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쁜 며느리가 되고 싶어요 (15)화 (15/138)

내가 그렇게 씩씩거리고 있을 때였다.

“흐음.”

마치 콧노래를 부르는 듯 경쾌함이 스민 소리가 울렸다. 화들짝 놀라서 그를 돌아보았지만, 그는 이미 몸을 휙 돌렸기 때문에 그의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세루리안과 콧노래라니. 알아 온 기간은 짧지만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자기 이야기가 실린 가십지를 보며 콧소리를 내는 세루리안 루크라니.

‘엄마! 내 약혼자가 갑자기 이상해졌어요!’

이것도 그 사람의 또 다른 면이라고 봐야 하나요!

당연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세루리안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역시 그날, 각하 또한 가십지에서 당신의 기사를 읽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네? 뭐라고요?”

내가 들은 게 맞나 싶어서 반문했지만, 세루리안은 대답 없이 돌아섰다.

“집 주변을 한번 돌아보겠습니다.”

“네? 네네.”

나는 팔짱을 끼고 문을 열고 나서는 세루리안의 뒷모습을 보았다.

가십지와 루크 공작이라니.

‘설마 우리 시아버지도 내 팬이신가.’

그런 좋은 일이 있을 리가 없지. 나는 고개를 휙휙 흔들었다.

* * *

어느덧 이틀이 흘렀다.

잔뜩 긴장했던 것이 무색하게 나는 평소처럼 지냈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잤다.

특히 산책 겸 나섰던 동네 벼룩시장에서 오래전에 절판된 희귀 소설을 찾아냈기 때문에, 화요일에는 오후 내내 책만 읽었다.

‘아아, 이런 평화 좋다.’

되도록 이렇게 느긋한 하루가 계속 이어지면 좋을 텐데.

그러나 아침에 눈을 뜨기 무섭게 쿵쿵 문이 울렸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만요.”

보나 마나 세루리안이겠지. 슬슬 내가 지나치게 늦게 일어나는 것인가 싶어졌다.

‘아아, 귀찮아.’

고양이 세수를 하고, 대충 숄을 걸쳤다. 그리고 제발 두 시간쯤 있다가 오라고 한마디 해 주려고 문을 열었는데.

“안녕하세요, 마님.”

문 앞에는 갈색 단발 머리카락을 가진 귀여운 인상의 여자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서 있었다.

“누, 누구세요?”

당연히 세루리안일 줄 알고 나왔는데 말이다. 처음 보는 여성의 등장에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게다가 이 여자가 나를 뭐라고 불렀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호칭이었다. 그러니까.

“마, 마님?!”

세상에. 내가 마님이라니.

당황해서 어버버거리고 있으니, 갈색 머리 여자 뒤로 익숙한 얼굴이 삐죽 나왔다. 바로 세루리안이었다.

“지금은 레이디 에델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군.”

“그러게요. 지나치게 당황하시네요.”

아무렴 당황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냥 평민으로 하루하루 그럭저럭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님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입술을 벙긋거리고 있으니, 갈색 머리 여자가 커다란 눈을 찌푸리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하지만 금방 결혼하실 거 같은데 굳이 호칭을 이리저리 바꿀 필요가 있을까요? 어차피 작은 마님으로 불리실 텐데 그냥 처음부터 작은 마님에 익숙해지시면 좋잖아요.”

“합리적인 의견이군.”

“잠깐만요! 잠깐만요!”

너희들끼리 날 부르는 호칭을 정하지 말아 줄래.

세루리안이라면 합리적이라는 이유로 얼마든지 그리 부르라고 할 사람이었다.

게다가 내가 태클을 걸어야 할 것은 호칭 말고도 많이 있었다.

“이게 다 뭐에요!”

이사라도 온 것처럼 우르르 배달된 상자 더미가 정원에 작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나가던 이웃 사람들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눈에 띄는데.

‘좁아 터진 정원에 이 넓은 티 테이블은 뭐냐고!’

나에게 소소한 일거리를 주는 정원이 지금은 테이블, 의자, 그리고 차 시중을 드는 웨이터와 앙증맞은 다과를 접시에 담는 요리사로 가득 차 있었다.

‘아니, 이 동네 사람들은 또 왜 여기 끼어 있어?’

한 잔씩 받아 가는 얼굴들이 모두 눈에 익었다. 쭈뼛거리면서도 즐거워하는 기색이 역력해서 나는 입술만 벙긋거렸다.

‘완전히 야외 티 파티장이 되었네.’

벙긋거리는 내게 세루리안이 짧게 설명해 주었다.

“저는 오늘 아침 일찍 당신과 차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겠노라고 결심했습니다.”

이건 또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나는 빽 소리쳤다.

“그럼 지난번처럼 그냥 혼자 오시면 되잖아요!”

“그것도 좋았지만.”

세루리안이 부드럽게 내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제 약혼녀에게는 뭐든 최고로 해 주고 싶어져서요.”

“네……?”

나는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만에 모르는 사람이 와 있으니!

“가, 갑자기 왜 이래요?”

하지만 그가 왜 이렇게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마님께서 기사에 그렇게 적으셨잖아요! 세루리안 루크는 약혼녀와 함께 차 마시는 걸 즐긴다고요.”

나를 마님이라고 불렀던 갈색 머리 여자가 오늘 아침에 발매된 신문을 들어 보였다.

“그거야…….”

그냥 판매 부수를 올리기 위한 적절한 양념 같은 거 아니겠는가.

그러나 세루리안은 진지한 표정으로 손을 자신의 가슴팍에 올리고 말했다.

“저는 그 기사를 진실로 만들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꼈으며…….”

“으악! 으악!”

이러다가 얼굴 터지겠다. 나는 세루리안의 팔을 붙들어 잡아당겼다.

“제 얼굴이 곧 터지길 원하시는 게 아니라면 얼른 안으로 들어오세요.”

“아, 잠시만요.”

세루리안이 손짓하자,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정원 한쪽에 쌓인 상자를 집 안으로 날랐다.

‘으아, 집이 터지게 생겼어.’

그냥도 자그마한 집인데!

엄마가 돌아가신 뒤, 혼자 살기에 충분했던 작은 집이 이렇게 비좁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이 상자들은 뭔가요?”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벙긋거리니, 세루리안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완성된 드레스와 그와 짝을 맞춘 모자, 장갑, 구두 등입니다. 혹시 보관할 만한 창고가 있습니까?”

“1층 바닥을 열면 창고가 나와……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이 집은 겉으로 보기엔 그냥 허름한 단층 건물 같지만, 사실 식탁 아래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있었다. 그곳이 바로 소시지나 와인을 보관하는 용도의 창고였다.

내 대답에 갈색 머리 여자는 눈을 별처럼 반짝반짝 빛내면서 내게 얼굴을 들이댔다.

“아니, 아주 중요한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마님. 바닥을 열면 나오는 창고가 있군요. 앞으로 마님을 지켜야 하는데, 그런 비밀 공간은 잘 알고 있어야 하지요.”

“네? 저를 지킨다고요?”

그녀는 나보다 키가 작았다. 갑자기 가까워진 얼굴에, 나는 어깨를 움츠리며 물러서고 말았다. 내 집에 들어선 그녀는 생글 웃으며 말했다.

“자기소개가 너무 늦었네요. 잘 부탁드려요, 마님. 저는 칼리마라고 해요. 앞으로 마님의 생활 전반을 책임질 예정이지요. 정원의 텐트는 신경 쓰지 마세요. 앞으로 제가 살 곳이니까요!”

“헉.”

그 말에 정원을 보니 티 테이블 말고도 인디언 텐트가 보였다. 갑자기 생겨난 더부살이 식구에 당황하고 있으니, 세루리안이 차분한 어조로 그녀에 대해서 덧붙였다.

“칼리마는 유능한 용병이니 믿고 의지하셔도 될 겁니다. 그리고…….”

“일단 사인부터 해 주세요, 마님!”

“……당신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지요.”

칼리마가 내민 것은 다름 아닌 내가 정기적으로 ‘사교계의 이모저모’를 연재하는 가십지였다.

‘뭐라고? 사인?’

나에게는 너무나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칼리마는 그런 내가 정신을 차릴 틈도 주지 않고 다다다 빠른 어조로 퍼부었다.

“마님은 천재세요! 제가 매주 얼마나 새로운 가십과 못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이야기를 기다리는지 아시면 깜짝 놀랄 거예요!”

“어…… 일단 감사드려요.”

이렇게 갑자기 팬을 만나다니.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엉겁결에 그녀가 내미는 펜으로 잡지 표지에 서명하고 있으니, 세루리안이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칼리마는 손재주도 좋고, 검술 솜씨도 뛰어납니다. 분명 여러 방면으로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빈말을 할 줄 모르는 그가 저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니, 그녀는 뛰어난 솜씨를 지닌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의 실력의 출중함과 그녀를 내 정원(?)에 두는 건 좀 다른 문제이지 않은가. 나는 세루리안에게 말했다.

“세루리안, 제 한 몸 정도는 제가 잘 지키면서 살아왔어요. 지켜 줄 사람은 딱히 필요하지 않아요.”

내 말에, 세루리안은 그리 말할 줄 알았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이 집에는 가문의 보석인 옐로 사파이어가 있으니까요. 철통 경비를 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아, 그건 그러네요.”

옐로 사파이어.

‘그건 확실히 노리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몰라.’

내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였다.

칼리마가 세루리안에게 속삭였다.

“와, 단장님 거짓말도 잘하시네요. 보석 같은 건 어떻게 되든 상관도 없으시면서.”

“쉿.”

뭐야, 둘이 무슨 작당 모의를 하는 건데?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들어온 건가!’

내가 눈을 가늘게 떴을 때였다. 칼리마가 생글 붙임성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마님. 저는 마님이 부리는 사람이니까요.”

“갑자기 그렇게 말해도…….”

내가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칼리마는 냉큼 말을 바꾸었다.

“아니면 그냥 친구가 하나 생겼다고 생각하세요. 돈 많고 인망 없는 남편이 억지로 사 온 친구요.”

“신랄한 표현이네요.”

돈 많고 인망 없는 남편이라니.

세루리안 루크를 칭하는 표현이 너무나 박해서 웃음이 나왔다. 가만히 서 있는 내 등을 칼리마가 떠밀며 말했다.

“남은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얼른 준비하도록 하죠! 오늘은 중요한 날이잖아요.”

“네? 오늘이 무슨 날인데요?”

“이 드레스를 처음 입는 날이죠.”

칼리마는 수많은 상자 중 가장 큰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세루리안이 마담에게 직접 지시했던 넓은 네크라인의 풍성한 주름이 잡힌 녹색 드레스가 놓여 있었다.

그녀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오늘이 루크 공작님을 뵙는 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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