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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며느리가 되고 싶어요 (117)화 (117/138)

“하아?”

포텐샤 공작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당당하게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말했다.

“제가 주인이니 제 권한으로 칼리마에게 기사가 되라고 명령해도 되지만, 포텐샤 공작님을 존중해서 여기 온 거예요. 그러니 칼리마가 기사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세요!”

칼리마는 아직 정식으로 내 시녀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고, 사교계에도 포텐샤 공녀의 기행은 널리 알려진 터였다.

내 주장에서 흠을 잡기 어려웠던 포텐샤 공작은 미간만 찌푸리고 있다가 몸을 돌렸다.

“……일단 들어와 앉지.”

그가 등을 돌리자, 칼리마가 슬쩍 내 손에서 팔을 빼려고 했다. 포텐샤 공작은 등에도 눈이 달렸는지, 기민하게 눈치채고 말했다.

“너도 도망치지 말고 들어오거라, 칼리마.”

칼리마는 움찔하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나와 팔짱을 꼈다.

* * *

공작가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1층은 무엇인가를 수리하느라 한창 부산스러웠다. 가만 보니 저곳은 응접실인 거 같은데…….

“헉.”

공룡 한 마리가 날뛴 것처럼, 응접실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문은 경첩이 떨어져 나가서 덜렁거렸고, 소파는 반 토막, 다 부서져서 치웠는지 휑할 정도로 장식품이 없었다.

포텐샤 공작이 비웃듯이 말했다.

“우리 딸아이가 자기가 어떤 사고를 쳤는지는 말하지 않은 모양이군.”

“깨부쉈다고는 들었는데…….”

이렇게 심하게 날뛰었다고는 말하지 않았지.

‘이건 정도가 너무 심하잖아요, 칼리마! 이런 고풍스러운 응접실을 초토화시키다니!’

내가 그런 시선으로 칼리마를 응시하니, 칼리마도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너무 화가 나서 눈앞이 보이질 않았어요.’

이러니, 들어오라는 소리에 바로 등을 돌리고 도망치지. 일단 화가 나서 사고를 쳤어도 그 현장을 마주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한 법이니 말이다.

다른 응접실로 가서 자리에 앉자마자 포텐샤 공작이 본론부터 꺼냈다.

“내가 왜 우리 딸아이가 기사가 되는 걸 반대하는지는 알고 있소?”

“모릅니다.”

“기사들이 보통 은퇴하는 나이는 마흔에서 쉰. 그 전에 지휘관급으로 진급하지 못하면 대부분 전역하지. 하지만 여기사의 은퇴는 더 빠르오. 아무리 늦어도 서른다섯을 넘기지 않소.”

전역에 있어서 남녀 간에 차이가 있단 말인가. 보통 스물한 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만큼, 서른다섯에 은퇴하는 것은 지나치게 빠른 감이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서 그렇게 빨리 전역하죠? 오히려 여성들은 서른다섯이 넘어가면서 점점 더 근육이 붙잖아요. 신체적 이유를 들려면 그 나이에 전역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데요.”

여러모로 불합리한 이야기였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 이유가 있나 들어나 보자.’

나는 볼을 부풀리고 잔뜩 심통 난 표정으로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포텐샤 공작의 대답을 듣자 조금 허탈해졌다.

“그렇게 기사로서 자신을 투신하면서 살다가, 일을 그만두고 주변을 돌아보면 그땐 뭐가 남지? 아마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거요.”

일만 하다가 돌아보니 아무도 내 주위에 없더라. 그건 다른 직종에서도 흔한 일이었다.

“말하자면 가정을 꾸릴 수 있는 마지막 선이 서른다섯이라는 거지.”

하지만 기사의 경우에는 좀 더, 날것의 이야기였다.

결혼 적령기가 언급되자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나는 코끝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내가 신문사에서 일할 때도 뭐만 하면 다들 결혼 이야기를 해 댔으니.’

제국의 평균 혼인 연령을, 칼리마는 이미 조금 넘긴 상태였다. 포텐샤 공작이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내가 수긍하는 기색을 보이니, 그는 조금 누그러진 어조로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 딸아이는 고위 귀족이지. 보통 고위 귀족들의 혼인 연령이 다른 계층에서보다 낮다는 것도 알아줬으면 좋겠군.”

포텐샤 공작의 주장에, 칼리마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버지는 정말 여전하시네요. 꽉 막히고, 답답하고 말이에요.”

진심으로 일그러진 미간에서, 이런 대화가 이미 여러 번 오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시간 낭비였어요. 일어나요.”

“잠깐만요, 칼리마.”

하지만 오늘, 나까지 데리고 와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평소와 같이 끝나서는 안 되지 않나. 나는 칼리마의 손목을 붙들었다. 그리고 조금 더 강경한 어조로 포텐샤 공작에게 말했다.

“포텐샤 공작님, 제가 냉정하게 말씀드리는 걸 이해하세요.”

“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아까부터 줄곧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었다.

“칼리마는 기사가 되지 않아도 어차피 지금 상태로는 시집가기 글렀어요.”

“……지금, 뭐라고?”

직설적인 말에 포텐샤 공작은 당황한 듯 눈을 치떴다. 나는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요! 칼리마는 혼인할 생각이 없고, 계속 공작님과 엇나가기만 할 뿐이니까요. 게다가 칼리마가 이렇게 응접실을 부수는 걸 보고도 청혼하는 남자는 수상한 사람이니까 절대 결혼시키면 안 돼요!”

멀쩡한 사람이라면 저 싫다고 응접실 때려 부수는 여자랑 결혼하겠다고 하지 않을 터.

‘그러니까 누구를 데려오든, 평행선이란 말이야!’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누구도 원하지 않는 일을 강요할 수 없다. 설령 부모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내 말을 들은 포텐샤 공작의 눈썹이 쓱 올라갔다. 그는 입술을 시근거리며 대답했다.

“나를 화나게 하려고 온 거라면 잘 찾아왔군.”

내 이야기를 그저 자신의 화를 돋우기 위한 것으로 치부한다면 우리 사이의 대화도 이것으로 끝이었다.

‘평소라면 나도 그냥 여기까지 하고 물러났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쉽게 물러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칼리마의 일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힘을 주어서 말을 보탰다.

“공작님, 이건 정말 답답한 아버지를 둔 딸로서 드리는 충고예요. 칼리마가 아직 공작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그만 고집 부리시고 칼리마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후회하실 때는 이미 늦어요.”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나는 마지막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결혼이 인생의 답이 아니란 것은, 공작님께서도 이미 아시잖아요.”

* * *

칼리마가 다시 루크 공작가를 찾은 것은, 내가 포텐샤 공작과 이야기를 나누고 온 다음 날이었다.

내 맞은편에 앉은 칼리마는 정갈하게 포장된 과자 상자를 선물로 내밀며 말했다.

“마님 덕분에 이야기를 잘 끝낼 수 있었어요.”

“제 덕분에요?”

솔직히 자신만만하게 나선 것 치고,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온 것 같아서 속이 상해 있었는데, 칼리마가 그렇게 말하니 깜짝 놀랐다. 내가 눈을 깜빡거리고 있으니, 칼리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걱정하시더라고요. 혹시 마님의 결혼 생활에 문제가 있냐고요.”

“에엑! 그게 그렇게 들리셨대요?”

내가 결혼이 인생의 답이 아니라고 해서 세루리안과 불화 중이라는 것으로 들렸나!

‘으윽, 지금 생각하니 진짜 그런 말 같긴 하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데!’

사실 시작은 그리 순수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내가 오해 살 말을 했나. 어떻게 해?’

내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으니, 칼리마는 깔깔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저희 아버지는 꽉 막힌 분이라서 원래 대화하기 힘들어요. 자기 좋을 대로만 들으시거든요.”

잠깐 만났는데도 그런 이미지가 강하기는 했다. 심지어 그 모습이 우리 아버지를 닮아서 한숨도 나왔다.

‘로어 사냥꾼들은 죄다 자기 말만 하나 봐.’

칼리마는 우아하게 홍차를 들이켜며 대답했다.

“그래도 결혼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말은 들으셨나 봐요. 아버지가 납득하셔서 다행이에요.”

“그 말은?”

“네. 마음대로 하래요.”

“와아!”

드디어 포텐샤 공작이 칼리마가 기사가 되는 것을 허락했다!

“축하해요, 칼리마.”

이미 기사였었는데, 다시 기사가 되는 걸 축하하다니 어딘가 좀 이상했지만 말이다. 내가 활짝 웃으며 손뼉을 치니, 칼리마는 쑥스러운 듯 어깨를 움츠리며 대답했다.

“어휴, 제가 그렇게 말씀드릴 때는 아예 듣지도 않으시더니, 마님 이야기에는 홀라당 넘어가시는 거 보고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 아세요? 아버지지만 이마에 딱밤을 먹이고 싶었다니까요.”

“참느라고 고생했네요.”

그 와중에도 아버지가 얄미웠다니, 칼리마다웠다. 내가 칼리마의 말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자, 칼리마는 정색하고 되물었다.

“안 참았는데요?”

“……?”

안 참았으면 어떻게 했는데?

‘무서우니까 묻지 말자.’

설마 딱밤을……. 아, 아니겠지.

나는 고개를 흔들어서 포텐샤 공작에 대한 생각을 털어 버렸다. 그리고 대신 다른 화제를 꺼냈다.

“칼리마, 그런데 오늘 칼리마가 한 말 중에 잘못된 것이 있어요.”

“뭔데요?”

칼리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더 이상 저를 마님이라고 부르면 안 되죠. 에델이라고 부르세요. 우리는 친구잖아요.”

전부터 그녀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 거슬렸었다. 그녀의 신분이 낮지 않은 데다, 무엇보다 우정이 아니라면 설명이 불가능한 도움을 주는데 아랫사람처럼 대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칼리마는 내 친구잖아.’

그것도 세상에 둘도 없이 절친한 친구 말이다.

“어머나. 영광이에요, 에델.”

그리고 그런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칼리마는 매력적인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에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나를 마님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래도 저는 마님이라고 부를 거예요. 오늘처럼 사고를 치면 루크 공작가로 도망쳐 올 구실이 필요하니까요.”

칼리마는 웃었지만, 나는 차마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오늘처럼이라니.

‘포텐샤 공작가에서 또 뭔가 거하게 사고를 치고 온 모양이구나.’

도대체 무슨 사고를 쳤길래, 기사가 되는 것도 허락받았는데 도망쳐 왔단 말인가.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야겠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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