못하면서.

“……가지 않으면 안 돼요?”

"미안하지만 그럴 순 없어. 내

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거든.”

U ,,

“하지만 너무 실망하진 마. 우

린 금방 만날 거야.”

“……진짜요?”

“그래. 요정의 비밀이 있는 한,

그렇지.”

나는 반듯한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아이의 손 위로

내 손을 겹쳤다.

우린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이나,

그렇기에 내겐 다신 이 손을 잡

을 수 있는 일은 없을 거다.

“……요정의 비밀이 뭔데요?”

“요정은 오래된 물건에 깃들

수 있다는 거지.”

“그건 비밀이 아닌걸요.”

아이가 속았다는 듯 콧잔등을

살짝 찡그렸다.

나는 그에 피식 웃었다. 내가

한 말은 결코 거짓말이 아니었다.

“비밀이야. 그것도 아주 큰 비

밀.”

나는 천천히 목걸이의 힘을 발

동시 켰다.

요정의 눈물은 이곳에도 있었

지만,내가 있던 시간대에도 있었

다.

그리고,그 시간대에서 요정의

눈물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심포니아.]

그 목소리는 어디서부터 들린

걸까.

나는 귀를 울리는 나지막한 목

소리에 눈을 감았다.

요정의 눈물이 존재하는 시간

대는 많았음에도 헤매는 일은 없

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분명 우리

는 서로 닿아있었다.

“돌아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사람들은 최대한 피신시킬 수

있게끔 조치해두고 돌아왔습니다.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니,곧

피난 작업도 끝날 겁니다.”

“그런가. 그나마 다행이군.”

블러쉬는 힘없이 중얼거리며

거친 숨을 토해냈다.

언제부터 자신이 남의 목숨을

챙겼다고. 이딴 소리를 꺼내는 제

꼴이 퍽 우스웠다.

사내는 여전히 살리는 것보다

죽이는 것이 익숙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곳에 멈춰 섰

다.

검에 몸을 지탱하고,다른 한

손으로는 목걸이를 쥔 채로 수문

장처럼 한 자리를 지켰다.

“이대로라면 쓰러지십니다.”

프로스트가 쉰 목소리로 이마

를 짚었다.

얼핏 봐도 지금 블러쉬의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넝마가 된 몸

으로 지금껏 버티고 있다는 게

용할 지경이었다. 그에게 난 상처

들은 보통 사람이라면 벌써 정신

을 잃고 쓰러지다 못해 사경을

헤멜 만큼 깊은 것뿐이었다.

하지만 블러쉬는 버렸다. 그런

정신력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해

질 정도로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

었다.

“지반이 무너지면 정말로 끝일

겁니다.”

“그래도 두고 갈 순 없지. 설령

죽는다 해도 혼자보단 둘이 나을

테니.”

만약 심포니아가 나을 통로가

저 괴물이라면,그녀는 무너질지

도 모를 지하에서 홀로 도망쳐야

만 했다. 그렇게 둘 순 없었다.

처음 와보는 곳에서 쉽게 벗어

날 수 있을 리 없으니,자신이 있

어야 했다.

“비 전하께선 그런 걸 원하실

리 없을 겁니다.”

“알아. 그녀는 원하지 않겠지.

하지만 나는 그래.”

사람답게 살아보자 했던 건 심

포니아 때문이었다.

그녀가 없는 삶이라면,다시 예

전으로 돌아가고야 말 것이었다.

모나차르트에서 태어나 짐승

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사내에게

는 그것이 더 자연스럽고 익숙한

일이기에.

“이럴 거면 혼자 두는 게 아니

었는데.”

블러쉬는 쓰게 웃었지만 실은

누구보다 그가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을 돌려도 자신은 같은 선택

을 했을 것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를 심포니아를

보며 제 옆에 묶여놓고 싶단 생

각은 늘 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단 한 번도 실천에 옮

길 순 없었다.

동화 속 요정을 닮은 여자였다.

흐르지 않으면 썩어버리는 물

처럼 제 갈 길을 가야 했고,제멋

대로 부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모

습이 가장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그래서 마음에 담아버렸고,또,

그렇기에 잡아둘 수 없었다.

하고픈 일이 있으면 불처럼 타

오르는 모습이 예뻐서,힘든 일을

겪으면 되레 비 온 뒤의 땅처럼

단단한 모습이 좋아서.

대신,기다리기로 했다.

손에 피를 묻히고,망가트리는

것 외에 자신이 잘하는 건 기다

리는 일이기에 여자가 하고 싶은

대로 훨훨 날다가 돌아와 편히

쉴 수 있는 쉼터가 되기로 했다.

그러니,그녀는 곧 돌아와야 했

다.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

럼 어디에 있든,제 보금자리를

찾아 돌아와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기껏 손을 씻은

사내가 어찌 될지 모르니.

블러쉬의 손등 위로 핏줄이 바

짝 섰다.

성정을 잘 죽인다고 한들,살아

온 세월이 지워지는 건 아니었다.

사내는 지금이라도 괴물을 가르

고 제 여인을 찾으러 갈 자신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뼈가 으스러지고,

살점이 뭉개진다고 한들 절 향해

웃어주는 미소를 다시 볼 수만

있다면 기꺼이 할 만했다.

왜냐하면, 알아버렸으니까.

제 품에 안긴 채 수줍게 웃던

여자를 알게 이상,처음으로 돌아

갈 수 없었다.

단언컨대 여자는 사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예쁜 것이었다.

그리고,그건 앞으로도 그럴 것

이다.

고작 이런 상황 때문에 포기하

기엔 여자는,제 아내는 너무나

어여쁘기에,

블러쉬는 상황에 맞지 않는 생

각에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제 충분히 기다릴 대로 기다

렸고,쉴 만큼 쉬었다.

슬슬 제 아내를 직접 찾으러

갈 때다. 그렇게 생각한 참이었

다.

블러쉬의 손에 들린 목걸이에

서 희미한 빛이 홀러나오지 않았

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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