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대용품이었다-161화 (161/204)

161화. 폭동의 시작

“처리라는 건,죽여달라는 뜻인

가?"

“아뇨. 죽이진 말고 납치 정도

면 좋겠네요.”

“납치?”

“티어드롭 공작이 슬슬 걸림돌

처럼 느껴지기 시작해서요.”

황태자와 연을 맺음에 따라 아

버지에게 얻을 수 있는 건 모두

쥐었으니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

다.

무엇보다 지금의 아버지는 전

의를 잃었다.

굳이 무리해서 함께 갈 이유는

없었다.

아버지가 이대로 계속 자리를

차지하면,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기도 하고.

“그럼 그냥 죽이는 편이 낫지

않나.”

“그대로 죽이면, 아깝잖아요.

쓸 수 있을 만큼 쓰고 버려야지.”

“쓴다?”

“공동의 적은 합심을 쉽게 하

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티어드

롭 공작은 없더라도,그의 개들은

계속 쓰고 싶어서요.”

아버지와 달리,그의 개들은 아

직 쓸모 있다.

이미 조직 체계가 잘 짜여있어

하극상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무

엇보다 상황에 따라 쉽게 버릴

수도 있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이보다 좋

은 부하는 없었다.

“그럼 굳이 내가 납치해야 하

는 이유는?”

“오르젠타 대공 전하 정도면,

적당한 자를 만드는 것 정도는

쉬울 거 아니에요.”

혹시라도 문제가 생겼을 때,내

가 책임지는 경우도 생기지 않을

테고.

나는 뒷말은 일부러 하지 않으

며 모른 척 깍지를 꼈다.

“내가 해줄 거라고 생각해?”

“티어드롭을 결혼지참금으로 받

고 싶다면 그래야겠죠.”

“그건 모나차르트 대공을 가지

고 거래해도 될 문제 같은데.”

“그러지 않는 게 좋을걸요. 제

겐 모나차르트 대공이 아니라더

라도 하나 더 걸게 남아있어서

요.”

“그게 뭔데?”

나는 대답 대신 찻잔을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찻잔을 테이블에

내리쳤다.

쌩그랑-!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깨진

도자기 파편이 내 뺨을 스쳤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쥔 찻잔 손잡이에 달린 날

카로운 파편을 보란 듯,내 목에

가져가 댔다.

“당신이 모나차르트 대공을 죽

이는 것보다 제가 제 목을 긋는

편이 더 빠를 것 같지 않나요?”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

“저는 비싼 몸이라서. 값을 제

대로 치러주지 않으면 곤란하거

든요.”

“정말이지,매번 심심치 않게

해주네.”

“칭찬으로 들을게요.”

위험한 도발이었지만,듈의 입

가에 번진 미소를 보아하니 나쁜

결과는 나오지 않으리라.

나는 피 묻은 찻잔 파편을 테

이블에 내려놓고는 뺨을 닦았다.

뺨이 따끔거린다 싶었더니,잠

깐 사이 제법 깊게 베였는지 손

등에는 피가 붉게 묻어났다.

“좋아.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

지. 대신,이런 짓은 적당히 해둬.

곧 결혼할 신부의 얼굴에 상처가

나면 픽 곤란하잖아.”

“곤란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잘 처리해줘요. 안 그럼 다음번엔

신부가 아니라, 신랑 얼굴에 예쁜

상처가 날 것 같거든요.”

“너무 무서워서 한시라도 빨리

끝내야겠군.”

누가 들어도 결혼을 앞둔 신혼

부부 같지 않은 대화를 잘도 지

껄이며 우린 웃었다.

정작 진심으로 즐거운 사람은

하나도 없을 텐데도 말이다.

듈이 약속을 지킨 건,그로부터

사홀 후였다.

나는 텅 빈 감옥을 보며 미간

을 찡그렸다.

아버지를 처리해달라고 하긴

했지만 설마 삼촌을 써먹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삼촌의 행적은 어떻게 되었

지.”

“지금 최대한 빠르게 찾고 있

습니다만, 쉽게 꼬리가 잡히지 않

습니다.”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작품인가

보네.”

“네, 정황상 그런 것 같습니

다.”

펠리오는 평정을 가장하려 애

썼지만,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

다.

나는 그의 불안함을 모른 척하

며 몸을 돌렸다.

“좀 더 꼼꼼히 주변을 수색해.

그 몸으로 아버지를 납치해서 탈

출했다면, 아무리 삼촌이라도 멀

리 가진 못했을 테니까.”

“쓸 수 있는 최대한의 인원을

투입 중입니다.”

“조력자가 있는지도 확인해봐.

감시 인력이 줄어들 때를 노린

걸 봐선 아무래도 내부인 소행

같으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단서 하나라도 놓치면 안 돼.

보다 빠르고 철저하게 움직여야

아버지를 찾을 수 있어. 알고 있

지?,’

불안을 자극할 만한 말을 작게

속삭이며 펠리오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뭔가를 더 할 것도 없었다.

펠리오는 이미 내게 길들여져

있었다.

그를 내 입맛대로 조종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실종은 철저히 비밀

리에 붙여.”

"하지만……

펠리오가 내 명령을 영 납득하

기 어렵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이에 나는 단호한 어조로 쐐기를

박았다.

“의심 가는 범인이 있어서 그

래.”

“의심 가는 범인이요?”

“오르젠타 대공 말이야.”

그래도 이왕이면 공동의 적을

좀 더 확실히 해두는 편이 좋지.

나는 슬쩍 주변을 살핀 후,한

차례 목소리를 더 낮췄다.

“삼촌은 오르젠타 대공의 사람

이었지.”

“하지만, 그자는 아가씨께 청혼

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더 이상하다는 거야.”

“이상이요?”

“왜,언니가 아니라 나였을까.”

“바보가 아니고서야,그것도 귀

족이라면 출신 불명한 나보다는

언니에게 청혼하는 게 맞잖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뿐이지,

모두가 아는 사실을 펠리오가 모

를 리 없었다.

특히나 상대는 유명한 오르젠

타 대공이 아닌가.

심지어 펠리오는 듈이 일부러

황실을 내버려 두고 있다는 사실

을 몰랐다.

다른 이들이 황실과 오르젠타

를 비숫한 대결 선상에 놓은 것

처럼 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오르젠타 대공의 목표는 현

목표는 황위 찬탈이야. 그리고 그

걸 위해 자신에게 협조해줄 세력

들을 모으고 있어.”

“특히 티어드롭은 중앙에서 가

장 큰 가문이니 그럴 겁니다.”

“그렇기에 새로운 황실을 시작

하기 위해선 티어드롭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말끝을 흐리

고 펠리오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는 이렇게 언급하는 것

자체가 힘겨운 일인 양,이마를

짚고 깊은 한숨을 뱉었다.

내가 자진해서 설명하는 게 아

니라,펠리오가 내 이야기를 들고

싶어 안달 나게 만들 셈이었다.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일단 아버지가 사라졌으니 제대

로 짚고 넘어가는 편이 좋겠지.”

“무슨 말씀입니까?”

“언니 말이야.”

“최근에 아버지는 언니가 가짜

인 게 아닌가 의심하고 계셨어.”

이미 펠리오는 아버지의 명으

로 언니의 친자 검사를 확인한

바가 있었다.

그런고로 내 말에 의심을 가질

순 없었다.

“나는 언니를 의심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이건 가정이야. 하지만 만약

언니가 정말로 가짜라면……

나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또 한 번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오르젠타는 언니가 가짜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 심지어 그

들이 스스로 샤리에트의 시신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고.”

“네. 그랬습니다.”

“그렇다면,그들은 이미 오래전

에 샤리에트의 죽음을 알고 있었

던 게 아닐까?”

U ,’

“만약 그런 거라면,언니를 샤

리에트로 꾸며서 티어드롭으로

보낸 이는 누구일까?”

약간의 진실에 거짓을 잘 버무

려주면 그게 거짓이라고 누가 쉽

게 의심할까.

나는 두 팔로 나 자신을 감싸

안은 채,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쉽게 의심해선 안 되는 상황

이라는 거 알아. 하지만 이 모든

게 오르젠타의 소행이라면,아귀

가 맞잖아.”

“그러니 일단 확인부터 해보자.

지금으로선 아버지를 구하는 게

가장 급선무니까.”

나는 하기 싫은 말을 억지로

뱉는 양 눈가를 촉촉하게 적셨고,

펠리오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주

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그때 때마침 누군가 급

히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

다.

젊은 하인이었다.

-아가씨,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지?”

“황실에서 급한 전언이 왔습니

다!”

“전언? 무슨 전언?”

하인이 급히 거친 숨을 가다듬

으며 대답 대신 내게 손에 쥔 서

신을 내밀었다.

황실의 문장이 새겨진 서신의

봉투는 붉은색으로,전시에나 쓸

법한 급한 전언에나 쓰이는 색이

었다.

나는 봉투 색을 확인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서신을 뜯었다.

그리고 서신을 전부 읽은 뒤

서둘러 몸을 돌렸다.

“바로 황실로 갈 채비를 하도

록. 바로 가봐야겠다.”

“무슨 전언인데 그러십니까.”

“어리석은 판단이 부른 결과

지.”

나는 쓰게 웃으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황제의 서신은 대륙 각지에서

일어난 폭동을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폭동은 치료를 핑계

로 모아 죽이려 했던 병자 중 일

부가 탈출하면서 벌어진 것이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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