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쁜 며느리가 되고 싶어요 (127)화 (127/138)

다시 돌아온 현재, 제국 내에 ‘진정 시럽’에 관한 전말이 밝혀진 뒤에도 기사단에는 여전히 특수부가 존재했다.

루크 공작가가 ‘진정 시럽’에 대한 모든 책임을 졌기 때문에, 여전히 특수부의 단장은 세루리안이 역임하고 있었다. 이후 루크 공작가의 행보 덕분에 오히려 그에 대한 신뢰도 더 돈독해진 참이었다.

오늘 특수부의 기사들은 황실 사냥제를 앞두고 사냥터에서 출몰할지도 모르는 마물들을 미리 제거하러 나온 참이었다.

넓은 사냥터를 반나절 동안 말을 타고 돌고 나니, 체력이 좋은 기사들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잠시 쉬었다가 재개하지.”

세루리안은 그렇게 말하고 휴식 시간을 가졌다. 안 그래도 쉬고 싶었던 기사들은 기뻐하며 말에서 내렸다.

‘요즘 확실히 부드러워지셨어. 예전이라면 겨우 이 정도로 지쳤냐며 호통치셨을 텐데.’

세루리안의 부관은 쉬고 있는 세루리안을 흡족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다른 기사들이 보기에도 세루리안이 달라 보였는지, 한 기사가 세루리안에게 웃으며 말을 붙였다.

“단장님 요즘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그런가.”

대답은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잘생긴 얼굴은 예전처럼 차갑지 않았다. 다들 그 얼굴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니, 다른 기사가 말했다.

“야, 그것도 못 들었냐. 단장님 아기 가지셨잖아.”

“오오오, 정말입니까?”

“신혼을 좀 더 즐기시죠! 아이가 생기면 신혼은 끝이거든요.”

“그건 경의 이야기 아닌가?”

그들 중에는 가정을 꾸린 이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온갖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이미 자녀가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늘어놓았다.

“부인분께서 입덧 때문에 한참 예민하시겠군요.”

“맞습니다. 그때는 크래커와 물밖에 못 먹잖아요.”

“배고프고 속이 울렁거려서 그런가, 얼마나 예민하던지. 그때의 아내를 떠올리며 지금 아내를 보면 완전 다른 사람입니다.”

모두 입덧을 아주 끔찍한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세루리안은 의아하기만 했다. 세루리안은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이가 순한지 딱히 그런 일은 없었다. 아내도 입덧 이야기를 한 적이 없고.”

“오오, 그거 정말 행운이네요. 어떤 아내들은 구하지 못할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고 들었거든요.”

“그때 먹고 싶은 음식을 구해 주지 못하면 평생 미움을 받는다지?”

기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루리안은 조금 서운해졌다.

에델은 먹고 싶은 것을 사 달라고 세루리안에게 의지하기는커녕, 세루리안이 극성스럽다며 다가갈 때마다 손을 휘휘 저었기 때문이다.

‘혹시 나를 배려해서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혹은 지금 너무도 바빠서 먹을 것 생각을 못 하는 걸 수도 있었다. 세루리안이 돌아가면 아내와 다시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한 기사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 혹시 그런 이야기도 들어 보셨나요? 아내 사랑이 지극한 남편 중에는 입덧을 대신 해 주는 경우도 있대요.”

“……뭐?”

그 말에 세루리안의 안색이 바뀌었다. 심각해진 세루리안을 보며 부관이 너스레를 떨었다.

“뭐, 설마 그렇게까지 유난인 남편이 있겠습니까? 농담이겠지요.”

부관이 애써 그렇게 수습하려는데, 이 눈치 없는 기사는 주절주절 그 말을 더 이어갔다.

“진짜라니까요. 제 동생의 남편은 갑자기 고기도 못 먹겠다고 끙끙대더라고요.”

“에엑? 진짜입니까?”

“정말 사랑이 지극한가 봅니다.”

다른 기사들은 그런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라는 듯이 눈을 깜빡거렸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세루리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진짜 사랑하면 입덧까지 대신 해 준다니.

‘그럼 나는?’

그는 다른 사람들이 유난스럽다고 할 만큼 자신이 에델을 사랑한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왜 입덧을 대신 하지 않지?’

에델이 들었다면 무슨 소리냐며 어깨를 때렸을 생각이었다.

* * *

나는 차를 마시다 말고 턱을 괴었다. 요즘 세루리안이 이상하다.

‘뭐가 이상하냐고 물으면 딱히 말하기 어려운데, 뭔가 이상해.’

묘하게 나를 피하는 거 같다 싶으면서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갑다. 어제만 해도 그랬다. 함께 식사하자니까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

‘하지만 식당에 가다가 내가 휘청이니까 얼른 날 안아 주었고 말이야.’

안아 주기만 했는가. 아무래도 다리가 아파서 그런 모양이라며 잠들 때까지 주물러 주기까지 했다.

‘보통 임신했을 때 신랑이 안 하던 짓을 하면 바람이 난 거라지만.’

하지만 세루리안을 보면, 전혀 그런 건 아닌 듯했다.

백날 ‘부부 클리닉’ 같은 칼럼을 썼으면 뭐 하나. 막상 내 문제가 되니, 내가 들어 왔던 많은 이야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함께 차를 마시고 있던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최근 공작 위를 내려놓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 아버지였다.

“아버지, 세루리안이 좀 이상하지 않나요?”

아버지는 찻잔을 든 채로 한 점의 표정 변화도 없이 대답했다.

“전혀.”

저렇게 칼같이 대답할 건 또 뭐란 말인가. 어이가 없어진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핀잔을 주었다.

“아니, 그렇게 단답으로 대답하지 마시고요. 질문한 게 머쓱해지잖아요.”

그랬더니 아버지는 조각상인 양 몸은 굳어진 채로 입술만 조금 더 벙긋거렸다.

“전혀 이상하지 않다.”

“…….”

단답으로 대답하지 말라고 했다고 설마 조금 단어를 덧붙이신 건가.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웃으면 내가 더 뻘쭘해지겠지?

결국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아버지에게 물은 내가 바보지.’

본인 마음도 이제 겨우 표현하게 된 아버지에게 세루리안의 심경을 묻다니. 나는 한숨을 내쉬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 자신을 의지하여 답을 찾기 위해 계속 고민에 빠졌다.

최근 세루리안의 이상행동은 주로 이런 식이었다.

‘이상하게 나랑 시선을 마주치면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사람처럼 후다닥 고개를 돌린단 말이야.’

도대체 왜 그럴까.

애초에 무언가를 잘못할 남자가 아니니 그것도 아닐 테고. 애초에 그는 황궁에 출근하는 시간 빼고는 내 곁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도통 모르겠다.’

나는 끄응,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버지가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제법 배가 나왔구나.”

“그러니까요. 이제는 아기가 배 속에 있다는 게 실감이 나요.”

그의 말에 나는 두 손바닥을 배 위에 얹었다. 임신을 알게 된 뒤로도 두세 달은 배가 납작해서, 때때로 임신이라고 착각한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꽤 배가 나와서, 이제는 누가 봐도 임산부였다.

아버지도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불편한 것은 없고?”

“저는 불편한 거 없어요. 하지만 어제 의원이 너무 살이 안 붙어서 걱정이라고 하더라고요.”

보통 지금 개월 수에는 산모의 몸무게가 5킬로 정도 늘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둥그렇게 나온 배를 제외하고는 외양에 변화가 없었다.

‘나는 몸이 가벼워서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입덧은커녕,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오히려 임신하기 전보다 식욕도 줄었다.

‘딱히 피곤하지도 않고. 컨디션은 최고로 좋은 거 같은데.’

하지만 나만 생각할 게 아니었다. 내 배 속에는 아기가 있으니까.

의원은 산모의 몸무게가 너무 적게 나가도 아기의 발달을 해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에는 한가로이 웃을 수가 없었다. 나는 턱을 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역시 억지로라도 더 먹어야 하는 걸까요?”

답이 정해진 질문이었다. 내가 코끝으로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아버지가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답을 내놓았다.

“딱히 신경 쓸 필요 없다.”

그 말에 나는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아버지는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런 표정이지?”

“아니, 의외라서요. 아버지도 얼른 한 술이라도 더 뜨라며 성화이실 줄 알았는데요.”

임신한 것을 밝힌 뒤로 세루리안과 아버지가 얼마나 내게 주접을 떨었던가. 그래서 나도 아버지가 답하기도 전에 미리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말이다.

내 말에 아버지는 시큰둥한 어조로 담담히 대답했다. 그 또한 뜻밖의 대답이었다.

“넌 그냥 체질이다. 네 엄마도 너를 가지고 바짝 말랐었지.”

“……엄마를 지켜보셨어요?”

“아니.”

뭐야, 안 봤는데 어떻게 알아.

이상한 대답에 미간을 찌푸리니,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서 나와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다시 그녀를 보면 놓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일부러 보지 않았다. 하지만 부하들에게 보고는 받았지.”

“보통 그런 걸 지켜봤다고 해요.”

결국 직접 보기는 마음이 아파서 다른 사람을 시켰다는 소리였다.

‘마냥 놓은 건 아니었나 보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원망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엄마도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의 진심을 들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다시 울적해진다.’

아버지는 그런 내 기분을 잘라내듯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너는 물론이고 네 엄마도 건강했지 않나. 그냥 체질이다. 굳이 신경 쓸 필요 없다.”

아무리 선례가 있다고 해도 이렇게 확신에 차 대답하기 어려울 텐데. 나는 눈을 깜빡거리며 아버지를 보다가 어깨를 움츠리고 푸시시 웃었다.

“아버지는 어떤 때는 되게 소심한 거 같은데, 어떤 때는 또 되게 대범하고 합리적이세요.”

내 말에 아버지가 다시 고개를 돌려서 흘긋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욕 같은 칭찬 고맙구나.”

“칭찬 아닌데요.”

“…….”

왜 칭찬이라고 생각하세요. 너무 쉽게 넘어가려고 하시네.

어쨌든 아버지의 말은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니?”

“세루리안이 보고 싶어서요.”

아버지랑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보니, 정작 세루리안과는 대화가 부족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루리안에게 유난이라고 핀잔만 주었지, 그가 무슨 생각으로 내게 음식을 권하는지는 이야기를 안 해 봤어.’

세루리안은 분명 내 건강에 대해서 걱정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우리 엄마 이야기를 해 주면 안심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내가 하녀에게 외출할 거라고 이야기를 하니, 아버지가 턱을 괴고 뚱한 어조로 말했다.

“아직 퇴근하지 않았을 텐데.”

그가 황궁에 있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가끔은 마중 나오는 것도 좋아하지 않을까요?”

나도 바람을 쐬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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