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요정의 친구
“비어 블랑 티어드롭. 너와 같은
성을 쓰고,또 비숫한 외모를 가진
사내,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비어 블랑 티어드롭은 티어드봅
의 초대 가주의 이름이었다.
“……티어드롭이 노예 제도를 만
들었다고 말하는 거예요?”
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내
가 아는 요정들을 떠을렸다.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내게 들려
준 적이 없었다.
그 사실에 절로 목이 멨다.
티어드롭이• 노예 제도를 만들었
다면,그걸 알면서도 묵인한 요정
의 감정이 어떨지 가늠조차 할 수
없기에.
“아니. 오히려 그 반대야.”
“반대라면?”
“비어는 요정을 노예로 삼는 건
옳은 일이 아니라면서 강렬하게
주
장하는 것도 모자라,노예들의 낙
인을 자신의 가문 문양으로 사용했
지. 다들 그를 미쳤다고 여겼고 손
가락질했지만,감히 대항하진 못했
지. 그는 아주 강한 사내였거든.”
둘의 말이 점차 빨라졌다.
그는 영웅담을 읊는 소년처럼 픽
들떠있었다.
“비어는 내가 만나본 인간들 증
손꼽힐 정도로 좋은 인간이었어.”
“하지만,당신은……
나는 말을 다 하지 않고 입을 꾹
닫았다.
둘은 인간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인간에 대해 좋은 평
가를 내린다는 건 이상하게 느껴졌
다.
“인간인 그의 시간이 너무 짧았
고,그의 자손들이 모두가 비어가
될 수 없다는 점만 빼면 정말로 완
벽했지.”
“요정의 친구. 그 단어가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 아마 넌 상상도 못
할걸.”
둘이 거둔 손에 그가 잡았던 머
리카락이 스르륵 바닥으로 흘러내
렸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두 손을 깍지낀 채 한참 침묵
만 유지했다.
“많은 요정이 비어를 그리워했
고,그만큼 그들은 티어드롭에 베
풀었으며,비어의 자손들은 그걸
이용해 이득을 취했지. 그게 지금
의 티어드롭이고.”
티어드롭의 이름이 지금까지 유
지되기까지 좋은 일만 있지 않을
거라곤 생각했다.
아버지만 하더라도 많은 악행을
자행해왔으니,대를 거슬러 올라가
면 더욱 많은 일이 있었을 거라 유
추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입안이 썼다.
가라앉은 사내의 눈은 단순히 내
가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
다.
그는 오랜 세월을 보냈고,그만
큼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사건을
겪어왔다.
물론 안 좋은 의미로 말이다.
“그걸 알면서도 티어드롭을 내버
려 둔 건가요?”
“혹시나 하는 기대가 남아있기
때문이었지. 누군가는 비어를 닮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
“뭐, 이제 그것도 끝이지만.”
듈이 고개를 돌렸다.
마차가 멈췄고,창밖으로 티어드
롭 저택이 보였다.
하지만 나도,듈도 움직이지 않
았다.
아직 우리의 대화는 끝나지 않았
다.
“봤지?”
“뭘 말이죠?”
“비어의 마지막 자손 말이야.”
“이름이 아마도 샤리에트였던
가.”
듈의 눈매가 초승달로 호선을 그
렸다.
“참 예쁜 아이였어. 어린 것답게
해맑고 순수했지. 낯선 이도 퍽 좋
아했고.”
“"•…샤리에트와 만난 적이 있었
나요?”
질문하는 내내 입안이 바싹 말랐
지만,나는 애써 모른 척했다.
진실을 확인하는 일이 두려우면
서도 궁금했다.
내겐 어릴 적,듈을 만난 기억이
있었다.
그는 내 과거와 관련되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먼발치에서 한 번 봤지. 제 아
비 품에 안겨서 깔깔대민서 웃는
모습이 참 예쁘던걸.”
먼발치라면,역시 내가 만난 건
듈이 아닌 걸까.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 더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그런데, 왜 죽인 거죠?”
이제 와서 샤리에트를 죽인 범인
을 찾는 건 의미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물어보고 싶었
다.
나는 상자 속의 작은 아이를 기
억했다.
“해맑고 순수해서.”
“그게 무슨-”
“그 아이가 그렇게 자랄 수 있었
던 건 결국 제 선조들 덕분이잖아.
엄청난 모순이지. 누군가가 고통
속에서 흘린 피로 자란 아이가 그
토록 어여쁘면 안 되는 거잖아.”
“하지만……
뭐라 따지고 싶었는데,할 수 있
는 말이 없었다.
비극의 시작이 너무 깊어서 어디
서부터 짚어야 합지 감이 오지 않
았다.
“왜 그런 표정이야.”
제 표정이 어떤데요?”
“울고 있잖아.”
듈의 지적에 허겁지겁 눈물을 닦
아냈다.
어느샌가 흐른 눈물에 뺨까지 젖
어있었다.
“역시,너도 어쩔 수 없는 내 동
지인가 보네.”
•동지?”
“아, 지.” 그래. 너는 아무것도 모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지
금 네가 느끼는 건 네 감정이 아니
니까.”
듈의 손이 내 머리를 꾹 눌렀다.
나는 눈을 동그람게 뜬 채로 그
를 옹시했다. •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처럼
다정한 손길이었음에도 날 내려다
보는 흉흉한 시선은 전혀 그렇지
않아 목덜미가 오싹했다.
“힘올 얻은 것에 대한 일종의 부
작용이지.”
“……힘이라뇨?”
“예전에 인간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지. 요정을 먹으면 요정의 힘
을 얻을 수 있다고.”
“그건 사실이야. 다만, 그저 요정
의 힘은 인간이 감당할 수가 없어
서 먹으면 금세 죽어버린다는 단점
이 있을 뿐이지.”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
해. 다른 게 있다면,요정은 죽지
않는달까.”
듈이 웃었다.
새빨간 입술 사이로 보이는 송곳
니가 유난히도 날카롭게 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려
다가 금세 닿은 소파 등받이에 얼
굴을 찌푸렸다.
아무리 커도 마차는 마차였다.
도망칠 수 있을 만큼 공간이 여
유 있지 않았다.
나는 입술만 달싹거리다가 결국
천천히 입을 됐다.
“……죽지 않으면요?”
“약간의 부작용을 경험하게 되
지. 예를 들면,잡아먹은 이의 감정
이나,기억 같은 게 흩러들어온다
는 거.”
“요정이 인간을 먹는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게 정상이야. 누구도 상상
하지 못했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
니까. 하지만 세상이 어떻게 도리
로만 돌아가겠어.”
미쳐야 살 수 있는 상황이라면
특히.
듈의 고개가 삐딱해졌다.
“……그래서 누굴 잡아먹었나
요?”
“날 죽이고자 했던 자들, 전부.”
“그리고, 동지들도. 전부.”
산뜻한 고백에 숨이 턱 막혔다.
도대체 이자의 머릿속은 어떻게
되어 먹었길래 이토록 쉽게 죽음을
운운하는 건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두렵지 않았다.
누군가 내 안의 공포를 오려낸
양,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저도 죽일 건가요?”
“안 죽여. 네가 미치지 않는다
면.”
“그러니 미치지 않게끔 마음 잘
추스르길 바라. 오래간만에 본 동
지를 내 손으로 직접 죽이고 싶진
않거든.”
둘의 손이 내 뺨에 닿았다.
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꼬리를 꾹꾹 눌러오는 듈의 엄
지는 눈물을 닦아준다기보다는 오
히려 울음을 재촉하는 것 같았다.
“아가씨,혹시 무슨 일이 있으셨
던 겁니까?”
“아니. 아무것도.”
펠리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뒤로
한 채,나는 거칠게 눈을 비비고
내 방으로 걸어갔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조금 쉬
고 싶었다,아니. 정확히는 그냥 도
망치고 싶었다.
지금쯤 모나차르트의 땅에 묻혀
있을 어린 소녀를 내가 잡아먹었다
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서.
“나는 인간이야. 평범한 인간.”
거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지만,
그런다고 혼란이 잠재워지진 않았
다.
내 눈에는 여전히 정령들이 보였
고,그것은 인간에게 허락되는 힘
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인간이 아니라면…….
나는 생각은 멈추고 거칠게 고개
를 저었다.
그리고 눈가가 새빨갛게 물든 여
자를 노려보다가 자진해서 뺨을 몇
번 내리쳤다.
머릿속이 꽉 차다 못해 터질 것
같았지만 약해져선 안 됐다.
아직 내게는 할 일이 남아있었
다.
지금은 그것만 생각해야 했다.
똑똑- .
고집스럽게 버티려는데,어디선
가 상념을 깨우는 소리가 났다.
나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
를 돌렸다.
문은 아니었고、창문이었다.
“이스?”
나는 앉아있는 하얀 새를 발견하
고 급히 창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기다렸다는 듯 이
스가 퍼드덕거리며 안으로 들어왔
다.
새의 다리에는 작은 쪽지가 매달
려 있었다.
나는 서둘러 쪽지를 확인했다.
고 nJ 일백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