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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상사가 파고들면 (70)화 (70/70)

70화

“초소형 감시 카메라가 달려 있으니 보여 줄 수도 있습니다.”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기에는 도하의 시선이 진형과 주아에게 가 있어 세연은 조금이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강유세를 잡으려고 설치했던 건데, 법정에서 유용하게 쓰이겠군요.”

진형의 무릎이 꺾였다. 그러나 용서를 빌려고 취한 자세가 아닌 듯했다. 몰골이 단 몇 분 만에 다 끝났다는 듯이 수척해져 있었다.

“성주아 씨는 증인으로 참석하세요.”

“네…….”

세연은 자신을 속인 진형과 도하의 적선에 감사해야 하는 처지인 주아를 봐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저런 것들보다는 어깨를 감싸는 손길에 움찔하게 되는 자신의 안위가 걱정스러웠다.

* * *

사귀기 이전부터 진형에게 애인이 있었다는 사실에도 충격을 받지 않았던 세연이지만, 도하의 집에 다시 제 발로 들어온 지금은 아니었다.

“……정말 미안해요.”

그녀의 사과를 받아 줄 마음이 없는 듯 그가 침묵으로 일관할수록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내리깐 눈동자가 고요했다.

차라리 화를 냈으면 싶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는 눈빛은 한겨울처럼 시렸다.

“오해가 생길 때마다 날 피할 겁니까.”

그녀는 죄인이었다. 그가 입을 열어도 그녀의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지 않을게요.”

“못 믿겠군요.”

그럴 만하다.

그의 마음을 생각하면 타당한 말이었다.

“다시는 내 마음을 부정하지 말아요.”

반성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가 천천히 소매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고 그녀를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그가 하는 행위를 가볍게 여길 수 없어 세연은 조심스레 물었다.

“뭐 하는 건지 물어봐도 되나요?”

“어떻게 사과를 받아야 할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그녀를 쳐다볼 뿐이었다.

‘아. 이거…….’

도하가 뭘 원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화 풀어 줘요.”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어 세연은 도하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에게 배운 키스를 진득하게 이어 나갔다.

입술을 떼어 냈을 땐 도하의 입술 끝마디가 번들거리며 올라가 있었다.

“세연 씨라서 봐주는 겁니다.”

“네에.”

“다음.”

“……화 다 안 풀렸어요?”

“이젠 나를 사랑하는지 증명해야죠.”

생각보다 뒤끝이 있구나.

유치한 모습도, 그리고 그녀에게만 보이는 감정도 좋았다. 부끄러웠지만 세연은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세연이 천천히 옷을 벗어 내렸다. 도하의 잇새로 탁한 숨이 나왔다.

자신을 보고 흥분하는 그를 보자 세연의 몸도 달아올랐다. 정직한 그의 몸에 흥분하는 자신을 숨길 수 없어 그녀의 행동이 더욱 대담해졌다.

“안아 줘요.”

그 순간, 돌연 도하에게 안겨 침대에 눕혀졌다.

그녀의 머리 양옆에 두 손을 짚은 도하가 세연을 내리누르듯이 덮쳤다.

“예쁩니다.”

마침내 세연의 속옷을 끌어 내리며 도하는 뽀얀 살결 곳곳에 입을 맞추었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뜨거운 눈빛에 닿은 전신이 떨렸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모르지 않았다. 그녀의 몸을 달래듯이 어루만지던 그가 팔을 뻗어 협탁의 서랍을 열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을 본 세연의 입이 벌어졌다.

“언제…….”

준비했나요?

준비성이 처절한 그는 그것을 상자째로 협탁 위에 올려 두었다.

세연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 *

아팠다가 좋았다가.

거침없는 몸짓이 세연의 아래를 찰싹찰싹 때렸다.

“천천히 흑. 해 줘요.”

“아까도 그 말, 했잖아요.”

“흐윽?”

딸꾹질하듯이 세연이 끅끅거리며 의문을 띤 눈을 깜빡이자, 색이 연한 정점을 문 입술의 선이 웃음기를 띠었다.

“안 되는 걸 알면 포기합시다.”

너무하다.

“나쁘다는 소리 또 들을 수도 있으니까, 억울하지는 않게 원 없이 해 볼 거예요.”

이건, 내 업보인가.

[시작이나 했으면 얼마든지 나쁘다는 소리를 들어 줄 텐데.]

[나쁜 놈 소리 들어 보려고요. 내가, 응? 그 소리 안 들으려고 얼마나 성깔을 죽였는데. 괜한 짓 했네?]

그에게 했던 말을 고스란히 돌려받았다. 세연은 멈추지 않는 정사에 짠맛을 느끼면서 하염없이 빌었으나, 도하는 자신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흐으, 다시는 안 그럴게요.”

“늦었어.”

아…….

‘믿을 사람 하나도 없어.’

* * *

“아!”

세연의 야릇한 교성이 어느 순간 끊겼다.

뽀얀 피부를 발갛게 익은 것처럼 만들어 놓은 도하는 둥근 살에 묻었던 고개를 들었다.

의식을 놓은 것처럼 세연의 두 눈이 감겨 있었다.

“내가, 너무 심했나.”

약간 미안해진 도하는 세연을 끌어안으며 갸름해진 입술로 뺨에 맺힌 물기를 핥았다. 그래도 깨어나지 못하는 세연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허기에 허덕이듯이 강말라 있었다.

“……일어나야겠지.”

아쉬운 대로 세연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그러고 몇 번이나 비비적거린 뒤에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세연에게서 힘겹게 떨어졌다.

도하는 무선 전동 리모컨으로 블라인드를 작동시켜 아침 햇살을 막았다.

침실을 대충 둘러보자 깨끗하던 공간은 자신과 그녀의 옷가지 외 반나절 사이에 쓴 것의 포장지들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깔끔하고 단조로운 패턴을 추구하던 그였지만 기분이 나쁘거나 더럽다는 생각은 일절 들지 않았다.

난잡하게 구겨진 이불에서 자고 있는 여자가 정세연이기 때문이었다.

일어나면 제게 또 시달려야 할 테니 잠시만 쉬게 해 줄 요량으로 도하는 침실 밖으로 나갔다.

세연이 보이는 곳에 있으면 자글자글 끓는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에게 달려들 자신을 잘 알았다.

서재로 이동한 그는 처리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

일단, 콘돔.

“그렇게 작을 줄 알았나.”

큰 사이즈라고 해서 믿고 주문했는데 꽉 끼어서 피가 안 통할 줄이야.

몇 번이고 찢어지는 사태까지 발생해서 오늘 쓸 걸 조심히, 그리고 아껴 써야 했다.

남자다 보니 성 지식은 풍부해도 첫 경험인 실전에선 어설플 수밖에 없었다. 도하는 노트북으로 더 큰 사이즈를 사들였다.

이만하면 되겠지.

그의 욕망을 깨우친 세연 때문에 음란한 생각을 떨치느라 얼마나 힘들었던가.

자신의 방에서 자는 세연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욕정이 불끈불끈 들끓었다.

‘다른 생각, 다른 생각.’

구진형을 단죄할 시간이었다. 뜨거운 머릿속이 차가워졌다.

도하는 제이온의 법적 사건을 담당하는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고동혁 변호사입니다. 이도하 대표님.

“주말에 죄송합니다. 변호사님의 자문을 구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도하는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몇 분에 걸친 골자의 내용을 전해 들은 고동혁 변호사가 시원하게 대답했다.

-증거물도 충분하니 해결에 아무 문제 없습니다. 증거 자료만 넘겨주시면 소장 작성하여 바로 소송 청구에 들어가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물론 합의는 없습니다.”

-네.

통화를 끊자마자 다른 곳에서 걸려 온 전화가 액정을 밝혔다.

발신인을 확인한 도하의 눈썹이 비스듬히 올라갔다.

그러고 보니 그가 찍힌 CF가 공중파를 타는 날이었다.

그로 인해 자신을 알아본 이의 전화가 걸려 왔지만 지이잉, 울리는 핸드폰을 무음 처리한 도하는 세연을 깨우러 바삐 움직였다.

따끔거리는 눈 위로 입술의 감촉이 내려앉았다.

‘아……, 나 정신을 잃었구나.’

욱신거리는 몸이, 어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게 해서 세연은 눈가를 지분거리는 행위에도 눈을 뜨지 않았다.

까무룩 정신을 놓기 전, 그녀는 똑똑히 보았었다. 그녀를 잡는 그의 얼굴이 성말라 보였다. 그렇게 해 놓고서는!

자신도 몰랐던 부위와 알고 싶지 않은 쾌감에 눈물을 흘려 댄 눈가가 무지하게 따끔거렸다. 그런데도 옆에 누운 그는 잘 틈을 주지 않았다.

‘절대로 눈 뜨면 안 돼.’

그래야 산다!

“배 안 고파요?”

움찔.

그녀가 깬 걸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왼쪽 귓가에 뿌려지는 목소리가 허기져 있었다.

배야 고프다.

어제부터 거의 굶다시피 했으니까.

뭘 먹은 게 없어 세연은 허기를 느꼈지만 지금의 체력으론 수저를 들 힘도 나지 않았다.

후. 남자는 겪어 봐야 안다더니…….

낮과 밤이 다르듯 밤의 도하는 세연의 몸을 걱정해 주는 척하면서 남자의 성욕을 채웠다.

나빠.

하지만 그 말을 내뱉었다간 밤새 당한 것보다 더 호되게 당할 것을 알아 세연은 입을 다물어야 했다.

‘말 안 해.’

밥 먹으면 다시 잡아먹힐 텐데 뭐 하러 배를 채우나.

“일어나는 게 좋을 텐데.”

이크.

나직한 목소리에서 전운을 감지한 세연은 뒤척이는 척하면서 옆으로 누웠다.

빨리 잠들어야 했다.

“…….”

뭔가 아래에서 불쑥 솟아나는 느낌이 들어 세연의 미간이 살포시 구겨졌다.

잠을 방해받은 세연은 저도 모르게 실눈을 살포시 떴다.

‘어…….’

배에서 다리까지 덮인 이불이 볼록했다.

이불 안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그가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있어 그녀의 입이 벌어졌다.

동시에 쭉 뻗은 다리가 그의 손길에 의해 쫙 벌어졌다.

“일, 일어날게요!”

세연이 두 팔꿈치를 짚고선 상체를 세웠지만, 이불 속에서 얼굴을 내민 도하가 그녀의 배에 턱을 괸 채로 무서운 말을 내뱉었다.

“더 자요. 자게 해 줄게요.”

색정적인 입술의 호선을 본 세연은 눈을 감았다.

힘이 풀린 전신에서 털썩 소리가 났다. 도로 눕게 된 세연은 눈물을 미리 흘렸다.

내 죄를 내가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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