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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며느리가 되고 싶어요 (128)화 (128/138)

마차에 오른 나는 물끄러미 밖을 보았다. 최근 계속 일에 시달리느라고, 이동하는 시간에도 창밖 풍경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그나마 임신 개월 수가 늘어났다고 업무량을 줄여 주어서 다행이지.’

매일 출근해야 했던 황궁도 이제는 주 2회, 보고만 받으러 가면 된다. 모두 황제 폐하 덕분이었다.

‘수도는 활기차 보이네.’

나는 턱을 괴고 사람들이 오가는 분주한 거리를 바라보았다. 모두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더는 로어가 출몰하지 않는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활기를 되찾았다고 보고받았지. 밤에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고 말이야.’

지금도 로어를 정체를 밝힌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보상하는 것으로 일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보상금을 받은 사람들로 인해 수도 전역에서 가벼운 인플레이션이 일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문제들은 모두 내무부의 소관이었다.

그래도 그런 소란들이 모두 잦아들고 활기를 되찾은 거리를 보고 있으니, 그동안의 고생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뿌듯함이 차올랐다.

‘이대로 로어가 사람들 사이에서 잊히면 좋겠어.’

사람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괴물, 심지어 그 정체가 사실은 절망에 빠진 사람이라니.

‘생각해 보면 사람의 마음속에 그렇게나 깊은 어둠이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잖아. 괴물이 될 정도로…….’

자연스럽게 엄마가 떠올라서, 나는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말없이 마차를 타고 가고 있을 때였다.

다른 마차와 길이 엉켜서 사거리에서 잠시 멈춰 있는데,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났다.

“잠깐만.”

나는 내 시중을 들기 위해서 함께 마차에 탄 하녀에게 물었다.

“저건 뭐니?”

“저거요?”

하녀는 내가 가리키는 곳을 눈을 찌푸리고 쳐다보았다. 사람이 많이 서 있는 데다가, 퍽 멀어서 잘 안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건 작은 가판대였는데, 납작한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뒤집개로 무언가를 휙휙 뒤집고 있었다.

한참 그쪽을 바라보던 하녀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식빵 오믈렛이라고, 요즘 유행하는 길거리 간식이에요. 식빵에 달걀이랑 우유 섞은 걸 묻혀서 굽는 거예요.”

“설탕 넣고?”

“네, 달달하겠죠?”

설명을 들어도 잘 와닿지 않았다. 식빵에 달걀, 우유, 설탕을 입혔으면 그냥 프렌치토스트 아닌가?

‘아아, 그런데 냄새 되게 좋다.’

그동안 별로 입맛이 없었는데, 저 냄새를 맡고 나니 이상하게 배가 고팠다. 내가 물끄러미 그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하녀가 내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면서 물었다.

“사 올까요?”

마차가 멈춘 지금이 기회이긴 했다. 막 만든 뜨거운 식빵 오믈렛을 후후 불면서 먹으면 아주 기분이 좋아지겠지?

‘하지만 황궁에 가야 하는데. 저런 기름 냄새는 잘 가시지 않는단 말이야.’

황궁에서 만나는 이들은 모두 격식을 차리기 때문에, 음식 냄새를 풍기기 곤란했다.

‘뭣보다 내가 가려는 곳은 세루리안의 직장이잖아.’

모처럼 평소보다 신경 써서 나왔는데, 일시적인 충동에 굴복할 수 없었다.

‘공작의 품위에도 어울리지 않고 말이야.’

나는 적당히 하녀에게 둘러댔다.

“……아니야. 내가 길거리 음식을 사 먹었다는 소리 들으면 조셉이 서운해할걸.”

조셉은 루크 공작가의 주방장이었다. 아버지의 얼굴에서 빙그레 미소가 나오는 음식을 만들어 보겠다며 고군분투 중인 사람이었다.

하녀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럼 돌아가서 조셉 씨에게 만들어 달라고 하죠. 조셉 씨가 분명 더 맛있게 만들어 주실 거예요.”

“그래.”

조셉이라면 잘해 주겠지. 분명 맛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런데 왜 자꾸 시선이 간단 말인가.

‘마차는 왜 출발을 안 하고.’

마차가 멈춰 있으니 그 냄새가 계속 내 쪽으로 몰려왔다. 나도 모르게 계속 노점상을 바라보고 있으니, 하녀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재차 물었다.

“……그냥 사 올까요?”

“아냐. 진짜 괜찮아.”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때마침 마차가 출발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작은 명패를 보여 주고 황궁에 들어섰다. 세루리안이 근무하는 기사단 쪽으로 마차를 타고 이동하니, 내가 주로 머무는 내무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건물이 펼쳐졌다.

어느 정도는 걸을 수밖에 없는지라, 마차에서 내려서 정원을 가로지르니, 기사단 정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고개를 작게 끄덕여 인사를 받으면서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저 호칭은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네.’

특히 신경 쓰이는 것은, 내가 ‘루크 공작’이라는 이유로 우러러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루크 공작가는 건국 이래 계속 마물과 싸워 왔기 때문에 무인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는 검을 휘두를 줄도 모르는걸.’

지금이라도 검술을 배워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사단 안으로 걸어 들어가니, 세루리안의 부관이 나를 직접 안내해 주며 말했다.

“아직 회의가 끝나지 않아 단장님께서 나오시지 않았습니다.”

“기다리겠네. 내가 약속 없이 찾아온 거니.”

어차피 기다릴 것을 각오하고, 그동안 보고 있을 서류도 챙겨 온 참이었다.

하지만 한 장 두 장, 서류를 팔락팔락 넘겨도 세루리안은 오지 않았다. 서류를 보고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에 빠졌다.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아까 거기에서 사 먹을 걸 그랬네.’

가만히 앉아서 서류를 보고 있으니 머리를 써서 그런지 배가 더 고픈 것 같았다. 잠시 이맛살을 찌푸리고 아까 길에서 봤던 식빵 오믈렛을 떠올리고 있던 나는, 이내 고개를 붕붕 흔들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그동안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었는데 갑자기 길거리 음식이 이렇게 당기다니. 안 돼. 안 된다고.’

음식에 대한 생각이 사라지라고 고개를 붕붕 흔드니, 뭐가 잘 안 풀린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내 옆에 서 있던 하녀가 물었다.

“마님, 따뜻한 차에 우유를 더 부어 드릴까요? 아니면 꿀을 듬뿍 넣어 드릴까요?”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 순간 필요한 건 우유도, 꿀도 아니었으니까.

“아니야.”

내 대답에 하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나대로 당황하고 말았다. 됐다고 하면 되지, ‘아니야’는 뭐냐고.

‘으으, 완전히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내가 아까 거리에서 식빵 오믈렛을 먹지 못해서 사나워졌다는 걸 눈치챌 수 있으리라. 나는 다시 의연한 척 펜을 쥐었다. 하지만 당연히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식빵은 두툼하게 자르나? 아니면 귀퉁이만 사용하나? 좀 오래되어서 딱딱해진 식빵을 사용할지도 몰라.’

오믈렛이라는 이름이 붙은 걸 보니, 야채도 들어가고 달걀도 둥글고 포슬포슬하게 부쳐 주겠지. 예상되는 맛인데도 입에 침이 고였다.

‘으으, 이렇게 후회할 줄 알았으면 그냥 사 먹을 걸 그랬다!’

나는 원래 한 번 했던 결정을 돌이키지 않는 편인데, 허기 때문에 머리가 어떻게 된 건지, 짜증과 초조함이 밀려왔다. 내가 배고픔에 막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때쯤, 세루리안이 타이밍 좋게 들어왔다.

“에델? 여긴 무슨 일입니까? 오늘 당신은 황궁에 올 일이 없지 않습니까.”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세루리안이 놀라워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내 팔을 부축해 주었다. 그의 팔을 붙들고 일어난 나는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 빙긋 웃었다.

“당신이랑 함께 데이트하고 싶어서 왔지요.”

“데이트 말입니까?”

“네. 요즘 바빠서 우리 늘 집에만 있었잖아요.”

내 말에 열린 문틈으로 밖의 소리가 울렸다.

“신혼이십니다, 세루리안 경!”

“사랑이 넘치는 신혼이시군요!”

세루리안은 내게 언제 표정을 보여 주었냐는 듯이, 무뚝뚝한 얼굴로 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당장 돌아가도록!”

세루리안의 일갈에 흩어지는 거친 발소리가 꼭 춤추듯 경쾌했다. 나는 슬쩍 세루리안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오늘 일정에 회의 한 건만 있는 걸 보고 찾아온 건데…… 제가 방해한 건 아니지요?”

“없는 시간도 만들어야지요. 기쁩니다, 에델.”

이번에는 세루리안이 내 뺨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흩어진 줄 알았던 목소리가 다시 소곤소곤 문밖에서 울렸다.

“와, 단장님 저런 모습 처음 봐.”

“넌 처음이냐? 나는 헤이스팅스에서 질리도록 봤는데.”

“……!!”

세루리안이 다시 고개를 들자, 이번에는 진짜로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나는 풋,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기운차네요.”

“군기가 해이하군요. 부끄럽습니다.”

세루리안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이내 강아지처럼 눈을 반짝거리며 나에게 물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당신과 하려고 왔는데…… 혹시 당신은 이미 식사했나요?”

“아닙니다.”

바로 돌아오는 대답이 오히려 더 수상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세루리안을 쳐다보았다.

“혹시 지금 그냥 두 번 먹어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요?”

“…….”

거짓말을 못 하는 세루리안은 딱딱하게 턱을 굳혔다. 보아하니, 회의가 길어질 것 같아서 회의 전에 후다닥 기사들끼리 간단히 식사를 한 것 같았다. 나는 엄격한 어조로 세루리안을 꾸짖었다.

“절대 그러지 마세요. 하나도 안 기뻐요, 그런 배려는.”

내 말에 세루리안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을 때는 말하겠습니다.”

“당신은 뭐든 너무 잘 참아서 걱정되어요.”

세루리안은 다른 사람보다 감정 표현이 드물고 유독 인내심이 강해 지나치게 맹목적인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그런 성품 때문에 그가 어떤 손해라도 보는 건 원치 않았다.

‘이만큼 말했으면 더 그러진 않겠지.’

나는 다시 산뜻한 어조로 세루리안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식사는 이미 했다는 거죠?”

“예.”

“그럼 간단한 식사와 차를 동시에 먹을 수 있는 곳으로 가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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