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대용품이었다-174화 (174/204)

174화. 마지막 이야기

“티어드롭은 황태자의 편을 들

거야.”

“황태자 말입니까?”

“이번 일로 가장 군침을 흘리고

있는 건,결국 대공들일 거야. 정통

을 잇는 황태자만 사라지면 다음

황금 월계수의 주인은 누가 될지

알 수 없어지니까.”

“황제에게는 숨겨진 아들이 있지

않습니까?”

“말 그대로 숨겨졌잖아.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아이를 처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지. 반대로 이용해

먹으려는 자들도 있을 테고 말이

야.”

“예컨대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혼

란은 혼란도 아닐걸.”

아무리 고상한 척해봤자,결국

욕망 앞에서 솔직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상 이상의 파벌 싸움이 벌어질

테고 폐허가 되어야 겨우 승자와

패자가 나뉠 것이었다.

애당초 고상한 전쟁은 없는 법이

었다.

“그런데,황태자의 편을 드시겠

다는 건……

“모두가 황제가 되고 싶겠지만,

자리는 정해져 있지. 조금 시끄럽

긴 하겠지만,결국 금세 정리되고

주요 세력만 남을 거야. 지금껏 그

래왔듯이 말이지.”

“그렇다면, 저희는 독단적으로

움직이는 편이 낫지 않습니까?”

“그건 아버지가 돌아오신 후후에

결정할 사항이야. 특히 지금처럼

오르젠타가 범인으로 의심되는 상

황에서는 더욱 신중해야 해.”

“정권이 교체되었다고 해도 황실

은 황실이야. 오르젠타에 비해 부

족하긴 하겠지만,그만한 세력을

구하기란 쉽지 않아. 나중 일이 어

떻게 되더라도 지금은 그들의 편에

서는 편이 맞아.”

내가 곧은 시선으로 바라보자,

펠리오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비로소 안도하며 미소를 지

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의 실력만큼은

확실했으니,그 부분은 믿을 만했

다.

“병력을 새로 편성해 움직이겠습

니다. 그리고,만일의 사태에 대비

해 황궁 쪽으로도 인원을 쪼개두도

록 하겠습니다.”

“좋아. 부탁할게.”

“대신,아가씨께서는 몸을 피해

있으십시오. 저번처럼 아가씨께 불

미스러운 일이 벌어진다면,저희는

또 한 번 흔들릴 겁니다.”

“일단 언니를 간호하면서 정세를

살피고 있을게. 특별한 상황 있을

것 같으면 바로 소식통을 통해 알

려줘.”

“네,통신 인력을 배치해서 최대

한 빠르게 연락이 될 수 있도록 조

치를 취해두겠습니다. 다만 각하의

행방을 쫓고 있는 병력은……

이런 상황에서 병력을 함부로 분

산해선 안 된다는 걸 알지만,그렇

다고 쉽게 아버지를 포기할 수도

없는 모양이다.

나는 고뇌 어린 펠리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병력을 재배치해야 하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멈추진 않을 거야.”

"누가 뭐래도 티어드롭에는 아버

지가 계셔야 하니까.”

아버지로 인해 쓸 수 없게끔 묶

인 병력이 아깝긴 하나, 저 신뢰

어린 눈을 보면 충분히 감수할만한

사안이다.

다른 쪽으로도 쓸모가 있기도 하

고.

나는 위로하듯 어깨를 다독이는

손에 힘을 주면서도 다른 생각을

했다.

* * *

“연기 잘하던걸요.”

“왜 그래요? 표정이 안 좋네요.”

“그 힘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

야?”

“그냥,우연히 얻은 거예요.”

“누굴 바보로 알아? 그런 게 우

연일 리 없잖아.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

요.”

장난처럼 들릴 거라는 거 알지

만, 실은 무엇보다 솔직한 대답이

었다.

나도 내가 누구인지 마음의 갈피

를 잡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입을 다물겠다는 거지? 뭐, 좋

아. 나도 네가 괴물이든,사람이든

알 바는 아니니까.”

“끝까지 따질 줄 알았는데,의외

네요.”

“어차피 물어도 말 안 해줄 거잖

아. 네가 내 말 듣는 거 봤어? 아

무것도 묻지 않을 테니, 이거 한

가지만 확실하게 해줘. 그럼 나도

더는 군말 안 하고 네게 순순히 협

조할게.”

“일단 이야기부터 듣고 결정할게

요.”

지금 나는 샤리에트의 부탁을 들

어줄 게 아니라,명령을 해도 되는

입장이었다.

그녀가 뭘 제안할지는 모르나,

굳이 약조를 할 필요는 없었다.

샤리에트가 자신의 요구를 강하

게 제기하면서도 내 눈치를 연신

살폈기 때문이었다.

“모든 일이 끝나면, 그자를 내게

넘겨줘.”

“그자요?”

“픽스 티어드롭 말이야.”

“아직도 미련이 남았어요?”

“어쨌든 그는 내 친부니까.''

“핏줄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난

잘 모르겠던데.”

나는 삐뚜름하게 고개를 젖혔다

가 이내 자세를 바로 세웠다.

내가 자신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

은 이유는 다름 아닌,핏줄 때문이

니까.

잘나디 잘난 티어드롭의 혈통이

날 얼마나 특별하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망쳤는지 나는 이제

전부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만 잊어요. 핏줄도 막상 놓고

나면 별거 아니니까.”

“고아인 줄 알았는데, 네게도 가

족이 있었어?”

“있죠.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진

짜보다 더 좋은 사람들이.”

샤리에트가 빤히 나를 바라봤다.

나는 싱긋 웃어 보이고는 마저

책장올 넘겼다.

샤리에트의 간호를 핑계로 요정

에 관한 자료가 총망라한 서적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티어드롭으로 다시 돌아온 데에

는 이것도 한 이유였다.

티어드롭만큼 요정에 대한 기록

이 꼼꼼하게 적혀있는 곳이 없었

고,무엇보다 나는 예전과 다른 것

들을 볼 수 있었으니까.

잠깐 남는 틈이라면 가만히 있기

보단 정보를 수집하는 편이 나았

다.

“내가 아주 어릴 때,내 친모인

여자가 그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어. 내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있는 사람이었다고.”

“저는 당신 이야기는 안 궁금한

데요.”

“그래도 들어. 네가 약속을 안

지켜서 내가 죽게 된다면, 내 이야

기를 아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것

같아서 하는 소리니까.”

이대로 이야기를 들었다간 괜한

감정이 생길 것 같아서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샤리에트는 내가 귀 기울

이든 그렇지 않든 털어놓겠다는 의

지가 굳건했고1 무엇보다 지금은

같은 방에 머물러야 하니 어쩔 도

리가 없었다.

그녀의 입을 강제로 막지 않는

한,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솔직히 나는 내 친모를 좋아하

진 않았어,아니 솔직히 말하면 혐

오했지. 몸 파는,그것도 신분조차

불분명한 이들을 상대로 하는 여자

는 매번 내게 최악의 기억들만 골

라 안겨줬거든.”

“내가 그 여자에 관해서 좋은 기

억이 있다면,단 하나야. 아버지 이

야기. 그거 단 하나. 술과 마약에

찌들어 사는 주제에 아버지 이야기

를 할 때면,그 여자의 눈은 빛났

지. 그게 참 싫었는데 그러면서도

묘하게 궁금해지더라고.”

a n

“얼마나 대단하길래,저토록 잊

지 못하고 사나 싶어서.”

문득 마주친 시선에 샤리에트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얼굴을 감췄

다.

그녀는 최대한 감추고자 했지만,

이미 난 젖은 눈가를 본 후였다.

“그러던 어느 날,문득 날 보는

이들의 눈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알았지. 원래 부모의 인생은 자식

에게 대물림되는 법이잖아. 나라고

다를 게 없었지. 그래서 도망쳤어.”

“ ”

“그 여자처럼 살긴 싫어서. 내겐

그 여자와 다르게,그 대단한 아버

지의 피가 흐르잖아.”

“그렇게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거지처럼 빌어먹으면서 아버지를

찾았어. 그리고 마주한 순간,속절

없이 빠져버렸지. 알잖아. 티어드롭

의 족속들은 하나 같이 얼굴 하나

는 번지르르하다는 거.”

마치 사람을 홀린다는 요정처럼

말이야.

거기까지 이야기했을 때,샤리에

트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굳이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그녀

가 울고 있으리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참 좋았지. 그 여자가

찬양해 마지않는 아버지가 내 옆에

있잖아. 그게 얼마나 가슴 벅차고

황홀한 일인지 넌 아마 모를걸?”

“……알아요,저도. 그 감정.”

영영 대답하지 않고 샤리에트 혼

자 떠들게 할 참이었는데,내 다짐

과 달리 목소리가 먼저 홀러나왔

다.

나는 그제야 날 돌아보는 샤리에

트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쭉 이야기하지 않을 셈이었는데,

역시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입술을 됐다.

“순간의 감정에 도취되어 인생을

허비하지 말아요. 그래봤자,당신이

아버지라고 믿고 있는 이는 절대

당신을 생각해주지 않으니까요.”

“말처럼 쉬우면 진작에 버렸겠

지.”

“그자가 당신 친부가 아니라고

해도요?”

샤리에트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그녀가 부정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입에서 나온

건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

다.

“……알아.”

“안다고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

갔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샤리에트는 지쳐있었다. 내가 생

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주 많이.

“솔직히 처음부터 수상했어. 제

아무리 바보라 해도 자기 딸이라면

서 주장하고 나선 애를 검증 한 번

안 하고 제집에 들일 순 없을 텐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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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 여자

를 닮았거든. 녹색 눈동자를 제외

하고는 티어드롭의 그 잘난 아가씨

는 조금도 닮지 않았지.”

“그 말은

,,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

닮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 알아?”

샤리에트가 날 보며 웃었다.

정작 날 보는 시선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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