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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며느리가 되고 싶어요 (101)화 (101/138)

그리고 내 제안은 곧바로 세루리안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세루리안은 드물게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말도 안 됩니다. 당신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남부로 떠나 오기까지 했는데, 당신을 미끼로 쓰다니요!”

“하지만 세루리안, 그게 가장 효율적이에요. 로어가 아무래도 절 쫓아다니는 것 같다고 당신도 말했잖아요.”

나는 나대로 답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길이 가장 빨라 보였으니 말이다.

‘세루리안이 내 곁에 있으니 다가오지 못하는 걸 거야. 세루리안과 잠시만 떨어져 있으면 찾아오겠지.’

지금처럼 남부 전체에서 로어를 찾는 것보다, 로어가 내 쪽으로 찾아오도록 유인하는 편이 로어를 잡을 때도 유리할 것 같았다.

로어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로 세루리안이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로어가 침식을 시도할 수도 있지. 하지만 레오프리드 신부님의 말에 따르면 나는 로어에게 삼켜졌는데도 다시 살아나지 않았나.

몇 번이고 설득하려 했지만 세루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당신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는 대상입니다. 체스에서 퀸을 가장 먼저 내보내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는 건 퀸이 아니라 킹 아닌가요.”

“말꼬리 잡지 마세요. 이번만큼은 아무리 당신의 뜻이라고 해도 수긍할 수 없습니다.”

“세루리안…….”

기껏 농담을 했는데도 웃어 주지도 않고 말이지. 나는 팔짱을 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어떻게 하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로어는 자신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럴 만큼의 지능을 가지지 못했거든요. 곧 나타날 테고, 제가 바로 처치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단언하기에는 이미 로어가 다른 양상을 보이지 않았나. 평범한 로어였다면 수도에서 남부로 내려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대낮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으리라.

“아니에요. 알겠어요.”

마음속에서 불안함이 먹물처럼 번졌지만, 나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나 못지않게, 어쩌면 나보다도 더 불안해하고 있을 세루리안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하지만 답답한 건 마찬가지였다. 나는 속이 답답할 때면 필요한, 소화제 같은 사람을 찾아갔다. 바로 칼리마였다.

“칼리마, 뭐 해요?”

기사들과 가볍게 목검을 맞대고 있던 칼리마가, 내가 얼굴을 빼꼼 내밀자 시원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목검을 내려놓았다.

“아이고, 우리 마님. 또 왜 갑자기 애교를 부리고 그러세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내 쪽으로 성실하게 걸어온다. 나는 칼리마와 함께 있던 기사들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칼리마와 함께 정원으로 걸어 나오며 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애교라니. 그런 거 아니거든요?”

“애교가 아니면 앙탈? 심술?”

“그런 거 아니라고요.”

하지만 칼리마가 편해서 자꾸 기대게 되는 건 사실이었다. 내가 칼리마의 팔에 팔짱을 끼자, 칼리마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또 단장님이 속 썩여요?”

“피, 세루리안이 속 썩이는 사람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말해요?”

“그래서 단장님 때문에 온 게 아니라고요?”

아니라고는 하지 않았다.

“……내 얘기 좀 들어 줄래요?”

나는 칼리마에게 세루리안과 나누었던 대화를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었다.

“빨리 로어를 해치우고 싶어서 저를 미끼로 쓰라고 했거든요.”

솔직히 칼리마는 내 편을 들어 줄 거라 생각했는데, 칼리마는 앞부분만 듣고 딱 잘라 내었다.

“마님이 잘못했네요.”

“칼리마, 너무해. 내 마음의 소리도 들어 줘요.”

“안 들을래요. 들어도 매정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을 거 같거든요.”

사실 나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 위험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컸을 뿐.

한편 칼리마는 내 동기를 완전히 헛짚었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배가 부른 길고양이처럼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얼른 로어를 해치우고 신혼 생활을 즐기고 싶은 마님의 마음 또한 저는 이해합니다.”

“신혼 생활이라뇨! 그런 거 아니에요.”

내가 남부에서 세루리안과 꽁냥꽁냥할 시간이 없어서 로어를 빨리 해치우려는 줄 아나!

내가 서두르는 이유는 상황제의 죄악을 드러내고 그에 상응하는 죗값을 치르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마무리 짓고 수도에서 증거와 증인을 찾고 싶단 말이지.’

수도로 올라가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괜히 초조해진 내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고 있으니 칼리마가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말했다.

“에이, 저한텐 솔직히 말씀하셔도 돼요. 아무리 단장님이랑 남부에서 함께 있다고 해도, 밤마다 마물 사냥한다고 나가야 하는데 어떻게 좋겠어요.”

남편이 밤에 일하느라 자리를 비우는 게 대수인가?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그게 왜요? 밤일을 낮에 하면 되잖아요?”

“……!”

내 태연스러운 반문에 칼리마는 갑자기 한 대 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굳어졌다.

“역시 우리 마님은 능숙하시군요.”

내가 어깨를 으쓱하니, 이번에는 칼리마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환하게 웃는 얼굴 가득 장난기가 퍼져 있었다.

“마님, 저 한 가지 소원이 있는데 들어주실래요?”

“뭔데요? 뭐든 말해요.”

기껏해야 나나 세루리안을 놀리는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칼리마가 속삭인 소원은 정말 뜻밖이었다.

칼리마는 동그란 눈을 풀잎의 이슬처럼 반짝거렸다.

“나중에 공작 각하 계실 때도 이렇게 장난쳐 주시면 안 되나요? 각하께서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으실지 궁금합니다.”

“네? 공작님 앞에서요? 에이, 못해요. 못해.”

“왜요! 지금처럼 하시면 된다고요!”

내가 손사래를 치는데도, 칼리마는 자꾸 나를 부추겼다.

나는 손가락으로 내 눈꼬리를 삐죽 올리며 대답했다.

“공작님은 이렇게 눈썹만 꿈틀하시겠죠, 뭐.”

미간에 주름을 잡고 눈썹을 꿈틀거리는 공작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칼리마의 의견은 나와 달랐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진지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절대 아닐걸요. 제 느낌에, 각하께서 단장님의 멱살을 잡아서 패대기치는 진귀한 장면을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이미 부부인데요, 뭘. 그리고 공작님은 별로 저한테 관심 없으세요.”

“한번 해 보자니까요. 내기 걸어도 좋아요.”

나는 픽 웃었다. 칼리마가 말하는 패대기는 딸 바보 아버지를 두었을 때나 일어날 법한 상황이지, 나랑은 상관없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는 칼리마가 가상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수도로 돌아가면 그렇게 할게요.”

내 대답에 칼리마는 손뼉을 짝 치고, 원래 우리가 하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왔다.

“어쨌든 고민이 뭔지는 접수했습니다. 제가 단장님이라도, 마님을 미끼로 쓰는 건 반대했을 거 같고요.”

“그런가요…….”

“하지만 이 상황을 타개할 획기적인 방법이 하나 있죠.”

“뭔데요?”

역시 칼리마! 이야기하면 뭔가 답이 나오는 여자!

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칼리마를 응시하니, 칼리마는 검지를 제 입술에 대고 눈을 찡긋했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마님. 곧 해결책이 제 발로 찾아올 거예요.”

“……네?”

칼리마의 말이 무척 모호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세루리안이 미끼로 사용하는 방안을 기각시킨 이상, 얌전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을까.

칼리마가 말한 해결책은 정말, 갑자기 벼락처럼 나타났다.

그때 세루리안과 나는 조금 이른 아침 식사를 하려고 앉은 참이었다. 세루리안은 밤마다 마물 소탕을 나갔기 때문에, 돌아와서 점심 무렵까지는 잠을 자야 했다.

얼굴에 피곤이 가득한데도, 그는 자기 전에 꼭 나와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마물은 순조롭게 소탕 중인가요?”

“오른편에 있는 릴케라는 호수에서 산란한 마물이 조금 까다롭습니다. 처리하려면 물에 들어가야 하다 보니 기사들도 접근하기 어려워서요.”

“그래서 물비린내가 났군요.”

밤을 새워도 늘 깔끔하던 세루리안이 오늘은 어딘가 다르다 했더니만, 호수 마물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내 말에 세루리안은 충격받은 듯, 살짝 굳어졌다.

“제게서 비린내가 납니까?”

“네? 그거야 방금 돌아오셨으니…….”

“목욕을 다시 해야겠군요.”

당장이라도 식탁을 박차고 일어날 기세인지라, 나는 그의 팔을 붙들었다.

“식사가 다 준비되었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세요! 게다가 다시라니요? 이미 목욕하고 온 거예요?”

“당신을 만나는데 당연히 말끔하게 씻고 앉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네?”

여태까지 그가 밖에서 들어 오자마자 곧장 아침 식사 자리에 앉는다고 알고 있었던 나는 당황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루리안은 눈을 내리깔며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에델. 제가 당신에게서 자극적인 향이 난다고 할 때 이런 기분이셨겠군요.”

물비린내가 난다고 한마디 했다고 우리의 첫 만남까지 기억이 거슬러 올라간 거야? 물비린내는 정말 희미하게 나는 정도라 나는 그다지 불쾌하지 않았다.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대답했다.

“아주 희미하게 날 뿐이라고요. 그보다 목욕하고 왔다니요. 그동안 바로 식사한 것 아니었어요?”

“그럼 그렇게 말끔할 리가 있습니까. 마물의 피도 튀고, 흙도 뒤집어쓰는데요.”

“하지만, 왜요? 피곤하잖아요. 그런데 씻고 편안한 옷도 아니고, 이렇게 격식을 갖춰서 입고…….”

나라면 철야하고 와서는 목욕이고 뭐고 다 일단 한숨 자고 일어난 뒤로 미룰 것 같은데 말이다. 아무리 잘생긴 남편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손가락 까닥하기 싫어 침대에 쓰러질 거라고.

내 마음과 달리, 세루리안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당신에게는 멋진 모습만 보이고 싶으니까요.”

그 순간, 세루리안의 얼굴이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나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씻고, 옷도 갈아입고 아침 식사 자리에 앉았다니.’

당장 그의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그런 의지를 담아서 세루리안의 한쪽 팔을 붙든 채로, 그와 시선을 맞추었을 때였다.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빠르게 다가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문이 활짝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흐트러진 붉은 머리카락에, 짙은 군청색 눈동자, 메마른 인상의 남자.

바로 루크 공작이었다.

“각하?”

“각하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에델이.”

루크 공작은 묘하게 일렁이는 시선으로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내 딸이 위험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네? 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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