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대용품이었다-163화 (163/204)

163화. 붉게 빛나는 눈동자

모나차르트에서 사람이 온다고?

왜?

지금은 아직 모나차르트의 군대가

수도로 진격할 때가 아니었다.

원래 우리의 계획은 모두가 병자

들을 탄압할 때,성문을 열고 그들

을 받아들임으로써 신뢰를 얻어내는

것이었으니까.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계획과

어긋나는 일은 곤란했다.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이 되듯, 작

은 변수가 큰일로 번질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걱정스러운 마음과 달리,기

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외로웠던

모양이었다.

“고마워요. 소식 알려주셔서.”

“딱히 감사받을 일도 아니지. 영

애와 나는 같은 편을 먹었으니 말이

야. 그리고 나도 용무가 따로 있었

고.”

“용무요?”

“폐하께서는 오르젠타 대공을 칠

수 없어.”

무슨 대단한 말을 하려는지 했는

데,의외로 다정한 걱정이다.

나는 가만 보면 무른 사내라고

생각하며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도

로 떴다.

“알아요.”

“안다고?”

“수도 귀족들을 방패 삼다가 불리

하다 싶으면 항복하실 분이실 테니

까요.”

“그걸 알면서도 오르젠타 대공과

의 싸움을 부추긴 건가?”

“전하를 위한 선물이거든요.”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도망친 황

제에게는 더는 권위란 없으니,후계

자가 그 뒤를 잇기에는 딱 좋은 시

기였다.

“그러니 답답해도 조금만 더 참으

세요. 오늘처럼 괜히 몸을 움직이지

마시고요.”

“눈에 띄지 않게 왔으니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황궁을 얼마나 돌아

다녔는데.”

“자만은 항상 화를 부르기 마련이

죠. 특히 온갖 욕망이 점철된 이 황

궁에선 말이죠.”

나는 슬쩍 위를 을려다봤다.

금칠한 천장은 반짝반짝 빛났지만

정령들은 그것에 닿기를 꺼려했다.

아무리 열심히 닦고 쓴다고 한들,

이곳에 깊게 새겨진 피 냄새를 기억

하기라도 하듯.

“욕망으로 점철된 게 아니라,잠

식당했을 수도 있지. 사람이란 생물

은 생각보다 환경에 좌우되거든.”

“어디서 태어날지,그리고 어떤

부모를 만날지 정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

무슨 말을 할까 고심하는데,인기

척이 느껴졌다.

나는 언제 기둥에 서 있었냐는

듯 모른 척하며 걸음을 했고,그건

황태자도 마찬가지였다.

편히 대화를 나누기엔 나나,그나

썩 편한 입장이 아니었다.

모나차르트에서 과연 누가 왔을

까.

아무래도 제일 보고 싶은 사람은

블러쉬지만, 그는 대공이니까 음직

이기 어려울 터였다. 하물며 모나차

르트에서 수도까지 오려면,꽤나 힘

든 여정이니까 아무래도 프로스트일

확률이 높을 것 같은데.

찾아을 손님을 떠을리며 오래간만

에 마음을 놓고 있는데,별안간 마

차의 움직임이 멈췄다.

나는 고개를 가웃거리며 품에서

시계를 꺼내 확인했다.

생각에 빠져 혹시나 벌써 도착했

나 했지만,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나는 마부 자리와 연결된 쪽 창

문을 살짝 열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볼 참이었

다.

그러나 나는 질문을 하기도 전에

목구멍에 다시 삼켜야만 했다.

“이 시국에도 여행을 즐기는 귀족

아가씨가 있군 그래.”

창문을 열자마자 내게로 들이밀어

진 서늘한 칼끝이 햇빛을 반사해 반

짝거렸다.

나는 마부석에 기절한 양 축 늘

어진 마부와 작은 틈으로 날 향해

칼을 겨누고 있는 사내를 보며 미간

을 찡그렸다.

“무슨 일이죠?”

“무슨 일? 이런. 귀족 아가씨라서

그런지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로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던 사내의

칼이 조금 더 마차 안으로 파고 들

었다.

마차의 작은 창문으로 칼을 휘두

르는 건 무리였으나,날카로운 날붙

이는 충분히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대낮에,그것도 수도에서 강도가

성행할 줄은 몰랐네요.”

“굶주리면 뭘 못하겠어. 너 같은

귀족 아가씨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긴말하지 않을 테니,좋은 말 할

때 나와.”

협박과 함께,마차 문이 덜컹거리

는 소리와 함께 거칠게 열렸다.

나는 느릿하게 숨을 삼키며 주변

을 살폈다.

강도는 한 명이 아니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상대만 하더라도 서

넛이었다.

심지어 다들 하나 같이 날카로운

무기를 쥐고 있었다.

“좋아요. 나갈게요.”

“아가씨는 좋군.” 그나마 고분고분해서

내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겨눠진

칼이 살짝 멀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 밖으로 나왔다.

마차에서 내릴 때 도와주는 이가

없었지만,다행히 모나차르트에서의

경험이 있어 혼자서 내려도 우스꽝

스럽게 내리는 꼴은 면할 수 있었

다.

“일행이 꽤 많네요.”

마차에서 내리고 다시 돌아보자,

더 많은 인원이 마차를 둘러싸고 있

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 증 제대로 된 검을

든 사람은 몇 되지 않았고 대다수는

농기구나 잡동사니도 어설프게 쥐고

있었다.

그들이 전문 강도는 아니라는 증

거였다.

개중 엣되어 보이는 아이는 부지

행이를 어설프게 쥐고 달달 떨기도

하고.

그 사실을 확인하자,전의가 팍

꺾여버렸다.

저들 중 날 제대로 해칠 수 있는

자들은 없을 거라는 걸 확신했기 때

문이었다.

“그래서 이제 뭘 하면 되죠?”

“뭐?”

마부석에서 내려온 사내가 얼굴을

찌푸렸다.

방금 전,좁은 창문 틈으로 날 위

협하던 사내였다.

“그쪽이 대장인 것 같은데,그쪽

과 이야기하면 되는 건가요?”

“아니면 다른 이가 대장인가요?”

“곱게만 커서 세상 무서운 줄 모

르는 아가씨 아니랄까 봐, 헛소리를

아주 잘도 하는군.”

멀어진 줄 알았던 검이 혹 가까

워졌다.

나는 금방이라도 나를 찌를 듯한

검을 보다가 그대로 칼날을 손에 쥐

었다.

“미,미쳤어?!”

피가 난 건 난데,왜 놀라는 건

그쪽 일까.

나는 영 익숙해지지 않는 살이

베이는 서늘한 감각에 미간을 찡그

리며 검을 놨다.

상처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딱히 감홍은 없었다.

"그저 확인해 본 것뿐이에요.”

“확,확인?”

“상처 하나 내지 못하는 어설픈

강도단이 맞는지,아닌지.”

“……지금 우릴 조통하는 건가?”

“곱게만 자란 아가씨는 아니라는

걸 명했을 뿐이에요.”

나는 피식 웃으며 상처를 내보였

다.

힘 조절을 했기에 깊은 상처는

아니었으나,상처의 깊이에 비해 피

가 많이 나는 편이라 꽤 극적으로

보였다.

“……저 여자,티어드롭 공작 영

애 맞아?”

“마차를 봐. 게다가 저 머리 색에

눈동자는 분명 소문 속 티어드롭 그

자체잖아.”

“하지만 티어드롭 공작이 그토록

어여뻐하는 딸이라는데,무슨 아가

씨가 칼을 봐도 눈 하나 깜짝을 안

해.”

“설마 그 가짜 아니야?”

“가짜? 입양한 딸? 그럼 실패인

거잖아. 대어인 줄 알았는데 고작

주워온 게 가짜라는 게 말이 돼?”

“가짜라도 입양했으면 진짜 아니

야? 일단 공작 측과 협상을 하면-”

“그 협상은 저랑 하면 돼요.”

좋게 말하면 놀란,나쁘게 말하면

광인을 보는 듯한 표정에 나는 싱긋

웃었다.

웃는 얼굴에는 장사가 없다고 했

었다.

물론 그럴수록 날 보는 저들의

표정은 구겨졌지만 말이다.

“보아하니,진짜 강도는 아닌 듯

하고 생계가 어려워져 급히 이웃들

을 모아 범죄를 계획한 거 같은데,

맞죠?”

“괜찮아요. 이해해요. 그럴 수 있

죠. 이번 돌림병 사태로 가장 피해

를 입은 건,다름 아닌 평민들이잖

아요.”

“귀족이 뭘 안다고 그래.”

“다른 귀족은 모르지만,전 반쪽

짜리잖아요. 그것도 가짜.”

내가 나를 가리키며 말하자,더욱

사람들의 얼굴이 기묘해졌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빨

리 말을 이었다.

어차피 저들의 목적은 알고 있으

니 협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획! 퍽!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로 찰나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더라면.

그래서,내 앞에 있던 사내가 일

순간 고정한 기계처럼 뻣뻣하게 그

대로 앞으로 쓰러지지만 않았더라

면.

나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

어 눈만 껌벅거렸다.

그리고 연이어 방금 전과 같은

일들이 빠르게 반복되었다.

어이없을 만큼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나는 터라 대처는커녕, 이게 무

슨 상황인지 파악조차 하기 어려웠

다.

어느덧 바닥에 널브러진 강도 무

리 사이,가볍게 도약한 사내를 마

주하지 않더라면.

“괜찮으십니까?”

불현듯 나타난 사내가 성큼 내게

다가왔다.

사내는 복면을 쓰고 있었지만 나

는 한눈에 그를 알아봤다.

아무리 잘 가린다고 한들,붉게

빛나는 눈동자는 내가 모르려야 모

를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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