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대용품이었다-166화 (166/204)

166화. 입장 번복

“우리 아가씨께서는 퍽 바쁘게

움직이시 는군.”

“읍,읍!”

“이기지도 못할 싸움이라는 걸

뻔히 알 텐데. 그게 참 같잖고,또

귀엽단 말이야. 안 그렇습니까,티

어드롭 공작?”

“으읍, 읍! 읍!”

“아, 그래. 대답을 할 수 없는 상

황이었죠.”

듈이 키득거리며 제 발밑에 무릎

꿇고 있는 오베른을 내려다봤다.

오베른의 두 눈은 잔뜩 힘을 준

나머지, 실핏줄이 터져 붉게 보였

다.

하지만 입에 물린 재갈이며,온

몸을 꽉 묶은 줄로 인해 정작 그는

일말의 발버둥도 칠 수 없었다.

듈은 오베른의 어깨를 느긋하게

발로 짓누르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물론 그 순간에도 입이 막힌 오

베른은 한 마디의 비명조차 내지르

지 못했다.

“너무 불쾌하지 마세요. 이마저

도 본인 업보 아닙니까. 티어드롭

공작의 이런 꼴을 보고 즐거워할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테니 말입니

다. 이 김에 지금껏 본인이 홀린

피를 돌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읍! 읍!”

“물론 이건 제가 할 말은 아니지

만 말입니다.”

알궂게 올라가는 입꼬리가 더 얄

입다.

듈은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한

번 크게 웃고는 픽스에게 손짓했

다.

픽스는 아무런 말 없이 묵묵히

오베른의 입에 물린 재갈을 풀었

다.

“네 놈,정체가 뭐지!”

“풀리자마자,그런 소리라니. 이

건 좀 멋있네. 나는 당연히 이런

소리를 할 줄 알았거든. 살려주세

요. 뭐 이런 거 말이야.”

“아아악!”

불현듯 어깨를 파고드는 날카로

운 통증에 오베른이 비명을 내질렀

다.

별안간 둘이 꽂은 검 때문이었

다.

하지만 정작 듈은 자상의 통증에

괴로워하는 오베른을 조금도 아랑

곳하지 않았다.

되레 피 묻은 검 끝을 성의 없이

대충 바닥에 닦아 내다가 그마저도

지루하다는 듯 이내 검을 바닥에

내동댕이칠 뿐이었다.

쨍그랑- 쨍- 챙!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구른 검

이 얼마 지나지 않아 시체 더미에

부딪히며 멈췄다.

둘은 무수히 쌓인 시체 더미를

바라보며 턱을 됐다.

언제쯤 저 위에 티어드롭 공작을

올리는 게 좋을지 가늠하기 위함이

었다.

“있지,티어드롭 공작. 당신을 이

곳으로 보낸 이가 누군지 알아?”

“이번에는 말을 아끼시겠다? 뭐,

그것도 좋은 선택이야. 덕분에 내

가 더 많이 떠들 수 있잖아.”

U ,,

“심포니아야. 당신이 들인 양딸.

그 아이가 당신을 배신했어.”

가늘어진 듈의 눈이 오베른의 표

정 변화를 살폈다.

바로 믿을 생각은 없었는지,오

베른은 제법 굳건한 시선으로 듈을

말없이 힐난했다.

“티어드롭 전부를 갖고 싶어진

거지.”

“ ,,

“샤리에트의 시신을 발견했으니

까.”

“샤리에트라고?”

“음,역시 당신은 이 이야기를

해야 대화가 통하네. 참 안타까운

일이야.”

듈은 고개를 젖힌 채 짐짓 씁쓸

한 어조와는 다르게 함박웃음을 지

었다.

그 미소는 장난감을 손에 쥔 아

이를 닮아있었다.

“티어드롭 공작이 보고 싶어 할

것 같아서 샤리에트의 시신을 가져

다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그 아이가 가져간 것 같더라고.”

“요약하자면,전 이미 샤리에트

가 죽었다는 걸 알고 있었고,이를

감추면서 일부러 당신에게 접근한

거야. 진짜와 가짜의 싸움이라면

모를까. 가짜와 가짜는 좀 해볼 만

하잖아.”

둘의 조롱에도 오베른의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으나,그는 오랜

경험으로 쉼게 공작의 변화를 알아

차렸다.

냉혈한인 티어드롭 공작도 어쩔

수 없는 아비인지,항상 제 딸 이

야기만 나오면 약해졌으니까.

“그래서 나와 손잡기로 한 거지.

물론 공작의 동생을 포함해서 말이

야.”

M ,,

9

“그런데,갑자기 내 마음이 바뀌

었어. 심포니아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게 생각난 참

이거든.”

듈이 증대한 결심을 마쳤다는 듯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까딱거리자,

오베른의 눈이 커졌다.

지금껏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의

뭉스러운 사내의 외형이 일순간 달

라진 탓이었다.

“……오르젠타 대공.”

“이왕이면 전하까지 붙여주는 건

어때?”

“지금 나와 장난하자는 건가.”

“장난보다는 제안하는 거지.”

두 단어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을 것 같은 짓궂은 얼굴로 듈이

오베른의 이마를 검지로 꾹 눌렀

다.

덕분에 오베른의 미간이 깊어졌

지만,그런 미묘한 변화 따위는 듈

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대의 딸,샤리에트를 다시 살

려줄게.”

“그딴 게 가능할 것 같나.”

“그런 말을 하기엔 동생의 속삭

임에 흔들리지 않았나?”

둘이 턱짓으로 픽스를 가리켰다.

둘은 이미 두 티어드롭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보고 받은 바가

있었다.

오베른이 아무리 태연한 척 굴려

고 해도 둘의 눈에는 미련을 버리

지 못하는 사내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다.

저런 이를 흔드는 건,듈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티어드롭의 주인 정도 되면,요

정왕에 대해 들어본 적 있지? 비어

티어드롭의 오래된 친우.”

“그에 대한 기록이 문헌으로 남

아있다면 알 텐데,말도 안 되는

힘이 존재한다는 거.”

“……설마,그걸 노리고 있는 건

가?,,

“맞아. 그리고 그렇기에 픽스도

날 돕는 거야. 잃어버린 것들을 되

찾고 싶어서.”

듈이 시선을 돌리자 픽스는 그의

앞에 말없이 무릎을 꿇었다.

마치 신을 경배하기라도 하듯,

경건한 태도는 무척이나 진지했다.

“티어드롭 공작의 딸을 죽인 건,

미안하게 되었어. 하지만 깨진 그

릇을 다시 붙일 수 있다면,이야기

가 좀 달라지잖아.”

“그러니 이제 슬슬 가면은 벗고

솔직해지는 게 어때? 사실 이미 공

작은 마음을 정했잖아.”

“그렇지 않다면,공작이 딸을 죽

인 나를 보며 억지로 화를 삼킬 이

유도 없을 테니까.”

심지어 이렇게까지 하는데 말이

지.

듈이 검지에 힘을 주며 밀자,오

베른은 별 반항 없이 그대로 뒤로

밀렸다.

그것만으로도 다른 대답은 필요

하지 않았다.

米 * *

“앞으로 공작에게 해야 할 일을

일러줘. 형제가 사이좋게,비슷한

목적으로 일하니 이 김에 관계 회

복을 해보는 것도 좋겠네.”

“왜? 탐탁지 않아?”

“제가 대공 전하의 뜻에 의견이

있을 리-”

“그러기엔 표정 관리를 너무 못

하는데.”

픽스의 말을 가로젠 듈이 느긋하

게 입꼬리를 끌어을렸다.

불쾌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지금

상황이 즐겁다는 투였다.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진 마.

나도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러니까.”

“확인이요?”

“샤리에트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그 아이의 존재에 대한 의

문이 생겨서 말이야.”

그에 관해 더 묻고 싶었지만,의

뭉스러운 사내는 자신이 하고 싶을

때만 원하는 대답을 꺼냈다.

그가 먼저 말해주지 않는다면 쉽

게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 것이었

다.

그렇기에 픽스는 섣불리 묻기 대

신 대신,듈이 먼저 입을 열길 기

다렸다.

“기억하지? 그때,주술을 걸 때

분명 내가 그 아이를 제물 삼으라

고 했던 거.”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알려준 그 주술은

제물로 쓰인 아이가 사라지면 자연

스레 문제가 생기거든.”

“어떤 문제-”

“문제가 생겼다는 게 아니야. 오

히려 그 반대지. 아무런 문제도 없

어. 그 사실이 거슬리는 거야.”

또 한 번 픽스의 질문을 가로챈

듈이 턱을 됐다.

“시신이 사라졌는데도 주술이 유

지되고 있었어. 그 말은 결국,그

아이가 제물로 쓰이지 않았다는 거

지.”

“저는 분명 일러주신 대로 주술

을 시행했습니다.”

픽스가 다급하게 해명하였지만,

듈은 여전히 태연한 태도를 유지할

뿐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다른 생

각에 하느라 푹 빠져있었다는 표현

이 맞겠지만.

“널 의심하는 건 아니야. 내 충

직한 픽스가 그럴 리 없잖아. 오히

려 의심하는 건 다른 쪽이지.”

요정의 핏줄이 섞여 있으면서도

동시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특별한 존

재는 흔치 않았기에 그만큼 그 아

이를 대체할 만한 제물도 없었다.

만약 픽스가 약속을 어기고 섣불

리 다른 제물을 쓰려고 했다면,주

술이 발동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니 이건 픽스가 아닌 다른

쪽을 의심해야 했다.

둘은 고개를 삐딱하게 세웠다.

그럴 리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도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던 요정왕,

그자가 개입했다면 자신이 짐작하

는 모든 게 가능해지니까.

“만약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내 입장이 크게 달라질 거야.”

“ ,’

“그녀가 내 동지라면 귀여운 아

가씨 정도로 봐줄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봐줄 이유가 없으니까.

아니,봐주긴커녕 바로 잡아먹어

버려야지.”

듈이 양 입술을 끌어을렸다.

드러낸 입술 사이로 보이는 그의

송곳니는 유난히 날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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