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대용품이었다-180화 (180/204)

180화. 나 스스로 내린 답

“이,일단 이야기를……

나는 겨우 목소리를 짜내 말을

걸려다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살려달라고 애원을 한 번은 할

법한데,그들 중 누구도 내게 말

을 걸지 않았다. 그들은 입을 열

수 수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러지도,저러

지도 못한 채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도움

을 원하고 있다는 걸 아나,어떻

게 해야 그들을 도울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어

떻게 해야만…….

나는 초조하게 손끝만 만지작

거리다가 불현듯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듈에게 잡아먹힌 모두가 이곳

에 있는 거라면 요정왕도 여기

있지 않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나는

서둘러 주변을 이리저리 살폈다-

하지만 일일이 확인하며 찾기에

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데다가

이곳에선 정령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 오래 머물 수도

없고.

나는 또 한 번 흐릿해진 손을

흘끔거리다 외면하듯 등 뒤로 감

췄다.

내겐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나는 빛으로도 다 밝히지 못한

어둠을 가만히 보다가 결국 돌아

섰다. 그리고 처음으로 돌아가 날

잡았던 이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여기 있는 이들 중 그나

마 상태가 나았다.

“도와주세요.”

“그러면,저도 당신들을 도울게

요.”

움직이는 건 눈동자뿐이지만,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날 바라보는 시선

들은 전부 하나 같이 절실했다.

건드리기만 해도 그대로 부서

져 버릴 것처럼 비쩍 마른 팔이

덜덜 떨면서도 끝내 한 방향을

가리켰다.

“……이어져 있어.”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을

쥐었다.

오가는 대화는 없었으나,그가

내게 말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

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그의 손목 부근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주 가늘고 긴 줄 같은

관이 이어져 있었고,그 관은 이

곳에 있는 이들을 서로 잇고 있

었다.

나무의 뿌리가 그러하듯,사람

들에게 달린 관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결국 하나의 굵은

선에 도달하게 되었다.

꿀꺽.

동시에 엄습하는 긴장감에 나

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 순간,또 한 번 손이 한 방

향을 가리켰고, 그게 마지막으로

짜낸 힘이었는지 그는 더는 손을

들지 못했다.

과연 저 끝에는 뭐가 있을까.

캄캄한 어둠은 자연스레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멈출 순 없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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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던 이노 이곳애 있있다.

물론, 그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지만.

무수히 많은 관으로 이이지 있

는 건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지

않았다. 사람은커녕, 오히려 벌레

의 고치를 더 닮아있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참기 위해 입을 막

았다.

혹시나 다시 만날 수 있지 않

을까 했지만 기대는 수포가 되었

다.

얇은 막 덕분에 고치 안이 훤

히 보였지만, 그 안에는 무엇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는 다른 이들과 달랐다. 이미

죽어 있었다.

남아있는 건 그의 힘뿐이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버틸 수 있

었던 건,요정왕의 힘이 그들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마저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했지만.

나는 다 꺼져가는 등불처럼 껌

벅거리는 고치에 손을 올렸다. 얇

은 막으로 보호되고 있던 고치는

살짝 힘을 줬을 뿐인데도 쑤욱

손이 들어갔다.

그래서 알았다. 이 고치는 사람

들을 보호하기 위하는 것 외에도

다른 목적이 있었다고.

애당초 고치는 무언가를 품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가만히 고치를 바라보다

가 결국 손을 뗐다.

“……죄송해요.”

닿을 수 없는 대답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힘없이 중얼거렸

다.

요정왕이 바라던 그림을 알지

만 나는 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고치 안에서 들어가 힘을 모두

흡수한다면 완전한 몸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건 더는 인간으로 살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안에 들어간 순간부터 나는

새로운 요정왕으로 다시 태어날

테 니 까.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

다.

“저는 아저씨와 달라요. 아저씨

처럼 대단한 존재가 되기에는 전

너무 부족하거든요.”

나를 되살려준 은인에게 할 소

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할 수

없었다.

요정왕처럼 모두를 위해 살기

에는 나는 자애롭지 않았다. 내가

얻어낸 것들을 포기하지 못할 만

큼 욕심도 많았고,모르는 누군가

를 위해 희생할 자신도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새로운 답을 내

야만 했다.

누군가 정해놓은 결말이 아니

라,나 스스로 내린 답으로.

“전하!”

“괜찮으신 겁니까?”

뒤늦게 도착한 픽스가 서둘러

듈을 향해 달려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는 모르나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

간다는 건 알았다.

듈의 주변은 피투성이였고,오

베른은 넋을 잃은 채 주저앉아

있었으며,심지어 심포니아는 보

이지 않았다.

픽스는 고장 난 기계처럼 어색

하게 고개를 돌리다가 찢어진 옷

가지들을 발견하고 미간을 좁혔

다. 피투성이가 되긴 했으나,분

명 오베른의 그림자들이 입는 옷

이었다.

"……설마,배신입니까?”

“그 아이가 정말로 요정왕의

힘을 가지고 있더군.”

“그 아이라면,심포니아를 말씀

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 아이.”

듈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픽스는 눈을 굴렸다.

요정왕의 힘을 가지고 있는 심

포니아를 둘이 가만둘 리 없으니,

분명 흔적이 남아있어야 할 텐데

아무것도 없었다. 찢어진 옷가지

를 다시 살펴도 마찬가지였다.

“도망친 거라면 제가 잡아 오

겠습니다.”

“도망치지 않았어.”

둘은 비틀거리며 겨우 자리에

서 일어났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 짧

았던 잠깐 사이 너무나 많은 힘

을 잃었다. 늘 힘이 넘쳤건만,이

젠 몸의 균형을 유지하며 서 있

는 것조차 버거웠다.

오죽했으면,치미는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티어

드롭의 개들을 전부 먹어치웠을

정도였다.

하지만 살아남았다.

이번에도 자신만이 살아남았다-

들은 텅빈 자리를 보며 입술

을 비틀었다.

“그 아이는 소멸했어.”

“소멸이라고요?”

“내 힘을 홉수하려다가 오히려

감당하지 못하고 바보 같이 무너

져버렸지.”

“참 끝까지 남다르지 않나. 아

주 홍미로웠지.”

호기롭게 말했던 것과 달리,심

포니아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

대로 소멸해버렸다.

완벽한 승리라 하기엔 애매했

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시일이 걸리겠지만 힘은 다시

찾으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이리

저리 들쑤셔놓은 상태라 밖에는

먹잇감들이 득실거리지 않던가.

그들 중 몇을 잡아먹는다고 해서

티 나진 않을 것이었다.

“주술은 준비됐나?”

“네,일단 준비는 다 끝났지만

괜찮으시 겠습니 까?”

“그냥 준비해. 이 정도는 금방

회복할 테니까.”

장난은 결국 장난으로 끝내야

한다. 벌레가 버둥거리는 꼴이 재

미있다고 해서 종일 바라볼 순

없지 않나.

제 꾀에 뒤집힌 벌레가 버둥거

리다가 결국 힘이 빠져 죽었으니

여유를 즐길 때도 끝이 났다.

“군대는.”

“현재 이동 중입니다. 별문제가

없다면 예정대로 도착할 겁니다.”

“수도 안은 폭도로 가득한가?”

“네,모두 준비되었습니다.”

“그나마 그 대답은 마음에 드

는군. 정작 네 형은 아무런 도움

도 되지 못했는데 말이지.”

듈은 턱을 어루만지며 오베른

을 내려다봤다.

오베른은 심포니아가 눈앞에서

사라진 게 꽤 충격이 큰 모양인

지,둘의 비아냥에도 아무런 반응

도 없이 주저앉아 멍하니 있을

뿐이었디

정작 심포니아를 이곳까지 끌

고 온 건 자신이면서.

참으로도 우스운 죄책감이었다.

“계속 그대로 있을 건가? 그만

정신 차리고 네 딸을 살리러 가

야지.”

“뭐,정 하기 싫으면 그대로 있

어도 좋고. 네 개들을 잡아먹은

것 정도론 아직 배가 덜 차서 말

이지.”

결국 그 어쯤잖은 감정 또한

자신의 필요에 의해 금세 잊을

거면서 말이다.

인간은 늘 그렇지 않은가. 뻣속

까지 이기적인 족속들에게 중요

한 건 결국 자신의 안위뿐이었다.

“추모가 끝났으면 어서 일어

나.”

“약속했던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둘은 굶주린 배를 느릿하게 어

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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