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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처음이 되고 싶어-45화 (45/145)

45화

지나친 쾌감에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았다. 에리얼이 도리질 치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탄식을 내뱉었다.

“이상해요… 이상, 이상해요… 흑…!”

잇새로 통곡이 새어 나왔다. 흐느낌과 함께 흐르는 눈물이 축축이 뺨을 적셨다.

아파서 우는 게 아니었다. 혼을 쏙 빼놓는 듯한 감각에 제멋대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자극이 온몸을 덮쳤다. 잠시라도 떨어지는 게 아쉬워 달달 떨리는 다리를 그의 허리에 휘감았다. 골반을 뒤틀자 질척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팠는데, 분명 아팠었는데. 아픔이 물러간 자리에 어떤 열망과 함께 갈증이 남았다.

배 속을 미지근하게 데우고 있던 갈증이 점차 온몸을 잠식하더니 가슴 속까지 밀려들어 넋을 잃게 만들었다. 허기진 열망을 참다못해 베르트발드의 목덜미를 콱 깨물었다.

“으웅, 흐읍!”

질긴 살갗은 그 정도로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베르트발드는 어린아이를 어르듯이 에리얼의 뒤통수를 슬슬 문질렀다. 다정한 손길이었지만 아래를 뒤흔드는 허리 짓은 가차 없이 더욱 빠르고 거칠어졌다.

“조금 더 세게… 깨물어 봐요. 자극적이라 좋네요.”

실소와 함께 베르트발드가 중얼거렸다. 잠긴 목소리는 여유를 가장하고 있었지만 실상 여유 없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섞이고 뒤엉킬 때마다 강해지는 그녀의 체취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기꺼이 자신을 받아들이는 내부와 꼭 달라붙어 오는 몸짓, 눈물로 얼룩진 고운 얼굴.

그녀를 이루는 모든 것이 자신을 흔들어놨다. 술에 취한 듯 그녀에게 취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제정신일 수가 없지. 이 바보 같은 여자를 갖겠다 다짐한 날로부터 몇 해가 지났던가. 그렇게 오랜 시간 염원하던 에리얼과 하나가 되었는데 어떻게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마음 같아서는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싶은데 그랬다간 에리얼이 다칠지도 모른다. 베르트발드는 입을 맞추며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에리얼… 괜찮으니까 정신 차리고 나 좀 봐요. 그래… 착하지. 여기, 목에 팔 두르고.”

에리얼은 순순히 목을 끌어안으며 가슴에 이마를 기댔다. 더운 숨이 명치 부근에 고였다가 산산이 흩어졌다.

“천, 천히… 해주세요. 제발, 천천히.”

울음 섞인 목소리가 잔뜩 쉬어 갈라져 있었다. 알았다는 듯 베르트발드가 이마와 관자놀이에 부드러운 키스를 남겼다.

얕고 부드러운 움직임이 이어지고, 바짝 굳어 있었던 에리얼의 몸도 조금씩 풀려갔다.

“에리얼. 전에 말한 적 있죠. 부부 관계는, 꼭 아이를 가지기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라고.”

땀이 밴 살갗을 어루만지며 베르트발드가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 에리얼은 반쯤 감은 눈으로 베르트발드의 가슴께를 바라보다가 ‘네.’ 하고 대답했다.

쾌락에 물들어 혼곤해진 표정, 어딘가 달뜬 목소리. 내용을 알고 대답했다기보다는 그저 무의식적으로 대답한 것 같았다.

“아이 같은 거… 낳을 필요 없이. 그냥 이렇게 나만 받아들이면 되니까….”

지금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헐떡거리는데 아이는 무슨. 그딴 걸 낳다가 이 작은 몸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베르트발드가 목덜미를 깨물며 말을 이었다.

“그렇죠, 에리얼?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말하며 아주 세게 그녀를 치받았다. 새된 외침을 내뱉은 에리얼은 뭐가 뭔지도 모른 채 ‘네, 네.’ 하며 대꾸했다.

베르트발드는 웃음을 터트리며 그녀의 입가와 뺨, 눈매, 눈꺼풀에 쉴 새 없이 입을 맞췄다.

마지막으로 입술을 머금자 에리얼이 자연스레 입을 벌려왔다. 몇 번 입 맞췄다고 바로 입을 벌리다니 기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자꾸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베르트발드는 키스에 집중했다.

속 깊은 곳에서 노도처럼 무언가가 밀려들어 왔다. 그에 맞춘 듯 에리얼 또한 몸을 바들바들 떨며 제게 달라붙어 왔다.

어미를 찾는 아기 새처럼 애처로이 달라붙는 모양새가 더없는 만족감을 불러일으켰다.

베르트발드는 짜부라트릴 것처럼 그녀를 끌어안은 채 자신을 쏟아냈다.

“으…!”

울먹거리는 숨을 토해내며 에리얼이 손톱을 세웠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살갗을 긁는 느낌은 통증보다는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베르트발드는 괜찮다는 듯 등 허리를 쓸며 더욱 깊이 밀착했다.

더 세게 자국을 남겨주길.

제게 내는 상처라면 상처가 아니라 낙인이었다. 에리얼이 자신에게 남긴 흔적, 자취, 인장. 모든 게 제 것이었다.

품에 안고 있어도 더 가지지 못해 안달 나는 이 기분이 상처로나마 위안이 되기를 바랐다.

좋아해, 에리얼.

들리지 않도록 입술만 움직여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사랑해.

수없이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말하지 못한, 그리고 지금도 말할 수 없는 이 감정. 자신조차 버거운 이 감정을 언제쯤이면 완벽한 형태로 그녀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푸른 어둠 위로 서늘한 밤바람이 섞여 달아오른 살결을 미지근하게 식혔다. 어둠과 달빛과 열기가 섞인 색의 입자들이 곱게 침실 안으로 비쳐들었다.

하얀 이마가 오묘한 색으로 물드는 모습을 지켜보며 베르트발드는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묻었다.

에리얼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밤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 * *

에리얼이 눈을 뜬 건 푸른 어스름이 가득 내려앉은 새벽녘이었다.

“아야야….”

저릿저릿해 감각이 없는 아랫도리는 둘째치고, 온몸이 물에 푹 잠겨 있다가 일어난 것처럼 축축 처졌다. 눈곱이 잔뜩 낀 눈매를 문지르다가 그마저도 힘들어 툭, 손을 떨궜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입술을 씹으며 지난 밤을 회상했다.

어제… 그렇게 침실로 쳐들어와서.

갑자기 막… 막 그러다가. 또 막 그러다가.

잠깐 잠들었던 것 같은데 막 흔들려서… 일어나 보니까 또 그러고 있었지.

무서워서 울었더니 이제 그만할 거라고, 백작님이 토닥토닥하면서 억지로 재웠었는데.

깜박깜박 눈만 움직여 시커먼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어디에서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찌릿한 통증이 둔부에 일었지만 애써 무시하며 침대 헤드에 상체를 기댔다.

기분 탓이 아니었다. 널따란 침대에는 자신뿐이었다.

두리번거리던 에리얼이 잠들기 전과 달라진 점을 깨닫고 고개를 갸웃했다. 더럽게 구겨져 있던 시트는 모두 반듯하게 펴져 있고 질척하게 체액이 묻어있던 몸은 뽀송하게 말라 있었다.

하지만 알몸인 건 여전했다.

“기왕 닦아줄 거면 옷도 좀 입혀주지.”

헐벗은 가슴을 이불로 가리며 에리얼이 애꿎은 뺨만 슥슥 문질렀다.

“백작님은 어디 가셨지….”

깨어났을 때 베르트발드를 마주하면 무척 부끄러울 것 같아서 다음에 눈을 뜨면 혼자이길 바랐다. 그러나 막상 혼자 있으니 서운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따뜻해서 그랬을까. 열기가 서린 따스한 품은 안겨 있으면 마치 봄 햇살이 몸에 감기는듯한 착각이 일었다. 부끄러움도 잊고 품 안을 파고들면 위에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흘러든다.

웃음소리 너머로 더욱 세게 자신을 끌어안는 손길. 정수리와 이마에 입맞춤이 쏟아지고, 살결을 타고 내려온 입술이 마지막으로 제 입술 위에 머무는… 그 감각.

그 체온과 살결, 그 목소리들.

모든 게 자신을 포용해줄 것만 같은 평화를 품고 있었다. 늘 어딘가 벽이 느껴지던 그답지 않은, 헤아릴 수 없는 다정함이 거기에 있었다.

“백작님은… 알면 알수록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

처음 만났을 때에는 뭔가를 꾹꾹 억누르고 있는 것 같은 기운이 느껴져서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분명 아버지의 후광을 얻고 싶어서 나 같은 사람과 결혼한 거라 생각했건만.

그 생각은 베르트발드를 겪으면서 점차 옅어졌다. 그렇게까지 걱정하고 배려하는 모습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으니까.

…아니.

싫지 않은 것 정도가 아니야.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황녀를 적대시하고 나를 찾아 헤맬 리 없잖아.

나를 보자마자 반가워서 덥석 안아 들었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백작님도 나를.

그… 좋아한다거나….

“으…!”

뺨을 문지르던 손길이 멈칫했다. 에리얼은 입술을 꾹꾹 씹다가 푸흐으, 묘한 한숨을 흘렸다.

“나 진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베르트발드 얀셀. 최연소 집정관이자 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부호.

수많은 귀족 여식들이 안달복달하며 쫓아다닐 만큼 젊고, 외모도 뛰어나서 귀족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

그렇게 잘난 사람이 자신을 좋아한다니 말도 안 되지. 조금 상냥하게 대해줬다고 이런 오해를 하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닐까.

잠깐이라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워 에리얼이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지난밤의 다정한 모습은 베르트발드에게 있어서 그저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몸에 밴 듯 완벽한 매너를 구사하는 남자였으니까.

그 포옹도, 절정까지 자신을 이끌었던 모든 행위도 어디까지나 부부 사이의 예의였을 뿐이겠지. 생각해 보니 모든 게 납득 되면서도 묘한 허탈감이 일었다.

그래, 그렇구나. 여기 없는 이유도 알겠어.

먼저 자기 침실로 돌아갔나 보다.

뭘 기대한 걸까 싶어 마음이 쓰려왔다. 에리얼은 무릎을 끌어안은 채 멍하니 아래로 시선을 향했다.

바스락거리는 회색 뭉텅이들.

하지만 눈이 보였다면 매트와 시트, 이불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겠지. 만지지 않고서는 이불과 시트조차 구분할 줄도 모르면서, 몸을 나눈 상대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사랑을 왈가왈부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말로 포장한들 자신은 여전히 장님 공녀에서 한 치도 나아진 점이 없었다.

입술을 사리 물고 눈을 꼭 감았다. 비참해질 생각은 없었는데 생각이 거듭될수록 비참해졌다.

둔하게 울리는 하체의 통증과 안에서 흘러나오는 질척한 흔적이 지난 밤의 격정을 자괴감으로 변모시키고 있었다.

…안 돼.

이런 사고방식은 곤란해. 그만 생각해야지.

“나도 방으로 돌아가야 하나….”

아니, 그럴 필요 있나.

침실까지는 몇 걸음도 되지 않았지만, 어차피 잘 건데 여기서 자나 거기서 자나 무슨 상관이 있나 싶었다.

그렇게 손가락을 꼼질대다가 다시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 갔을 때였다. 소리 없이 문이 열리더니 복도의 환한 빛과 함께 커다란 그림자가 바닥에 길게 늘어졌다.

“이런. 깨셨습니까.”

“어…?”

후다닥 가슴을 가린 에리얼이 그림자를 좇아 시선을 위로 향했다.

시야 속에, 붉은 인영이 비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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