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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처음이 되고 싶어-85화 (85/145)

85화

베르트발드는 티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이렇게 어리바리해서, 놀리는 재미가 넘치니 어쩔 줄을 모르겠다.

“미안합니까?”

“네….”

“용서해줄까요.”

고개를 끄덕이자 베르트발드가 양손을 벌리며 말했다.

“그럼 안아줘 봐요. 아주 세게.”

에리얼은 망설이다가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베르트발드를 끌어안았다. 상체가 너무 커서 손이 마주 닿지 않았다. 매달리듯 안고서 끙끙거리자 베르트발드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좀 약한데.”

“더, 더 세게 해 볼까요?”

한껏 용기 내어 대답했건만 베르트발드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됐고 여기. 볼에 입 맞춰봐요.”

에리얼은 시키는 대로 순순히 볼에 입술을 갖다 댔다.

쪽, 소리와 함께 입술을 떼자 웃고 있는지 뺨의 피부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입술로 살갗을 덧그리며 에리얼도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커다란 손이 다가와 에리얼의 뒷목을 쓸었다. 피부를 새기듯 조심스레 매만지다가 그대로 뺨을 콱 붙들었다. 어버버할 새도 없이 고개 돌려지고 마른 입술에 촉촉이 젖은 그의 입술이 맞닿았다.

닿았다가, 떨어졌다가를 거듭하다가 조금 더 오래 입술을 맞댔다. 숨이 가빠 슬그머니 입술을 벌린 순간 기다렸다는 듯 베르트발드가 농밀하게 입 안을 탐하기 시작했다.

항상 부드럽게 시작하던 입맞춤과 달리 깊이 탐닉하는 짙은 입맞춤이 이어졌다. 버둥거리며 그를 밀어냈지만 그럴 때마다 그의 숨결이 더욱 거칠어졌다. 게걸스레 달려드는 베르트발드의 모습이 무서우면서도, 기대되면서도….

“미치겠네.”

닿을 듯 말 듯한 입술 틈으로 웃음기 섞인 베르트발드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허리와 치골, 허벅지를 쓸어내리는 손길이 농염하기 그지없었다.

“솔직해지기로 약속했으니까 말하는데.”

끄는 듯한 말투에서 초조함이 가득 묻어났다. 베르트발드는 미간을 찡그린 채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안아도 됩니까?”

흡, 에리얼이 숨을 참고 눈을 깜박였다. 베르트발드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싫다면 안 할 겁니다. 물론.”

쪽, 가볍게 입술을 부딪힌 뒤 뻐끔거리는 에리얼의 아랫입술을 슬쩍 깨물었다. 통통한 아랫입술을 살짝 빨아들인 뒤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싫다고 느끼기는 힘들겠지만.”

스쳐 지나가는 듯한 속삭임에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에리얼은 발갛게 붉어진 얼굴로 그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웃음소리가 언뜻 스쳐 지나가고, 숨결이 느껴진다 싶더니 날카로운 송곳니가 에리얼의 귓바퀴를 깨물었다.

느릿하게 흑발을 쓸어내리던 손이 귓불을 살짝 어루만지고 턱선과 목, 쇄골을 스쳐 어깨를 동그랗게 덧그렸다. 드러난 팔과 손목을 가볍게 쓰다듬다가 자연스레 허리 쪽으로 옮겨왔다.

옆구리를 간지럽히던 손이 휙, 등 뒤의 리본을 붙잡더니 여태껏 느릿한 움직임은 거짓말이었다는 듯 재빨리 옷을 벗겨냈다.

느슨하게 몸을 감싸고 있던 슈미즈 드레스가 순식간에 벗겨졌다. 드러난 곡선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온 손이 속옷에 닿았을 때, 에리얼이 눈을 질끈 감고 허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러자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얼굴 위로 쏟아졌다.

“너무 재촉하지 말아요.”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새된 항변에도 베르트발드는 묵묵히 옷을 벗겨낼 뿐이었다. 에리얼이 당황하며 ‘진짜 아니에요.’ 하고 말을 이어갔지만 베르트발드는 대답 대신 들릴 듯 말 듯 작은 웃음소리를 이어갔다.

여유로웠던 웃음소리와 달리 베르트발드의 얼굴은 잔뜩 굳어있었다. 실상, 그는 여유가 없었다.

흐트러진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에리얼의 얼굴, 한낮의 햇살 아래에서 희게 빛나는 나신.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을 주체하기 힘든데 손에 감기는 살결마저 보드라워 자꾸만 아래로 피가 몰렸다. 흥분을 유예하기 위해 베르트발드가 입 안을 세게 깨물었다.

“살이 더 빠진 것 같은데….”

우윳빛 목덜미에 입술을 묻은 채 한숨처럼 말을 이었다.

“걱정하게 만들 의도였다면 성공입니다.”

기껏 살찌웠는데 허탕이 되었다며 베르트발드가 투덜거렸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며 에리얼이 항변하자 그가 조용히 하라는 듯 성급히 입술을 머금었다.

우악스레 달려들 거라는 예상과 달리 베르트발드는 차근차근 에리얼을 고조시켰다. 몸 곳곳에 순흔을 남기는 입술, 부드럽게 살갗을 지분거리는 손길과 흥분을 알리는 거친 숨결. 그의 흔적이 몸을 스칠 때마다 에리얼의 몸속 깊은 곳에서 간질간질한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목덜미를 빨던 입술이 살결을 타고 올라와 입가를 핥았다. 시야에 붉은색이 흘러넘쳤다. 문득, 에리얼의 상념 속에 어떤 확신이 둥실 떠올랐다.

“베… 베리.”

신음을 삼키며 베르트발드를 불러보았다.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추는 붉은 인영. 피처럼 붉은 빛깔의 남자.

다른 사람과는 달랐다. 회색투성이의 사람들 속에서, 오직 이 남자만 다른 색으로 보였다.

여태껏 계속 의아했는데 왜 그가 붉은색으로 보이는지 오늘에서야 알 것 같았다. 자신에 대한 적의가 지나쳐 이렇게 짙은 붉은색인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 베리가 왜… 다르게 보이는지 알 것 같아요.”

뒤엉킨 에리얼의 흑발을 손가락으로 빗겨주며 베르트발드가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 뭔데요, 물음에 에리얼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분홍색을… 아주 여러 겹 덧칠하면. 아주 많이 겹치면 점점 붉어지니까. 아마도, 아마도 그래서….”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색, 분홍색.

그게 쌓이고 쌓여서 저렇게 더 이상 붉어질 수 없을 만큼 붉게 된 거라면.

이해가 됐다. 분명 저 색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베르트발드는 실소를 흘리며 에리얼의 말을 일축했다

“난 아닌 것 같은데.”

말을 흐리며 가슴을 깨물자 에리얼이 허리를 움찔했다. 욕망 어린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던 베르트발드가 아랫입술을 슬쩍 핥았다.

하, 좋은 냄새. 다 핥아버렸으면.

흘리듯 중얼거린 말 속에 야릇한 기운이 묻어났다.

시트를 움켜쥐고 있던 작은 손을 붙잡아 제 쪽으로 돌렸다. 하나하나 손가락을 펴고, 손바닥에 입술을 묻고서 에리얼의 얼굴을 주시했다.

터질 것같이 붉어진 얼굴을 시야에 담고서 흡족한 기분으로 손가락 사이에 제 손가락을 얽어 꼭 붙잡았다.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깍지낀 손을 위로 올리자 에리얼이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베르트발드가 천천히 에리얼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런 겁니다.”

“흑…!”

“붉은색이라면, 경고의 표식이겠지요. 잡아먹히지 말라고 보내는… 신호였겠지.”

도망치려면 빨리 도망쳤어야지. 이제 돌이킬 수도 없게 됐네.

흥분에 잠긴 목소리로 속살거리며 하염없이 그녀를 탐했다. 젖은 신음이 침대 위로 흩뿌려졌다.

파들거리는 허리를 받쳐 들고서 조금 더 깊게 몸을 묻었다. 버거움을 못 이긴 에리얼이 하악거리며 뒤로 몸을 물렸다. 때를 놓치지 않고 베르트발드가 에리얼의 허리를 잡아당겨 끝까지 자신을 욱여넣었다.

숨을 삼킨 채 바들거리는 얼굴이 한없이 처량했다. 처량한 만큼 괴롭히고픈 가학심이 샘솟았다.

왜 이런 걸까. 지켜주고 싶지만 또 울리고 싶게 만드는 이 묘한 마음은.

나른한 눈빛으로 에리얼을 내려다보았다. 물기를 머금은 채 꼭 감긴 속눈썹을 엄지로 슬슬 쓸어내렸다.

“눈… 감지 말고. 에리얼.”

“으응, 응….”

“하아, 숨쉬기 힘들어? 도와줄까요?”

“아, 아니, 괜찮….”

미처 고개 돌릴 틈 없이 베르트발드가 입술을 집어삼켰다. 억지로 입술을 비집고 들어와 거침없이 안을 유린했다. 도와준다는 게 이런 뜻이었다니, 타박하려 해도 쏟아지는 자극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에리얼이 할 수 있는 건 시트를 부여잡고서 달뜬 숨을 내뱉는 것뿐이었다.

지독한 쾌감이 몸을 덮쳤다. 뇌리에 담긴 모든 것들이 새하얗게 덧칠되고 온몸이 열락에 빠져들었다. 좋은지 나쁜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희열만이 텅 빈 뇌리에 떠올라 에리얼을 흔들어댔다.

이런 감각이 처음은 아니었다. 아마도 다섯 번, 아니, 여섯 번? 그와 밤을 보낼 때마다 이런 희열을 맛보았으니까 익숙하다면 익숙하다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열락의 깊이가 전혀 달랐다. 몸 상태가 달라서 그런 건지 단순히 오랜만이라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가슴을 들썩이며 생각을 곱씹던 에리얼은 이내 그 이유가 뭔지 깨달았다.

좋아한다고 깨달아서.

서로 좋아한다고 마음이 통해서. 설마 그 이유 때문에 이렇게 민감해진 걸까.

생각하니 또다시 얼굴이 화끈거렸다. 에리얼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몸이 이상해진 것 같아… 이상해요. 이거, 나만 이런 건가….”

열기가 담뿍 묻어 있는 목소리로 소곤거리자 베르트발드가 작게 웃었다. 여전히 몸을 묻은 채 상체를 숙여 에리얼을 끌어안았다.

몸을 지분거리는 손길에 여전히 열기가 서려 있었다. 베르트발드는 둥근 이마에 입술을 붙인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타이르듯 말했다.

“나도 똑같아요. 에리얼만 이상한 게 아니라….”

“베리, 도요?”

“응. 너무 예민해서… 고문이 따로 없네.”

근육으로 잘 짜인 가슴이 뜨거운 체온을 전했다.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상체가 위아래로 가볍게 들썩였다. 허리를 감고 있던 에리얼의 허벅지를 매만지며 베르트발드가 눈시울을 부드럽게 휘었다.

“왜 이럴까… 좋아한다고 말해서 그런 걸까.”

속내를 꿰뚫은 듯한 말에 에리얼이 흠칫하며 목을 움츠렸다.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베르트발드가 목을 울려 웃었다.

“그냥 말 하나로 상황이 이렇게 달라지는 거면 진작에 말할 걸 그랬습니다.”

“그러게요.”

웃으며 에리얼이 대답했지만 베르트발드는 웃지 않았다.

숨결이 조금 더 가까워졌다. 베르트발드는 에리얼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인 채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나, 좋아한다고 말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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