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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며느리가 되고 싶어요 (111)화 (111/138)

세루리안의 고집대로 결국 나는 마차까지 세루리안에게 안겨서 이동해야 했다. 나는 그의 품에 안긴 채 고개를 들었다. 햇살 아래 휘황찬란한 얼굴이 아름답게 빛이 났다.

‘아아, 진짜 잘생겼다.’

내 남자라서 하는 생각이 아니고, 정말 멋있었다.

‘옆얼굴도 완벽하고, 정면으로 봐도 멋있고.’

처음 봤을 때도 눈을 뗄 수가 없었지.

내가 속눈썹과 콧날까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으니, 세루리안이 한쪽 눈을 살짝 찌푸리며 나와 시선을 맞췄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올해 초만 해도 제 인생이 이렇게 변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싶어서요.”

“아, 그건 그렇지요.”

내 말에 세루리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우리는 서로의 존재도 몰랐는데 말이다.

이렇게 갑자기 결혼해서 부부가 된 것도 신기한데, 이제는 아이까지 태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아기는 역시 세루리안을 닮았을까? 딸이든 아들이든 예쁘겠지.’

하지만 어쩐지 날 닮을 것 같단 말이야. 나도 엄마의 금발을 닮았으면 좋았을 테지만, 정작 닮은 건 공작님의 붉은 머리잖아.

세루리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았다.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세루리안이 내 눈꼬리에 쪽 하고 입을 맞추며 말했다.

“나온 김에 아기용품을 사러 가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기방도 꾸며야지요.”

“아기방이라뇨. 아직 멀었어요.”

아직 배도 나오지 않았는데, 아들인지 딸인지도 모르는데, 아기방이라니.

내가 손사래를 치면서 웃자, 세루리안은 가벼운 어조로 대답했다.

“즐거운 일은 천천히 꾸준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즐거운 일인가요. 저는 아직 실감이 안 나는데.”

배 속에 아이가 있다는 거야, 의원의 말을 들었으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체감이 되진 않았다. 배도 그대로인 데다가, 입덧과 같은 어떤 임신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와 달리, 세루리안에게 아이는 존재감이 대단한 듯했다. 그는 웃음기가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당연히 즐거운 일입니다.”

그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부드럽게 휘어진 푸른색 눈동자가 거울처럼 나를 담았다.

“에델?”

“아니.”

나는 손을 뻗어서 세루리안의 눈을 문질렀다. 원래도 예쁜 눈이, 지금은 당장 입을 맞추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당신이 즐겁다고 말하는 걸 처음 보는 거 같아서요.”

“……!”

내 말에 세루리안 또한 깜짝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그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군요…….”

나를 안고 있지 않았다면, 몹시 당황해서 자신의 턱을 감싸 쥐었으리라. 나는 그런 세루리안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저는 기뻐요, 세루리안. 당신이 감정을 느끼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에델.”

세루리안이 두려움을 이길 때까지 혼자 있고 싶다고 했을 때, 그를 혼자 두지 않기를 잘했다. 그는 조금씩 감정이 또렷해지고 있었다.

‘우리 아이는 환하게 웃는 세루리안을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심장이 콩콩 뛰었다. 내가 한 번 더 힘주어 그를 안았다가 손을 풀자, 나와 자연스럽게 시선을 마주하게 된 세루리안이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당신 덕분입니다. 당신과 있으면 의미 없던 하루하루가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당신이 없던 나날들이 이제는 떠오르질 않는군요.”

예전에 이 남자는 내가 옷자락만 붙들어도 비틀거렸는데 말이지. 나는 픽 웃으며 세루리안의 뺨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그거 영광이네요.”

세루리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마차에 나를 조심스럽게 앉혔다.

그가 마부에게 목적지를 말하려고 할 때였다. 나는 그의 손목을 붙들었다.

“하지만 오늘 아기용품을 사러 가는 건 곤란해요. 중요한 일을 해야 하거든요.”

“아.”

내 말에 세루리안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마부에게 말했다.

“루크 공작저로.”

“예.”

세루리안이 올라타니, 마차 안이 꽉 차는 느낌이었다. 나는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

“내가 공작저로 가자고 할 줄 어떻게 알았어요?”

“중요한 일을 하셔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일이 뭔지 아세요?”

나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말하는 중요한 일은 바로 기사를 쓰는 것이었다. 선황제가 저지른 악행을 까발리는 기사 말이다.

‘생각보다 빨리 해독약이 만들어져서 다행이야.’

해독약 연구는 빠르게 진척되었다. 다행히 가설대로였다. 임신 중에 진정 시럽을 먹은 여성의 아이는 약에 대한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연구원은 그런 여성들을 수소문해서 해독약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최근 특수부가 현장에서 약을 활용함으로써 그 효과를 입증했다. 로어에게 침식될 뻔한 사람들의 입에 흘려 넣었더니 침식이 멈춘 것이다.

‘내 피를 왕창 뽑게 될 줄 알았는데 다행이었어. 임신 상태에서 진정 시럽을 먹은 여성들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고.’

진정 시럽은 그 시대 만병통치약이었다. 임신 우울증 등으로 괴로워하던 여성들이 그 약에 손을 뻗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해독약이 완성되었으니, 이제 죄를 까발리고 죗값을 치르게 해야지. 해독약을 무료로 나누어 준다는 사실도 대대적으로 홍보해야 하고 말이야.’

세루리안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 내가 두근거리며 그가 답을 내놓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세루리안은 살짝 고개를 갸웃하더니 내 귓가에 속삭였다.

“기분 좋은 일을 하기 위해 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넷?!”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화들짝 놀라서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을 때였다. 세루리안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자꾸 제게 입을 맞추시기에…….”

“그, 그거야 애정 표현이지요!”

내가 얼굴을 붉히며 그렇게 대답하자, 세루리안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애정 표현을 하다 보면 점점 더 가까이 닿고 싶어지지 않습니까?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만.”

“그, 그건…….”

아니, 물론 더 가까이 닿고 싶은 마음은 생겨나지. 세루리안의 눈꼬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흰 뺨도 조물거리고 싶어지고, 잘생긴 목덜미도 만지고 싶어지고…….

‘아니, 어째 내가 설득당하는 거 같은데!’

아까까지는 정말 순수한 애정 표현이었는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점점 흑심이 피어났다. 바짝 긴장한 내게 세루리안이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잘 모르시겠다면 제가 똑같이 해 보겠습니다.”

“네?”

반문하기 무섭게 세루리안의 반듯한 입술이 내 얼굴을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똑같이 해 준다고?’

그럼 역시 눈가에 입을 맞춘다는 걸까? 아니면 뺨?

하지만 잔뜩 긴장해서 눈을 질끈 감은 뒤 한참이 지났는데도, 입술이 닿는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슬그머니 눈을 떴더니만, 세루리안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 깨달은 내가 그를 흘겨보았다.

“……지금 절 놀리시는 거죠?”

내 말에 세루리안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당신이 평소에 이런 기분이었군요.”

유쾌한 듯 말하는 세루리안이 얄미워서, 나는 그 뺨을 꽉 꼬집었다.

* * *

상황제는 수도로 돌아왔다. 신경통 때문에 지방 소도시로 내려간 것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테오도르 이 녀석.’

그가 아무리 바네린느를 사면하라고 서신을 보내도, 테오도르가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수도 황궁으로 돌아온 상황제는 씩씩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황제가 되더니 이제 자기 마음대로 하는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자기 동생을 이리 오래 가두어 둘 수 있지?’

바네린느와 테오도르의 사이가 어떤지, 테오도르가 무엇 때문에 바네린느에게 이렇게 모질게 구는지는 상황제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 바네린느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어여쁜 딸이었다.

‘하찮은 평민에게 누명을 좀 씌운 게 어때서? 그깟 게 뭐라고 바네린느의 귀한 이름에 오점을 남겨야 한단 말인가.’

애초에 상황제는 바네린느의 행동이 잘못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바네린느의 잘못은 단 하나였다.

‘그러게 왜 파르메 대공 같은 녀석에게 관심을 두어서는.’

바로 파르메 대공의 아이를 가진 것이다.

그녀가 무슨 짓을 하든 상황제는 귀엽게 여기고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파르메 대공의 아이를 가진 것만은 도무지 봐줄 수가 없었다.

‘젠장, 그것 때문에 진정 시럽도 더 이상 실험할 수 없었지. 그런데 그걸 또 건드려서 이 사달을 만들다니.’

루크 공작가에 대해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괘씸하기만 했다. 오랜만에 자신이 머무는 별궁에 도착한 상황제는 시종장에게 외투를 던지듯이 안겨 주며 명했다.

“다들 뭐 하고 있느냐. 테오도르는 어째서 오지 않는 거지? 내가 온 줄을 모르는 거냐?”

여전히 본인이 황제인 것처럼 거들먹거리는 태도였다. 예전이라면 상황제의 등장에 시종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이번에는 시종장이 차가운 어조로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뵙고 싶지 않으시답니다.”

“뭐?”

상황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테오도르가 감히 자신을 거절하다니?

상황제가 입술을 벙긋거리는 사이, 시종장은 고개를 숙이고 정중한 투로, 청천벽력 같은 말을 내뱉었다.

“폐하께서 저지른 악행에 황제 폐하께서는 큰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만나 뵐 수 없을 겁니다.”

“악행이라니! 내가 무슨 악행을 저질렀다는 거냐.”

“…….”

시종장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상황제가 당황해서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철컥철컥 무거운 발소리와 함께 한 무리 궁인들이 들어왔다.

그리고는 상황제의 궁, 창문에 못을 박기 시작했다.

“다들 뭣들 하는 거냐!”

“폐하께서도 몹시 마음 아파하시며 이런 명을 내리셨다는 것만 알아주십시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상황제의 앞에 신문 한 부가 내밀어졌다. 그것을 받아 본 상황제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거기에는 지난날 자신이 저질렀던 죄악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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