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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용품이었다-7화 (7/204)

| 7화

7화. 귀한 몸

“그래서 진짜를 처리해달라고 부탁하러 온 건가.”

“아닙니다.”

“그럼?”

“저는 그저 제 자리를 갖고 싶을 뿐입니다.”

“네 자리?”

모나차르트 대공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무것도 모른 채, 누군가의 대용품으로 평생 살았습니다. 덕분에 제 의지와 상관없이, 한순간 제가 살아온 인생이 거짓투성이가 되었죠. 저는 더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재미있군. 하지만 딱 그뿐이야.”

“…….”

“나는 자선가가 아니거든. 가치 없는 물건을 주울 이유는 없어.”

짐승을 닮은 눈동자에 목덜미가 서늘했다.

슬슬 짐승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오고 있었다.

방심하면 그대로 물어뜯길 것이었다.

“동정을 바라고 이야기를 드린 게 아닙니다. 애당초 제가 바라는 건, 전하께서 제가 가져온 물건에 제대로 값을 쳐주길 바라는 것뿐이니까요.”

“자신만만하군.”

“제가 가져온 물건을 전하께서 거절할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인가.”

“황금 월계수의 주인을 위한 물건입니다.”

순간, 모나차르트 대공의 눈빛이 달라졌다.

나는 좀 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가슴에 손을 올렸다.

이제는 잘 쓰이지 않지만, 황금 월계수의 주인이라는 말은 황제를 뜻하는 표현이었다.

“위험한 말을 하는군.”

“그게 전하의 계획이지 않습니까.”

노골적으로 드러난 살기에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자리에 앉아 있지 않았다면 그대로 주저앉았을지 모를 노릇이었다.

“저는 전하께서 무엇을 노리고 계신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대로 삼 년 안에 전하의 손에 원하는 걸 쥐어드릴 수도 있습니다.”

“네가 가져온 물건을 산다면 말이지.”

“네.”

하염없는 공포에 몸이 뻣뻣하게 굳었음에도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어디 한번 가져와 봐.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하지.”

“지금은 볼 수 없습니다.”

“볼 수 없다?”

“제가 팔고자 하는 물건은 전하의 미래니까요.”

“나와 지금 장난이라도 하자는 건가?”

모나차르트 두 눈이 어둠 속 짐승의 것처럼 번뜩였다.

“조만간 역병이 퍼질 겁니다.”

나는 으르렁거리는 짐승을 애써 모른 척하며, 꿋꿋이 목소리를 냈다.

“전염성이 빠른 역병이라 치료가 쉽지 않을 겁니다. 치료법은 알고 있으니, 깨끗한 치료소를 준비해주시고, 의사들을 미리 모아놓고 교육을 해주세요.”

“스스로가 얼마나 황당한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지금 제 말을 믿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저도 전하께서 절 바로 믿어주실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 황당한 소리 덕분에 모나차르트는 재해를 피해갈 겁니다.”

“…….”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을 테고, 덕분에 전하의 군대 역시 무사할 겁니다.”

폐쇄적인 모나차르트는 타 지역과 다르게 역병을 피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순간은 잠깐이었다.

대륙을 집어삼킨 역병은 굳게 닫힌 모나차르트의 방벽까지 넘었고 무수히 많은 이들이 죽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재해는 지독하리만큼 잔인했다.

“역병으로 끝이 아닙니다. 역병이 끝나면 메뚜기 떼가 창궐할 테고 기근이 닥칠 겁니다. 그에 대한 대비책도 준비해야 할 겁니다.”

“헛소리를 들어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그러면, 이대로 두고 보실 건가요?”

나는 느긋하게 웃었다.

사내의 시선이 두렵기만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이제 와서 도망치기엔 이미 불을 붙여버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전하. 이건 기회입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 따위가 기회라고?”

“저는 미래를 봅니다. 그래서 전하께서 황제가 되실 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직도 미래 같은 소리를 운운할 셈인가 보군.”

“그래야, 전하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 테니까요.”

먼저 목숨을 잃은 나로선 눈앞 사내의 결말을 알지 못했지만, 어렴풋이 알곤 있었다.

미래의 모나차르트 대공은 황제가 되지만, 모두가 인정한 진짜 제국의 주인은 되지 못했으니까.

“제가 본 미래에서 전하께서는 황제셨지만, 승자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목표한 바를 손에 넣으셨음에도 그것을 빼앗길까 언제나 전전긍긍해야만 했죠.”

“…….”

“제가 전하를 완벽한 승자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완벽한 승자?”

“북부는 제국의 뜻에 따라 이민족 수용 정책을 가장 먼저 수용했지만, 그 결과로 남은 것은 야만인이라는 오명과 배척뿐이었습니다.”

이민족 수용 정책은 황실이 4대 가문의 위세를 떨어트리기 위한 조치였다.

그들의 혈통은 선조가 물려준 힘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으니까.

대가문은 당연히 반발했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단, 한 가문. 모나차르트만 제외하곤.

그 당시의 모나차르트는 몰락 직전이었고, 황실의 지원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당시의 모나차르트 대공은 북부에서 가장 먼저 이민족과 결혼했고, 자연스레 북부에는 이민족의 피가 섞여 들어갔다.

“전하께서 황금 월계수의 주인이 되셔도 편견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남들의 시선 따위가 뭐 중요하다고.”

“전하께서 개의치 않는다고 해도, 한 번 붙은 편견이 꼬리표처럼 전하를 따라다니며 분란을 일으킬 겁니다. 북부의 주인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약점이자, 빌미가 되는 것이죠.”

대가문이 가진 혈통의 힘은 황실이 두려워할 정도였고, 그들을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모나차르트에게는 그 힘이 없었다.

황실의 지원에 매달린 채, 하루하루를 버겁게 살아갔던 모나차르트에는 더는 순수 혈통이 남아 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전하를 어떻게 부르는지 압니까?”

“…….”

“잡종.”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칼날이 내 목에 겨눠졌다.

사내가 조금만 움직이면 그대로 목이 베일 것이었다.

“정말 웃기지 않나요?”

“웃겨?”

모나차르트 대공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꽉 다문 잇새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지독하게 낮았다.

듣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제국의 건국 역사는 전부 옛것이죠. 모나차르트뿐만 아니라, 나머지 3대 가문, 아니. 심지어 황실에조차 고대의 힘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들 스스로를 순수 혈통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건 사실상 불가능하죠.”

핏줄을 지키기 위해 한때, 근친이 이루어지던 시기도 있었다.

혈족 간의 결합으로 태어난 아이는 강한 힘을 갖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근친혼은 온갖 유전 질병을 초래했고, 후계자에 걸맞지 않은 기형아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근친혼은 철저히 금지되었고 추악하고도 어두운 역사로 기록됐다.

“피가 옅어진 건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역사 속에서 떠들던 굉장한 힘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조롱받는 건 모나차르트뿐입니다.”

“…….”

“모나차르트가 가장 약하니까요.”

차가운 칼날이 살갗에 닿았다.

익숙하지 않은 쇠붙이의 감각에 괜히 입안이 바싹 말랐다.

목줄기를 타고 무언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약해?”

“모두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북부라고 하면 마물 고기나 씹어 먹으면서 사는 야만인들을 가장 먼저 떠올리죠.”

“마물 한 마리 잡지도 못할 것들이.”

모나차르트 대공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잔뜩 힘을 준 나머지, 부들부들 떨리는 턱 근육이 그의 분노를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었다.

“그게 바로 모순이죠.”

나는 그대로 목에 겨눠진 검을 쥐었다.

잘 갈린 칼날에 핏물이 주먹 사이로 뚝뚝 흘러내렸다.

아프진 않았지만 살을 파고드는 쇠붙이의 감각이 이상하다 못해 목덜미가 오싹했다.

“사람들은 마물을 두려워하지만, 모나차르트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모나차르트인들이 마물을 상대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보다 그들이 얼마나 찢어지게 가난하고 미개한지에 주목하니까요.”

“…….”

“제국에서 모나차르트의 입장은 천민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는 겁니다.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한낱 벌레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모나차르트가 폐쇄적인 땅이 된 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단단한 껍질에 몸을 숨긴 소라게처럼 제 영토를 방패 삼아 여린 몸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현재 제국에서 모나차르트의 위치는 벌레와 취급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하께서 황제가 되신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겁니다. 벌레가 사람들을 다스린다고 나서면 얼마나 불쾌하겠습니까.”

“반항하는 건 치우면 그만이야.”

“공포로 다스리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하의 반역은 다른 가문들에게도 명분을 주는 일이 될 겁니다.”

황위 계승권을 지닌 모나차르트 대공이 황제가 되는 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황위 계승권을 가진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가문 중 가장 바닥에 있던 모나차르트가 황권을 쥐는 순간, 표면적으로는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제국의 판도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뻔했다.

“모나차르트를 향한 차별과 편견을 없애고, 전하를 모두가 인정하는 황제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나는 모나차르트 대공을 똑바로 응시했다.

상처가 더 깊어졌다는 걸 알았지만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애당초 여기서 물러서봤자, 돌아오는 건 죽음뿐이었다.

“……그럼, 나는 그 대가로 뭘 줘야 하는 거지?”

검이 멀어졌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모나차르트 대공만을 좇았다.

내가 원하는 바를 얻기 전까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저는 전하의 옆자리에 서고 싶습니다.”

“내 옆자리라고?”

모나차르트 대공의 매끄러운 미간에 주름이 졌다.

“간단한 겁니다. 제가 전하를 황제로 만들어드릴 테니, 전하께서는 절 황후로 만들어주시면 되는 거죠.”

“하, 정말…….”

모나차르트 대공의 입매가 삐뚜름해졌지만, 내겐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었다.

“물론 이후, 전하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시다면 정부로 들이셔도 됩니다. 저는 전하의 마음이 어디로 향해 있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전하가 아닌, 황후 자리일 뿐이니까요.”

“노골적이군.”

“그 정도는 받아야 타산이 맞습니다.”

전 귀한 몸이거든요.

덧붙인 말과 달리, 검을 놓은 내 손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그럼에도 나는 보란 듯 그것을 모나차르트 대공에게 내밀며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버려진 대용품 주제에 겁이 없군.”

“그래서 전하를 고른 겁니다.”

“나를 골라?”

“황위 계승권을 가진 건 다른 가문들도 마찬가지죠. 그리고, 그들은 현재 모나차르트보다 월등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가진 힘에 제가 아는 미래가 더해진다면 더 빠르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제게 황후 자리를 주지 않을 테죠.

나는 손에 고인 피를 보며 쓰게 웃었다.

상처가 나면 붉은 피가 나오는 건 다들 마찬가지인데, 피에도 가치가 있다는 게 우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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