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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용품이었다-2화 (2/204)

| 2화

2화. 내 자리는 없었다

* * *

“아가씨, 너무 예쁘세요!”

벨벳은 거울에 내 모습을 비춰주며 연신 칭찬을 쏟아냈다.

곧 있을 파티 생각에 그녀는 나보다 더 신이 나 있었고 그건 다른 하녀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이 사방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늘 파티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아가씨일 거예요.”

“당연히 그래야죠. 누가 감히 티어드롭 공작 영애에 비할 수 있겠어요?”

“맞아요. 모두가 아가씨를 부러워하고 우러러보겠죠.”

하녀들의 기대 어린 시선들에도 나는 멍하니 거울만 바라봤다.

예전 같았으면 데뷔탕트에 설레어 어쩔 줄 몰라 했을 텐데, 지금은 표정 관리조차 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꾼 건 정말로 악몽이었던 걸까?’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는 내 모습이 그대로 거울에 비쳤다.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치장한 덕분에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어느 때보다 예뻤지만, 잔뜩 굳은 얼굴은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꿈일 거야. 아니, 다 꿈이어야 해.’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베일 속에 감춰졌던 티어드롭의 후계자가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었으니까.

나는 어느 때보다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차마 내 모습을 더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잊으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우려고 할수록 기억은 방금 겪은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가씨, 정말로 괜찮으세요? 안색이 좋지 않으세요.”

내가 평소답지 않다 여겼는지 벨벳이 조심스럽게 내 상태를 확인했다.

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지만 애써 눈물을 참아냈다.

혹시라도 모든 게 꿈이 아닐까 봐 자꾸만 겁이 났다.

할 수만 있다면 파티에 참석이고 뭐고 이대로 도망치고 싶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져야 했던 절망감을 또다시 느끼게 될까 봐 두려웠다.

“역시, 의사를 부를까요?”

“응, 아무래도 좀 쉬어야…….”

나는 결국 말을 끝내지 못한 채, 입술을 꾹 다물었다.

여기서 도망치면 꿈이 진짜였다고 인정하게 되는 셈이었다.

“……아니. 괜찮아.”

“아가씨.”

“나는 정말로 괜찮아.”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끔찍한 인생이 내게 주어진 미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젓는 것뿐이었다.

* * *

“오늘도 예쁘구나, 샤리에트.”

아버지가 내게 다정히 손을 내밀며 에스코트를 청했다.

나는 커다란 아버지의 손을 멍하니 바라봤다.

평소처럼 환하게 웃기에는 꿈이 너무도 생생해 덜컥 겁이 났다.

언제나 나를 다정하게 바라봐주던 아버지는 진짜 샤리에트가 나타난 후, 달라졌다.

아버지는 내 앞에서는 그나마 나를 위해주는 척했지만 그건 정말로 ‘척’일 뿐이었다.

나를 티어드롭 공작가의 재산을 노리고 가짜 딸 행세를 한 사기꾼으로 만든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아버지였다.

“감사해요, 아버지.”

나는 아버지를 향해 예의상 미소를 지은 후, 곧장 고개를 돌렸다.

계속해서 아버지를 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널 찾았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훌쩍 큰 널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하구나.”

“…….”

“게다가 네가 데뷔하고 난 후, 수도가 들썩거릴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기도 하고. 네게 눈먼 구혼자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려.”

“…….”

“샤리에트?”

“아, 죄송해요. 오늘 아침부터 몸이 영 좋지 않아서요.”

나는 멋쩍게 웃으며 아버지의 시선을 피했다.

“몸이 안 좋아? 어디가? 진작 말했으면, 의사를 불렀을 것을……. 아니, 아니지. 지금이라도 의사를 불러서 네 상태를 보게 하는 게 낫겠구나.”

“아뇨.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리고, 곧 있으면 중요한 순간이 오잖아요.”

나는 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한 걸음을 뒤로 물러섰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할 수 없지. 하지만, 혹시라도 몸이 더 안 좋아진다면 바로 이야기하렴. 내게 너보다 중요한 일은 없는걸.”

“네, 물론이죠.”

평소의 나라면 아버지의 걱정에 그저 기분이 좋았을 뿐일 텐데.

지금은 억지 미소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리 오렴, 샤리에트.”

“네, 아버지.”

이런 내 속내를 알 리 없는 아버지는 따뜻한 미소와 함께 나를 불렀다.

나는 아버지의 걸음에 맞춰서 걸음을 뗐다.

이곳에서는 유리벽을 통해 1층에 꾸며진 파티장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화려한 샹들리에가 반짝이는 파티장에는 벌써부터 손님들이 바글거렸다.

“아름답지 않니?”

“무척 아름다워요.”

나는 의례적으로 중얼거렸다.

눈이 멀 정도로 화려한 파티장은 언제나 내가 꿈꿔오던 곳이었는데, 모순적이게도 지금의 내 기분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단다.”

곧 이 모든 게 네 것이 될 테니까.

아버지가 힘을 주어 내 손을 단단히 잡았다.

“……그럴까요?”

“당연하지. 너는 내 유일한 딸, 샤리에트인걸. 네겐 이 모든 것들을 가질 자격이 있어.”

“…….”

“너무 긴장하지 마렴. 너는 잘해낼 거야. 계속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잖니. 지금껏 너는 한 번도 날 실망시킨 적이 없었는걸.”

아버지의 말대로 나는 항상 착한 딸이었다.

단 한 번의 반항도 해본 적 없이, 그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언제나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것이야말로 나의 자긍심이었고, 자부심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자랑스러우세요?”

“괜한 소리를 하는구나. 당연히 너는 내 자랑이지.”

“정말로요?”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아는걸. 그러니, 어깨를 당당히 펴렴. 티어드롭 공작인 내 딸답게 말이야.”

“……만약, 제가 티어드롭 공작 영애가 아니면요? 그래도 저는 아버지의 자랑일 수 있을까요?”

나는 아버지를 간절하게 바라보며 두 손에 힘을 줬다.

“큰일을 앞두니 너답지 않게 마음이 약해진 모양이구나.”

“아버지, 저는…….”

“불안해하지 마렴. 네가 샤리에트고, 티어드롭 공작 영애인데. 그 무엇이 두렵겠니.”

아버지의 두 손이 단단히 내 손을 감싸듯 잡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내 불안감을 잠재우진 못했다.

내겐 확신이 필요했다.

“제가 듣고 싶은 대답은 그런 게 아니에요. 저는, 단지 아버지께서 제게-”

“각하!”

“갑자기 무슨 소란이지.”

“그, 그것이…….”

아버지의 부관, 펠리오가 흘끔 내 눈치를 살피더니, 아버지께만 들리게끔 작은 목소리로 귓속말을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반사적으로 숨을 참았다.

부정하려고 해도 지금까지의 일어난 모든 일들은 내겐 익숙했다.

꿈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펠리오가 아버지께 전하려는 소식은…….

나는 더는 생각을 잇지 못하고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얼음물을 뒤집어쓴 양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내가 꾼 꿈은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미래였다.

하지만 모든 게 꿈이 아니라고 확신했음에도 내 시선은 여전히 아버지를 좇았다.

독을 마시고 괴로워하는 나를 내려다보던 무심한 아버지의 얼굴도, 끝끝내 뻗어진 내 손을 외면하던 그 모습도 전부 생생하게 기억나는데도 어쩔 수 없었다.

티어드롭 저택에 샤리에트로서 발을 디딘 순간부터 내게 아버지는 세상의 전부였다.

이제 와서 내 세상의 전부를 보지 말라는 것은 너무도 잔혹한 일이었다.

“미안하구나, 샤리에트. 이 아비는 잠깐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아버지가 내게서 한 걸음 멀어져갔다.

나는 본능적으로 아버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다급하게 아버지의 팔을 잡은 채, 애원했다.

“가지 마세요, 아버지.”

“샤리에트.”

나는 지금껏 아버지를 당황케 해본 적이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착한 딸은 그러지 않는 법이니까.

아버지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짓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죽어도 아버지를 잡은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걸 놓는 순간, 정말로 모든 게 끝나버릴 것 같았다.

“이제 곧 제 생일이잖아요. 파티가 시작될 때까지만 같이 있어주시면 안 되나요?”

덤덤하게 말하려고 하는데 자꾸만 울음이 차올랐다.

뒤늦게 깨달은 사실이나, 그건 내가 처음으로 아버지께 한 부탁이었다.

“샤리에트.”

“가장 먼저 제 생일을 축하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어린아이 같은 투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른다고 해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도 전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를 놓지 못하는 건, 미련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잘한다면…….

내가 더욱 착한 딸이었다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를 탓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었다.

나를 탓하지 않으면 아버지를 미워해야만 했기에.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를 사랑했고, 계속 사랑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

“이제 곧 제 생일이에요. 조금만, 딱 10분만 저와 함께 있어주시면 안 되나요?”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었다.

내 모든 것을 가져간다 해도 아버지가 날 사랑했다는 희망 하나.

그것만 있다면, 나는 모든 걸 악몽이라고 치부할 수 있었다.

“애처럼 굴지 마렴, 샤리에트.”

그런 건 결국 미련일 뿐인데.

차갑게 내 손을 쳐낸 아버지에 나는 흠칫 놀라 입술만 깨물었다.

“미안하다. 파티가 시작하기 전까진 돌아오마.”

아버지는 그제야 아차 싶었는지, 뒤늦게 내 어깨를 두드리며 다정하게 속삭였다.

그렇지만 내 안의 희망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였다.

아버지는 이번에도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꿈에서 그랬듯이.

나는 멀어지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욱 목이 탔다.

파티가 시작되어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짜 샤리에트가 돌아왔으니까.

모든 걸 나쁜 악몽이라고 치부하고 싶었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내가 겪은 건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인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혔다.

‘아냐. 아직은 괜찮아. 샤리에트가 가짜라는 게 밝혀지면…… 아니. 나 지금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나는 홀로 단상에 선 채로 애꿎은 치맛자락만 꽉 쥐었다.

애당초 내가 아는 샤리에트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았다.

내가 가짜이고, 진짜 샤리에트가 나타나면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다는 것이 현실일 뿐이었다.

대용품이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법이니까.

“하하하…….”

나는 어설픈 웃음을 흘리면서 난간에 몸을 기댔다.

새삼스럽게 서러워졌고 스스로가 초라해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당해놓고도 나는 여전히 미련을 놓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흐으읍, 흐윽…… 흑! 흡!”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그대로 주저앉았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이제는 정말로 받아들일 때였다.

이곳에 내 자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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