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루리안은 아랫입술을 얕게 깨물었다.
도대체 웨딩드레스에 무슨 장치를 해 둔 걸까.
‘결혼식에서 망신을 주려는 의도인 건 분명한데.’
그에게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조차 결여되어, 도무지 바네린느의 의도를 읽을 수가 없었다.
‘드레스를 꼭 입어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아갔으니,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을 텐데.’
차근히 드레스를 살펴보면서 의도를 분석하고 싶었지만, 소환령이 떨어진지라 에델을 따라갈 수도 없었다.
‘칼리마가 잘 파악해 주는 수밖에.’
칼리마는 그런 쪽으로는 센스도 좋고, 눈치도 빠른 편이니 그보다 더 나을 터였다.
‘지금 나는 이쪽에 집중해야 해.’
세루리안은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 버렸다. 그리고 고작 며칠 안 입었다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제복을 다시금 정돈했다.
* * *
지원 요청이 온 곳은 이미 도착한 특수부 기사들이 거리를 폐쇄하고 사람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이미 나와 있던 탐색꾼 중 하나가 세루리안을 향해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오오, 요즘 얼굴을 보기 힘든 세루리안 경 아니십니까.”
“오랜만이군. 상황은?”
“다짜고짜 본론입니까? 정 없는 건 여전하시네요.”
투덜거리는 말에도 세루리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세루리안뿐만 아니라 로어 사냥꾼들 대부분이 이렇게 말수가 적다는 걸 알고 있는 탐색꾼은 능글거리며 대답했다.
“포텐샤 경께서 대치 중이십니다. 참고로 기분이 무척 안 좋으시므로 주의 부탁드립니다.”
“…….”
하필 포텐샤 경이라니.
포텐샤는 루크 공작과 마찬가지로 유서 깊은 마물 사냥꾼 집안 출신이었다.
그리고 그는 바퀴벌레와 우열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루크 공작을 무척 싫어했다.
설상가상으로 통제구역에 들어서니, 막 로어 퇴치가 끝나서 검을 털고 있는 포텐샤 경이 보였다. 일이 끝나고 나타난 셈이 된 세루리안을 보며 포텐샤 경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세루리안 루크.”
“안녕하십니까.”
“안녕 못 하지, 자네 덕분에.”
세루리안은 그냥 반듯하게 서서 포텐샤 경을 마주했다. 상대 또한 완전히 무표정했던 탓에, 분위기는 차갑기만 했다.
“로어를 상대하는 일에 마땅히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이래서야 최고의 로어 사냥꾼이라는 위명이 울겠군.”
포텐샤 경의 조곤조곤하지만 뼈가 있는 책망에, 세루리안이 ‘오늘은 날씨가 좋네’라고 말하듯 가벼운 어조로 대답했다.
“혼인 준비를 하느라 바빴습니다.”
“뭐?”
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세루리안의 말에, ‘또 기나긴 무감정 말다툼의 시작인가’라고 생각하며 솜뭉치로 귀를 막으려고 했던 기사가 흥분해서 물었다.
“자, 잠깐만요! 세루리안 경! 그럼 세루리안 경이 아름다운 평민 아가씨에게 반해서 열렬한 구애 끝에 곧 결혼한다는 거짓 소문이 사실이란 말입니까?”
이미 두 차례 기사가 나간 터라, 소문이 퍼질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반문은 당황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뒷부분이 거슬렸다.
“거짓 소문이라니?”
“세루리안 경을 실제로 만나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거짓 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경이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를 사람은 절대 아니지 않습니까!”
“…….”
그 지적에는 세루리안도 입을 다물었다.
‘기사에는 그저 가문의 보물을 직접 선물했다고 쓰여 있던 거 같은데.’
세레나데라니. 평생 한 번도 노래를 불러 본 적이 없는데, 어찌 저런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다. 세레나데는 거짓이라고 정정하는 것도 기운 빠지는 일이라 세루리안은 시큰둥한 어조로 핀잔을 주었다.
“임무에 집중하지.”
“그런 말을 듣고 집중할 수 있을 거 같습니까?!”
집중을 못 할 것은 또 무엇인가.
계속 무심한 세루리안과 달리, 기사는 자기 일처럼 흥분해서 얼굴을 빨갛게 붉히고 손뼉을 쳤다.
“와아, 축하드립니다. 정말 소문대로 엄청난 미인이신가요? 아니면 저 하늘의 달도 살 수 있는 재력가?”
“둘 다 아니다.”
“자꾸 그렇게 단답형으로 말하지 말고 더 이야기 좀 풀어 봐요. 궁금해 죽겠다고요.”
세루리안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기사는 폴짝 뛰어서 돌아섰다.
“얼른 소문내야지!”
정작 혼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게 만든 포텐샤 경은 덕담은커녕, 세루리안을 붙들고 잔소리만 늘어놓았다.
“부르면 바로 오도록.”
“루크 공작은 쓰레기다.”
“절대로 그를 내보내지 마라.”
“내가 속이 좁아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루크 공작이 싫다는 말을 짧게 여러 번 반복한 포텐샤 경은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남겼다.
“좋게 말할 때 칼리마를 돌려줘라.”
“…….”
그 또한 그의 영역이 아니었다. 세루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포텐샤 경은 떠나고, 세루리안은 마지막으로 현장을 한 바퀴 돌았다. 루크 공작을 지독히 싫어하는 것 외에는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로어 사냥꾼인지라, 현장은 깨끗하기 그지없었다.
‘괜히 왔군.’
세루리안은 코끝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에델을 집에 데려다줄 것을.’
그것은 아쉬움이라는 감정이었다. 아주아주 오래전, 무감각증이 심해지기 전에 느꼈던 감정이 흔적처럼 떠올랐다.
그 기묘한 감각을, 세루리안이 눈을 감고 되새기고 있을 때였다.
“레오! 너는 들었어? 세루리안 경이 결혼하신대.”
‘레오.’
익숙한 이름이 귀를 울렸다. 세루리안은 고개를 돌렸다. 아직 그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걸 모르는 탐색꾼들이 모여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에서 세루리안의 시선에 띈 것은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가느다란 눈을 가진 검은 머리카락의 신부였다.
레오프리드 테어만.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선량한 신부인 척 살고 있지만, 사실은 뉴캐슬 곳곳에 숨어 있는 로어를 찾아다니는 로어 탐색꾼이었다.
꽤 유능하다고 정평이 나 있었고.
‘아마도 에델을 구해 줬다던 신부가 저 남자겠지.’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강렬한 적의에, 세루리안은 조금 당황했다.
그리고 그사이,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레오프리드는 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시큰둥한 투로 대답했다.
“요즘 결혼 철인가? 여기저기서 결혼 이야기를 하네. 바로 얼마 전에도 지인이 결혼한다고 자랑하더니”
“자네는 지인이 없을 텐데?”
말장난을 주고받던 레오프리드는 냉담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루크 공자께서는 이혼을 염두에 둔 계약 결혼은 아니었으면 좋겠군.”
“재수 없는 소리 마.”
거기까지 말하고 두 사람은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더는 로어가 없으니 철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루리안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분노가 타올라, 그의 머릿속을 희게 물들이는 것만 같았다.
“…….”
세루리안은 차분히 제 마음속을 들여다보았다.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라, 다루기 힘듦에도 그는 지극히 이성적으로 자신을 대할 수 있었다. 마치 거울로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듯 말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가 느끼고 있는 분노와 불쾌감의 원인을.
‘이혼을 염두에 둔 계약 결혼.’
그런 표현을 사용할 사람이 공교롭게도 딱 한 사람,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바로 에델 아지안이었다.
‘아마도 에델이 레오프리드에게 말한 거겠지.’
도대체 언제? 그럴만한 틈이 있었나? 하는 의문은 의미가 없었다.
그녀가 편안하게 그를 찾아가, 중요한 비밀까지 모두 털어놓는다는 게 중요했으니까.
결국 그는 불쾌했던 것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에델 아지안에 대해 알고 있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게 도대체…….’
좋고 싫음. 그 간단한 것조차 느끼지 못하던 세루리안에게 질투와 같은 강렬한 감정은 그가 수용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처음 그녀를 만나, 갑자기 밀려드는 향기에 어지러움을 느꼈을 때와 같은 감각이었다. 지금은 어떤 향기인지 하나하나 구분할 수 있지만, 그때는 밀려드는 폭풍에 역겨움만이 가득했다. 에델과 함께 식사가 불가능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세루리안의 몸이 비틀거렸다. 멀미와 비슷한 감각을 느끼며 세루리안이 손바닥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을 때였다.
“괜찮으십니까?”
“……물러가도록.”
다른 사람이 제 혼란함을 눈치챌 정도라니. 세루리안은 일단 이 자리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비틀거리며 떠나는 바람에 그는 놓치고 말았다.
세루리안이 지나간 거리, 가로등의 길게 늘어진 그림자 속에서 꿈틀거리는 불길한 기운을 말이다.
바로 로어였다.
* * *
바네린느가 보낸 웨딩드레스를 안고 집에 귀가하니, 칼리마가 나를 웃으며 반겨 주었다.
“돌아오셨어요? 그런데 그건 무슨 상자인데 직접 안고 들어오세요? 이런 건 힘세고 건강한 단장님을 시키셔야죠.”
“세루리안은 함께 오지 않았어요.”
“네?”
놀라는 칼리마의 얼굴을 보니 저절로 어색한 웃음이 나왔다.
‘왜냐하면 나도 세루리안이 데려다주지 못한다고 할 때 조금 놀랐으니까.’
도대체 그에게 언제 이렇게 익숙해진 건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상자를 식탁에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일이 있어서 함께 올 수 없다고 했어요.”
고개를 갸웃거리던 칼리마가 검지로 턱을 누르며 물었다.
“혹시 검은 장갑을 끼셨나요?”
“그랬는데…… 혹시 무슨 암호인가요?”
그러고 보니 집사가 장갑을 건넸지. 내 물음에 칼리마는 어깨를 으쓱했다.
“로어가 나왔다는 뜻이군요. 정신없이 바쁘시겠네요.”
그 대답에 나는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식탁을 콩 내리치고 말았다.
“이 사람이 진짜!”
칼리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았다. 그간 칼리마에게도 익숙해진 것인지, 아니면 너무 분했는지, 속마음이 술술 흘러나왔다.
“세루리안이 왜 이렇게 로어에 대해 감추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칼리마는 눈을 찡그리듯 웃으며 대답했다.
“알아서 좋을 건 없으니까요? 국법상 기밀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칼리마는 종종 말해 주잖아요.”
“제가 말하는 건 별거 아닌 정보들이잖아요. 부부가 되시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일이기도 하고요. 남편이 나갈 때마다 검은 장갑을 끼는데 못 알아보면 바보 아닐까요?”
“그런 사소한 것도 세루리안은 알려 주지 않는다고요!”
내가 답답한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내가 로어에 대해 실마리를 잡기 위해 그에게 계약 결혼을 청한 것은 맞다. 그래서 ‘매일 15분 대화’라는 룰도 정했지.
하지만 이렇게까지 철벽을 칠 노릇이냐고!
나는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나에게 정복하는 기쁨을 느끼게 해 줄 셈인가.”
“오, 마님! 방금 완전 여왕님 같았어요.”
칼리마는 톡톡톡 박수를 쳐 주었다. 덕분에 나는 김이 푹 빠져서 다시 해파리처럼 느물거리며 식탁에 머리를 박고 말았다.
“아아, 세루리안은 정말 너무하다고요. 나는 정신없이 친해져서 내 속을 다 보여 주는데, 세루리안은 틈을 주지 않아요.”
아까도 분명히 웃은 거 같은데, 말끔한 표정이었고 말이다.
‘사실은 그가 웃은 게 아니라 내가 웃은 거야. 내 내면의 소리였던 거지.’
그딴 헛생각을 하며 나는 우울함의 바다를 헤엄쳤다. 그런 내게 칼리마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세요. 제가 보기에는 단장님이야말로 푹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시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