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대용품이었다-148화 (148/204)

148화. 요정의 친구

“비어 블랑 티어드롭. 너와 같은

성을 쓰고,또 비숫한 외모를 가진

사내,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비어 블랑 티어드롭은 티어드봅

의 초대 가주의 이름이었다.

“……티어드롭이 노예 제도를 만

들었다고 말하는 거예요?”

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내

가 아는 요정들을 떠을렸다.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내게 들려

준 적이 없었다.

그 사실에 절로 목이 멨다.

티어드롭이• 노예 제도를 만들었

다면,그걸 알면서도 묵인한 요정

의 감정이 어떨지 가늠조차 할 수

없기에.

“아니. 오히려 그 반대야.”

“반대라면?”

“비어는 요정을 노예로 삼는 건

옳은 일이 아니라면서 강렬하게

장하는 것도 모자라,노예들의 낙

인을 자신의 가문 문양으로 사용했

지. 다들 그를 미쳤다고 여겼고 손

가락질했지만,감히 대항하진 못했

지. 그는 아주 강한 사내였거든.”

둘의 말이 점차 빨라졌다.

그는 영웅담을 읊는 소년처럼 픽

들떠있었다.

“비어는 내가 만나본 인간들 증

손꼽힐 정도로 좋은 인간이었어.”

“하지만,당신은……

나는 말을 다 하지 않고 입을 꾹

닫았다.

둘은 인간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인간에 대해 좋은 평

가를 내린다는 건 이상하게 느껴졌

다.

“인간인 그의 시간이 너무 짧았

고,그의 자손들이 모두가 비어가

될 수 없다는 점만 빼면 정말로 완

벽했지.”

“요정의 친구. 그 단어가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 아마 넌 상상도 못

할걸.”

둘이 거둔 손에 그가 잡았던 머

리카락이 스르륵 바닥으로 흘러내

렸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두 손을 깍지낀 채 한참 침묵

만 유지했다.

“많은 요정이 비어를 그리워했

고,그만큼 그들은 티어드롭에 베

풀었으며,비어의 자손들은 그걸

이용해 이득을 취했지. 그게 지금

의 티어드롭이고.”

티어드롭의 이름이 지금까지 유

지되기까지 좋은 일만 있지 않을

거라곤 생각했다.

아버지만 하더라도 많은 악행을

자행해왔으니,대를 거슬러 올라가

면 더욱 많은 일이 있었을 거라 유

추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입안이 썼다.

가라앉은 사내의 눈은 단순히 내

가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

다.

그는 오랜 세월을 보냈고,그만

큼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사건을

겪어왔다.

물론 안 좋은 의미로 말이다.

“그걸 알면서도 티어드롭을 내버

려 둔 건가요?”

“혹시나 하는 기대가 남아있기

때문이었지. 누군가는 비어를 닮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

“뭐, 이제 그것도 끝이지만.”

듈이 고개를 돌렸다.

마차가 멈췄고,창밖으로 티어드

롭 저택이 보였다.

하지만 나도,듈도 움직이지 않

았다.

아직 우리의 대화는 끝나지 않았

다.

“봤지?”

“뭘 말이죠?”

“비어의 마지막 자손 말이야.”

“이름이 아마도 샤리에트였던

가.”

듈의 눈매가 초승달로 호선을 그

렸다.

“참 예쁜 아이였어. 어린 것답게

해맑고 순수했지. 낯선 이도 퍽 좋

아했고.”

“"•…샤리에트와 만난 적이 있었

나요?”

질문하는 내내 입안이 바싹 말랐

지만,나는 애써 모른 척했다.

진실을 확인하는 일이 두려우면

서도 궁금했다.

내겐 어릴 적,듈을 만난 기억이

있었다.

그는 내 과거와 관련되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먼발치에서 한 번 봤지. 제 아

비 품에 안겨서 깔깔대민서 웃는

모습이 참 예쁘던걸.”

먼발치라면,역시 내가 만난 건

듈이 아닌 걸까.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 더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그런데, 왜 죽인 거죠?”

이제 와서 샤리에트를 죽인 범인

을 찾는 건 의미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물어보고 싶었

다.

나는 상자 속의 작은 아이를 기

억했다.

“해맑고 순수해서.”

“그게 무슨-”

“그 아이가 그렇게 자랄 수 있었

던 건 결국 제 선조들 덕분이잖아.

엄청난 모순이지. 누군가가 고통

속에서 흘린 피로 자란 아이가 그

토록 어여쁘면 안 되는 거잖아.”

“하지만……

뭐라 따지고 싶었는데,할 수 있

는 말이 없었다.

비극의 시작이 너무 깊어서 어디

서부터 짚어야 합지 감이 오지 않

았다.

“왜 그런 표정이야.”

제 표정이 어떤데요?”

“울고 있잖아.”

듈의 지적에 허겁지겁 눈물을 닦

아냈다.

어느샌가 흐른 눈물에 뺨까지 젖

어있었다.

“역시,너도 어쩔 수 없는 내 동

지인가 보네.”

•동지?”

“아, 지.” 그래. 너는 아무것도 모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지

금 네가 느끼는 건 네 감정이 아니

니까.”

듈의 손이 내 머리를 꾹 눌렀다.

나는 눈을 동그람게 뜬 채로 그

를 옹시했다. •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처럼

다정한 손길이었음에도 날 내려다

보는 흉흉한 시선은 전혀 그렇지

않아 목덜미가 오싹했다.

“힘올 얻은 것에 대한 일종의 부

작용이지.”

“……힘이라뇨?”

“예전에 인간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지. 요정을 먹으면 요정의 힘

을 얻을 수 있다고.”

“그건 사실이야. 다만, 그저 요정

의 힘은 인간이 감당할 수가 없어

서 먹으면 금세 죽어버린다는 단점

이 있을 뿐이지.”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

해. 다른 게 있다면,요정은 죽지

않는달까.”

듈이 웃었다.

새빨간 입술 사이로 보이는 송곳

니가 유난히도 날카롭게 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려

다가 금세 닿은 소파 등받이에 얼

굴을 찌푸렸다.

아무리 커도 마차는 마차였다.

도망칠 수 있을 만큼 공간이 여

유 있지 않았다.

나는 입술만 달싹거리다가 결국

천천히 입을 됐다.

“……죽지 않으면요?”

“약간의 부작용을 경험하게 되

지. 예를 들면,잡아먹은 이의 감정

이나,기억 같은 게 흩러들어온다

는 거.”

“요정이 인간을 먹는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게 정상이야. 누구도 상상

하지 못했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

니까. 하지만 세상이 어떻게 도리

로만 돌아가겠어.”

미쳐야 살 수 있는 상황이라면

특히.

듈의 고개가 삐딱해졌다.

“……그래서 누굴 잡아먹었나

요?”

“날 죽이고자 했던 자들, 전부.”

“그리고, 동지들도. 전부.”

산뜻한 고백에 숨이 턱 막혔다.

도대체 이자의 머릿속은 어떻게

되어 먹었길래 이토록 쉽게 죽음을

운운하는 건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두렵지 않았다.

누군가 내 안의 공포를 오려낸

양,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저도 죽일 건가요?”

“안 죽여. 네가 미치지 않는다

면.”

“그러니 미치지 않게끔 마음 잘

추스르길 바라. 오래간만에 본 동

지를 내 손으로 직접 죽이고 싶진

않거든.”

둘의 손이 내 뺨에 닿았다.

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꼬리를 꾹꾹 눌러오는 듈의 엄

지는 눈물을 닦아준다기보다는 오

히려 울음을 재촉하는 것 같았다.

“아가씨,혹시 무슨 일이 있으셨

던 겁니까?”

“아니. 아무것도.”

펠리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뒤로

한 채,나는 거칠게 눈을 비비고

내 방으로 걸어갔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조금 쉬

고 싶었다,아니. 정확히는 그냥 도

망치고 싶었다.

지금쯤 모나차르트의 땅에 묻혀

있을 어린 소녀를 내가 잡아먹었다

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서.

“나는 인간이야. 평범한 인간.”

거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지만,

그런다고 혼란이 잠재워지진 않았

다.

내 눈에는 여전히 정령들이 보였

고,그것은 인간에게 허락되는 힘

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인간이 아니라면…….

나는 생각은 멈추고 거칠게 고개

를 저었다.

그리고 눈가가 새빨갛게 물든 여

자를 노려보다가 자진해서 뺨을 몇

번 내리쳤다.

머릿속이 꽉 차다 못해 터질 것

같았지만 약해져선 안 됐다.

아직 내게는 할 일이 남아있었

다.

지금은 그것만 생각해야 했다.

똑똑- .

고집스럽게 버티려는데,어디선

가 상념을 깨우는 소리가 났다.

나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

를 돌렸다.

문은 아니었고、창문이었다.

“이스?”

나는 앉아있는 하얀 새를 발견하

고 급히 창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기다렸다는 듯 이

스가 퍼드덕거리며 안으로 들어왔

다.

새의 다리에는 작은 쪽지가 매달

려 있었다.

나는 서둘러 쪽지를 확인했다.

고 nJ 일백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