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붉게 빛나는 눈동자
모나차르트에서 사람이 온다고?
왜?
지금은 아직 모나차르트의 군대가
수도로 진격할 때가 아니었다.
원래 우리의 계획은 모두가 병자
들을 탄압할 때,성문을 열고 그들
을 받아들임으로써 신뢰를 얻어내는
것이었으니까.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계획과
어긋나는 일은 곤란했다.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이 되듯, 작
은 변수가 큰일로 번질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걱정스러운 마음과 달리,기
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외로웠던
모양이었다.
“고마워요. 소식 알려주셔서.”
“딱히 감사받을 일도 아니지. 영
애와 나는 같은 편을 먹었으니 말이
야. 그리고 나도 용무가 따로 있었
고.”
“용무요?”
“폐하께서는 오르젠타 대공을 칠
수 없어.”
무슨 대단한 말을 하려는지 했는
데,의외로 다정한 걱정이다.
나는 가만 보면 무른 사내라고
생각하며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도
로 떴다.
“알아요.”
“안다고?”
“수도 귀족들을 방패 삼다가 불리
하다 싶으면 항복하실 분이실 테니
까요.”
“그걸 알면서도 오르젠타 대공과
의 싸움을 부추긴 건가?”
“전하를 위한 선물이거든요.”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도망친 황
제에게는 더는 권위란 없으니,후계
자가 그 뒤를 잇기에는 딱 좋은 시
기였다.
“그러니 답답해도 조금만 더 참으
세요. 오늘처럼 괜히 몸을 움직이지
마시고요.”
“눈에 띄지 않게 왔으니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황궁을 얼마나 돌아
다녔는데.”
“자만은 항상 화를 부르기 마련이
죠. 특히 온갖 욕망이 점철된 이 황
궁에선 말이죠.”
나는 슬쩍 위를 을려다봤다.
금칠한 천장은 반짝반짝 빛났지만
정령들은 그것에 닿기를 꺼려했다.
아무리 열심히 닦고 쓴다고 한들,
이곳에 깊게 새겨진 피 냄새를 기억
하기라도 하듯.
“욕망으로 점철된 게 아니라,잠
식당했을 수도 있지. 사람이란 생물
은 생각보다 환경에 좌우되거든.”
“어디서 태어날지,그리고 어떤
부모를 만날지 정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
무슨 말을 할까 고심하는데,인기
척이 느껴졌다.
나는 언제 기둥에 서 있었냐는
듯 모른 척하며 걸음을 했고,그건
황태자도 마찬가지였다.
편히 대화를 나누기엔 나나,그나
썩 편한 입장이 아니었다.
모나차르트에서 과연 누가 왔을
까.
아무래도 제일 보고 싶은 사람은
블러쉬지만, 그는 대공이니까 음직
이기 어려울 터였다. 하물며 모나차
르트에서 수도까지 오려면,꽤나 힘
든 여정이니까 아무래도 프로스트일
확률이 높을 것 같은데.
찾아을 손님을 떠을리며 오래간만
에 마음을 놓고 있는데,별안간 마
차의 움직임이 멈췄다.
나는 고개를 가웃거리며 품에서
시계를 꺼내 확인했다.
생각에 빠져 혹시나 벌써 도착했
나 했지만,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나는 마부 자리와 연결된 쪽 창
문을 살짝 열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볼 참이었
다.
그러나 나는 질문을 하기도 전에
목구멍에 다시 삼켜야만 했다.
“이 시국에도 여행을 즐기는 귀족
아가씨가 있군 그래.”
창문을 열자마자 내게로 들이밀어
진 서늘한 칼끝이 햇빛을 반사해 반
짝거렸다.
나는 마부석에 기절한 양 축 늘
어진 마부와 작은 틈으로 날 향해
칼을 겨누고 있는 사내를 보며 미간
을 찡그렸다.
“무슨 일이죠?”
“무슨 일? 이런. 귀족 아가씨라서
그런지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로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던 사내의
칼이 조금 더 마차 안으로 파고 들
었다.
마차의 작은 창문으로 칼을 휘두
르는 건 무리였으나,날카로운 날붙
이는 충분히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대낮에,그것도 수도에서 강도가
성행할 줄은 몰랐네요.”
“굶주리면 뭘 못하겠어. 너 같은
귀족 아가씨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긴말하지 않을 테니,좋은 말 할
때 나와.”
협박과 함께,마차 문이 덜컹거리
는 소리와 함께 거칠게 열렸다.
나는 느릿하게 숨을 삼키며 주변
을 살폈다.
강도는 한 명이 아니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상대만 하더라도 서
넛이었다.
심지어 다들 하나 같이 날카로운
무기를 쥐고 있었다.
“좋아요. 나갈게요.”
“아가씨는 좋군.” 그나마 고분고분해서
내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겨눠진
칼이 살짝 멀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 밖으로 나왔다.
마차에서 내릴 때 도와주는 이가
없었지만,다행히 모나차르트에서의
경험이 있어 혼자서 내려도 우스꽝
스럽게 내리는 꼴은 면할 수 있었
다.
“일행이 꽤 많네요.”
마차에서 내리고 다시 돌아보자,
더 많은 인원이 마차를 둘러싸고 있
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 증 제대로 된 검을
든 사람은 몇 되지 않았고 대다수는
농기구나 잡동사니도 어설프게 쥐고
있었다.
그들이 전문 강도는 아니라는 증
거였다.
개중 엣되어 보이는 아이는 부지
행이를 어설프게 쥐고 달달 떨기도
하고.
그 사실을 확인하자,전의가 팍
꺾여버렸다.
저들 중 날 제대로 해칠 수 있는
자들은 없을 거라는 걸 확신했기 때
문이었다.
“그래서 이제 뭘 하면 되죠?”
“뭐?”
마부석에서 내려온 사내가 얼굴을
찌푸렸다.
방금 전,좁은 창문 틈으로 날 위
협하던 사내였다.
“그쪽이 대장인 것 같은데,그쪽
과 이야기하면 되는 건가요?”
“아니면 다른 이가 대장인가요?”
“곱게만 커서 세상 무서운 줄 모
르는 아가씨 아니랄까 봐, 헛소리를
아주 잘도 하는군.”
멀어진 줄 알았던 검이 혹 가까
워졌다.
나는 금방이라도 나를 찌를 듯한
검을 보다가 그대로 칼날을 손에 쥐
었다.
“미,미쳤어?!”
피가 난 건 난데,왜 놀라는 건
그쪽 일까.
나는 영 익숙해지지 않는 살이
베이는 서늘한 감각에 미간을 찡그
리며 검을 놨다.
상처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딱히 감홍은 없었다.
"그저 확인해 본 것뿐이에요.”
“확,확인?”
“상처 하나 내지 못하는 어설픈
강도단이 맞는지,아닌지.”
“……지금 우릴 조통하는 건가?”
“곱게만 자란 아가씨는 아니라는
걸 명했을 뿐이에요.”
나는 피식 웃으며 상처를 내보였
다.
힘 조절을 했기에 깊은 상처는
아니었으나,상처의 깊이에 비해 피
가 많이 나는 편이라 꽤 극적으로
보였다.
“……저 여자,티어드롭 공작 영
애 맞아?”
“마차를 봐. 게다가 저 머리 색에
눈동자는 분명 소문 속 티어드롭 그
자체잖아.”
“하지만 티어드롭 공작이 그토록
어여뻐하는 딸이라는데,무슨 아가
씨가 칼을 봐도 눈 하나 깜짝을 안
해.”
“설마 그 가짜 아니야?”
“가짜? 입양한 딸? 그럼 실패인
거잖아. 대어인 줄 알았는데 고작
주워온 게 가짜라는 게 말이 돼?”
“가짜라도 입양했으면 진짜 아니
야? 일단 공작 측과 협상을 하면-”
“그 협상은 저랑 하면 돼요.”
좋게 말하면 놀란,나쁘게 말하면
광인을 보는 듯한 표정에 나는 싱긋
웃었다.
웃는 얼굴에는 장사가 없다고 했
었다.
물론 그럴수록 날 보는 저들의
표정은 구겨졌지만 말이다.
“보아하니,진짜 강도는 아닌 듯
하고 생계가 어려워져 급히 이웃들
을 모아 범죄를 계획한 거 같은데,
맞죠?”
“괜찮아요. 이해해요. 그럴 수 있
죠. 이번 돌림병 사태로 가장 피해
를 입은 건,다름 아닌 평민들이잖
아요.”
“귀족이 뭘 안다고 그래.”
“다른 귀족은 모르지만,전 반쪽
짜리잖아요. 그것도 가짜.”
내가 나를 가리키며 말하자,더욱
사람들의 얼굴이 기묘해졌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빨
리 말을 이었다.
어차피 저들의 목적은 알고 있으
니 협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획! 퍽!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로 찰나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더라면.
그래서,내 앞에 있던 사내가 일
순간 고정한 기계처럼 뻣뻣하게 그
대로 앞으로 쓰러지지만 않았더라
면.
나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
어 눈만 껌벅거렸다.
그리고 연이어 방금 전과 같은
일들이 빠르게 반복되었다.
어이없을 만큼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나는 터라 대처는커녕, 이게 무
슨 상황인지 파악조차 하기 어려웠
다.
어느덧 바닥에 널브러진 강도 무
리 사이,가볍게 도약한 사내를 마
주하지 않더라면.
“괜찮으십니까?”
불현듯 나타난 사내가 성큼 내게
다가왔다.
사내는 복면을 쓰고 있었지만 나
는 한눈에 그를 알아봤다.
아무리 잘 가린다고 한들,붉게
빛나는 눈동자는 내가 모르려야 모
를 수 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