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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며느리가 되고 싶어요 (2)화 (2/138)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은 건 신문사의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인지, 무슨 이혼한 백작 부부의 재결합 현장을 훔쳐보는 사람들인 양 여기저기 숨어서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

오로지 한 사람, 신문사 편집장만 신이 나서 두 손의 지문이 닳도록 손바닥을 비비며 잡소리를 늘어놓았다.

“하하하, 에델은 아주 유능한 기자이지요! 오늘 발행되는 주간지도 판매량이 아주 기대된답니다.”

아아, 내가 적은 ‘사교계의 이모저모’ 코너가 실리는 주간지 말이지.

‘적어도 세루리안 루크가 그런 시답잖은 기사를 보고 인상 깊다고 말하는 건 아닐 텐데.’

하지만 정말 내 기사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이 아니라면 그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는 것도 사실이었다.

‘꿈인가?’

그런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테이블 밑으로 허벅지를 꼬집었다.

“윽!”

유감스럽게도 몹시 아팠다.

‘꿈이 아니다. 그럼, 얼굴만 닮은 사기꾼?!’

그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무심하다 못해 차가운 눈빛에 헛생각이 싹 사라졌다.

하긴, 저 얼굴이 흉내 낸들 흉내 낼 수 있는 얼굴이냐. 게다가 걸치고 있는 검은 군복 가슴팍에서 빛나는 배지는 이 나라에서 몇 명 달지 못하는 것이었다.

바로 로어 사냥꾼.

‘지금 얼떨떨하게 있을 때가 아니야.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거지. 정신 차려라, 에델 아지안!’

자꾸만 이상한 쪽으로 뻗어 가려는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직접 차와 간단한 다과를 챙긴 쟁반을 가지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세루리안 경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

편집장도 은근슬쩍 그렇게 말을 내뱉으며 내 옆에 앉으려고 했는데.

“제가 만나러 온 건 아지안 기자뿐입니다.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자리를 비켜 주시겠습니까?”

“……아, 네.”

저렇게까지 자르니, 넉살 좋은 것이 특기인 편집장도 깨갱 하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찔끔하기는 맞은편에 앉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찬바람이 쌩쌩 부네. 진짜 사람 맞아? 사람처럼 생긴 골렘 아니야?’

차라리 어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역겹다고 하던 사람이 더 인간다웠다.

잠시 세루리안 루크를 살피던 나는 지극히 기자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정말 세루리안 루크 공자이시지요?”

내 말에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차가운 목소리에 괜히 입이 바짝 말랐다. 마음에 여유를 되찾고, 대화의 페이스를 조절하기 위해 나는 의도적으로 차가 담긴 틴 케이스를 들었다.

“어떤 차 좋아하세요? 평범한 얼그레이도 괜찮으신가요?”

“저는 차를…….”

차를 거절하려고 하던 세루리안이 잠시 멈칫하더니 자신의 말을 번복했다.

“아닙니다. 주시지요.”

“……?”

루크 공자에 대해 피상적으로 알긴 하지만, 저렇게 말을 번복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인데.

‘하긴, 신문사에 덜컥 찾아올 것 같지도 않은 사람이지.’

무엇을 예상하든 그 예상이 쓸모가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따뜻한 티포트에 얼그레이 찻잎을 넣었다.

내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찻잎을 뜨는 동안, 세루리안도 속을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티포트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담담하면서도 건조한 어조로 천천히 제 용건을 꺼내 들었다.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네? 제게 어떤……?”

나는 차분하게 두 손을 모으고 세루리안을 바라보았지만, 사실 마음은 그리 편안하지 않았다. 세루리안이 내게 궁금해할 법한 것들이 머릿속에 팽팽 돌았다.

‘혹시 내 직업 때문인가. 아니면 어제 로어에 대해 취재한 것이 거슬렸나.’

그러나 막상 나를 마주한 세루리안은 입을 꾹 다물었다.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고, 차라리 빨리 물어볼 것이지.

“…….”

반듯한 입술을 보고 있으니 머릿속에 불꽃이 번쩍 튀었다. 그가 내게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어쨌든 이건 내게 기회였다.

나는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그럼 저도 궁금한 것을 물어도 되나요?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어요?”

잔잔한 호수 같은 눈동자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한숨 같은 대답을 내뱉었다.

“그러시지요.”

깔끔한 태도였는데 무정하게 들리는 건 지나치게 어조가 잔잔해서이리라.

세루리안의 말에, 나는 우선 기자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법한 질문을 입에 올렸다.

“계승 다툼 중이신 분이 왜 여기 오신 거죠?”

“말했다시피, 제 나름의 목적이 있습니다.”

“혼인은 언제 하실 거죠? 새어머니에게 대항할 만한 세력을 지닌 영애와 혼인을 하셔야 할 텐데 혹시 심중에 품은 분은 있으십니까.”

“그 여자가 제가 순순히 혼인하게 놔둘 것 같습니까?”

예민한 질문인데도 대답이 흐르는 물처럼 태연스러웠다. 감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이야기하면 할수록 독특한 사람이네.’

어쨌든 지금 이 순간은 내게도 염원해 오던 시간이었다. 나는 눈을 반짝거리며 정말 묻고 싶던 걸 질문했다.

“로어는 어떤 존재인가요?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보는 순간 다리 힘이 풀려서 도망칠 사이도 없이 덜컥 잡아먹히게 되나요?”

“비슷합니다.”

“피, 대답이 뭐 그래요.”

“달리 표현할 말이 없군요. 로어는 평생 만나지 않는 편이 최선입니다.”

“만나면 어떻게 되는데요?”

“글쎄요. 그냥 입에도 올리지 않는 편이 제일 좋습니다.”

“…….”

대화 내내 로어에 관한 쓸 만한 정보는 하나도 없이 아주 무섭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슬그머니 대화의 방향을 바꾸었다.

“루크 공작가는 대단한 것 같아요. 마물을 상대로 수백 년간 싸움을 이어 왔잖아요. 로어도 그렇고요.”

심지어 루크 공작가의 핏줄을 잇지 않은 세루리안에게까지 그 의무를 지울 정도로 긍지 높은 가문 아닌가.

입에 올리는 것조차 두려워해야 하는 무시무시한 마물을 상대하면서도, 세루리안의 대답에는 조금의 교만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로 인해 존재하는 가문이니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계속 싸울 수 있는 건 대단한 의지 없이는 불가능해요.”

“그 말은 꼭 공작 각하를 뵈면 해 주십시오.”

이렇게까지 담백하게 대답할 노릇인가. 조금 더 잘난 척하면서 말해도 될 텐데 말이다.

‘대화를 이어 가기 힘들 지경이잖아.’

나는 어떻게 하면 로어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까 맹렬히 머리를 굴리며, 손으로는 태연한 척 홍차를 따랐다. 그런 잔꾀가 안타깝게도 세루리안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질문은 거기까지입니까?”

“그…….”

“그럼 제 차례군요.”

도대체 뭘 물어보려고.

나는 잔뜩 긴장해서 세루리안을 바라보았다. 세루리안은 우아하면서도 느릿하게 제 손에 끼워진 장갑 한쪽을 벗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제 손을 잡아 주시겠습니까?”

뭘 잡아?

“예?”

나는 귀를 의심했다.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별 감흥 없는 시선으로 응시한 세루리안이 손바닥을 자신의 가슴에 올리고 말했다.

“숙녀분께 조금의 흑심도 없음을 제 이름에 대고 맹세하며…….”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맹세하지 말아요!”

손 잡는다고 무슨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뭐 이름을 걸고 맹세까지 한단 말인가.

나는 세루리안을 향해 멋쩍게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는다길래 덥석 잡나 했더니, 기다란 손가락이 살짝 내 검지 끝을 붙들었다.

‘와아, 손가락도 예쁘네.’

길쭉길쭉하게 뻗은 손가락은, 검이 아니라 악기를 다루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았다. 그것도 바이올린보다 첼로나 콘트라베이스처럼 커다란 악기. 저 탄탄한 팔로 악기를 꼭 끌어안고 저 예쁜 손가락이 현 위를 움직이면…….

‘윽, 무슨 생각이람.’

잡생각이 부끄러워져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조심스럽게 내 손끝을 붙들고 있던 세루리안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 착각이 아니군요.”

뭐가 착각이 아니라는 걸까. 살짝 찌푸려진 얼굴에서 감정을 읽기도 전에, 그는 손을 빼내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다시 장갑을 끼우며 일어섰다.

“제 방문 목적은 달성했습니다. 귀중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자, 잠깐만요!”

아니, 너만 산뜻하면 다냐! 나는 아직 로어에 대해 한마디도 듣지 못했는데?!

세루리안은 저벅저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미련도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에, 나만 애가 닳아서 그의 곁을 빠른 걸음으로 따라붙었다.

“제게 시간을 더 내주세요. 궁금한 게 아직 남았단 말입니다.”

“전 없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무슨 유리 벽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는 내게 시선을 주지 않고 곧게 앞을 바라보았다. 걸음은 또 얼마나 빠른지, 그에겐 내 존재가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문보다 훨씬 더 붙임성 없는 인사잖아!’

아무리 얼굴이 잘생겼다고 해도 이런 무뚝뚝한 남자를 사모한다고 쫓아다니는 이들은 어떤 사람인지.

유난히 커다란 그의 보폭 탓에 우리는 순식간에 신문사 밖으로 나왔다. 문밖에는 그가 타고 온 것으로 보이는 말이 보였다.

‘이대로 놓치면 단서는 영영 놓치는 거야.’

그를 붙들어야 했다. 지금 로어에 대해 듣지 못하더라도, 계속 꾸준히 그를 만나서 캐낼 계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로어의 단서를 찾았지만 하나도 찾을 수 없었어. 이제는 이 남자뿐이야.’

“에델, 네 어머니가…… 너를 찾아 나섰다가 로어한테…….”

“너무 억울해하지 말렴. 인생이 원래 그런 거란다.”

과거의 아찔했던 기억이 현재와 뒤죽박죽으로 섞였다. 이 일이 모두 발생하게 된 근원인 그의 새어머니의 얼굴까지 떠오르게 되자, 이제 내가 붙들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그뿐이었다.

“그럼 안녕히.”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 세루리안의 말끔한 얼굴을 보는 순간, 내 눈도 빙글 돌았다.

나는 충동적으로 그의 옷자락을 꽉 쥐고 말했다.

“잠시만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아주 잠깐의 시간만 내어주세요.”

“뭡니까?”

그를 붙잡으려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던 내 머릿속에 번뜩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저, 저와 결혼해 주세요, 공자. 당신이 작위를 얻을 때까지의 한시적인 혼인 관계여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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