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점막이 달라붙는 입술은 말할 것도 없고 허리부터 아래까지 저릿했다.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워져 세연의 의식이 허물어졌다. 도하를 담은 눈동자의 초점이 점차 흐려지고 있었다.
그녀를 원하는 그의 욕망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겪어 보니 감당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후욱.
도하의 입술이 떼어지자 세연의 숨구멍이 겨우 트였다.
어……, 왜…….
어느새 그녀는 소파에 앉은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아직 멀었어요.”
“충, 충분하지 않나요?”
서로의 입술이 타액에 젖어 촉촉한데.
황망하게 벌어지는 눈동자에 비친 표정에 웃음기가 없어 무섬증이 일었다.
“한 번으론 성에 안 찹니다.”
진지한 눈빛이 어우러진 표정의 압박에 밀려 세연은 고개를 저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을 해도 부족한데.”
“…….”
“세연 씨가 했으니 이번에 내가 할 차례죠.”
그런 게 어디 있냐고, 세연은 항변할 기회도 찾지 못하고 이번 역시 당했다.
그가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조금 전까지 하던 행위를 곧장 이어 나갔다.
첫 입맞춤은 그녀의 숨을 빼앗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면 다시 시작된 키스는 맛을 즐기려는 듯했다.
생생한 감각이 선연해질수록 야릇한 소리가 뚜렷해졌다.
그녀도 몰랐던 감각을 깨우치는 키스를 받게 된 세연의 발끝이 오므라들었다. 그리고 살짝살짝 떨리고 있는 허벅지 안이 멋대로 조여들었다.
미치도록 좋았다.
좋다는 말로는 뭔가 부족했다.
입술을 놓아주지 않는 키스는 그녀의 오감을 모조리 만족시켰다.
굵직한 허벅지에 놓여 발끝이 뻣뻣하게 올라간 그녀의 다리 사이로 도하의 손이 들어갔다.
치맛단이 허벅지 위로 올라가 있어 언뜻 스커트를 내려 주는 듯했지만 뭔가 달랐다. 살결을 쓰다듬는 손길이 점차 농밀해졌다.
그 손길에 세연의 입이 저도 모르게 벌어졌다.
남자의 본능이 엉덩이 밑에서 느껴지고 그에 그녀의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그의 정욕을 생생하게 느껴 버린 세연의 허리가 휘어지며 고개가 저어졌다.
그러한 몸짓에 허벅지와 가슴 사이를 넘보는 손의 움직임이 더뎌졌다.
코로 숨 쉴 수 있게 하던 입술이 느릿하게 떨어지곤 그녀의 이마에 닿았다.
“나도 모르게 이성이 나갔네요.”
가슴골이 슬쩍 보이는 옷깃을 여며 주는 손길에 세연의 시선이 내려갔다.
언제 여기까지…….
도하의 추진력은 실로 대단했다.
그녀의 와이셔츠 단추가 중앙까지 풀려 있었다.
단단히 단추를 채우는 도하를 보면서 세연은 아쉬운 표정으로 입술을 우물거렸다.
싫은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선뜻 하자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딴 데에 있었다.
‘속옷이 밋밋하단 말이야.’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관계에서 아무 무늬 없는 언더 커버를 보여 주기는 싫었다.
그리고 장소도 걸렸다. 방음이 되더라도 문밖에 있을 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 시간이 좀 걸리네요.”
뭐가? 라고 생각한 순간 도하의 입술에서 끙, 소리가 나왔다.
엉덩이 사이로 느껴지는 단단한 것이 뭔지 알아 버린 세연은 벌게진 얼굴로 황급히 도하의 허벅지에서 내려왔다.
내리뜬 눈과 반듯한 이마 중앙을 가로지르는 이음새 그리고 다물어진 입술 사이로 간간이 새어 나오는 숨결.
그를 둘러싼 분위기가 대표실을 밝히는 빛을 모조리 차단하는 듯 어두웠다.
다가올 도하의 밤은 끝나지 않은 것 같아 세연은 그의 타액이 묻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빨았다.
* * *
‘이래서는 안 돼.’
어떻게든 제작부서 사람들을 회유해야 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믿고 싶었지만 고립된 분위기가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때문에 진형의 근심이 깊어졌다.
한 시간, 두 시간.
도무지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조용히 일어서는 이들을 본 순간 진형의 입이 다급하게 벌어졌다.
“다들!”
마음이 초조한 진형이 목청을 높이자 시선들이 그에게로 꽂혔다.
“제가 오늘 쏘겠습니다.”
진형은 하도 씹어 대느라 불어 터진 입술을 빠르게 움직였다.
“저는 됐어요.”
“저도요.”
속으론 좋아하지 않아도 알아 온 시간이 있으니 싫은 기색을 내비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적지근한 반응이라도 기대했으나, 정작 들려오는 대답이 가차 없자 진형은 당황했다.
“바빠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다들 내일 뵐게요.”
여직원들이 고개를 돌리자 솔깃한 빛을 띠었던 남자 직원들도 황급히 싸늘한 분위기에 편승했다.
자신이 설 자리마저 빼앗길 위기감을 직통으로 느낀 진형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쓰라린 패배감에 진형은 제대로 일을 마치지 못하고 퇴근을 감행했다.
자신을 두고 속삭일 험담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을 것 같았다.
빠르게 차에 올라탄 진형은 주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아가 전화를 받자마자 흥신소로 알아낸 주소지를 불렀다.
“팰리스 아파트 C동 3701호, 여기로 찾아가.”
-있잖아. 내가 생각해 봤는데 오빠가 말한 대로 해도 괜찮겠어? 안 통할 것 같은데…….
“나만 믿으라니까. 싫으면 관둬.”
-아, 아냐. 할게. 할 건데 성공하면 나 진짜 떼돈 버는 거 맞지?
성공, 웃기고 있네.
이도하는 주아를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정을 모르는 세연을 속이는 것쯤이야 쉬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아를 이용해야 했다.
이제껏 내 돈을 펑펑 썼으니 갚는다고 생각하고 네 역할에 충실하면 돼.
“우리 회사 매출액 찾아봐. 2천억이라고. 이도하라면 네가 원하는 것들 원 없이 사 줄 수 있어. 대신 확실히 해야 해.”
진형은 구상했던 계획을 차근차근 털어놓기 시작했다.
주아가 도하를 유혹하지 못할 것을 알아 ‘실패로 돌아간다면’ 하고 뒷말도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될 시에 절대로 빠트리지 않아야 하는 일까지 세세히 설명해 주었다.
-응, 응! 알았어. 지금 움직일게.
이래서 머리가 나쁜 애들이 의외로 순진하다니까. 진형은 악에 받친 미소를 지으며 차 시동을 걸었다.
* * *
세연과의 키스로 불타오른 몸이 러닝머신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쌓인 열기를 운동으로 없애느라 도하의 전신은 축축했다.
심장을 난도질하던 쾌락을 기억하는 그의 의식은 낮 시간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를 원한다고 날뛰고 있는 몸은 땀을 계속해서 흘려 댔지만, 전혀 개운하지가 않았다.
러닝머신에서 내려온 그는 샤워로 더운 몸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하지만 이것도 한두 번이지.
그녀를 안는다고 하여도 극심한 갈증이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다.
샤워 가운을 걸치는데 도어 벨이 울렸다.
젖은 머리를 닦으면서 월패드를 확인한 도하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눈썰미가 뛰어난 도하는 화면에 비친 여자의 얼굴을 어렵지 않게 기억해 냈다.
‘이렇게 나오겠다는 거군.’
어떻게 나올지도 예상이 되어 도하는 심드렁하게 현관문을 열었다.
“대표님, 안, 안녕하세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성주아라고 합니다. 구진형 씨의……”
“기억나네요. 그런데 내 집은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겁니까.”
“……진형 오빠가 알려 줬어요. 이도하 대표님을 찾아가서 유혹하라고……, 그러지 않으면 가만히 안 둘 거라고 협박을 해서 할 수 없이…… 흐윽!”
여자의 두 눈에 눈물이 고여 흘러내렸다.
“도움을 청할 곳이 대표님밖에 없어요. 진형 오빠를 신고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
“제 말을 못 믿으실 거란 거 알아요. 카페에서 기다릴게요. 그러니 제발 시간을 내주세요.”
어떻게 할까.
여자의 눈물에도 동정심이 일지 않았다. 도하의 머릿속은 싸늘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다시는 기어오를 수 없도록 수렁에 처박아야겠지. 그놈이나 이 여자나.
“들어와요.”
도하의 입술이 사납게 비틀렸다.
“네?”
선뜻한 대답에 주아는 자신이 잘 못 들은 줄 알고 멍하니 반문했다.
“들어오라고요. 꺼려지면 카페로 이동하죠.”
아쉬울 것 없는 도하가 등을 돌렸다.
그의 몸놀림에 주아의 고개가 저어졌다.
“아, 아니에요. 이렇게 쉽게 제 말을 들어주실 거라고 생각 못 해서……. 감사합니다.”
도하는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투명하게 내비친 주아를 싸늘한 시선으로 곁눈질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그의 표정을 살피지 못한 주아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진형의 핸드폰에 저장되었다.
건물은 엘리베이터를 가운데 두고 좌우에 한 세대씩 들어선 구조였다.
열리는 문의 각도를 고려해 진형은 복도 모서리에 몸을 숨긴 채 핸드폰만 내밀었었다.
성공적으로 영상을 확보했으나 주아의 말소리가 생생하게 들려 동영상 원본 그대로 세연에게 들려줄 수는 없었다.
녹화된 동영상을 사진으로 편집한 진형의 입가가 아귀처럼 벌어졌다.
“크크크.”
뱃가죽을 긁는 소리가 기이하게 울렸다.
* * *
‘뭐야. 너무 쉽잖아. 금방 내게 넘어오겠는걸.’
바라보기만 해도 심장을 떨리게 하는 외모였다.
안기고 싶은 남자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자 기대에 부푼 가슴이 떨렸다.
원래 도하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다음 이 집에 들어오는 것이 진형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계획보다 일이 쉽게 풀리자 주아는 긴장한 몸을 풀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런 집에 살아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 횡재야.’
이 남자만 물면 내 인생 황금빛이야.
주아는 찬란한 인생의 서막이 펼쳐진 것 같아 들뜬 마음이 들었다.
주인의 허락을 맡지도 않은 채 주아가 답삭 소파에 앉자 도하의 미간이 딱딱하게 모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