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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며느리가 되고 싶어요 (51)화 (51/138)

고아원에서 일하는 하녀, 노엘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루크 공작가의 결혼식에서 여전히 아름답고 행복해 보이는 바네린느 황녀를 목격해서일까 자꾸만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남을 불행하게 만들고도 어떻게 자신은 그렇게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거지?’

노엘은 그날을 잊지 못했다. 아름답기만 하던 황녀가 귀신처럼 변해 그녀에게 마구 매질하던 날을. 황녀는 고무나무로 만든 매로 노엘의 머리와 몸통을 마구 내리쳤다. 죽을 것 같아서 살려 달라고 외쳤지만,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던 공허를.

에델은 결혼식장에 온 것만으로도 용기라며 오히려 자신을 다독였지만 사실은 그녀가 당당히 나섰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날 에델이 우연히 그곳을 지나간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니까.

‘그런데 나는…….’

바네린느 황녀를 떠올리니 다시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결국 노엘은 들고 있던 수건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에게 수건을 집어 주며 레오프리드 신부가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오늘따라 실수가 잦으시네요.”

“죄송합니다.”

노엘은 귀까지 새빨개져 고개를 푹 숙이고 사과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입술을 우물거리며 중얼거렸다.

“이맘때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요.”

다시 일어나야 하는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에델은 나 때문에 황궁서기관 자리에서도 해고당했는데…….’

그녀의 눈물이 수건 위로 툭툭 떨어져 내렸다. 노엘은 서러운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저는 바보예요. 용기를 내서 저항하지 못하고 계속 이렇게 뭉그적거리기만 하고. 그 작은 아가씨는 그렇게 씩씩하게 나서는데요.”

그녀가 말하는 작은 아가씨는 다름 아닌 에델이었다. 노엘의 말을 들은 레오프리드 신부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자기 자신의 안위와 가족에 대한 복수는 또 다른 문제이니까요.”

어떤 사람은 자신이 당한 것보다 자기 주변의 일에 더 크게 분개하기도 한다.

레오프리드 신부가 보기에 에델도 그런 경우였다. 자신 하나만의 일이었다면 그녀는 바네린느 황녀에게 대항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머니의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일어난 것이다.

‘그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이겠지만.’

귀하게 얻은 목숨을 복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레오프리드 신부는 그 문제에 관해서는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말에 노엘은 젖은 눈을 휘며 웃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역시 신부님은 다정하세요.”

“제가 다정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노엘 양뿐일 겁니다.”

레오프리드 신부는 또다시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노엘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는 늘 저렇게 툭툭 내뱉지만 분명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여기서 지내는 것을 허락해 주셨을 리가 없지.’

노엘은 그날을 기억했다. 수상한 사내에게 쫓겨서 정신없이 도망치듯 거리를 내달렸던 그날을.

이대로라면 심장이 터져서 죽든지, 아니면 붙들려서 죽든지 할 판이었다. 사내는 분명은 단검을 소매에 숨기고 있었다. 그때 충동적으로 달려 들어간 곳이 바로 이 고아원이었다.

그리고 한눈에 보아도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한 자신에게 이 퉁명스러운 신부는 그때도 관심 없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여긴 항상 손이 부족합니다. 그저 머물 곳이 필요하신 거라면 여기서 아이들을 돌봐 주시지요.”

그날부터 노엘은 이 고아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도 엄청난 행운이었어.’

몸을 숨기려던 곳에서 번번이 퇴짜를 당하던 그녀였다. 사람들은 자신이 귀찮은 일에 휘말릴까 봐 손을 내저었더란다.

함께 지내는 고아원 아이들을 떠올리니 차갑게 식었던 손에 거짓말처럼 온기가 돌았다. 노엘은 수건을 안고 일어섰다.

‘오늘은 날이 좋네. 이불이 벌써 다 말랐어.’

수건을 정리한 뒤에는 이불을 걷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불 뒤에 섰을 때였다.

“실례합니다.”

고아원 문을 열고 덩치가 큰 사내 둘이 들어왔다. 목소리만 들어도 험상궂은 인상이 저절로 그려졌다. 노엘과 이야기를 나누던 레오프리드 신부가 그들을 맞았다.

“무슨 일이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혹시 이 고아원을 운영 중이신 레오프리드 신부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만.”

그들은 이불에 가려진 노엘을 아직 보지 못한 듯했다.

“이 고아원에 노엘이라는 성인 여성이 지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말을 들은 노엘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이대로라면 비명을 지를 것 같아서 노엘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레오프리드 신부가 침착하게 평소처럼 무뚝뚝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목격자가 있어서 찾아온 것입니다. 그렇게 모른 척한다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없으니까 없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애초에 신분도 명확하지 않은 분이 이렇게 찾아오시니 거북하군요.”

레오프리드 신부의 경계심이 커 보이자, 사내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리고는 품에서 신분증을 꺼내 들었다.

“저희는 수도 방위 기사단 소속 기사입니다. 특정 사건의 용의자로 노엘 양을 찾고 있습니다.”

레오프리드 신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신분증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아아, 그러시군요. 한데, 신분증이 조금 낯설군요.”

그 말에 그들은 레오프리드 신부의 옷차림을 힐끗 살피며 대답했다.

“신부님께는 생소하실 겁니다. 저희는 특수부 출신입니다.”

“특수부라고요?”

“예, 그리고 그 여자는 마물과 관련이 있습니다.”

낮게 소곤거리는 소리에 레오프리드 신부는 깜짝 놀라 두 사람을 현관에서 가까운 작은 밀실로 안내했다. 때때로 고아원에 입양 문의가 오면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었다.

“이런,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이쪽으로 들어와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사내들은 레오프리드 신부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그 방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완전히 들어가자, 레오프리드 신부는 그 문에 자물쇠를 걸었다.

철커덕.

그제야 자신들이 밀실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내들이 안에서 마구 소리를 지르며 문을 쾅쾅거렸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어서 문을 여십시오!”

“감히 기사를 이렇게 대하다니! 우리가 누군 줄 아시오!”

그들의 말에 레오프리드 신부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거짓말도 적당히 해야 웃으며 넘어갈 것 아닌가.

“감히 기사를 사칭하다니. 진짜 수도 방위 기사단에 연락할 테니 얌전히 기다리십시오.”

“사, 사칭이라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장난치지 마십시오, 신부님!”

레오프리드 신부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기사 사칭은 엄청난 중죄였다. 신고하면 치안대에서 찾아와 잡아갈 것이다.

‘문제는 저 사내들을 보낸 사람이 누구냐는 건데.’

사실 가짜 신분증은 그럴듯했다. 그가 진짜 특수부가 아니었다면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로 말이다. 그건 상당한 뒷배가 그들의 뒤에 있다는 뜻이었다.

레오프리드 신부가 입술을 비틀었을 때였다. 그제야 자신이 안전해졌다는 것을 확신한 노엘이 비틀거리며 이불 밖으로 걸어 나왔다.

“시, 신부님.”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그녀의 팔을 레오프리드 신부가 붙들었다. 노엘은 창백한 얼굴로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황녀예요. 황녀가 저를 다시 찾는 게 분명해요!”

“진정하세요.”

“이대로 있으면 죽을 거예요. 이 고아원에도 해코지를 할 것이 분명해요. 아니, 도대체 어디로 도망가야……. 도망을 쳐도 다시 쫓아올 텐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리저리 횡설수설하는 그녀는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처럼 절망스러운 얼굴이었다. 레오프리드 신부는 그녀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제가 괜찮은 은신처를 알고 있습니다.”

* * *

괜찮은 은신처란 다름 아닌 에델 아지안이 혼자서 사용하던 작은 집이었다.

칼리마와 놓고 온 짐을 가지러 찾아왔던 에델은 이곳에 머무르는 노엘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우리 집으로 온 거예요?”

“당신은 루크 공작가에 있으니 이 집은 비어 있을 테니까요.”

노엘에게 줄 식료품을 가지고 온 레오프리드 신부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기사 신분증을 위조해서 찾아온 사내들은 사이좋게 잡혀갔으며, 범죄 동기를 묻는 질문에는 모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칼리마는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대로 걸렸네요. 하필 레오프리드 신부님께 위조 신분증을 내밀다니.”

칼리마의 말에 에델은 녹색 눈을 깜빡거렸다. 레오프리드 신부를 대하는 그녀의 말투가 지나치게 친근했던 탓이다.

“칼리마도 신부님과 아는 사이인가요?”

그랬더니 상상도 못 한 대답이 돌아왔다.

“예. 레오프리드 신부님은 유능한 로어 탐색꾼이니까요.”

“네?”

에델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뒤늦게 레오프리드 신부의 옷자락을 마구 잡아당기며 말했다.

“뭐예요! 왜 그동안 감추셨어요?!”

“말하면 에델이 로어에 대해 계속 물어보면서 귀찮게 굴 테니까요.”

“너무해!”

로어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애타게 수집하고 있는지 알면서. 에델은 서운함에 볼을 퉁퉁 부풀렸다. 레오프리드 신부는 고개를 휙 돌렸다.

그는 절대로 에델에게 자신의 직업을 밝힐 생각이 없었다. 오늘 칼리마가 말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영영 내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에델과 레오프리드 신부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노엘이 담요를 제 몸에 꽁꽁 두르며 말했다.

“황녀가 어째서 저를 다시 찾는 걸까요. 이번에야말로 저를 죽이려는 걸까요…….”

치맛자락을 꽉 쥐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에델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노엘을 달랬다.

“그건 아닐 거예요. 기껏해야 저에게 불리한 증언을 부탁하려는 거겠지요. 제가 당신을 때린 당사자라고 말하라든가.”

하지만 칼리마의 의견은 달랐다. 칼리마는 팔짱을 끼고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그건 이미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어요. 그런데도 공작 부인이 계속 그 수를 사용할까요?”

“그게 아니라면…….”

에델의 말을 끊고 노엘이 울먹거리며 말했다.

“분명히 절 죽여 없애려는 거예요. 확실해요.”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노엘을 돌아보았다.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리던 노엘은 자신의 손등을 내려보며 말했다.

“저는 비밀을 알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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