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폭동의 시작
“처리라는 건,죽여달라는 뜻인
가?"
“아뇨. 죽이진 말고 납치 정도
면 좋겠네요.”
“납치?”
“티어드롭 공작이 슬슬 걸림돌
처럼 느껴지기 시작해서요.”
황태자와 연을 맺음에 따라 아
버지에게 얻을 수 있는 건 모두
쥐었으니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
다.
무엇보다 지금의 아버지는 전
의를 잃었다.
굳이 무리해서 함께 갈 이유는
없었다.
아버지가 이대로 계속 자리를
차지하면,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기도 하고.
“그럼 그냥 죽이는 편이 낫지
않나.”
“그대로 죽이면, 아깝잖아요.
쓸 수 있을 만큼 쓰고 버려야지.”
“쓴다?”
“공동의 적은 합심을 쉽게 하
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티어드
롭 공작은 없더라도,그의 개들은
계속 쓰고 싶어서요.”
아버지와 달리,그의 개들은 아
직 쓸모 있다.
이미 조직 체계가 잘 짜여있어
하극상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무
엇보다 상황에 따라 쉽게 버릴
수도 있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이보다 좋
은 부하는 없었다.
“그럼 굳이 내가 납치해야 하
는 이유는?”
“오르젠타 대공 전하 정도면,
적당한 자를 만드는 것 정도는
쉬울 거 아니에요.”
혹시라도 문제가 생겼을 때,내
가 책임지는 경우도 생기지 않을
테고.
나는 뒷말은 일부러 하지 않으
며 모른 척 깍지를 꼈다.
“내가 해줄 거라고 생각해?”
“티어드롭을 결혼지참금으로 받
고 싶다면 그래야겠죠.”
“그건 모나차르트 대공을 가지
고 거래해도 될 문제 같은데.”
“그러지 않는 게 좋을걸요. 제
겐 모나차르트 대공이 아니라더
라도 하나 더 걸게 남아있어서
요.”
“그게 뭔데?”
나는 대답 대신 찻잔을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찻잔을 테이블에
내리쳤다.
쌩그랑-!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깨진
도자기 파편이 내 뺨을 스쳤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쥔 찻잔 손잡이에 달린 날
카로운 파편을 보란 듯,내 목에
가져가 댔다.
“당신이 모나차르트 대공을 죽
이는 것보다 제가 제 목을 긋는
편이 더 빠를 것 같지 않나요?”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
“저는 비싼 몸이라서. 값을 제
대로 치러주지 않으면 곤란하거
든요.”
“정말이지,매번 심심치 않게
해주네.”
“칭찬으로 들을게요.”
위험한 도발이었지만,듈의 입
가에 번진 미소를 보아하니 나쁜
결과는 나오지 않으리라.
나는 피 묻은 찻잔 파편을 테
이블에 내려놓고는 뺨을 닦았다.
뺨이 따끔거린다 싶었더니,잠
깐 사이 제법 깊게 베였는지 손
등에는 피가 붉게 묻어났다.
“좋아.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
지. 대신,이런 짓은 적당히 해둬.
곧 결혼할 신부의 얼굴에 상처가
나면 픽 곤란하잖아.”
“곤란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잘 처리해줘요. 안 그럼 다음번엔
신부가 아니라, 신랑 얼굴에 예쁜
상처가 날 것 같거든요.”
“너무 무서워서 한시라도 빨리
끝내야겠군.”
누가 들어도 결혼을 앞둔 신혼
부부 같지 않은 대화를 잘도 지
껄이며 우린 웃었다.
정작 진심으로 즐거운 사람은
하나도 없을 텐데도 말이다.
듈이 약속을 지킨 건,그로부터
사홀 후였다.
나는 텅 빈 감옥을 보며 미간
을 찡그렸다.
아버지를 처리해달라고 하긴
했지만 설마 삼촌을 써먹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삼촌의 행적은 어떻게 되었
지.”
“지금 최대한 빠르게 찾고 있
습니다만, 쉽게 꼬리가 잡히지 않
습니다.”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작품인가
보네.”
“네, 정황상 그런 것 같습니
다.”
펠리오는 평정을 가장하려 애
썼지만,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
다.
나는 그의 불안함을 모른 척하
며 몸을 돌렸다.
“좀 더 꼼꼼히 주변을 수색해.
그 몸으로 아버지를 납치해서 탈
출했다면, 아무리 삼촌이라도 멀
리 가진 못했을 테니까.”
“쓸 수 있는 최대한의 인원을
투입 중입니다.”
“조력자가 있는지도 확인해봐.
감시 인력이 줄어들 때를 노린
걸 봐선 아무래도 내부인 소행
같으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단서 하나라도 놓치면 안 돼.
보다 빠르고 철저하게 움직여야
아버지를 찾을 수 있어. 알고 있
지?,’
불안을 자극할 만한 말을 작게
속삭이며 펠리오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뭔가를 더 할 것도 없었다.
펠리오는 이미 내게 길들여져
있었다.
그를 내 입맛대로 조종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실종은 철저히 비밀
리에 붙여.”
"하지만……
펠리오가 내 명령을 영 납득하
기 어렵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이에 나는 단호한 어조로 쐐기를
박았다.
“의심 가는 범인이 있어서 그
래.”
“의심 가는 범인이요?”
“오르젠타 대공 말이야.”
그래도 이왕이면 공동의 적을
좀 더 확실히 해두는 편이 좋지.
나는 슬쩍 주변을 살핀 후,한
차례 목소리를 더 낮췄다.
“삼촌은 오르젠타 대공의 사람
이었지.”
“하지만, 그자는 아가씨께 청혼
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더 이상하다는 거야.”
“이상이요?”
“왜,언니가 아니라 나였을까.”
“바보가 아니고서야,그것도 귀
족이라면 출신 불명한 나보다는
언니에게 청혼하는 게 맞잖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뿐이지,
모두가 아는 사실을 펠리오가 모
를 리 없었다.
특히나 상대는 유명한 오르젠
타 대공이 아닌가.
심지어 펠리오는 듈이 일부러
황실을 내버려 두고 있다는 사실
을 몰랐다.
다른 이들이 황실과 오르젠타
를 비숫한 대결 선상에 놓은 것
처럼 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오르젠타 대공의 목표는 현
목표는 황위 찬탈이야. 그리고 그
걸 위해 자신에게 협조해줄 세력
들을 모으고 있어.”
“특히 티어드롭은 중앙에서 가
장 큰 가문이니 그럴 겁니다.”
“그렇기에 새로운 황실을 시작
하기 위해선 티어드롭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말끝을 흐리
고 펠리오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는 이렇게 언급하는 것
자체가 힘겨운 일인 양,이마를
짚고 깊은 한숨을 뱉었다.
내가 자진해서 설명하는 게 아
니라,펠리오가 내 이야기를 들고
싶어 안달 나게 만들 셈이었다.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일단 아버지가 사라졌으니 제대
로 짚고 넘어가는 편이 좋겠지.”
“무슨 말씀입니까?”
“언니 말이야.”
“최근에 아버지는 언니가 가짜
인 게 아닌가 의심하고 계셨어.”
이미 펠리오는 아버지의 명으
로 언니의 친자 검사를 확인한
바가 있었다.
그런고로 내 말에 의심을 가질
순 없었다.
“나는 언니를 의심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이건 가정이야. 하지만 만약
언니가 정말로 가짜라면……
나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또 한 번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오르젠타는 언니가 가짜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 심지어 그
들이 스스로 샤리에트의 시신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고.”
“네. 그랬습니다.”
“그렇다면,그들은 이미 오래전
에 샤리에트의 죽음을 알고 있었
던 게 아닐까?”
U ,’
“만약 그런 거라면,언니를 샤
리에트로 꾸며서 티어드롭으로
보낸 이는 누구일까?”
약간의 진실에 거짓을 잘 버무
려주면 그게 거짓이라고 누가 쉽
게 의심할까.
나는 두 팔로 나 자신을 감싸
안은 채,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쉽게 의심해선 안 되는 상황
이라는 거 알아. 하지만 이 모든
게 오르젠타의 소행이라면,아귀
가 맞잖아.”
“그러니 일단 확인부터 해보자.
지금으로선 아버지를 구하는 게
가장 급선무니까.”
나는 하기 싫은 말을 억지로
뱉는 양 눈가를 촉촉하게 적셨고,
펠리오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주
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그때 때마침 누군가 급
히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
다.
젊은 하인이었다.
-아가씨,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지?”
“황실에서 급한 전언이 왔습니
다!”
“전언? 무슨 전언?”
하인이 급히 거친 숨을 가다듬
으며 대답 대신 내게 손에 쥔 서
신을 내밀었다.
황실의 문장이 새겨진 서신의
봉투는 붉은색으로,전시에나 쓸
법한 급한 전언에나 쓰이는 색이
었다.
나는 봉투 색을 확인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서신을 뜯었다.
그리고 서신을 전부 읽은 뒤
서둘러 몸을 돌렸다.
“바로 황실로 갈 채비를 하도
록. 바로 가봐야겠다.”
“무슨 전언인데 그러십니까.”
“어리석은 판단이 부른 결과
지.”
나는 쓰게 웃으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황제의 서신은 대륙 각지에서
일어난 폭동을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폭동은 치료를 핑계
로 모아 죽이려 했던 병자 중 일
부가 탈출하면서 벌어진 것이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