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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녀의 다툼 (1) (151/152)

외전2.

어느 부녀의 다툼 (1)

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두 사람은 여기까지 와서 저러고 있는 걸까.

레스티아는 노골적으로 질린 눈을 하고서 제 상관과 그 상관의 하나뿐인 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곳은 마법사의 탑, 최상층 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법사들은 명부에 등록, 소속되어 있으며, 개인의 목적 또는 세상에 기여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와 실험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이 마탑이었다.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는 마탑주의 명령에 거부권이 없으며, 그 명령이 세계의 질서를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그에 따라야 한다. 고로 마탑주의 권한은 때론 한 나라의 왕보다 더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마탑주는 7장로와 마탑에 소속된 모든 마법사의 90% 이상이 찬성하는 것으로 선출된다.

그리고 이번 대의 마탑주는 7장로의 만장일치, 탑에 소속된 모든 마법사들의 전원 찬성이라는 믿기 힘든 결과를 도출하며 선출되었다.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소유한 괴물, 10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을 지닌 천재,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법사들이 가장 경외하는 마법사, 마탑 역사에 다시 없을 기록을 세우며 선출된 마탑주.

그 모든 수식어가 가리키는 한 사람, 레이몬드 알렉 카지스는 지금 하나뿐인 소중한 딸 레이나와 나란히 앉아 고개만 반대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성별과 나이만 다를 뿐, 놀랍도록 똑같은 얼굴을 한 부녀가 똑같이 서로에게서 고개를 팩하니 돌리고 앉은 모습에 레스티아는 헛웃음을 흘렸다.

27살이라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유치하게 서로를 향해 열심히 시위하는 모습에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둘의 저런 모습을 보는 게 오늘 처음도 아니었다. 질릴 정도로 자주 봐왔다.

오늘은 또 무엇 때문에 저렇게 서로 심통이 나선 얼굴도 안 보고 있는 건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보나 마나 또 두 사람이 죽고 못 사는 한 사람 때문인 게 틀림없었다. 요는 또 무슨 일로 클레어를 사이에 두고 둘이 다투거나 삐쳐서 저러고 있는 건지였다.

노화가 멈춘 건지 의심스러울 만큼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20대 때와 별다를 바 없는 잘난 외모의 아빠 쪽을 한 번, 그 아빠의 외모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무서울 정도로 예쁘장한 얼굴의 딸 쪽을 한 번. 레스티아의 눈동자가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레스티아는 이대로 조용히 뒤돌아 마탑을 나가고 싶은 마음을 눌러 참으며 크흠, 작게 헛기침을 했다.

뭐야? 하는 날카로운 두 개의 시선이 동시에 레스티아에게 향했다.

“또 왜 싸우셨습니까, 두 분.”

레스티아는 사실 딱히 이유를 알고 싶지도, 괜히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두면 둘 다 온종일 저러고 앉아 죄가 없는 마탑의 분위기까지 망쳐놓을 걸 알기에 어쩔 수 없었다.

레스티아의 질문에 서로를 외면하던 부녀의 시선이 드디어 서로에게 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레이나가 먼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레이몬드를 외면하고는 레스티아에게 억울해 죽겠다는 듯 외쳤다.

“아빠가 엄마랑 못 놀게 했어! 오늘은 엄마가 꼭 레이나랑 놀아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엄마 방에도 못 들어가게 하고 자기 마음대로 레이나 여기 끌고 왔어!”

“아빠가 엄마는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피곤해서 쉬어야 한다고 했잖아. 노는 건 다음에 하면 되고.”

레이몬드는 최근 전시회 준비로 바빠 밤늦게까지 화실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제 아내를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몸이 약하고 자잘하게 자주 앓는 사람인데, 요즘 잘 쉬지도 못하는 것 같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릴 때의 클레어가 너무 즐겁고 행복해 보여서 말릴 수가 없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어제는 제가 살짝 억지를 부려 일찍 잠자리에 들게 하는 것까진 좋았다만, 중간에 클레어가 유혹해오는 바람에 새벽 늦게까지 재우지 못한 걸 지금까지 반성 중이었다.

안 된다고, 당신은 쉬어야 한다고 잠깐 미약한 반항을 해보았지만, 갈수록 더 아름다워지기만 하는 사랑하는 아내의 유혹에 못 이겨 밤새도록 몸을 탐해버렸다. 중간부터는 거의 기억도 없을 만큼 짐승처럼 미친 듯이 그 가녀린 몸을 안고 또 안았다.

마지막에 클레어가 거의 기절하듯 잠들지 않았다면 아마 아침 해가 뜨고 나서도 놓아주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레이몬드는 잠든 아내를 품에 안고서 새벽녘의 스스로를 반성하고, 오늘은 클레어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도록 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침이 되자마자 아무것도 모르는 딸이 문을 두드리며 찾아와 해맑은 얼굴로 제 엄마를 찾기 시작한 거였다.

레이몬드도 처음엔 평소처럼 다정하게, 오늘은 엄마가 쉬어야 하니 대신 아빠랑 놀자고 설득을 해보았다. 그러나 최근 전시회 준비로 바쁜 엄마와 거의 한 달 가까이 제대로 시간을 보낸 적이 없는 레이나의 분노와 반발은 생각보다 거셌다.

오늘은 이미 엄마가 저와 놀아주기로 약속했다며, 그래서 한 달 전부터 엄마를 거의 만나지 못해도 얌전히 참고 수업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해왔다고. 그저 엄마라면 사족을 못 쓰는 엄마 바라기 딸이 매섭게 받아치며 오늘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 우겨왔다.

레이나가 태어났을 때부터 황제 부부를 비롯해 유리와 알렌이 지나치게 오냐 오냐 받아준 탓일까. 한 번씩 이렇게 떼를 쓰고 나오면 쉽게 물러나지 않는 딸의 고집스러운 성격이 레이몬드는 걱정스러웠다.

레이몬드는 그 역시 최근엔 클레어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같이 시간을 보낸 기억이 손에 꼽으며, 클레어와 만나지 못해 불만이 쌓인 건 너 하나뿐이 아니라고 받아쳤다.

물론 오늘 새벽에는 그동안 만나지 못한 만큼 아내의 향기를 마시고 그리웠던 몸을 제 욕심껏 탐한 사실은 쏙 빼놓고 말했다.

“다음이 언젠데! 그래놓고 레이나 벌써 엄마랑 한 달이나 못 놀았어!”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야. 그래도 엄마를 위해서 참는 거야. 레이나는 엄마를 위해 그 정도도 못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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