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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며느리가 되고 싶어요 (40)화 (40/138)

공작의 눈은 퀭해져 있었고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누가 봐도 대단히 놀란 표정이었다. 물론, 지금 이 자리에서 언급된 사건 하나하나가 모두 심각한지라, 심약한 사람이라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저 남자는 루크 공작 아닌가.

‘아까 플로린 영애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멍한 표정으로 먼지만 세고 있었으면서.’

칼리마가 나타났을 때, 조금 귀찮아하는 표정이었지만 그것도 적당히 흘리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이었는데.

‘왜 저렇게 놀랐담?’

루크 공작의 반응에, 나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쉬이 입을 떼지 못했다. 그 바람에 기묘한 침묵이 정원에 내려앉았다.

먼저 운을 뗀 것은 바로 그 침묵을 만든 루크 공작 본인이었다.

“……그 말에 한 점의 거짓도 없는가?”

“예. 모두 사실입니다.”

“맹세할 수 있나?”

하루에 같은 사람과 두 마디 이상 안 한다는 사람이 이미 세 마디를 했다. 도대체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건가.

나는 희미한 짜증과 당혹감을 느끼며 진지한 어조로 대답했다.

“예. 신께 맹세할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공작도 수긍하고 물러날 줄 알았다. 그런데 공작이 뜻밖의 소리를 하는 것 아닌가.

“……그리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니. 믿을 수 없다.”

“네에?”

‘내가 엄마 일을 가지고 거짓말한다는 거야 뭐야.’

아무리 절박하다 한들, 엄마의 죽음을 가지고 거짓말을 하겠나. 내가 울컥해서 따지고 들려고 했을 때였다.

“아지안 양의 말에 한 점의 거짓도 없음은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내가 청첩장을 보낸 몇 명 중 하나, 바로 레오프리드 신부가 나섰다.

검은색 신부복을 입고 나선 레오프리드 신부는 평소보다도 더 신실하고 근엄해 보였다. 루크 공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신에게 맹세하건대 사실입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사실이라면 뭐?

내가 루크 공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때였다. 공작은 휙 몸을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범인을 찾아서 로어에게 먹잇감으로 줄 것이다.”

이를 가는 소리가 퍽 으스스했다. 나는 순간 당황스러워져 세루리안에게 속삭였다.

“공작 각하께서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걸까요.”

내 엄마의 복수를 또 왜 자기가 한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어서 물었는데, 세루리안의 대답이 평이하기 짝이 없었다.

“글쎄요.”

“아니, 당신이 모르면 누가 알아요? 아들이잖아요.”

“저도 하루에 두 마디 이상 해 본 적 없습니다. 심적으로는 에델이 더 각하와 가까운 것 같군요.”

“무슨 소리예요. 말도 안 되는 썰렁한 농담 하지 말아요.”

“정말 농담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남자가 또 감정 없는 얼굴로 이상한 소리 하고 있네.

‘농담이 아니면 뭔데. 정말 나랑 공작님이 친근한 사이라고?’

루크 공작과 가까운 사이라는 말에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슬쩍 쓱쓱 문지르고 있으니, 레오프리드 신부가 한숨을 내쉬며 우리 앞으로 걸어 나왔다.

“마지막으로 신에 대한 맹세가 남았군요. 제가 이 결혼 서약에 대한 보증인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바로 치르다 만 우리의 결혼식을 위해서였다.

“신랑, 신부. 맹세의 입맞춤을.”

시아버지는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고, 시어머니는 우거지상을 하고 있고, 하객들은 ‘이거 박수쳐도 되나?’ 하는 표정으로 어정쩡한 높이로 손을 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식 1부는 일단 마무리가 되었다.

* * *

곧장 피로연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악사들이 춤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옷을 갈아입고 왈츠를 춰야 해서 나와 세루리안은 정원 밖으로 빠져나왔다.

나는 우리보다 한발 앞서서 마차를 찾아 나온 레오프리드 신부의 손을 꽉 붙들고 붕붕 흔들었다.

“신부님, 정말 감사해요. 신부님이 아니었으면 마무리가 어려웠을 거예요.”

“아닙니다.”

레오프리드 신부는 거머리를 떼어 내듯 내 손을 떼어 냈다. 수줍어하기는.

나는 실실 웃었다. 그러자 레오프리드 신부가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얼굴을 와락 구기며 미운 소리를 했다.

“왜 그렇게 못난이처럼 웃습니까?”

“역시 신부님도 제 결혼식이 궁금하셨구나, 라고 생각했지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가 미운 소리를 하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닌지라, 마냥 웃음만 나왔다. 자기가 뭔 소리를 해도 실실 웃으니, 한숨을 쉬던 레오프리드 신부는 몸을 돌렸다.

“괜히 공작 부인의 눈에 띄면 난처하니, 돌아가겠습니다.”

“네. 오늘 고마웠어요.”

“그리고 에델.”

당장이라도 떠날 것 같던 그가 잠시 걸음을 떼지 못하고 망설였다. 한참 동안 입술만 달싹거리던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아름…….”

“저분은 누구십니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나 궁금했는데! 세루리안이 그 말을 툭 잘라 버렸다.

그런데 세루리안의 말대로, 레오프리드 신부와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작은 여성이 서성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라? 동행이 있으셨네요?”

내가 그쪽을 바라보자, 잠시 주춤한 그녀는 망설이다가 내게 다가왔다.

그녀가 가까워지자, 나는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와 주셨군요.”

나는 교회로 청첩장을 두 장 보냈다. 하나는 레오프리드 신부 앞으로. 그리고 또 하나는.

“죄송합니다. 그래도 역시 저는 너무 두려워서 나설 수가 없었어요.”

바로 내 앞에 있는 여자, 노엘에게로 말이다.

노엘은 다름 아닌, 그 사건에서 바네린느에게 죽을 때까지 매를 맞았던 황궁 하녀였다. 지금도 그녀의 목덜미에는 가려지지 않는 그날의 흉터가 남아 있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증언을 부탁하기 위해 나는 그녀에게 청첩을 보냈지만, 역시 그녀는 나서지 못했다.

하나 그 모습이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나는 노엘의 손을 붙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용기를 내 주신 거잖아요. 정말 감사드려요.”

“황녀를 실제로 보니,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입이 열리질 않았어요.”

“이해해요.”

나도 그 사건 이후 바네린느를 처음 보았을 때 그랬다. 지금도 때때로 천사처럼 웃는 그녀를 보면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싸우기로 했다. 세루리안을 돕고, 내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나는 노엘에게 빙긋 웃어 보였다.

“제가 당신 몫까지 지지 않고 싸울게요. 고아원을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눈물을 글썽이던 노엘은, 행여나 누가 제 얼굴을 볼까 봐 로브를 푹 눌러쓰고 레오프리드 신부와 함께 사라졌다.

두 사람을 배웅하고 있으니, 세루리안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분이 당신이 숨겨 둔 패였습니까?”

그에게 무엇을 숨기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시 황녀궁에 있었던 하녀예요. 사건의 피해자죠.”

“살인미수라고 들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숨어 지내다, 레오프리드 신부님께 찾아왔대요. 죽을까 봐 무서우니 숨겨 달라고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아사 직전의 상태로 고아원에 실려 왔죠. 보는 순간 알아보았어요. 그때 그 피투성이 하녀라는 걸요.”

바네린느의 진면모를 아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 되지 않기에 서로의 처지를 알고 난 후 마음을 터놓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역시 진실 규명을 위해 나서는 건 무리였던 모양이다.

나는 시원섭섭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솔직한 마음 같아서는 진실을 말해 달라고 떼를 쓰고 싶지만. 그 또한 제 이기심이겠죠.”

역사에 진실을 주장했다가 처참한 꼴을 당한 이들이 얼마나 많던가. 고아원에서 조용히 일을 도우며 살고 있는데, 괜히 존재를 드러냈다가 바네린느의 표적이 되는 게 두려운 것도 당연했다.

내 모든 이야기를 들은 세루리안이 담담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조금도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나는 세루리안을 돌아보았다. 세루리안의 푸른 눈동자가, 평소와 달리 일렁이고 있었다.

“당신은…….”

내가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야호! 단장님! 마님!”

“칼리마.”

드레스 차림과 반대되는 발랄한 걸음으로 칼리마가 우리를 찾았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푹 숙였다.

“칼리마, 오늘 정말 감사드려요.”

“에이, 뭘요. 그런 조무래기 잔챙이를 밟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워요.”

칼리마는 시원시원하기 짝이 없었다. 플로린 영애가 조무래기 잔챙이라니. 그녀의 강인한 멘털이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던 중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수사 기록의 사본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유실되었다면서요.”

“에이, 그것도 별거 아니었어요. 기록이 유실되기 전에 황제 폐하께 부탁했지요. 사본을 만들어 달라고요.”

“……예? 황제 폐하?”

황제가 언급된다는 점에서 이미 쉽지 않은데?

내가 어이가 없어서 세루리안을 돌아보니, 세루리안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칼리마와 황제 폐하 또한 사촌입니다.”

“네?”

하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나는 딱딱 이를 부딪치며 물었다.

“카, 칼리마. 내 옆에서 이렇게 지내도 되는 거예요? 공사다망한 상황이었던 거 아니고요?”

칼리마는 손사래를 치며 시원스럽게 웃었다.

“테오도르 오라버니는 단순무식한 사람에게 자비로우시거든요! 저를 친동생처럼 예뻐하신답니다.”

오라버니라니.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아까 말하는 것을 보며,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정체를 알면 알수록 숨통이 꽉 막히는 느낌이었다.

칼리마는 부채로 팔랑팔랑 제 얼굴을 부치며 말을 이었다.

“사실 부탁하기 멋쩍었거든요. 그래도 이 일을 해야 마님의 시녀로 들어갈 수 있을 테니 열심히 노력했답니다. 이제 합법적으로 루크 공작가에서 지낼 수 있겠어요!”

“네? 시녀요? 누구의 시녀?”

“제가 에델 루크 부인의 시녀로요! 공작 부인도 세이지 부인을 시녀로 거느리고 있잖아요.”

“아, 아니, 그건 좀…….”

애초에 시녀가 나보다 신분이 높은 경우가 어디 있는데.

‘아닌가? 이제 내가 세루리안의 부인이 되었으니까, 더 높은 신분인가?’

당황해서 대답을 못 하고 눈만 껌뻑거렸다. 그런 내 손을 붙들고 칼리마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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