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대용품이었다-132화 (132/204)

132화. 문제의 시초

“겁먹지 마세요.”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 거 아닌

가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자신감이

죠.”

"경험이요?”

“두려운 것도 막상 마주하면 아

닐 때가 많거든요. 미리 겁먹는 건

그리 좋은 습관은 아닙니다.”

위험을  뻔히  알면시도  등을  떠밀

어 주 는  사 내 를  반 겨 야  할 까 , 조 심

성 없다 탓해야 할까+

나 는  뭐 라  말 해 야  할 지  몰 라  그

냥 콧잔등만 찡그렸다.

그  와중에도  블러쉬는  웃고  있었

다.

“절 믿으십니까?”

" 이 상 한  걸  믿 으 시 네 요 .  당 연 히

믿죠/

44그렇다면 안심하셔도 됩니다.”

"네?”

나도 모르게 물었다,

하지만 블러쉬는 태연하게 말을

이을 뿐이었다.

‘‘저는 제 손에 들이온 걸 한 번

도 놓쳐본 적이 없거든요.”

“심포니아가 잃었다면,제가 다

시 찾으면 됩니다,

“너무 낙관적인 답변이네요. 모

나차르트  대공께서  하실  말씀은  더

더욱 아니고요/1

나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과거, 누구보다  냉소적이었던  사

내를 알고 있는 탓이었다.

하 지 만  블 러 쉬 는  이 번 에 도  미 소

를 지을 뿐이었다.

“ 변 한  거 겠 죠 .  불 가 능 을  가 능 케

하는 사람을 하나 아는 터라.”

“ 어 차 피  일 어 나 지  않 은  일 입 니

다.  포기하지  않은  한, 맞서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 너 무  혼 자  껴 안 으 려  하 실  필 요

없 습 니 다 .  이 젠  혼 자 가  아 니 지  않

습니까.”

무심한  표정을  하고  있으면서  이

럴 때는 또 섬세하다.

나 는  날  향 한  부 드 러 운  시 선 에

다 시 금  말 문 이  턱  막 혀  입 술 만  우

물거 렸다.

아무리 고민해도 내가 할 수 있

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이것도 고맙지만,다른 것도요.”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는데도 웃

음이 났다.

매 순간 날 먼저 위해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퍽 달가웠다.

“그 인사는 다음에 듣죠. 슬슬

기다렸던 때가 오고 있으니 말입니

다.”

블러쉬가  책상에  놓인  달력을  집

어 들었다.

우 리 가  수 도 에  머 문  지 도  꽤  시

간이 흘렀다,

그 리 고  그 건  다 시  말 해  이 제  시

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곧 시작되겠네요,

지옥이.

나는  달력  위의  숫자들을  검지로

천천히 훑었다.

손 가 락 이  한 곳 에  멈 췄 을  때 ,  거

울 에  비 친  나 는  뒤 틀 린  미 소 를  짓

고 있었다.

本 木 重

“ 샤리에트는  여전히  황후가  되고

싶어 해요.”

"그런 것 같더구나.”

" 아직  티어드롭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거겠죠. 아니면,버거운 마

음 에  황 실 로  도 망 치 고  싶 을  수 도

있고요."

아버지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

다.

나는  모른  척하며  마저  차  통에

서 찻잎을 덜어냈다.

“어쩜 그리 마음이 약해선."

" 아 버 지  밑 에 서  크 지  못 해 서 겠

죠.

“ 너무  심려치  마세요.  치묘는  순

조롭고,  조만간  샤리에트도  두각을

드러낼 테니까요.”

"그럴 거라고 생각하니?'*

“ 아무림요.  가축과  함께  자랐다

해 도  맹 수 의  자 식 은  맹 수 잖 아 요 .

그저  저희는  그때를  위해  샤리에트

의  자 리 를  마 련 해 두 면  될  뿐 이 에

요.”

나는  대답을  하면서도  거름망에

찻잎을  거르고, 찻물을  잔에  알맞

게 담아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흐뭇한 시선

으로  보며  내가  건넨  찻잔을  받았

다.

" 그래,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

겠지.”

“ 제가  계속  샤리에트의  마음을

돌려놓아 볼게요.”

" 번거롭겠지만  그렇게  해주렴.

가짜로 황실 사람을 만들어 샤리에

트와 연결시켜뒀다 해도 오래 가진

않을 테니 말이다.”

아버지의 걱정 어린 표정을 보며

나는 속으로 조소했다.

당하는 이에겐 안타까운 일이나,

중간에서 정보를 가지고 노는 입장

에서는  지금  상황이  픽  재미있었

다-

아버지는 파티장에서 샤리에트가

만난 황실 쪽 인물이 내가 만든 가

짜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고,반대

로 샤리에트는 그것이 진짜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내 몫의

찻잔을 쥐었다.

마치 피조물을 구경하는 신이 된

양,  내게  농락당하는  이들의  모습

을  구경할  기회는  그리  자주  오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면,샤리에트가  마음을 돌

릴 것을 준비하는 건 어떨까요? 티

어드롭에  마음을  둘  만한  것이  있

다면 치료에도 도움이 될 테고요.”

'마음을 돌릴 만한 것?”

“저번에 보니,샤리에트가 호위

로  온  엘프  사내를  보고  얼굴을  붉

히더라고요/1

“ 말도  안  된다.  어찌  요정과  사

람이 연을 맺는단 말이야.”

“ 저희는  그  사실을  알지만  샤리

에트는  아니잖아요.  그  아이는  아

직  요정이  어떤  의미인지도  잘  모

르고,무엇보다 그 엘프 사내가 픽

잘생기긴 했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엘프는 아니다.”

아버지가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

다.

나는 순순히 아버지의 의견에 동

조했다.

“물론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하

지만 덕분에 샤리에트가 어떤 사내

를  좋 아 하 는 지 는  알 게  되 었 잖 아

요.”

V ■ 暑■  ■ ■ 暑

“ 어 차 피  데 릴 사 위 를  들 여 야  하

니 , 다 른  것 은  신 경  쓸  것  없 고 .

샤리에트를 받쳐줄 만한 성품에 그

아이가 좋아할 법한 외모의 사내면

되겠죠.”

“……이른 감이 있긴 하나,알아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 물론이죠.  어차피  해야만  하는

일이잖아요.”

반은  장난으로  던진  말이나,  얻

어낸 결과는 제법 괜찮았다.

아버지의  결혼  재촉은  샤리에트

를 초조하게 만들 테고,그만큼 그

녀는 내가 필요해질 테니 말이다.

“ 아, 그리고  결혼  건이  나와서

말이다.”

아버지가  고급스럽게  봉인된  종

이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안에는  신전의  인이  찍힌

결혼증서가 담겨 있었다.

나는 블러쉬와 정식 부부가 되었

다는 사실이 내심 기쁘면서도 표정

관리를  하며  증서를  도로  봉투에

넣었다.

“이것으로 저와 모나차르트 대공

의 결혼이 승인되었군요.'’

“ 최대한  늦추려  했지만  집요한

작자라 할 수 없더구나.”

" 아니에요.  이렇게  늦춘  것만으

로도 대단한 거죠. 솔직히 제 결혼

을  늦 추 느 라 고  그 동 안  손 해 를  많 이

보셨잖아요/

괴 로 운  양  목 소 리 를  짜 냈 지 만  실

은  금 방 이 라 도  웃 음 이  튀 어 나 을  것

같았다.

아 버 지 는  샤 리 에 트 로  인 해  나 를

모 나 차 르 트 로  보 낼  수  없 는  입 장 어

었 고 ,  반 대 로  블 러 쉬 는  약 속 했 던

결 혼 을  하 루 라 도  속 히  진 행 하 길  주

장하는 입장이었다.

결 혼 이  늦 춰 질 수 록  블 러 쉬 의  불

만 어린 목소리는 높아졌고,아버

지는 그를 말리기 위해 모나차르트

의 배를 불려줘야만 했다.

모나차르트  대공비인  나로선  무

척이나  달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

다.

“ 티어드롭이  가진  것에  비하면

일부일  뿐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말

렴. 그리고, 결혼 건도 입단속을 해

두었으니 당분간은 결혼 사실이 알

려질까 걱정할 필요는 없을 테고.”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아니다.                                      네가 지금껏 해준 일이

몇 개인데. 내가 더 고맙지.”

" 제가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인

걸 요 .  무 엇 보 다  이 렇 게  아 버 지 와

좋 은  시 간 도  가 질  수  있 게  되 었 고

요.”

아버지는 부드럽게 웃어 보였고,

나도 따라 웃었다.

이 렇 게 만  보 면  우 리 는  제 법  괜 찮

은 부녀 사이처럼 느껴졌다.

"차 좀 더 드릴까요?”

“그래 주면 고맙지."

다 비워진 아버지의 찻잔을 가리

키자 아버지는 선뜻 잔을 내줬다.

나는 빈 앗잔을 채우는 녹색 찻

물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내 부탁으로 미샤가 따로 준비해

준 찻잎이었다.

“언제 마셔도 차향이 독특하구

나.”

“그럼에도 마실수록 생각나는 맛

이죠. 안 그런가요?”

“그래서인지 더욱 매력적으로 느

끼긴 하지. 이걸 마신 후부터 자꾸

이 차가 생각나지 뭐니. 차를 우리

는 네 솜씨가 뛰어나긴 한 모양이

다.”

“너무 칭찬해주시면 저 거만해질

지도 몰라요?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

누며 하하 호호 떠드는데,어쩐지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자신이 출입을 허락하

자마자 급히 방으로 들어선 펠리오

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일인데,이토록 소란을 피

우는 것이지?”

“그것이…

펠리오는  재빠르게  방안을  살피

더니,  나와  아버지만  있다는  걸  확

인하고는 곧장 입을 열었다.

아버지의  부관인  그  역시, 아버

지  못지  않게  나를  신뢰하고  있었

다.

" 서 부 에 서  병 이  도 는  모 양 입 니

다,

“ 서부의  문제가  이리  소란을  떨

게  할  정돈가?  서부의  병이야, 항

상 있어 왔던 것이잖나.”

아 버 지 가  이 해  안  된 다 는  듯  미

간을 찌푸렸다.

그 도  그 럴  것 이  서 부 에  위 치 한

펠 라 시 온 은  영 토의  대부분이  사막

으 로  이 루 어 져  모 나 차 르 트  다 음 으

로 위태로운 땅이었다.

덕분인지 메마른 땅은 돌림병이

자주  돌고  기근  문제도  심심치  않

게  들 려 와  서 부 에 서  병 이  돈 다 고

한들 신경 쓰는 이는 드물었다.

안타깝게도  그런  안일함이  모든

문제의 시초가 되었지만.

나는  오래전  있었던, 그러나  나

말고는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을 떠

올리며 입매를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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