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시작하는 자
“아저씨가 왜 그런 아이들을
골랐는지 뻔하죠. 본인이 저지르
지도 않은 죄로 망가지는 아이들
이 가여웠던 거고,동시에 기대한
거죠. 그 아이들이라면 긴 악연의
고리를 끊을 수 있지 않을까해서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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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그 아이들 또한
업보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누
구는 선조들과 같은 선택을 반복
했고,또 다른 누구는 복수를 선
택했죠. 그리고,그렇게 새롭게
쌓인 죄들이 아저씨를 짓누른 거
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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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 남긴 채로.”
눈앞의 사내는 듈도,요정왕도
아니었다.
하나, 누구보다 요정왕과 가까
운 존재였다.
“어린 것이 잘도 말하는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당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건
알죠. 요정왕이 가지고 있던 힘.
그게 당신이잖아요.”
“ ,,
“그래서 제가,그리고 살아났던
아이들이 원망스러운 거겠죠. 그
들의 선조가,그리고 그들이 쌓은
업보 때문에 끝내 요정왕이 소멸
되었으니까요.”
사내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지
만,그의 일그러진 얼굴은 내 주
장을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형태로 태어난 요정왕을 보
며 두 손을 모았다.
티 내지 않았지만,혹시 아저씨
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했
던 기대가 수포가 되었다는 사실
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는 연민이 많았지. 그리고,
너무 유약했어.”
“네,알아요.”
“하지만 누구보다 훌륭한 자였
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을 만
큼.”
사내가 치미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
중얼거렸다. 핏대가 설 만큼 손에
힘을 줘도 원망과 그리움,온갖
감정이 뒤섞인 목소리는 막을 수
없었다.
나는 목을 긁으며 내는 사내의
울음이 상처 입은 짐승 같다 생
각하며 조심스럽게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너희만 아니었어도 그가 사라
지는 일은 없었을 거야,아니. 적
어도 너희가 그자의 반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겠
지 •”
“너 같은 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야. 그가 아닌 한, 누구도 이
힘을 가질 자격이 없어.”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당연히……
사내가 별안간 말을 멈추고 날
내려다봤다. 그리고 이내 허,하
고 짧은 조소를 토했다.
"그래. 네가 마지막이었지.”
“맞아요. 제가 마지막이었죠.
그래서 묻는 건데요. 혹시 제가
앞선 이들처럼 끝을 맞이하면 당
신은 어떻게 되나요?”
“절 원망하면서도 제게 힘을
쓰는 방법을 알려줬던 건 결국
당신에겐 제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닌가요? 이제 요정왕의 힘을
다룰 수 있는 건 저 하나뿐이니
까요.”
내가 씨익 웃자, 사내의 미간이
부쩍 좁아졌다. 요정왕의 힘을 아
무나 다룰 수 없다는 건,나보다
그가 더 잘 알 테니까.
“힘을 포기한 게 아니었나? 설
마 이제 와서 그의 힘이 탐나는
건가?”
“아뇨. 저는 그 힘에는 관심 없
어요. 저는 계산적이라,아저씨처
럼 무조건 베푸는 데에는 자신이
없거든요. 저는 결코 아저씨처럼
될 수 없을 거예요.”
거대한 힘은 분명 매력적이었
으나,그건 내 것이 아니었다.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을 부
리다간 결국 배가 터져 죽기 십
상이었다. 과욕을 부리기보다는
원하는 것만 얻어가는 게 좋았다.
“그럼 월 원하는 거지?”
“당신과 거래를 하고 싶어요.”
“거래?”
“당신에게 자유를 줄게요. 대
신,절 도와주세요.”
내 제안에 동했는지 일순간 사
내의 눈이 흔들렸다. 나는 그 틈
을 놓치지 않고 그에게 손을 내
밀었다.
사내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겨
우 입을 열었다.
“……그게 가능하다고?”
“아마도요.”
“아마도?”
“그래도 아예 시도하지 않는
것보단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있
다면 도전해보는 편이 낫지 않겠
어요?”
이럴수록 뻔뻔하게 굴어야지.
나는 한 번 더 사내를 향해 손
을 내밀었다. 그는 혼란스러운 듯
보였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내
제안에 흔들리고 있음을 증명했
다. 조금만 더 설득하면 금방 넘
어오게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제가 여기서 끝나면
당신도 오랜 기다림을 견뎌야 하
잖아요. 심지어 요정왕을 사용할
수 있는 이가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채로요.”
“싫은가요?”
“……내가 뭘 하면 되는 거
지?”
결국 내 설득이 통했다.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어설
프게 내밀어진 사내의 손을 잽싸
게 잡아 쥐었다,정확히는 그러려
고 했다.
사내가 표정을 굳히며 경계 어
린 시선을 보내기 전까지.
“누군가 움직이는군.”
“그럴 리가요. 둘은 분명-”
“그자는 하나의 말에 불과해.
정확히는 제물이랄까. 처음으로
그가 살린 아이니,그의 힘을 감
당하는 그릇으로는 최고거든.”
“듈을 조종하는 자가 있었다고
요?”
내가 아는 둘은 누구의 밑에서
일할 것 같진 않아 보였는데.
나는 턱을 관 채 고개를 갸웃
거렸다. 내가 둘의 기억을 훔쳐보
긴 했어도 고작해야 일부였기에
많은 걸 알진 못했다.
“그래. 있었지. 그 아이뿐만 아
니라,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이미 봤지? 잡아먹힌 아이들
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문득 기억을 되짚다가 칠
흑 같던 어둠 속에서 만났던 자
들을 떠올리고 입을 벌렸다.
“그럼 제가 봤던 그자들은
“그래. 너와 비슷한 아이들이
지. 이제는 진짜를 만들기 위한
조각 역할에 불과했던,하지만 마
지막 아이를 위해 준비된 진짜
자리를 그 아이가 이상한 수를
쓰면서 이젠 그 역할도 못 하게
된 아이들 말이야.”
“……말을 참 못되게 하시는
재능이 있으시네요.”
“이젠 그의 흉내를 낼 필요도
없으니까.”
사내는 단호히 말하고는 한 방
향을 응시했다.
나는 그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지금 꽤나 화난 모양
이거든.”
“화가 났다고요?”
“모른 척하지 마. 네가 다 망친
거잖아.”
그 표현은 좀 억울하다.
저쪽
입장에서는 망친 것일지 몰라도
내 입장에서는 아니지 않나.
“원래 저자의 계획대로라면, 지
금쯤 너는 고치 안에 잠들어 있
어야 했거든.”
“제가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있
나요?”
“그래야,널 이정표 삼을 수 있
으니까.”
“절 이정표 삼아요? 왜요?”
"시간을 오가는 게 쉬울 것 같
아? 너나,나는 상관없을지 몰라
도 상관없지만 다른 이는 아니야.
보통은 못 버티고 길을 잃거나,
힘에 짓눌려 죽지.”
의외로 설명이 다정하다. 하지
만 문제는 사내가 설명을 덧붙여
도 이해하지 못하는 나였다.
“하지만 요정왕의 힘을 이어받
는 게 저만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네가 가장 특별하지.”
“제가요?”
“그 꼬마가 끝내는 자라면,시
작하는 자도 있어야 할 거 아니
야.”
사
“그게 네 운명이었지.”
진한 녹색 눈동자가 일순간 내
가 알던 요정왕처럼 느껴졌던 건
단지 내 기분 탓이었을까.
나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한
사내에 마른 침을 삼켰다.
“모든 것이 폐허로 돌아가도
다시 일어나 새로운 미래를 준비
할 수 있는 자.”
“그래서 네가 특별했던 거야.
그는 소멸하기 직전까지도 네게
모든 걸 걸었거든. 너만큼은 제
바람을 이루어줄 거라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 그렇게
뒤통수를 맞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 이게 무슨 도박도 아
니고,그냥 무작정 믿고 봤지.”
사내는 억지로 웃어 보이고는
몸을 휙 돌렸다.
나는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등
을 보다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
다.
“아저씨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
을 꿈꿨으니까요.”
“멍청한 녀석이지. 그런 게 가
능할 리 없는데. 그 증거로 지금
도 같은 역사가 반복되고 있잖
아.”
“인간이 했던 것처럼 요정도
똑같이 하려는 거야. 그리고,그
역사는 계속해서 반복되겠지. 하
물며 같은 종족들끼리도 더 가지
려고 악착같이 싸우고 헐뜯는더'
하물며 다른 종족은 더하지 않겠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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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이룰 수 없는 일이
었어.”
사내의 냉소적인 평가에 나 역
시도 동의하는 바였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동화에
서나 이루어질 수 있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현실에서 그런 이야
기를 해봤자,헛된 희망에 불과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는 차
마 사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나는 요정왕,아니 아저씨의 마
지막을 기억했다.
“……노력은 해볼 수 있겠죠.”
“시도도 안 해보면 정말 거기
서 멈출 뿐이잖아요. 그렇다면 시
도해보는 게 좋지 않겠어요?”
물론 모든 일이 끝난 후예요.
나는 할 수 있는 한,가장 환하
게 웃어 보이고는 사내가 가리키
는 방향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