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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며느리가 되고 싶어요 (62)화 (62/138)

그의 질문에 나는 퍼뜩 놀라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쌌다.

“제, 제가 또 이상한 표정을 지었나요?”

“이상한 표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강아지처럼 눈을 내리깔고…….”

“우왁!”

강아지처럼 눈을 내리깔았다니, 강아지처럼 눈을 내리깔았다니!

‘아우, 창피해.’

속마음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나는 게, 그리고 상대가 그것을 기민하게 알아차리는 것이 이렇게나 부끄러운 일인지 예전에는 몰랐다.

손바닥으로 뺨을 감싸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으니, 세루리안이 눈치 없이 또 그 부분을 지적했다.

“이번에는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윽, 하나하나 말 안 해 주셔도 돼요.”

아니, 오히려 말을 안 해 주는 게 매너 아닐까.

나는 손부채질을 하면서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세루리안이 투정을 부리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당신이 어떤 마음인지 모르니까요.”

“윽…….”

강아지처럼 축 늘어져 있는 게 누구인데.

세루리안의 얼굴은 분명 평소처럼 담담하건만, 내 눈에는 시무룩하게 내려앉은 귀가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아까 제가 지었던 표정은…….”

상대는 어린애다. 감정적으로는 아기만도 못하기 때문에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마땅히 알려 줘야 한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아기에게 감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이리 한 마디 한 마디를 꺼내는 것이 창피한 건지.

“아쉬움이에요.”

“아쉬움.”

내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한 세루리안이, 묘하게 눈을 반짝거리며 나를 응시해 왔다.

“그건 제가 곁에 없어서 서운하다는 뜻입니까?”

“……?!”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아니면 나를 창피하게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묻는 건가. 나는 목까지 빨개져 고개를 휙 돌렸다.

“모, 몰라요.”

“에델.”

“피, 지금 다 알면서 그러는 거죠. 세루리안은 심술쟁이야.”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에델이 알려 주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걸 제 입으로…….”

‘말하기가 곤란하다고요’라고 소리치려고 고개를 휙 들었을 때였다. 가까이 다가온 세루리안의 푸른 눈에 내 얼굴이 거울처럼 비쳤다. 날렵하고 반듯한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숨결이 코끝을 간질였다.

“에델.”

그의 목소리는 마치 보드라운 깃털 같았다. 듣는 순간 귀 끝부터 목덜미까지 온통 간지러움이 번지는 걸 보면 말이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입술에, 내가 잔뜩 긴장해서 눈을 꽉 감았을 때였다.

“저, 저기요.”

우리 말고 제삼자의 목소리가 집무실에 울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집무실 구석에 딸린 휴게실에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하고 있던 가엾은 부관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두 분께 방해되지 않게 제, 제가 먼저 나가도 되겠습니까?”

“…….”

이번에야말로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얼굴이 붉어졌다.

* * *

에델을 그렇게 내보내고, 포텐샤 공작 부인에게 안부 인사차 편지를 쓰고 있던 칼리마는 똑똑, 울리는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루크 공작가의 하녀장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포텐샤 영애.”

정중한 태도로 인사를 건넨 하녀장은 하녀 둘을 더 데리고 들어오면서 살가운 미소를 지었다.

“청소를 하려고 합니다. 잠시만 자리를 비켜 주시겠어요?”

본래도 청소 같은 건 에델의 전속 시녀인 칼리마가 직접 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범한 일상과 다를 바 없었다. 물론, 하녀장이 직접 온 것은 드문 일이지만 말이다.

하녀장은 날카로운 눈으로 방 곳곳을 관찰하며 생각했다.

‘귀중한 것이니 함부로 두고 다닐 리는 없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 그녀는 콘솔과 협탁 등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귀중품을 정리하며 물었다.

“보석함은 어디에 둘까요?”

그 물음에 칼리마가 여상하게 대답했다.

“거기 있는 건 다 금고에 넣어 두면 돼. 마님은 따로 착용하시는 목걸이가 있으니까.”

‘목걸이.’

시큰둥한 목소리에서 하녀장은 실마리를 찾았다.

‘목에 걸고 다니는 건가!’

초상화나 머리카락이 들어 있는 커다란 로켓도 걸고 다니는데, 열쇠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것 또한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에델에게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하녀장의 눈에는 모든 것이 고깝게만 보였다.

‘하긴, 함부로 두고 다니다가 자신이 훔쳤다는 사실을 들키면 곤란할 테니 아예 몸에 지니고 다니는 거겠지.’

그 정도로 영악하니, 공작 부인을 응접실에 가두고 독대하는 자리에서 그녀를 위협한 것 아니겠는가.

심장이 두근거리니 안정제를 달라던 공작 부인을 떠올리며 하녀장의 입술이 구겨진 종잇장처럼 우그러들었다.

‘교활하고 못된 여자 같으니.’

그런 못된 여인을 부인으로 들이다니, 세루리안 도련님도 뭐에 홀린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열쇠의 행방을 파악하게 된 하녀장은 다른 곳을 살펴보는 척, 에델의 방을 나와서 곧장 바네린느를 찾았다.

그리고 자신이 알아낸 것들을 고해바쳤다.

“열쇠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한데…… 눈으로 본 것은 아니나 목걸이로 만들어 몸에 지니고 다니는 듯합니다.”

바네린느는 부러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하녀장이 그렇게 찾아봐도 없다면 몸에 지니는 것이 확실하겠지.”

잠시 고민하듯 손가락으로 턱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겨 있던 바네린느가 산뜻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면 목욕을 할 때를 노려 보지.”

“예?”

어쩔 수 없다든지, 확인할 수가 없어 아쉽다는 정도의 대답을 기대한 하녀장의 허를 찌르는 말이었다.

‘목욕할 때를 노리다니? 그건 도둑질을 하라는 뜻이잖아?’

공작 부인이 자신의 열쇠 같다고 했고 하녀장도 그리 생각하고는 있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 정말로 공작이 열쇠를 건네준 것이라면 일이 잘못되었을 때 불호령을 당하는 건 하녀장이었다.

하녀장은 살짝 말을 더듬으며 반문했다.

“하지만 사라진다면 그쪽도 바로 눈치를 챌 텐데요.”

“그러니 훔치는 건 안 되지.”

“아.”

그저 모양만 맞는지 아닌지 확인해 오라는 뜻인가. 그리 생각하며 하녀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바네린느가 생긋 웃으며 덧붙였다.

“밀랍으로 본을 떠오도록 해라. 밀랍은 굳는데 오래 걸리지 않으니, 들키지 않고 해낼 수 있을 거야.”

“네? 그건…….”

작은 마님의 허락도 없이 열쇠를 복제하라는 말씀이신가요?

차마 공작 부인에게 되물을 수가 없어서, 하녀장은 입술만 벙긋거렸다. 열쇠를 살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범죄의 영역이었다.

황당해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하녀장을 본 바네린느는 정말 슬프다는 듯이 눈을 내리깔았다.

“그래, 하녀장에게도 무리인 일이겠지. 정보를 알아다 준 것만으로도 고맙네. 그 이상까진 하지 않아도 좋아.”

“……네.”

“이만 물러가 보게.”

시무룩한 바네린느의 얼굴을 보니, 당장이라도 다시 번복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하녀장은 치맛자락을 꼭 쥐고 바네린느의 앞에서 물러났다.

‘아무리 그래도 그것까지는 할 수는 없어.’

하지만 돌아서기 무섭게 하녀장은 억센 손에 붙들려서 작은 방으로 끌려갔다.

놀란 하녀장은 자신을 끌고 온 사람의 얼굴을 보고 더더욱 긴장했다.

“세, 세이지 남작 부인. 무슨 일인가요? 놀랐습니다.”

“무슨 일인 거 같아요, 하녀장?”

하녀장은 얼굴을 굳혔다. 아무리 세이지 부인이 공작 부인과 허물없는 사이라고 해도 자신에게 이렇게 함부로 할 수는 없었다.

그 와중에도 하녀장은 설마 바네린느가 세이지 부인을 시켜서 자신을 핍박하는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바네린느의 자애로운 이미지가 너무나 강한 탓이었다.

“아무래도 아까 저와 공작 부인의 대화를 엿들으신 모양인데…….”

짤랑!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묵직한 주머니가 하녀장의 손에 떨어졌다. 하녀장의 눈동자가 바들바들 떨렸다. 순간 분노가 차오른 탓이었다.

“절 돈 따위로 매수하려 하셨다면……!”

짤랑!

금화가 가득 들어 있는 주머니가 또 그녀의 앞에 떨어졌다. 하녀장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제가 단순히 돈 때문에 공작가에서 헌신하는 줄 아십니까? 사람을 어찌 보시고……!”

짤랑!

또다시 주머니가 떨어졌다.

금화로 가득한 주머니가 세 개. 이쯤 되면 1년간의 주급을 합한 것보다도 많은 금액이었다. 하녀장이 입술을 벙긋거리니, 세이지 부인이 차가운 목소리로 빈정거렸다.

“순순히 받는 게 좋을 거예요. 어차피 해야 하는 일, 돈이라도 넉넉하게 챙겨 받으면 좋잖아요.”

“……제가 왜 그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하시지요?”

“하지 않으면 이제 목숨이 위태로울 테니까요.”

“……!”

고민하던 하녀장의 얼굴이 이번에는 창백해졌다.

“다, 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줄 아나요?”

루크 공작가의 하녀장은 몰락한 귀족 출신으로, 대대로 가문에 헌신해 온 가신이나 다름없었다. 하녀장은 당혹스러웠다. 그녀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도 그랬지만, 동시에 이런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저 협박의 근거가 무엇인가?

“황녀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걸 이루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그리하라고 명도 받았고요.”

세이지 부인은 그런 그녀의 의혹에 쐐기를 박았다.

“제가 누구에게 그 명을 받았는지는…… 하녀장께서도 아시겠지요?”

누가 바네린느의 뒤를 봐주고 있겠는가.

바네린느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줄 수 있는 존재.

바로 상황제였다. 감히 상황 폐하를 언급하다니, 하녀장은 반사적으로 코웃음을 쳤다.

“허, 허풍은.”

“허풍인지 아닌지는 가만히 있으면 알게 되겠지요. 다만 그로 인한 대가가 아주 크겠지만요.”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심상치 않았다. 잠시간 돈주머니를 내려다보며 고심하고 있던 하녀장이 눈을 질끈 감았다.

‘각하께서 아신다면 가만히 계시지 않을 텐데.’

결국 그녀가 챙긴 것은 눈앞의 돈주머니였다. 그것은 세이지 부인의 협박에 굴복한다는 의미와 다름없었다. 동시에 바네린느의 청을 수락하겠다는 뜻이었다.

하녀장은 돈주머니를 숨긴 채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처소를 향하면서, 연신 손톱을 깨물었다.

‘각하께서는 한 걸음도 밖으로 나오시질 않는걸. 집안일에도 완전히 무심하시고. 그런 분이 며느리에게 서재 열쇠를 주셨을 리가 없어. 분명히 거짓말일 거야.’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자기변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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