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대용품이었다-192화 (192/204)

192화. 시작하는 자

“아저씨가 왜 그런 아이들을

골랐는지 뻔하죠. 본인이 저지르

지도 않은 죄로 망가지는 아이들

이 가여웠던 거고,동시에 기대한

거죠. 그 아이들이라면 긴 악연의

고리를 끊을 수 있지 않을까해서

요.”

u .....

“하지만 정작 그 아이들 또한

업보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누

구는 선조들과 같은 선택을 반복

했고,또 다른 누구는 복수를 선

택했죠. 그리고,그렇게 새롭게

쌓인 죄들이 아저씨를 짓누른 거

예요.”

u M

"당신만 남긴 채로.”

눈앞의 사내는 듈도,요정왕도

아니었다.

하나, 누구보다 요정왕과 가까

운 존재였다.

“어린 것이 잘도 말하는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당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건

알죠. 요정왕이 가지고 있던 힘.

그게 당신이잖아요.”

“ ,,

“그래서 제가,그리고 살아났던

아이들이 원망스러운 거겠죠. 그

들의 선조가,그리고 그들이 쌓은

업보 때문에 끝내 요정왕이 소멸

되었으니까요.”

사내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지

만,그의 일그러진 얼굴은 내 주

장을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형태로 태어난 요정왕을 보

며 두 손을 모았다.

티 내지 않았지만,혹시 아저씨

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했

던 기대가 수포가 되었다는 사실

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는 연민이 많았지. 그리고,

너무 유약했어.”

“네,알아요.”

“하지만 누구보다 훌륭한 자였

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을 만

큼.”

사내가 치미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

중얼거렸다. 핏대가 설 만큼 손에

힘을 줘도 원망과 그리움,온갖

감정이 뒤섞인 목소리는 막을 수

없었다.

나는 목을 긁으며 내는 사내의

울음이 상처 입은 짐승 같다 생

각하며 조심스럽게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너희만 아니었어도 그가 사라

지는 일은 없었을 거야,아니. 적

어도 너희가 그자의 반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겠

지 •”

“너 같은 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야. 그가 아닌 한, 누구도 이

힘을 가질 자격이 없어.”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당연히……

사내가 별안간 말을 멈추고 날

내려다봤다. 그리고 이내 허,하

고 짧은 조소를 토했다.

"그래. 네가 마지막이었지.”

“맞아요. 제가 마지막이었죠.

그래서 묻는 건데요. 혹시 제가

앞선 이들처럼 끝을 맞이하면 당

신은 어떻게 되나요?”

“절 원망하면서도 제게 힘을

쓰는 방법을 알려줬던 건 결국

당신에겐 제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닌가요? 이제 요정왕의 힘을

다룰 수 있는 건 저 하나뿐이니

까요.”

내가 씨익 웃자, 사내의 미간이

부쩍 좁아졌다. 요정왕의 힘을 아

무나 다룰 수 없다는 건,나보다

그가 더 잘 알 테니까.

“힘을 포기한 게 아니었나? 설

마 이제 와서 그의 힘이 탐나는

건가?”

“아뇨. 저는 그 힘에는 관심 없

어요. 저는 계산적이라,아저씨처

럼 무조건 베푸는 데에는 자신이

없거든요. 저는 결코 아저씨처럼

될 수 없을 거예요.”

거대한 힘은 분명 매력적이었

으나,그건 내 것이 아니었다.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을 부

리다간 결국 배가 터져 죽기 십

상이었다. 과욕을 부리기보다는

원하는 것만 얻어가는 게 좋았다.

“그럼 월 원하는 거지?”

“당신과 거래를 하고 싶어요.”

“거래?”

“당신에게 자유를 줄게요. 대

신,절 도와주세요.”

내 제안에 동했는지 일순간 사

내의 눈이 흔들렸다. 나는 그 틈

을 놓치지 않고 그에게 손을 내

밀었다.

사내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겨

우 입을 열었다.

“……그게 가능하다고?”

“아마도요.”

“아마도?”

“그래도 아예 시도하지 않는

것보단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있

다면 도전해보는 편이 낫지 않겠

어요?”

이럴수록 뻔뻔하게 굴어야지.

나는 한 번 더 사내를 향해 손

을 내밀었다. 그는 혼란스러운 듯

보였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내

제안에 흔들리고 있음을 증명했

다. 조금만 더 설득하면 금방 넘

어오게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제가 여기서 끝나면

당신도 오랜 기다림을 견뎌야 하

잖아요. 심지어 요정왕을 사용할

수 있는 이가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채로요.”

“싫은가요?”

“……내가 뭘 하면 되는 거

지?”

결국 내 설득이 통했다.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어설

프게 내밀어진 사내의 손을 잽싸

게 잡아 쥐었다,정확히는 그러려

고 했다.

사내가 표정을 굳히며 경계 어

린 시선을 보내기 전까지.

“누군가 움직이는군.”

“그럴 리가요. 둘은 분명-”

“그자는 하나의 말에 불과해.

정확히는 제물이랄까. 처음으로

그가 살린 아이니,그의 힘을 감

당하는 그릇으로는 최고거든.”

“듈을 조종하는 자가 있었다고

요?”

내가 아는 둘은 누구의 밑에서

일할 것 같진 않아 보였는데.

나는 턱을 관 채 고개를 갸웃

거렸다. 내가 둘의 기억을 훔쳐보

긴 했어도 고작해야 일부였기에

많은 걸 알진 못했다.

“그래. 있었지. 그 아이뿐만 아

니라,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이미 봤지? 잡아먹힌 아이들

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문득 기억을 되짚다가 칠

흑 같던 어둠 속에서 만났던 자

들을 떠올리고 입을 벌렸다.

“그럼 제가 봤던 그자들은

“그래. 너와 비슷한 아이들이

지. 이제는 진짜를 만들기 위한

조각 역할에 불과했던,하지만 마

지막 아이를 위해 준비된 진짜

자리를 그 아이가 이상한 수를

쓰면서 이젠 그 역할도 못 하게

된 아이들 말이야.”

“……말을 참 못되게 하시는

재능이 있으시네요.”

“이젠 그의 흉내를 낼 필요도

없으니까.”

사내는 단호히 말하고는 한 방

향을 응시했다.

나는 그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지금 꽤나 화난 모양

이거든.”

“화가 났다고요?”

“모른 척하지 마. 네가 다 망친

거잖아.”

그 표현은 좀 억울하다.

저쪽

입장에서는 망친 것일지 몰라도

내 입장에서는 아니지 않나.

“원래 저자의 계획대로라면, 지

금쯤 너는 고치 안에 잠들어 있

어야 했거든.”

“제가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있

나요?”

“그래야,널 이정표 삼을 수 있

으니까.”

“절 이정표 삼아요? 왜요?”

"시간을 오가는 게 쉬울 것 같

아? 너나,나는 상관없을지 몰라

도 상관없지만 다른 이는 아니야.

보통은 못 버티고 길을 잃거나,

힘에 짓눌려 죽지.”

의외로 설명이 다정하다. 하지

만 문제는 사내가 설명을 덧붙여

도 이해하지 못하는 나였다.

“하지만 요정왕의 힘을 이어받

는 게 저만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네가 가장 특별하지.”

“제가요?”

“그 꼬마가 끝내는 자라면,시

작하는 자도 있어야 할 거 아니

야.”

“그게 네 운명이었지.”

진한 녹색 눈동자가 일순간 내

가 알던 요정왕처럼 느껴졌던 건

단지 내 기분 탓이었을까.

나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사내에 마른 침을 삼켰다.

“모든 것이 폐허로 돌아가도

다시 일어나 새로운 미래를 준비

할 수 있는 자.”

“그래서 네가 특별했던 거야.

그는 소멸하기 직전까지도 네게

모든 걸 걸었거든. 너만큼은 제

바람을 이루어줄 거라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 그렇게

뒤통수를 맞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 이게 무슨 도박도 아

니고,그냥 무작정 믿고 봤지.”

사내는 억지로 웃어 보이고는

몸을 휙 돌렸다.

나는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등

을 보다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

다.

“아저씨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

을 꿈꿨으니까요.”

“멍청한 녀석이지. 그런 게 가

능할 리 없는데. 그 증거로 지금

도 같은 역사가 반복되고 있잖

아.”

“인간이 했던 것처럼 요정도

똑같이 하려는 거야. 그리고,그

역사는 계속해서 반복되겠지. 하

물며 같은 종족들끼리도 더 가지

려고 악착같이 싸우고 헐뜯는더'

하물며 다른 종족은 더하지 않겠

어?”

M ,,

“처음부터 이룰 수 없는 일이

었어.”

사내의 냉소적인 평가에 나 역

시도 동의하는 바였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동화에

서나 이루어질 수 있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현실에서 그런 이야

기를 해봤자,헛된 희망에 불과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는 차

마 사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나는 요정왕,아니 아저씨의 마

지막을 기억했다.

“……노력은 해볼 수 있겠죠.”

“시도도 안 해보면 정말 거기

서 멈출 뿐이잖아요. 그렇다면 시

도해보는 게 좋지 않겠어요?”

물론 모든 일이 끝난 후예요.

나는 할 수 있는 한,가장 환하

게 웃어 보이고는 사내가 가리키

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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