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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며느리가 되고 싶어요 (12)화 (12/138)

그리고 세루리안이 의도한바 또한 내 생각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신이 이걸 달고 나타나면 공작 부인께서는 몹시 서운해하시겠죠.”

서운하기만 하겠나. 혈압이 올라서 쓰러지겠지!

나는 비슬비슬 웃으며 중얼거렸다.

“……당신, 얼굴은 천사처럼 생겨서는 성격이 안 좋네요.”

“당신은 칭찬을 욕처럼 하는 재주가 있군요.”

세루리안은 눈을 가늘게 뜨며 덧붙였다.

“솔직히 말씀하시죠. 당신도 공작 부인이 분해하는 모습을 바로 떠올렸을 것 아닙니까.”

“이런 걸 가리켜서 천생연분이라고 하나 봐요.”

부부는 원래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이라지 않은가. 정식으로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생각이 통하다니, 잘 맞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 말하고 나는 세루리안이 가벼이 넘기길 기다렸다. 계약 결혼인데 천생연분은 무슨, 하고 말이다.

“…….”

그러나 세루리안은 별 관심 없다는 듯이 다시 상자를 닫았다. 세루리안의 그런 태도에 김이 식고 말았다.

‘좀 더 웃기도 하고 찡그리기도 하고, 다채로운 감정 표현을 보고 싶은데.’

그가 유일하게 움찔거릴 때는 나랑 손이 닿을 때뿐.

‘내가 그를 자극하는 게 냄새뿐이라니, 좀 서럽다.’

입술을 삐죽거리던 나는 코끝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휘황찬란한 노란빛이 눈에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턱을 괴고 물었다.

“사실 공작 부인께는 허세를 부리려고 했던 말이긴 한데요…… 이쯤 되면 공작님께서 정말 저를 마음에 들어 하시나 싶네요.”

내 말에 세루리안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눈을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간 매사 수수방관하던 분이 혼약서에 부인에게 언질도 없이 도장을 찍어 주신 것도 그렇고요.”

내 물음에 세루리안은 여상스러운 표정으로 상자를 내려보았다.

“그럴지도 모르죠.”

덤덤한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오답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혼인을 허락한 걸까. 나는 나름대로 그럴듯한 이유를 추측해 보았다.

“제가 평민이라서 이 정도는 밀어줘야 공작 부인과 싸워 볼 만하다고 생각하신 걸까요?”

그렇다면 애초에 평민을 부인으로 내정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으으,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어.’

루크 공작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으니, 결론도 섣불리 내릴 수가 없었다. 끙끙거리고 있으니, 세루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그리 깊이 생각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 외에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무관심한 분이시죠.”

“하지만 계속 안 하던 짓을 하고 계시잖아요.”

“그거야…….”

세루리안의 얼굴에 혼란스러움이 살짝 어렸다가 사라졌다. 그 얼굴에서, 그도 실은 이 주제가 궁금했으나 결국 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여실하게 드러났다. 그는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어찌 되었든 원인이 저는 아닐 겁니다.”

“흠.”

그럼 도대체 루크 공작은 왜 나와 세루리안의 혼인을 허락했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미궁이었다.

* * *

세루리안의 푸른 눈동자가 에델을 향했다. 턱을 괴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얼굴이 어쩐지 귀여웠다.

‘……귀엽다고?’

세루리안은 자신의 생각에 스스로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는 타인을 상대로 어떤 감정을 품어 본 적이 없었다. 공작가에 입성해 지금까지 공작에게 서운하지 않고, 공작 부인도 딱히 밉지 않았다. 아예 감정 자체가 거의 없었으니까.

하지만 에델은 달랐다. 처음부터 그녀만은 특별했다.

‘기분 탓인가, 점점 더 달콤한 향기가 진해지는 것 같고.’

처음 그녀와 접촉했을 때는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감각에 균형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접촉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거부감은 줄어들고, 감각은 점점 더 세밀해졌다.

‘어째서일까.’

진한 장미 향에 취해 느릿하게 숨을 내쉬고 있으니, 에델이 활짝 웃었다.

“세루리안.”

“……!!”

그저 웃으며 그의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어째서 이리 가슴이 저릿한 것인지.

‘그녀는 특별해.’

어린 시절에 만난 적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녀 자신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세루리안에게 특별한 존재인 건 분명했다.

에델의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보며 잠시 뒤 세루리안의 머릿속에 어떠한 가정이 떠올랐다.

‘만약 각하께서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루크 공작이 그간 세루리안의 일에 무심했던 것은, 바네린느와 달리 세루리안 자신이 루크 공작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그도 에델의 특별함을 알고 있는 거라면? 그래서 유난히 에델에게 너그러웠다면?

‘그건 좀…….’

싫은데.

또다시 느껴지는 생소한 감정에, 세루리안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엇이 싫은 것인가. 그녀에 대해서 공작이 아는 것이? 아니면, 그녀의 특별함을 아는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감정에 익숙하지 않은 세루리안은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저 한없이 마음이 어지럽게 일그러지기만 할 뿐.

세루리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에게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 * *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나는 흘긋 내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곁눈질했다.

‘갑자기 왜 저러지?’

세루리안이 입을 꾹 다물고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세루리안의 얼굴이야 늘 비슷하게 무표정이었지만, 세루리안에게 익숙해진 것인지 이제는 그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까부터 갑자기 기분이 빠르게 안 좋아졌지.’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무엇이 그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닌가, 내 착각인가.’

하지만 확연하게 말수가 줄어들었는데.

나는 흘금 세루리안을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그의 기분을 살피려고 쳐다본 것인데, 마차의 덧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요요하게 빛나는 그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그다음에는 종이를 대면 베일 것 같은 날카로운 콧대, 그리고 차가워 보이면서도 어쩐지 쓸쓸해 보이는 눈매.

그가 입고 있는 상의에는 눈에 띄는 검은 검 모양의 배지가 빛나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로어 사냥꾼이라는 표식.’

로어와의 싸움에서 선봉에 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여기 있는 세루리안이었다.

지금이 내가 계약 결혼까지 제안하면서 바라던 그 순간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나는 부러 관심 없는 척 일상 이야기를 꺼내듯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 배지는 늘 하고 계시네요. 저를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출근하시나요?”

세루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휴가 중입니다.”

“네? 휴가요?”

“인생 중대사를 앞두었는데 한가롭게 일을 하고 있을 수는 없지요.”

“……?”

한가롭다는 말의 정의가 바뀐 거 같은데.

‘한가롭게 일이라니. 일을 한가롭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아무리 좋아해서 하는 일이어도 일은 일이지.

게다가 이유가 뭐라고?

“……설마 결혼 때문에 휴가를 내셨다는 거예요?”

내 질문에, 세루리안은 뭐가 이상하냐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윽, 뭔가 세루리안과 정말 어울리지 않는데. 결혼 휴가라니!’

생각해 보니 나도 신청했구나. 아아, 그래도 뭐랄까. 나랑 그 사람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세루리안은 팔짱을 끼고 대답했다.

“휴가 중이라도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현장으로 가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딱히 자랑스러워서 달고 있는 건 아닙니다.”

“비상사태에 대비한다는 건가요?”

“그런 셈이죠.”

참 직업적으로 성실한 대답이었는데, 정작 그의 얼굴은 완전히 무감해 보였다. 딱히 성실해서가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그건 ‘로어’의 특성 때문인가요?”

나의 물음에 늘 막힘없이 대답하던 세루리안도, 이번만큼은 입을 다물었다. 잠시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세루리안이 느릿한 어조로 대답했다.

“……글쎄요.”

이렇게 싱겁게 대답할 거면서 뭐 때문에 뜸을 들였대.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제대로 대답하라고 멱살을 짤짤 흔들고 싶었지만, 세루리안의 표정을 보니 답해 줄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는 옐로 사파이어가 든 상자를 끌어안고 잠시 침묵했다.

창문에 스치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여러 가지 생각에 마음이 울렁울렁했다. 하지만 많은 생각 중에 내 마음에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바네린느 황녀.’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또 싫어하고, 나를 곤경에 빠뜨리고 싶어 하는 여자.

‘이번에도 그 여자에게 당할 수는 없지.’

나는 상자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의연한 어조로 말했다.

“잠시만요. 기왕 마차를 탄 김에 다른 곳에 들려도 될까요?”

“어디를요?”

“그게.”

바네린느에게 대항할 싸움터. 그리고 기자의 싸움터가 어디겠는가.

“저희 신문사요.”

나는 펜을 들고 싸울 것이다.

* * *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사무실에는 편집장님만 있었다. 그는 나와 세루리안을 번갈아 보면서 눈을 끔뻑거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게다가 지금 동행은…….”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이고, 저야말로 영광이지요.”

세루리안에게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굽신거리던 편집장은 나에게 소곤거렸다.

“그런데 어째서 둘이서.”

“편집장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기자의 기본은 비밀 유지. 나는 편집장, 세루리안과 함께 근처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꼭 걸어 잠갔다.

그간 쌓인 먼지가 풀풀 날리는 협소한 공간이었다. 세루리안은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여긴 뭡니까?”

“자료실이요. 매우 더럽죠? 사용하는 직원은 많은데 다들 청소는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물론 저를 포함해서요.”

편집장이 왜 그렇게 적나라하게 말하냐는 듯이 팔꿈치로 나를 쳤다.

어쨌든 자료실에 들어온 우리는 나란히 마주 섰다. 나는 팔짱을 끼고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제가 결혼해야 해서 휴가를 낸다고 했었죠.”

“그랬지.”

“이분이 제 약혼자예요.”

“……뭐?”

내 말에 편집장의 턱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는 뒤늦게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난리를 피웠다.

“자, 자, 잠깐만! 아니, 적어야 해. 인터뷰.”

나는 손바닥을 들었다. 그리고 편집장에게 냉정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는 <뉴캐슬 타임스>에 독점 기사를 주겠다고 아직 확답하지 않았는데요.”

“뭐?”

나는 차근차근 그에게 덧붙였다.

“제가 이곳에 온 건 그 부분을 흥정하기 위해서예요. 우리 부부에 대한 기사의 독점권. 얼마나 많은 가격이 붙을지 제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지요?”

“그, 그거야 그렇지. 얼마를 원하는데? 백지수표라도 받아다 줘?”

편집장의 손이 덜덜 떨렸다. 백지수표. 그것도 솔깃하긴 하지만, 내가 지금 여기 온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금액이야 제가 합리적으로 제시할게요. 중요한 건 금액이 아니라 지금 제시할 조건이에요.”

나는 또박또박 선명한 어조로 말했다.

“어떤 내용이든, 어떤 외압이 들어오든, 제가 주는 그대로 실어 줄 것. 그것이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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