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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며느리가 되고 싶어요 (53)화 (53/138)

세루리안은 잠든 에델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별처럼 반짝이는 눈망울을 숨긴 채 붉은 머리카락이 살짝 흐트러져 있었다. 그것을 귀 뒤로 넘기자, 항의하듯 눈을 찡그렸다.

그 모습도 귀여웠다. 누군가를 귀엽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처음인 세루리안은 당혹스러움과 기묘한 만족을 동시에 느꼈다.

‘오늘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녀가 하루 동안 무얼 하는지 칼리마에게 정기적으로 보고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찾아오지 않았다고 해서 그녀에 대해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는 관심이 없는 게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필요했을 뿐.

‘당신의 모든 것이 다 아찔해서.’

그는 루크 공작을 보고 나서 수많은 아이들 중 왜 자신이 입양되었는지 깨달았다. 공작은 자신처럼 감정이 없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럭저럭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다. 에델을 만나고, 하나둘 감정이 깨어나기 전까진.

하지만 그 일시적인 감각은 에델이 곁에서 멀어지면 다시 사라졌기에, 세루리안은 자신을 타일렀다.

나만, 그 간격에 적응하면 된다고.

그건 너무나 오만한 생각이었다. 그녀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감각의 깊이를 알지도 못한 채 자신을 제어할 수 있다고 여겼으니.

‘사실은 손을 떼는 게 맞을 텐데.’

세루리안의 손끝이 조심스럽게 에델의 흰 뺨을 스쳤다. 그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색이 선명해지고, 모든 것들이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그것은 곧 세루리안 루크의 필요가 소멸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도무지 놓을 수가 없어. 지극히 사치스러운 생각이지만.’

그녀를 보면 끌어안고 싶어졌고, 발그레 붉힌 얼굴을 보면 입을 맞추고 싶어졌다. 이미 한 번 알게 된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잠시 세루리안이 모닥불을 바라보듯, 멍하니 에델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똑똑, 하고 단정한 노크 소리가 울렸다. 세루리안은 가운을 걸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저히 일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이 시간에 문이 울릴 일이라고는 한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역시 문밖에는 집사가 서 있었다. 작은 종잇조각을 내밀며 집사가 고개를 숙였다.

“쉬시는 데 죄송합니다, 도련님.”

죄송하다지만 세루리안은 내심 마음을 놓았다. 그가 나서야 할 때는 검은 장갑을 건넨다. 그렇지 않다는 건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뜻이다.

“무슨 일이지?”

“시내에 로어가 출몰했다고 합니다. 보고차 부관께서 간략한 개요를 올리고 가셨습니다.”

“그렇군.”

세루리안은 담담한 시선으로 주소가 적힌 종잇조각을 내려보았다.

‘여긴?’

그런데 그 주소가 몹시 낯이 익었다.

‘에델의 집?’

에델이 더는 그곳에서 지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데도, 세루리안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등 뒤를 돌아보았다.

* * *

다음 날 일어나 보니, 세루리안은 아침 일찍 나갔는지 옆자리가 싸늘했다.

‘오늘은 그 예쁜 얼굴을 볼 수 있으려나 기대했는데.’

세루리안의 얼굴을 관찰할 기회는 별로 없으니까. 아쉬워진 나는 볼을 부풀리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까무룩 다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칼리마가 팔짱을 끼고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제가 없는 동안 아주 즐거우셨던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우왓!”

화들짝 놀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엉겁결에 두 손으로 내 몸을 마구 더듬었다. 혹시 완전 알몸인가 했더니 다행히 슬립을 걸치고 있었다.

그런 내 속이 빤하다는 듯이 칼리마는 고양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옷은 멀쩡하게 입고 계세요. 그렇다고 흔적을 전부 가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요.”

“마, 말하지 말아요.”

윽, 신경 쓰는 걸 알면 언급하지 말아 주지. 나는 볼을 퉁퉁 부풀렸다. 칼리마는 까르르 웃었다.

얼른 씻고 가벼운 셔츠로 갈아입었다. 수건으로 머리를 소라처럼 둘둘 말고 나오니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칼리마는 빙긋 웃으며 맞은편에 앉았다.

“마님이랑 함께 식사하려고 왔거든요.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그럼요.”

오늘 아침은 달콤한 단호박 수프였다. 앉아서 스푼을 드니, 칼리마가 하녀들을 방 밖으로 내보냈다.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조금은 예상이 되어 기분이 가라앉았다.

“바네린느 황녀는 이 나라의 유일한 황녀는 아니지만, 상황 폐하의 가장 총애받는 딸이에요. 그녀의 말 한마디에 황위가 오고 간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돌 정도였죠.”

갑자기 황위가 언급되어서 당혹스러웠다.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게 무슨…….”

칼리마는 당황스러운 기색에도 아랑곳없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그 우스갯소리를 진심으로 들었던 걸까요? 바네린느 황녀는 황위 계승권이 높은 파르메 대공과 친밀한 사이로 지냈어요.”

“설마 그분이.”

“네. 아마도 아이 아버지는 그분이실 거예요.”

그 어떤 기자도 황제와 황위에 대한 기사는 보도하지 않는다. 황실 소식은 철저히 통제되어, 오직 황실에서 발간하는 신문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수년 전, 갑자기 나라를 떠나게 된 파르메 대공에 대해서도 역시 그 어떤 기사도 쓰이지 않았다. 많은 기자들이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사정이 얽혀 있었구나.’

칼리마가 어째서 황실의 내막을 살펴본 뒤 이야기를 해 주겠다고 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놀랍게도 바네린느는 제 입맛에 맞는 사람을 황제로 즉위시키려고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전부 들어도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현 황제 폐하께서는 황녀의 친오라버니이시잖아요. 굳이 먼 친척인 파르메 대공과 접촉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무리 상황 폐하께서 그녀를 아낀다고 해도 황위 계승은 다른 문제니까요.”

실제로 파르메 대공은 황제가 되지 못했고 말이다.

그 질문에, 칼리마는 코끝을 찡그리며 웃었다.

“지금의 황제 폐하이신 테오도르 오라버니와 바네린느 황녀는 어릴 적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바네린느 황녀는 그래서 테오도르 오라버니께서 황제가 되면 곤란하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칼리마가 듣고 온 것이 바로 그 해묵은 앙금에 관한 이야기였다.

* * *

황족들과 유력 귀족 자제들은 어릴 때부터 주기적으로 놀이 시간을 가지며 서로 간의 유대를 쌓는다.

테오도르의 취미가 언급된 건 바로 그 자리에서였다.

“테오도르 전하께서는 새를 좋아하신다면서요?”

자신의 취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테오도르는 무척 기뻐하며 조잘거렸다.

“그렇소. 그중에서 매를 가장 좋아하지. 매사냥을 해 보면 그 녀석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 수 있다오.”

매사냥은 어린아이가 가지기에는 다소 거친 취미였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는 몇몇 영애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매는 발톱이 너무나 흉포하잖아요. 무서워요.”

“그대들의 팔에 올릴 수 있는 건 역시 앵무새일까?”

“앵무새도 키우시나요?”

드물게 기분이 좋았던 테오도르는 자신이 키우는 회색 앵무새를 가져오라 명했다. 곧이어 등장한 앵무새를 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 자신들이 생각한 작은 새가 아니었으니까.

“이 아이는 열두 가지 말을 할 수 있는 아주 똑똑한 아이라오. 그만큼 사람도 가리지.”

테오도르는 자부심 넘치는 어조로 앵무새를 소개했다. 둥글고 커다란 부리와 어쩐지 무서운 눈을 바라보고 있던 이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을 가린다면 역시 아름다운 여인을 잘 따른다는 걸까요?”

“그 말도 일리가 있군.”

누군가 던진 농담에 테오도르 또한 웃으며 맞받아쳤을 때였다.

“가장 아름다운 분이라면 역시 바네린느 황녀님이시지요.”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바네린느를 향했다. 아직 어린 소녀였던 바네린느는 흰 뺨을 붉히며 웃었다.

“아이참, 부끄러워요.”

“한번 해 보세요, 황녀님. 황녀님의 손길이라면 잘 따를 거에요.”

“맞아요. 동물도 복종할 수밖에 없을 만큼 기품 있는 분이신걸요.”

모두가 바네린느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못 이겨 바네린느는 앵무새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이 앵무새가, 우아하게 그녀의 팔에 앉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며 이렇게 비웃는 것 아닌가.

“못난이. 못난이.”

그렇게 바네린느는 순식간에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날 이후 테오도르는 토마토처럼 붉어진 여동생이 조금 불쌍해져서 그녀에게 아름다운 보석이 달린 리본을 선물했다.

그리고 그 리본을 건네주고 돌아오던 날. 그가 사랑하던 앵무새는 물론이고 키우던 다른 새들까지 모조리 땅에 떨어져 죽어 있었다.

모이를 준 사람은 바네린느의 하녀였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다.

“황녀님께서 리본의 답례로 새들에게 맛있는 모이를 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 모이는 테오도르 궁의 궁인이 준비한 거였다.

“황녀님께서 특별히 앵무새가 좋아하는 모이로 구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정황은, 다정한 황녀가 오라비가 준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새들에게 맛있는 모이를 주고 싶어 했을 뿐이란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수상한 움직임도 없었고, 미심쩍은 상황도 없었으며, 뭣보다 황녀가 직접 손을 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사건은 그저 불가사의한 사고처럼 보였다.

하지만 완벽한 알리바이는 더욱더 용의자를 수상쩍게 보이게 하는 법. 테오도르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범인을 찾아다니니, 이번에는 황제가 그를 불러다 꾸짖었다.

“나라를 물려받기 위해서는 하루하루 학업에 매진해도 시간이 없거늘, 네가 새 따위에 푹 빠져서 학업을 등한시한다니 참을 수 없구나.”

감히 누가 황제에게 그런 말을 전했겠는가.

테오도르는 순해 보이기만 하던 제 여동생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 * *

칼리마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주 무서운 분이었군요.”

무슨 추리소설의 도입 부분을 읽은 기분이었다. 칼리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마님께 전해야 하는 나쁜 소식이 하나 더 있어요.”

“뭔데요?”

칼리마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노엘 양이 간밤에 로어의 습격에 휘말려 사망했습니다.”

“……네?”

그 말에는 내 머리가 멈추는 것 같았다. 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칼리마는 쐐기를 박듯 덧붙였다.

“우리는 유일한 증인을 잃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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