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납치극
" 듈, 그자에 대해 좀 더 알아봐
야겠어요.”
지금이야 듈이 날 경쟁상대로도
여기지 않고 있지만,앞으로도 그
럴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만 약 듈 이 날 걸 림 돌 로 여 기 는
날이 온다면 나는 속수무책으로 처
참하게 당할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황실을 더 캐보도록
하죠.”
“왜 하필 황실이죠?”
“황실과 마찬가지로 후보였던 오
르젠타의 피해가 가장 크니까요.”
블러쉬의 말대로였다,
병의 시작은 펠라시온이나,그곳
은 잃을 게 없었다.
오히려 풍요로운 오르젠타 쪽의
손해가 더 컸다.
이렇게 되면,자연스레 듈의 뒷
배로 의심되는 두 세력 중 황실을
고르는 게 합리적이었다.
그럼에도 찜찜한 기분을 지우지
못했다.
지금이야 오르젠타의 피해가 가
장 컸지만 시일이 흐를수록 수도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따지고 보면,전염병은 두
세력 모두에 이득 될 일이 없었다.
‘도대체 왜, 병을 퍼트린 거지?
그렇다고 다른 세력이 있다고 보기
내가 조금 더 먼 미래까지 기억
하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블러쉬가 황제
가 된 이후,2년 정도를 살았지만
그증 절반은 감옥에 감금되어 지냈
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미래에는 한
계가 있었다.
"혹,걸리시는 게 있습니까?”
“있긴 한데,지금으로선-”
광! 광!
말을 잇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누군가 방문을 급하게 두드렸기
때문이었다.
블러쉬는 빠르게 나와 시선을 맞
교환하고 베란다를 통해 밖으로 빠
져나갔다.
나는 블러쉬가 나간 창문을 서둘
러 닫은 후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잠시 졸다가 갑작스러
운 소란에 깨어난 사람인 척했다.
“이 밤에 무슨 일이지?”
“후즈 남작의 증세를 의사가 확
인한 결과,그가 돌림병을 앓고 있
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돌림병?”
"펠라시온에서 시작된 그 병 말
입니다. 그런데,그 병이■“…/’
집사는 말을 흐렸고 나는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집사는 천으로 입과 코를 막고
있었다.
“말 흐리지 말고 제대로 설명해.
대체 무슨 일이야."
“그날. 파티장에 참석한 귀족들
몇몇에게도 후즈 남작과 비슷한 증
상이 나타나고 있답니다."
“그래서 내게도 증상이 나타나는
지 확인하러 온 거구나?'
집사는 대답 대신,조심스러운
시선으로 내 상태를 확인하고는 짧
은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옷 밖으로 드러난 내 살
갗에는 반점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안심은 잠깐이었다.
불안감 섞인 눈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떨리고 있었다.
'병의 정확한 증상에 대해 아는
게 있니?”
"듣기로는 온몸에 반점이 생기고
갑자기 열이 오른다고 합니다, 그
리고, 같은 공간이 같이 있었던 것
만으로도 전염된다고 하여
집사는 말끝을 흐렸지만 나는 그
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금세 알아차렸다.
어차피 굳이 파티장을 방문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으니까.
“혹시 모르니, 당분간 나는 방에
서 나오지 않도록 할게+”
"그,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이런 일로 괜히 저택 사람들에
게 피해 입히고 싶지 않아.”
내 말에 집사의 눈빛이 흔들렸
다.
아무래도 감동받은 눈치였다,
내가 일부러 이런 상황을 연출했
으리라곤 꿈에도 모르고.,
接 幸 *
“괜찮으신 겁니까?”
“덕분에 쉴 수 있으니 나쁘지 않
아.”
무엇보다 어차피 얼마 걸리지 않
을 테니까.
나는 달력을 집어 들었다.
내가 방에 감금된 지 벌써 일주
일이 다 되고 있었다.
그동안 수도에서는 돌림병이 빠
르게 번져나갔고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하나 같이 문을 걸어 잠갔다.
덕분에 매일 같이 온갖 사람들로
북적거렸던 무역의 땅이라는 찬사
가 무색하게 거리는 텅 비었고, 갑
작스레 멈춰버린 생산활동에 생필
품 의 가 격 은 올 랐 으 며 , 환 자 들 을
향한 비난과 혐오가 쏟아지다 못해
종종 살인 사건까지 초래했다.
자신은 병에 걸리지 않으리란 안
이함이 불러온 참극이었다.
병이 점점 번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수도 사람들은 누구도
대비하지 않았고, 그저 남의 일처
럼 치부했었으니까.
방심한 만큼 돌림병의 확산세는
빨랐고,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더욱
감 당 할 수 없 는 수 준 이 되 어 가 고
있었다.
“타지역은 어때?”
“오르젠타나 펠라시온은 이미 병
이 완 연 하 게 퍼 졌 고 , 뒤 늦 게 동 부
의 말리그테도 움직임을 보였으나
이미 늦은 듯 보입니다."
"남은 건 모나차르트뿐이겠네.”
"저희야 타지역과의 교류가 많지
않기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이
미 대비를 끝내두었으니까요.”
“앞으로 타지역과 모나차르트의
차이가 크게 벌어질 거야.”
대부분 사람은 많은 식량을 비축
해두지 않는다.
식량을 비축해봤자,신선도가 떨
어져 맛이 없거나, 혹은 대부분 썩
어 버리는 일이 많기 때문이었다.
얼음을 이용한 냉동고를 공급했
을 때도 사람들은 식량을 오래 비
축 하 기 위 함 이 아 닌 , 그 저 좀 더
신선하게 음식을 먹기 위함일 정도
였다.
하 지 만 이 번 일 로 그 생각이 크
게 달라지게 될 것이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버리는 데
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식량은 점점 줄
어들지만 새롭게 구할 수 없을 터
이니,사람들은 자연스레 굶주림에
시달릴 것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식량을 오래 비축
할 수 있는 냉동고의 가치는 올라
가게 될 것이었다.
" 슬 슬 얼 음 의 공 급 을 줄 여 야 겠
어.”
“병 때문에 공급이 어려워진다고
하면 될까요?”
“응. 그렇게 해. 어차피 지금으로
선 제 대 로 쉽 게 공 급 되 지 않 아 도
티가 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시간
이 흐르면 점차 아쉬워하는 목소리
가 커지겠지.”
현재 보급된 냉동고는 영구적이
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얼음을 교체해줘야만
했다.
냉 동 고 를 가 진 이 들 은 잠 깐 이 나
마 자신의 선견지명에 감탄하며 냉
동고 속 식량을 야금야금 아껴먹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병은 그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
씬 오랫동안 대륙에 머물렀으니 말
이다‘
“ 그렇게 되면 당분간 얼음은 암
시 장 으 로 돌 려 . 한 동 안 은 식 량 을
모으는 것도, 그리고 그걸 보관하
는 것도 생존에 가장 중요한 일이
될 테니 부르는 게 값이 될 거야.”
물론 그 전에 우리는 살짝 발을
빼야겠지만.
나는 느긋하게 덧붙이며 자리에
서 일어났다.
슬슬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
었다.
“ 미 샤 와 먼 저 출 발 해 . 나 도 곧
따라갈 테니까.”
“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프로스트가 곧장 대답하며 검을
쥐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회복이 빠른
편이었다.
나는 창문으로 훌쩍 넘어가는 그
를 보다가 문밖에서 들리는 소란에
고개를 돌렸다.
우당탕 이어지는 발소리만 들어
도 열댓은 족히 움직이는 모양이었
다.
나는 오늘도 멋지게 연기하고 있
을 사내를 떠올리며 문을 살짝 열
었다.
문을 열었을 때,바로 마주친 눈
동자는 내가 익히 아는 붉은 색이
었다.
“무스 일—’’
"이만 가죠.”
말을 이을 새도 없이 그대로 몸
이 당겨졌다.
나는 거친 척 굴지만 정작 제대
로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손길에
애써 웃음을 참았다.
어느새 내 몸은 사내의 두 팔에
안겨 있었고 뺨에는 뜨뜻한 온기가
닿아있었다.
“대공 전하,이러시면 안 됩니
다!”
“공작 각하께서 가만두지 않으실
“얼마든지 가만두지 말라고 해.
그녀는 티어드롭 공작 영애가 아
닌, 모나차르트 대공비이니까.”
블러쉬의 외침에 그를 제지하기
위해 뒤따라온 병사들이 움찔거렸
다-
세간에는 내가 결혼했다는 소식
이 발표되지 않았지만, 티어드롭
사람들은 다들 암암리에 알고 있었
다.
내가 모나차르트 대공과 서류상
으로는 혼인 관계라는 걸.
결혼으로 성이 바뀌면,바뀐 성
에 대한 권리가 우선시된다는 법률
상 블 러 쉬 의 행 위 를 막 을 명 문 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rt
"아니면 지금 당장 티어드롭 공
작 보고 이곳으로 오라고 하든.”
■
"못하겠지? 그래,그럴 거야. 혹
시나 병에 걸릴까 두려워 아무런
증상 없는 제 딸을 가두고 본인은
꽁꽁 모습을 숨긴 작자가 뭘 어쩌
겠어.”
“대공 전하!”
“즉결처분권을 주장하기 전에 내
앞에서 당장 꺼져. 아무리 천대받
는 모나차르트 대공이라 한들,네
깟 놈들 목 몇 번 비튼다고 해서
누구도 내게 뭐라 할 수 없으니.”
블러쉬가 검 손잡이를 쥔 채 홍
흉하게 눈을 빛냈고,일순간 사방
이 고요해졌다.
블러쉬는 천천히 자신을 둘러싼
자들을 노려보듯 응시하고는 나를
더욱 끌어안았다.
“ 공작에게 전하도록. 내 아내는
내가 데려간다고.”
블러쉬는 나를 안은 채 성큼성큼
나아갔지만 누구도 그의 앞을 막지
못했다.
처음 티어드롭 저택에 왔을 때처
럼 모나차르트의 옷을 입고, 감을
찬 그는 더는 이를 감추지 않았다.
이제 그는 누구든 물고, 갈기갈
기 찢어버릴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걸 아는 이상,누구도 감히 모
나차르트 대공을 말릴 수 없었다.
“어떠 십 니 까? 이 제 만족하십 니
까?”
“만족하다마다요. 아주 멋있었어
물론 누군가에는 짐승 같은 사내
라 할지라도 내겐 세상 멋진 남편
일 뿐이지만.
나 는 블 러 쉬 의 품 을 방 패 삼 아
참았던 웃음을 작게나마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