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어머, 그 말이 들렸어요? 아니에요. 그 정도로 근래는 아니고 6년 정도 되었어요.”
“당신이 막 기자로 입사했을 무렵이군요.”
“아뇨, 그때보다는 더 전이죠.”
기자로 입사했을 때라.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 멈춰 두었던 시간이 흐르듯 그 무렵의 기억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날은 여느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엄마는 그게 자신의 유언이 될 줄도 모르고 평소처럼 발랄한 어조로 말했다.
“에델, 누구나 겉보기와는 다른 면이 있단다. 엄마는 그 사실을 지나치게 늦게 깨달았구나.”
그 어느 때보다 엄마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엄마의 마지막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만약 알았다면 그보다 더 상냥하게 대답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여느 인간들이 그러하듯 미래를 읽지 못했고, 출근 준비로 아침이 바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안경을 고쳐 쓰며 엄마에게 반문했다.
“그래서 뭐? 갑자기 아빠의 좋은 점이 떠올랐어?”
“그렇…… 다고 말하기에는 그는 손쓸 도리 없는 쓰레기였어.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점을 찾을 수 없구나.”
아, 그랬구나.
어차피 태어났을 때부터 곁에 없었던 아빠에게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낡은 수첩에서 기억을 꺼내 들 듯, 느릿한 어조로 덧붙였다.
“하지만…… 내가 그의 다른 면도 보듬어 주었다면 결과는 아주 많이 달라졌겠지. 그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만큼은 후회가 되는구나.”
그 대화가 마지막이었다. 그날 나는 황궁에서 황녀가 저지른 극악무도한 폭행의 범인이라는 누명을 썼고, 그에 대해 소명하느라 꼬박 하루를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갑자기 딸이 돌아오지 않으니 걱정이 되어서 늦은 밤에 나섰던 어머니는…….
나는 눈을 들어 세루리안을 마주 보았다. 예의상 미소를 지어낼 수 있는 나였지만, 작게 입꼬리를 끌어당기는 것조차 버거웠다.
엄마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시뻘건 피를 토해 냈으니까.
“엄마는 로어가 죽였어요. 그래서 나는 엄마의 시신을 볼 수도, 돌아가신 현장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
“아.”
세루리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빠도 없이, 여자 혼자 몸으로 나를 키워 냈던 엄마.
이 세상에 가족은 우리 둘뿐이었는데, 나는 엄마의 마지막도 지키지 못했다.
‘실제로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는데 아무 정보도 주지 않고 통제한다는 건 말이 되질 않아.’
주먹을 꽉 쥐었다. 나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로어에 대해 파헤쳐서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진솔한 목적에도, 세루리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로어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잊어버리는 게 상책입니다.”
“……그렇게까지 무서운 마물인가요?”
그저 알아보겠다는 건데. 놈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사람을 공격하는지, 어떤 순간에 위협이 되는지만 알고 싶을 뿐인데.
“두려움은 로어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음에서 오는 거지요.”
세루리안은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완벽히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말에는, 그가 로어를 대하면서 느끼는 공포 또한 포함된 것 같아, 나는 입을 다물었다.
* * *
그렇게 드레스를 맞춘 뒤, 나는 직장에 휴가를 내었다.
“5년 근속했으면 이제 특별 휴가 주실 때도 되었잖아요. 쉬고 와서 다시 힘차게 일할게요.”
내가 월급 받으면서 쉬겠다는 것도 아니고, 무급으로 쉰다는데도 편집장은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졌다.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내는 법이 어디 있나! 자네가 나가면 누가 우리 가십난을 책임지라고!”
“아니, 애초에 저는 가십난을 담당하고 싶지 않았다니까요!”
“시끄러워! 너의 재능을 인정해!”
“어휴, 진짜.”
이대로는 편집장이 도저히 납득하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허리에 손을 얹고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리고 시원스레 웃으며 편집장에게 말했다.
“저 결혼해요. 그래서 당분간 일을 할 수가 없어요.”
“뭐어?! 도대체 누구랑?”
“나중에 청첩장 드릴게요.”
받으시면 까무러칠걸.
신문사를 나오면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교계 담당 기자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알아야 하는 거 아니니.’
나와 세루리안이 그렇게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의상실을 다녀왔는데 말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결혼 전에 내가 직접 우리 신문사에 결혼 사실을 알려야겠다.’
그러면 특종비는 챙겨 주겠지?
하여간 그렇게 휴직계를 낸 뒤, 월요일 하루는 쉬었다. 그리고 화요일에는 긴 머리를 질끈 묶고 집 밖으로 나섰다.
매달 두 번째 주 화요일은 성당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어 비틀거리면서도, 내가 고아원에서 봉사 활동을 몇 년째 꾸준히 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곳은 엄마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된 내게 손을 내밀어 준 유일한 곳이었다.
‘엄마가 살아생전에도 날 데리고 종종 봉사 활동을 하던 곳이기도 했고.’
아카데미에 다닐 때는 바빠서 자주 오지 못했는데, 그때의 인연이 나를 살려 줄 줄은 몰랐다.
‘신부님이 그때 우리 집에 방문하지 않았으면 죽었을지도 몰라.’
엄마가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시고, 직장도 잃고, 텅 빈 집은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적막했다.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위로한다고 해도, 언젠가 그들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나.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문을 닫으면 숨이 막힐 것 같은 적막이 나를 덮쳐 오는 것이다.
그렇게 고요 속에서는 배도 고프지 않았고, 잠과 현실의 경계도 모호했다. 그저 물 위를 떠다니는 해파리 같은 느낌으로 멍하니 집에 있었다.
신부님이 찾아왔을 때, 나는 바닥에서 눈을 떴다.
“미쳤어! 죽을 셈이야?!”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집 안에 침범해서 나를 일으켜 세운 상황이었지만, 나는 신부님에게 따지고 들 수가 없었다. 우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윽, 이게 뭐야.’
속이 울렁거리고, 아무것도 먹지 않아 텅 빈 속에서 위액이 올라왔다. 이대로 죽는구나 허덕거리는 순간 입술에 미지근한 소금물이 닿았다.
“죽기 싫으면 마셔! 천천히! 요즘 세상에 탈수로 죽는 사람이 있다니…….”
나중에 들은 바로는 나는 물도 안 마시고 음식도 너무 안 먹어서 그대로 죽을 뻔했단다. 하루만 발견이 늦었어도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고.
“송장 치우기 싫으니까 이곳에서 지내세요. 제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네.”
그때는 정말 살고 싶은 마음도, 뭘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신부님이 권하는 대로 터덜터덜 고아원에 들어갔다.
“언니야, 언니는 여기 왜 왔어?”
“엄청 큰 언니가 왔다. 언니도 엄마 없어?”
고아원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너무나 다정하고 귀여웠고.
“언니야는 그래도 좋겠다. 엄마 얼굴은 기억날 거 아니야.”
“나는 엄마 아빠가 버렸어. 내 이름도 레오 형아가 지어 준 거야.”
그곳엔 가엾은 아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이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나마 엄마와의 추억이라도 있는 내가 목숨을 끊겠다는 건 호강에 겨운 일인 것 같았다.
“언니야, 잠자게 이야기해 줘. 나는 언니야가 해 주는 이야기가 좋더라.”
“난 지난번 늑대 이야기가 좋았어. 빨간 모자가 불태워 버린 늑대 이야기!”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나는 천천히 마음을 회복했다. 이제는 혼자 있어도 적막이 나를 잡아먹지 않을 만큼 말이다.
그 후 첫 월급을 들고 고아원에 찾아왔을 때, 신부님은 무척 화를 냈다.
“보상받으려고 당신을 돌본 게 아닙니다. 그 돈은 당신을 위해 사용하십시오!”
“하, 하지만 보답하고 싶은데.”
“보답은 가끔 와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런 연유로, 나는 이 고아원에 정기적으로 방문하게 된 것이다.
‘아아, 오늘도 보람찬 하루였다.’
찌뿌드드한 몸을 풀면서 밖으로 걸어 나오자, 까만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하나로 묶은 큰 키의 사내가 보였다. 나는 활짝 웃으면서 그를 불렀다.
“신부님!”
“에델.”
레오프리드 신부, 이 고아원을 책임지는 젊은 남자다.
그를 구경하러 오는 동네 아가씨들도 있었는데 그건 그의 얼굴이 무척 수려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저 까만 신부복이 금욕적이라나 뭐라나.’
나는 배시시 웃으며 레오프리드 신부 앞에 섰다. 그는 안경을 추켜올려 쓰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오지 말라고 말했는데, 또 왔습니까? 당신은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니까요.”
“크으.”
냉담하게 이어지는 독설에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내고 말았다. 마치 입안에서 새콤한 레몬이 터지는 느낌이었다.
‘또 시작이구나. 할 말 못 할 말 다 하기.’
레오프리드 신부님은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아주 무시무시한 특기를 지니고 있었다.
입만 열면 독설을 내뱉는 저주받은 입!
‘그리고 꼭 나한테만 저렇게 오지 말라고 해 댄다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뭐가 도움이 안 되는지 조목조목 짚는 편이라고 하면, 나에게는 아예 오질 말라고 유난스레 야단을 치곤 했다.
‘내 인생이나 제대로 살라는 거겠지.’
햇빛을 쐬지 못한 선인장인 양 말라 죽어 가고 있는 모습을 제일 먼저 봐서, 나에 대한 인상이 그렇게 박힌 게 분명했다.
‘그런 의미에서는 잘되었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안 그래도 이 말을 하려고 했다.
“신부님 말씀대로 되었네요. 저 결혼하게 되어서 당분간 못 올 거 같아요.”
내 말에 레오프리드 신부의 몸이 움찔 굳어졌다. 드물게 당황한 듯한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나올 뻔했다.
‘드디어 저 얼굴에서 불쾌감 외에 다른 감정도 보는구나.’
천하의 레오프리드 신부를 당황하게 하다니. 으쓱하고 있으니, 신부는 자신의 안경을 다시 밀어 올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일단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당분간이라니…….”
결혼해서 영영 못 오면 못 오는 거지, 왜 당분간이라고 하냐는 거지?
나는 경쾌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 일이 잘 풀리면 이혼할 거 같거든요.”
“네?”
방금 전 레오프리드 신부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면, 이번에는 완전 경악한 듯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