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닿았다가 멀어졌다가, 빨아들일 듯 말 듯 서툰 입맞춤이 이어졌다. 베르트발드는 적극적으로 입맞춤에 응하며 보드라운 살결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노골적인 것보다 이렇게 서툰 방식이 더욱 음심을 자극한다는 걸 이 여자는 알고 있을까.
아니, 모르겠지.
모르고 하는 짓이니 더 요망한 거고.
커다란 손이 살결을 스칠 때마다 에리얼이 흠칫하며 몸을 움츠렸다. 어설픈 입맞춤 끝에 주체할 수 없는 열기가 에리얼의 몸을 휘감았다. 제 것 같지 않은 가쁜 숨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몸 안쪽의 간질거림이 조금씩 심해졌다. 익숙하면서도 낮선, 속물적인 배덕감이 들어 외면하고 싶어도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본능적인 갈망.
…그냥 빨리 안아 줬으면.
며칠 전처럼 그렇게 뜨겁게, 열정적으로 자신을 안아줬으면.
아픔과 두려움, 쾌락이 혼재하던 첫날밤과 달리 지금 에리얼을 지배하고 있는 건 절절한 기대감뿐이었다.
할퀴듯 그의 가슴을 긁어내리자 근육으로 꽉 짜인 굴곡 위로 길게 손톱자국이 생겼다. 꽤 따끔했을 텐데도 베르트발드는 아랑곳없이 에리얼을 달아오르게 하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백작님, 백작님….”
목덜미에 얼굴을 기댄 에리얼이 애원하듯 그를 불렀다. 베르트발드는 열기로 벌게진 귓불을 잘근거리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이제, 그만하고… 그, 빨리….”
“보채는 건 좋은데 답이 틀렸네.”
낮게 울리는 웃음소리. 그에 맞춰 목울대가 울렁이며 에리얼의 이마를 간질였다.
답? 무슨 답?
의문을 해소하듯 그의 음성이 귓가를 스쳤다.
“이럴 때는 백작님 말고 뭐라고 부르라고 했을까. 떠올려봐요.”
“…베, 베리…?”
쿡, 웃을 때마다 맞닿아 있는 가슴 근육이 잘게 떨려왔다. 귀 언저리를 배회하던 입술이 스르르 내려와 에리얼의 턱 부근을 쪽쪽거렸다.
“똑똑하네. 그럼 다시 한번 말해봐요.”
“베리… 안아… 주세요….”
신음처럼 말을 흘리자 긴 한숨이 되돌아왔다. 자조하는 듯한 웃음소리와 함께 ‘여유 있는 척하는 것도 힘드네요.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아.’ 작은 속삭임이 이어졌다.
치골 부근을 어루만지고 있던 손길이 허벅지 안쪽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조금 더 몸이 밀착되고 젖은 살갗이 질척대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그가 밀어닥치려던 순간, 에리얼이 상체를 일으키며 다급히 외쳤다.
“아, 안 돼, 안 돼요…! 아기, 아기 생기면…!”
감각만 좇느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만약 운 나쁘게 아기가 생기면…. 그 아기도 똑같이 눈이 안 보일 텐데.
그런 일은, 그런 일만은.
“에리얼. 아, 해 봐요.”
달그락, 소리와 함께 베르트발드가 에리얼의 입 안에 작은 환약을 쏙 집어넣었다.
에리얼은 영문도 모른 채 입 안에서 데굴데굴 약을 굴려보았다. 쓴맛과 단맛, 신맛이 오묘하게 섞인 이상한 약이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거 먹으면 백 번, 천 번을 해도 아기 같은 거 안 생기니까.”
베르트발드가 입술을 맞댄 채 천천히 에리얼의 입을 벌렸다. 손으로는 그녀의 가슴을 지분거리며 색정적인 목소리를 입 안에 흘렸다.
“나한테 먹여줘요. 입으로.”
에리얼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냉큼 그의 입 속으로 약을 밀어 넣었다.
악기를 연주하듯 은밀한 곳을 만지작거리는 손길에 도무지 망설일 틈이 없었다. 끈적한 소리와 함께 입에서 입으로 약이 전해졌다.
꿀꺽, 약을 삼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베르트발드가 그녀를 가르며 들어왔다.
“흐읏…!”
가쁘게 숨을 내뱉으며 그에게 매달렸다. 어마어마한 압박감에 저도 모르게 이를 세워 그의 어깨를 꾹꾹 깨물었다.
긴장 풀라는 듯 커다란 손이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너무 금방… 닿아서. 에리얼, 왜 이렇게 다 작아.”
“으, 제가 작은, 게 아니라, 베리가, 너무…!”
뜻밖의 답변에 베르트발드가 웃으며 에리얼의 상체를 살짝 올려 안았다. 학학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등을 살살 토닥이다가 곧 부드럽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숨 쉬어요. 옳지… 조금 더 허리 들어봐.”
목을 꼭 끌어안고 씨근거리던 에리얼이 그에 말에 따라 살짝 허리를 들어 올렸다. 버거운 건 여전했지만 처음처럼 괴롭지는 않았다.
골반을 들어 올리는 손길, 예민한 곳을 삼키는 입술. 입술이 스친 자리에 열꽃이 피었다.
그의 노력 덕분인지 천천히 몸이 열렸다. 이윽고 가장 깊은 곳까지 그가 밀려들어 왔다.
몸이 꽉 차오르는 기분에 희열이 느껴졌다. 커다란 짐승에게 온몸이 둘러싸인 듯한 감각.
몸속도, 몸 바깥도 빈틈없이 그가 자신을 메우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충만감에 가슴이 뿌듯하게 달아올랐다.
어쩜 좋아.
너무 좋아. 왜 이렇게 좋지?
“흑, 베리, 베리….”
오감이 마비되는 듯한 쾌락에 이성이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에리얼이 히끅거리며 그의 품 안을 파고들었다. 입술을 꼭꼭 깨물며 괴로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얼굴과 달리 그녀의 허리는 베르트발드의 움직임에 따라 움찔거리며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왜. 기분이 너무 이상해서?”
흥분으로 잠긴 목소리에 에리얼이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트발드는 좀 더 세게 몸을 쳐올리며 나직이 속삭였다.
“…더 이상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데.”
쾌감으로 몽롱해진 회색 눈동자가 ‘어떻게?’ 라고 물음을 되돌렸다. 베르트발드는 거친 호흡을 속으로 삼키며 달콤하게 밀어를 내뱉었다.
“좋아한다고 말하면.”
“아, 하아….”
“좋아한다고 해 봐, 에리얼.”
좋아한다고? 뭘?
되물으려 입을 달싹였지만 입 밖으로 나온 건 꺼질 듯한 신음뿐이었다.
지금도 이렇게 미칠 것 같은데 더 이상하게 만들 수 있다니.
타는 듯한 마찰열에 아래가 저릿저릿했다. 홧홧한 열감이 발끝을 타고 올라와 착실히 몸을 데우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열기가 더 필요해.
에리얼은 무아지경에 빠져 외쳤다.
“좋, 좋아…! 좋아요….”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렇게 듣고 싶었던 말을 놓칠 리 없었다. 베르트발드는 작게 욕을 읊조리며 흔들리는 여체를 세게 끌어안았다.
허리짓이 더욱 빨라졌다. 널따란 상체 아래 맥없이 흔들리는 그녀의 몸이 애틋함을 부추겼다.
머리끝까지 차오른 쾌감에 에리얼이 높게 신음했다. 잔뜩 젖어 있던 눈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뚝뚝 눈물방울을 떨궜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베르트발드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욕망을 쏟아냈다. 콧속 가득히 라벤더 향이 밀려들어 오고 그녀와 닿은 살결에서도 같은 향이 스며들었다.
하얗고 보드라운 살결 위로 붉은 순흔이 점점이 꽃을 이루었다.
새벽 하늘을 옮겨놓은 듯 검푸르게 출렁이는 머리카락, 감은 눈 밑으로 방울방울 맺혀있는 예쁜 눈물방울. 아래에 깔린 마른 몸뚱이는 후희를 느끼는지 간헐적으로 움찔거리고 있었다.
어쩜 이렇게 예쁠 수가 있을까.
시트를 꼭 쥔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저 작은 주먹, 아직도 흠칫거리며 자신을 삼키려 드는 하체, 작은 이목구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앙증맞은 얼굴까지.
그 모든 게 넋을 잃을 만큼 예뻤다. 자신을 홀리기 위해 태어난 듯한 여자였다.
“에리얼.”
젖은 눈가를 어루만지며 지그시 이름을 읊었다. 그러자 에리얼이 바르르 어깨를 떨더니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베르트발드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다정한 속삭임을 흘려넣었다.
“당신은 참 변하지를 않네. 예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한결같이, 예쁘고 귀여워서.
베르트발드는 부드럽게 휜 눈매로 에리얼을 바라보다가 시트자락을 끌어당겨 콧물을 닦아주었다. 부끄러운지 훌쩍거리던 에리얼이 손을 들어 그를 저지하려다가 다시 픽, 침대 위로 손을 떨궜다.
“베리….”
“응?”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던 에리얼이 여전히 아래를 메우고 있는 이물감에 끙, 한숨을 내쉬었다.
“힘, 힘들어요….”
중얼거리며 에리얼이 몸에 힘을 줬다. 빼는 게 좋겠어. 허리를 슬슬 움직이자 젖은 소리가 났다.
슬그머니 뒤로 골반을 물리려던 찰나, 몸 안에 담긴 것이 점점 부피를 늘려가는 게 느껴졌다.
어라, 하고 중얼거린 것도 잠시였다.
위로 도망치려던 몸을 베르트발드가 단단히 붙잡아 아래로 끌어당겼다. 몸이 꿰뚫리는 감각에 에리얼이 흡, 하고 숨을 멈췄다.
“으! 아, 그만…!”
“…힘들어요?”
“힘들, 어요, 으응…!”
“이걸 어쩌나.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끄는 듯이 낮은 목소리 속에 옅은 조소가 깃들어 있었다. 베르트발드는 얄팍한 다리를 제 어깨에 올린 채 종아리에 입을 맞췄다.
“조금 더 힘내봐요.”
좀 전의 다정한 언동은 어디로 가고 또다시 거친 몸짓이 이어졌다.
거세게 치대는 허리짓에 흔들흔들, 몸과 시야가 함께 흔들렸다. 에리얼은 입술을 꼭 깨물고 그의 가슴에 머리를 비볐다.
뜨겁게 달아오른 공기가 침대가를 배회했다. 밭은 신음이 입에서 입으로 먹혀들고 달뜬 목소리가 서로의 이성을 망가트렸다. 벗은 옷가지가 바닥으로 툭툭 떨어지고 하얀 시트 자락이 엉망으로 구겨졌다.
황혼이 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베르트발드는 사방이 캄캄해질 때가 되어서야 에리얼을 놔주었다.
그렇게 달라붙어 있었음에도 못내 아쉬운지 허리를 꽉 끌어안은 채 이마와 볼에 연거푸 입을 맞췄다.
“아… 이런. 벌써 저녁이잖아.”
“베리… 배고파서 쓰러질 것 같아요….”
“이런, 미안해요. 집중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 지금은 이만하고 이따가 다시 하죠. 어떻게, 따로 드시고 싶으신 거라도 있습니까?”
‘이따가’이라는 단어에 의구심을 느낀 에리얼이 ‘이따가라니, 혹시 오늘 또 한다는 뜻인가요?’하고 되물으려 했지만 입을 열자 말 대신 헥헥거리는 숨소리만 새어 나왔다.
에리얼은 축 늘어진 몸을 그에게 기댄 채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