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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며느리가 되고 싶어요 (99)화 (99/138)

나는 팔짱을 끼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요? 괴물을 상대로 카드 게임이라도 해요?”

“재미있는 농담이지만 웃을 기분은 아니군요.”

그 말을 하는 바람에 우리 사이의 분위기는 더 가라앉고 말았다.

‘농담 아닌데.’

나는 미간에 주름을 잡고 끙,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생각해 봐도 늑대처럼 생긴 영혼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세루리안은 우스웠다.

‘이게 나의 상상력의 한계란 말인가.’

레오프리드 신부는 이상한 충격에 휩싸인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차더니,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래서 로어 사냥꾼은 로어의 공포가 전이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들로 이뤄지는 겁니다. 그들은 로어를 자신의 안에 받아들여도 침식당하지 않고, 도리어 로어를 붕괴시키지요. 누군가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누군가는 아무 감정 없는 무기력함으로.”

“받아들인다고요?”

“네. 일반인은 전이되지만, 사냥꾼들은 로어를 붕괴시킵니다. 그래서 특별한 사람들인 거예요. 정상이 아니기도 하고.”

냉담하게 비정상이라는 말을 입에 담은 레오프리드 신부가 검지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로어 사냥꾼이 아닌데, 로어에게 삼켜졌음에도 로어로 변하지 않은 건 당신뿐입니다. 분명히 당신은 한번, 로어와 동화되었는데 말입니다.”

* * *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레오프리드 신부가 쏟아 낸 엄청난 정보들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그러니까, 로어는 영혼에 가깝고, 삼킨 사람을 같은 로어로 만든다. 또는 지독한 절망에 빠지면 스스로 로어가 되기도 한다.

로어 사냥꾼은 삼켜지고도 오히려 로어를 소멸시키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여야 한다.

‘그런데 나 또한 로어에게 삼켜졌는데도 멀쩡하게 살아 있다고?’

레오프리드 신부는 대단한 비밀이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결국 그건 이런 의미 아니겠는가?

“……제가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였던 거 아닐까요?”

나도 세루리안처럼 로어를 이겨 낼 수 있는 마음을 가진 게 아닐까.

레오프리드 신부가 말하는 그 시절은 내 인생에서 가장 좌절하던 시기였다. 로어로 변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말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로어를 뿌리치고 살아남았다는 거잖아.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장난스레 덧붙였다.

“제국을 대표하는 로어 사냥꾼이 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정답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날카롭게 나를 바라보던 레오프리드 신부는, 아낌없이 빈정거렸다.

“각하의 따님이시니 재능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래서 이제부터 기사가 되시겠다고요? 10년 이상 수련해야 한다는 건 아시죠?”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기사 작위를 받기 위한 기본적인 수련 과정은 빼먹을 수 없는 모양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받아쳐 주었다.

“안 되겠네요. 저는 세루리안을 똑 닮은 토끼 같은 자식을 열 명은 낳아야 하거든요.”

그런데 또다시 내 말을 받아쳐 줄 거라 생각했던 레오프리드 신부가 뜻밖에 질색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토끼…….”

뭐, 왜? 세루리안이 얼마나 귀여운지 당신이 알아?

자꾸 심각한 이야기가 농담으로 흘러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레오프리드 신부가 헛기침을 하고 딱 잘라 말했다.

“당신에게 그런 재능은 없습니다.”

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당연히 알고 있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워 그저 농담을 해 본 것뿐이었다. 레오프리드 신부는 냉정하게 덧붙였다.

“당신은 그때 이미 확실하게 동화된 뒤였어요. 반쯤 녹아서, 까맣게 물든 눈으로 나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고요.”

“죽음이여.”

레오프리드 신부의 묘사는 기괴했고, 로어에게 먹힌 내가 내뱉은 말은 더더욱 기괴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헛것을 본 거 아닌가요?”

“그런 소리를 들을 것 같아서 여태까지 말을 안 했다고요! 그리고 에델, 당신은 나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내가 그 말을 특수부에 전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 거 같아요?”

내 대꾸에, 레오프리드 신부는 진심으로 화를 내었다.

“실종으로 처리되어 실험체가 되었을지도 몰라요. 로어에게 동화되고도 다시 자유로워지는 인간이라니. 분명 희귀한 연구 대상이라고요.”

“그…….”

나는 말문이 막혀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레오프리드 신부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신경질적으로 말을 이었다.

“실험실이 폐쇄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어요. 각하께서 임신한 바네린느 황녀를 부인으로 받아들기로 하면서, 겨우 실험실의 문을 닫을 수 있었죠.”

“네? 공작님이 그런 거래를 하신 거예요?”

“네. 대단한 결단이었지요.”

참 신기한 일이었다. 나와 엄마에게는 ‘쓰레기’에 불과했던 루크 공작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신뢰에 찬 눈빛으로 우러러보니 말이다.

나는 드물게 눈을 반짝거리는 레오프리드 신부를 쳐다보다가 대놓고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그 약의 출처는 루크 공작가였잖아요. 나름대로는 가문이 저지른 죄를 수습한다는 생각이지 않았을까요?”

내 빈정거림에 레오프리드 신부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루크 공작을 비꼬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니, 약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까?”

그러고 보니 그거 기밀이었지.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해도 되나?

‘하지만 실험실도 기밀이긴 마찬가지일걸.’

이래서 취재 중 제일은 잠입 취재라고 했다. 언젠가 내게 기자상을 안겨 주었던 잠입 취재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어쩌다 보니까요. 알 만큼은 아는 상황이니 더 이야기해 보세요.”

어쨌든 레오프리드 신부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각하께선 엄청난 결단을 내리신 겁니다. 로어가 출현해서 가장 큰 힘을 가지게 된 가문이 어디입니까?”

“루크 공작가와 포텐샤 공작가?”

“그렇죠. 다른 귀족이었다면 그냥 내버려 두었을 거예요. 자신에게 이득이 되니까.”

“헛.”

너무나 악랄한 생각에 숨이 막혔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럴듯했다.

‘어차피 황실은 자신들이 배후라고 공표할 수 없을 테니까. 황실이 영웅으로 만들어 주는 걸 그대로 즐기기만 하면 되잖아.’

루크 공작은 자신에게 지극히 유리한 상황을 스스로 끊어 낸 것이다. 원치 않는 혼인에, 자식까지 떠안으면서.

‘아직도 엄마를 그렇게 그리워하는 사람.’

그 모습을 떠올리니, 기묘해졌다.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제 아버지가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모든 일에 무책임하기만 했던 건 아니었군요.”

그렇다고 완전히 원망이 사라진 건 아니었기에, 결국 꺼림칙한 마음만 남아버렸다.

* * *

“헤어져.”

여자는 자신의 배에 두 손을 올린 채로 마지막 이별의 순간을 떠올렸다. 아이가 생겨서 벅차올랐던 감정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웃어 줄 거라고 생각했어.’

남자가 웃는 얼굴은 보기 드물었지만, 최근 들어서 아주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것이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다.

‘아기가 생겼다고 하면 기뻐할 줄 알았는데.’

돌아온 것은 차디찬 이별 선고뿐이었다.

‘……아기 때문일까?’

그리 생각했던 그녀는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었다. 아기를 낳기로 한 건 그녀의 의지였다. 자신이 힘들다고 아기를 탓할 수는 없었다.

‘마음이 너무 괴로워.’

숨이 턱 막혔지만, 여자는 버텼다. 그녀는 홑몸이 아니었다. 배 속엔 아기가 있었다.

‘그는 떠났지만 우리 아이는 내 곁을 계속 지켜줄 거야.’

아기를 원망하지 않으면서, 혼자가 된 상황 또한 받아들이기 위해 그녀는 배 속의 아기에게 온 마음을 쏟기 시작했다.

‘네 이름은 에델이야.’

에델바이스의 꽃말은 소중한 추억.

짧지만 강렬했던 그와의 사랑을 기리는 뜻으로 지었다.

그렇게 에델은 엄마의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랐다. 야무지고, 영리하면서도, 남을 배려하는 착한 아이였다. 딸을 보고 있으면 허무한 마음도 어느덧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균열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귀가했던 딸이, 그날은 새벽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초조함에 길을 헤맸다.

‘에델이 어딜 간 거지? 설마 내 곁을 떠난 건가?’

오랜 세월, 그저 덮어 두었던 그녀의 상처가 쩍 하고 벌어져 피를 토해 냈다.

‘너도 이제 내가 필요 없어진 거니?’

바로 그 순간, 온몸에 비명이 차오르는 듯하더니 몸이 풍선처럼 가벼워졌다.

‘다 부수고 싶어. 미워.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역겹고 짜증 나.’

더는 뛰지 않는 심장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것이 검은 진흙처럼 점성이 짙다는 건 그녀도 깨닫지 못했다. 아니, 자신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멈춰!”

그녀의 앞을 막아서는 사내의 모습이 눈에 익었지만,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그녀를 단번에 없애려 했지만, 말 한마디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나를 버린 것도 모자라, 이제 나를 완전히 없애려는 거예요?”

결국 남자는 그녀를 없애지 못했다. 물론 남자는 자신이 그녀를 소멸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마음이 무너져 내린 듯 남자는 로어 사냥꾼으로서의 몫을 해내지 못했다. 그녀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한때 사랑했던 남자였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니.

그녀는 때때로 인간을 삼키고, 같은 로어를 집어삼켰다. 그 과정에서 그녀 자신마저도 잃었다.

‘모두 다 죽었으면 좋겠어. 난 외톨이니까.’

지독한 원망만이 뚝뚝 흘러나왔다. 영원히 잠기지 않는 수도꼭지처럼.

그렇게 삼킬 것을 찾아 헤매는 로어의 눈에 띈 것이 바로 에델이었다. 에델을 보는 순간 로어는 알아보았다.

‘저것은 한번 내가 삼켰던 것이야.’

삼켰지만, 같은 것이 될 수 없었다. 그 전에 탐색꾼의 눈에 띄어 버렸으니까.

‘이번에야말로.’

로어는 에델을 쫓아 터벅터벅 내려왔다.

수도에서 머나먼, 남부까지.

그리고 그 괴물은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에델의 곁에 있는 세루리안이 자리를 비울 때까지.

괴물은 이미 수년을 기다렸다. 고작 며칠의 기다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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