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나 스스로 내린 답
“이,일단 이야기를……
나는 겨우 목소리를 짜내 말을
걸려다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살려달라고 애원을 한 번은 할
법한데,그들 중 누구도 내게 말
을 걸지 않았다. 그들은 입을 열
수 수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러지도,저러
지도 못한 채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도움
을 원하고 있다는 걸 아나,어떻
게 해야 그들을 도울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어
떻게 해야만…….
나는 초조하게 손끝만 만지작
거리다가 불현듯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듈에게 잡아먹힌 모두가 이곳
에 있는 거라면 요정왕도 여기
있지 않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나는
서둘러 주변을 이리저리 살폈다-
하지만 일일이 확인하며 찾기에
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데다가
이곳에선 정령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 오래 머물 수도
없고.
나는 또 한 번 흐릿해진 손을
흘끔거리다 외면하듯 등 뒤로 감
췄다.
내겐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나는 빛으로도 다 밝히지 못한
어둠을 가만히 보다가 결국 돌아
섰다. 그리고 처음으로 돌아가 날
잡았던 이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여기 있는 이들 중 그나
마 상태가 나았다.
“도와주세요.”
“그러면,저도 당신들을 도울게
요.”
움직이는 건 눈동자뿐이지만,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날 바라보는 시선
들은 전부 하나 같이 절실했다.
건드리기만 해도 그대로 부서
져 버릴 것처럼 비쩍 마른 팔이
덜덜 떨면서도 끝내 한 방향을
가리켰다.
“……이어져 있어.”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을
쥐었다.
오가는 대화는 없었으나,그가
내게 말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
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그의 손목 부근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주 가늘고 긴 줄 같은
관이 이어져 있었고,그 관은 이
곳에 있는 이들을 서로 잇고 있
었다.
나무의 뿌리가 그러하듯,사람
들에게 달린 관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결국 하나의 굵은
선에 도달하게 되었다.
꿀꺽.
동시에 엄습하는 긴장감에 나
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 순간,또 한 번 손이 한 방
향을 가리켰고, 그게 마지막으로
짜낸 힘이었는지 그는 더는 손을
들지 못했다.
과연 저 끝에는 뭐가 있을까.
캄캄한 어둠은 자연스레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멈출 순 없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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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만. 나사가?I 갑수야 강한 하
신이 꼽있다.
내가 찾던 이노 이곳애 있있다.
물론, 그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지만.
무수히 많은 관으로 이이지 있
는 건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지
않았다. 사람은커녕, 오히려 벌레
의 고치를 더 닮아있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참기 위해 입을 막
았다.
혹시나 다시 만날 수 있지 않
을까 했지만 기대는 수포가 되었
다.
얇은 막 덕분에 고치 안이 훤
히 보였지만, 그 안에는 무엇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는 다른 이들과 달랐다. 이미
죽어 있었다.
남아있는 건 그의 힘뿐이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버틸 수 있
었던 건,요정왕의 힘이 그들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마저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했지만.
나는 다 꺼져가는 등불처럼 껌
벅거리는 고치에 손을 올렸다. 얇
은 막으로 보호되고 있던 고치는
살짝 힘을 줬을 뿐인데도 쑤욱
손이 들어갔다.
그래서 알았다. 이 고치는 사람
들을 보호하기 위하는 것 외에도
다른 목적이 있었다고.
애당초 고치는 무언가를 품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가만히 고치를 바라보다
가 결국 손을 뗐다.
“……죄송해요.”
닿을 수 없는 대답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힘없이 중얼거렸
다.
요정왕이 바라던 그림을 알지
만 나는 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고치 안에서 들어가 힘을 모두
흡수한다면 완전한 몸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건 더는 인간으로 살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안에 들어간 순간부터 나는
새로운 요정왕으로 다시 태어날
테 니 까.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
다.
“저는 아저씨와 달라요. 아저씨
처럼 대단한 존재가 되기에는 전
너무 부족하거든요.”
나를 되살려준 은인에게 할 소
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할 수
없었다.
요정왕처럼 모두를 위해 살기
에는 나는 자애롭지 않았다. 내가
얻어낸 것들을 포기하지 못할 만
큼 욕심도 많았고,모르는 누군가
를 위해 희생할 자신도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새로운 답을 내
야만 했다.
누군가 정해놓은 결말이 아니
라,나 스스로 내린 답으로.
“전하!”
“괜찮으신 겁니까?”
뒤늦게 도착한 픽스가 서둘러
듈을 향해 달려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는 모르나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
간다는 건 알았다.
듈의 주변은 피투성이였고,오
베른은 넋을 잃은 채 주저앉아
있었으며,심지어 심포니아는 보
이지 않았다.
픽스는 고장 난 기계처럼 어색
하게 고개를 돌리다가 찢어진 옷
가지들을 발견하고 미간을 좁혔
다. 피투성이가 되긴 했으나,분
명 오베른의 그림자들이 입는 옷
이었다.
"……설마,배신입니까?”
“그 아이가 정말로 요정왕의
힘을 가지고 있더군.”
“그 아이라면,심포니아를 말씀
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 아이.”
듈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픽스는 눈을 굴렸다.
요정왕의 힘을 가지고 있는 심
포니아를 둘이 가만둘 리 없으니,
분명 흔적이 남아있어야 할 텐데
아무것도 없었다. 찢어진 옷가지
를 다시 살펴도 마찬가지였다.
“도망친 거라면 제가 잡아 오
겠습니다.”
“도망치지 않았어.”
둘은 비틀거리며 겨우 자리에
서 일어났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 짧
았던 잠깐 사이 너무나 많은 힘
을 잃었다. 늘 힘이 넘쳤건만,이
젠 몸의 균형을 유지하며 서 있
는 것조차 버거웠다.
오죽했으면,치미는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티어
드롭의 개들을 전부 먹어치웠을
정도였다.
하지만 살아남았다.
이번에도 자신만이 살아남았다-
들은 텅빈 자리를 보며 입술
을 비틀었다.
“그 아이는 소멸했어.”
“소멸이라고요?”
“내 힘을 홉수하려다가 오히려
감당하지 못하고 바보 같이 무너
져버렸지.”
“참 끝까지 남다르지 않나. 아
주 홍미로웠지.”
호기롭게 말했던 것과 달리,심
포니아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
대로 소멸해버렸다.
완벽한 승리라 하기엔 애매했
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시일이 걸리겠지만 힘은 다시
찾으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이리
저리 들쑤셔놓은 상태라 밖에는
먹잇감들이 득실거리지 않던가.
그들 중 몇을 잡아먹는다고 해서
티 나진 않을 것이었다.
“주술은 준비됐나?”
“네,일단 준비는 다 끝났지만
괜찮으시 겠습니 까?”
“그냥 준비해. 이 정도는 금방
회복할 테니까.”
장난은 결국 장난으로 끝내야
한다. 벌레가 버둥거리는 꼴이 재
미있다고 해서 종일 바라볼 순
없지 않나.
제 꾀에 뒤집힌 벌레가 버둥거
리다가 결국 힘이 빠져 죽었으니
여유를 즐길 때도 끝이 났다.
“군대는.”
“현재 이동 중입니다. 별문제가
없다면 예정대로 도착할 겁니다.”
“수도 안은 폭도로 가득한가?”
“네,모두 준비되었습니다.”
“그나마 그 대답은 마음에 드
는군. 정작 네 형은 아무런 도움
도 되지 못했는데 말이지.”
듈은 턱을 어루만지며 오베른
을 내려다봤다.
오베른은 심포니아가 눈앞에서
사라진 게 꽤 충격이 큰 모양인
지,둘의 비아냥에도 아무런 반응
도 없이 주저앉아 멍하니 있을
뿐이었디
정작 심포니아를 이곳까지 끌
고 온 건 자신이면서.
참으로도 우스운 죄책감이었다.
“계속 그대로 있을 건가? 그만
정신 차리고 네 딸을 살리러 가
야지.”
“뭐,정 하기 싫으면 그대로 있
어도 좋고. 네 개들을 잡아먹은
것 정도론 아직 배가 덜 차서 말
이지.”
결국 그 어쯤잖은 감정 또한
자신의 필요에 의해 금세 잊을
거면서 말이다.
인간은 늘 그렇지 않은가. 뻣속
까지 이기적인 족속들에게 중요
한 건 결국 자신의 안위뿐이었다.
“추모가 끝났으면 어서 일어
나.”
“약속했던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둘은 굶주린 배를 느릿하게 어
루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