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31화. 의심 가는 부분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글쎄. 솔직히 지금 우리는 티어드롭 공작 영애를 걱정해줄 만큼 여유 있지 않아서 말이야.”
나는 팔짱을 낀 채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지금 샤리에트를 상대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일렀다.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기에는 내심 찜찜한 것도 사실이었다.
“일단 계속 지켜보긴 하자.”
“지켜보기만요?”
“일단은.”
나는 가볍게 고개를 까닥거렸다.
“아니면, 뒷조사라도 따로 해볼까요?”
“뒷조사?”
“어떤 꿍꿍이를 숨기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궁금하지 않다고 하기에는 아직 풀지 못한 의문이 있었다.
“사실 나도 가짜야.”
그때 샤리에트가 했던 말은 진실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날 괴롭히기 위한 장난이었을까.
어느 쪽도 정답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기에 나는 가만히 시선을 아래에 둘 뿐이었다.
‘사실 감정을 접어놓고 보면, 그때 그녀가 했던 말은 거짓일 확률이 크긴 해.’
아버지가 만만한 사람도 아니고, 분명 샤리에트를 데리고 왔을 때는 그만한 확신이 있었을 것이었다.
애당초 티어드롭 공작을 농락할 정도로 간이 큰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도 하고.
‘……하지만 그 반대라면?’
나도 모르게 콧잔등을 찡그렸다.
“어떻게 할까요?”
“한 번 확인해봐.”
“당연히 그렇게 나오셔야죠. 찜찜한 부분은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뒤탈이 없지 않습니까.”
플렌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이왕 확인해보는 김에 말이야. 이 사람들도 확인해줘.”
“누구 말씀입니까?”
나는 재빨리 펜을 들어 생각해둔 이름 몇 개를 쓴 다음 플렌에게 건넸다.
메모를 확인하는 플렌의 표정은 기묘했다.
“이건 티어드롭 공작의 측근들 아닙니까?”
“맞아.”
“이들은 왜 확인하시려는 겁니까?”
“의심 가는 부분이 있어서 한번 확인하고 싶어.”
샤리에트가 아무리 잘났다 해도 티어드롭 공작 영애를 사칭하는 건 작은 여자애 혼자 벌일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녀의 배후에 누군가 있을 확률이 컸다.
아버지의 눈과 귀를 가린 채 가짜를 진짜로 속여 티어드롭 저택 안에 들일 정도의 힘을 가진 누군가가.
복잡해진 머릿속에 잠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심부름을 마치고 온 멜시였다
그녀는 내 명령에 따라 도로시와 함께 궁으로 돌아온 터였다.
* * *
“오는 데에 불편하지 않았어?”
“괜찮았습니다. 오히려 오래간만에 바람도 쐬고 좋았습니다.”
도로시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혹여나 몸이 좋지 않은 그녀를 여기까지 부른 게 무리한 일을 시키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괜찮을 거라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멜시의 말대로 도로시에겐 딱히 피곤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녀가 쓰고 있는 바퀴 달린 의자가 많은 도움이 되는 모양이었다.
“내가 부인을 여기까지 부른 건, 제안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야.”
“상의하고 싶은 일이요?”
“실은 내가 옷이 좀 많이 필요해질 것 같아서 말이야. 부인의 솜씨를 빌렸으면 해.”
“비 전하의 옷이라면 재봉사가 따로 있지 않나요?”
“내 옷을 만들려는 게 아니야.”
“그럼요?”
“장사를 하려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언제나 잘만 웃던 도로시의 표정이 흔들렸다.
나는 그녀가 당황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태연히 찻잔을 들었다.
“부인도 알다시피, 나는 모나차르트의 시장을 키우는 게 목적이야. 그래서, 등을 세우고 썰매를 준비시켰으며, 거래를 위해 상인들을 끌어들이고 있지.”
“그 부분은 마튼에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문제 있어?”
“옷으로 장사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충분히 가능해. 나는 앞으로 상인들이 모나차르트 깊숙이 들어오게 할 셈이거든. 그들이 우리의 고객이 되어줄 거야.”
상인들이 모나차르트 안으로 들어오려면, 운송 수단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모나차르트는 추웠고, 특히 추위에 익숙하지 않은 타지역 사람들에게는 더 그렇게 느껴졌다.
그들에게 따뜻한 옷을 제공하자는 생각은 나쁜 생각은 아니었다.
아무리 잘 껴입는다 한들 오랜 경험으로 쌓아 올린 모나차르트 특유의 방한 처리된 옷만큼 따뜻하진 않았으니까.
“썩 달가운 얼굴은 아니네. 왜? 내 계획이 별로야?”
“그게…….”
“괜찮아. 편히 말해.”
나는 괜찮다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찻잔을 가볍게 쳤다.
너무 걱정 말고 티타임을 즐기라는 뜻이었지만 그럼에도 도로시의 얼굴에는 걱정이 그득했다.
“제 생각에는 실현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옷이 잘 팔려도 문제이고, 안 팔려도 문제일 테니까요.”
“그 부분은 괜찮아.”
“괜찮다고요?”
도로시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옷이 잘 팔려도 문제라는 건, 그들의 수요를 감당할 만큼 재료를 구하지 못하기 때문일 거야. 사냥꾼들은 수가 많이 준 데다가 척박한 땅에 사는 짐승의 수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 맞지?”
“네. 맞습니다.”
“옷이 안 팔리면, 당연히 손해를 보게 될 테니 안 되는 거고.”
도로시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는 모나차르트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그 마음을 알기에 나는 더욱 이번 일을 하고 싶었다.
이번 일만큼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게 목적만은 아니었으니까.
“부인이 뭘 걱정하는지 알지만 괜찮아.”
“괜찮다고요?”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일을 벌이진 않거든.”
플렌에게 손짓하자, 미리 준비되었던 서류들이 티 테이블 위에 가득 쌓였다.
마튼에게 초대받았던 이후부터 틈틈이 분석하고 정리해서 만든 계획서였다.
“냉정히 말하면, 모나차르트의 모피나 가죽은 상업적인 가치는 대단하지 않아. 모나차르트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봐도 썩 매력적이게 느껴지지 않거든.”
“…….”
“솔직히 모나차르트가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대량으로 재료를 들여와 만드는 편이 수급도 안정적이고 가격도 싸게 먹힐걸.”
넓은 초원이 장점인 펠라시온에서는 전문적으로 목축업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잘만 거래하면, 운송비용을 감안하더라도 그만큼 싸게 옷 만드는 재료를 사 올 수 있었다.
“원한다면 재료를 구하는 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냐. 오히려 문제는 옷을 만드는 사람 쪽이지.”
모나차르트의 옷은 따뜻한 대신, 손이 많이 갔다.
많은 이를 고용한다 해도 만들 수 있는 양은 한계가 있어 아마 내가 예상하고 있는 물량을 꾸준히 감당하는 건 사실상 무리일 것이었다.
“그걸 아시면서 옷을 파시려는 겁니까?”
“아니.”
“네?”
“나는 옷을 판다고 한 적이 없어.”
나는 검지로 가볍게 서류를 톡톡 건드렸다.
내가 가리킨 서류를 확인한 도로시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상인들에게 옷을 대여해주시겠다는 건가요?”
“응. 맞아.”
“그게 가능할까요?”
“다른 곳이라면 불가능했겠지만, 모나차르트에서는 가능하지.”
나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나차르트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모피 옷이 필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아니지. 심지어 모피는 부피도 큰 편이라 보관하기도 어렵잖아. 옷을 산다 해도 상인들 입장에서도 여러모로 골칫거리일 거야.”
무릇 상인이라면, 콩 한 알이라도 더 담아가고 싶어 하기 마련이었다.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짐이 한계가 있다는 걸 감안하면, 당연히 불필요한 짐이 생기는 걸 원할 리 없었다.
상인의 입장에서는 매번 옷을 사거나, 챙겨 다니는 것보다는 약간의 비용을 내고 옷을 빌리는 편이 훨씬 메리트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옷을 대여해주려면 그만큼 다양한 옷이 필요할 거예요. 사람마다 체형이 다 다른 데다가 어떤 사람이 올지도 모르잖아요.”
“그 문제를 해결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
“어렵지 않다고요?”
직접 옷을 만들어 입는 만큼 모나차르트에서는 체형을 꼼꼼하게 재는 게 당연시되었지만, 수도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수도에서 체형을 재서 맞춤옷을 입는 건 여유 있는 사람들뿐이었다.
보통 평민들은 이미 만들어서 나오는 옷을 사서 입고 있었다.
수도에서 쓰이는 방법을 적용하면 문제를 해결하는 건 쉬웠다.
“사람들의 체형 평균치를 낸 후에 표준 규격을 만들어놓으면 돼.”
“표준 규격이요?”
“사람들의 체형 평균에 맞춰서 일정한 규격의 옷을 만들어두면, 맞춤옷처럼 딱 맞진 않더라도 더 다양한 사람이 입을 수 있거든.”
“그런 게 가능한가요?”
“가능한지 아닌지를 따질 필요는 없지. 나는 이미 모나차르트를 제외한 지역의 제국인 표준 규격표를 가지고 있거든. 여기에 모나차르트의 정보만 추가하면 돼.”
어때? 이래도 내 계획이 별로야?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자, 이번에는 한결 편해진 도로시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한 번 더 그녀에게 차를 권하며 다음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