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장님 공녀, 아직도 눈을 못 떴나?” 눈이 보이지 않는 에리얼에게 사람들이 던지는 시선은 늘 한결같았다. 조롱과 멸시, 혹은 동정 어린 시선. 그런 에리얼에게 제국 최고의 신랑감이라는 남자가 청혼장을 내밀었다. 가문 때문이라고 해도, 동정이라 해도 좋았다. 갈 곳 없는 에리얼은 기꺼이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천대받으리라 각오하고 그의 곁에 섰을 때. “부인. 제 얼굴이 그려지십니까?” 남자는 그녀를 무시하지 않았다. 정부를 들이지도, 때리지도 않았다. 품위 있는 말씨, 우아한 태도. 배려가 묻어나는 손길에 에리얼은 안도를 느꼈다. “난 괜찮아.” 그랬다. 이 결혼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 백작님을 좋아하나 봐.” 백작의 정체도 모르는 에리얼이 그를 좋아하게 되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