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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상사가 파고들면 (39)화 (39/70)

39화

그녀의 의식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 같은 목소리가 어느새 지척에서 울렸다.

“안 되겠네요.”

그녀의 어깨를 돌려 그를 보게 한다.

순식간에 드리우는 얼굴에 세연은 댕그랗게 뜬 눈을 깜빡거렸다.

그녀에게로 들이민 얼굴은, 남성적이지만 아름답다는 수식어가 어울릴 만큼 빛이 뭉친 결정체 같았다.

“이제야 내가 보이는군요.”

귓속을 파고드는 숨결이 생생했다.

현실임을 일깨우는 음영이 그녀의 얼굴을 빛처럼 쬐자 세연은 자빠질 것처럼 몸을 뒤로 내뺐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위험하잖아요. 후.”

이마로 떨어진 숨결이 빛 조각처럼 반짝 부서졌다.

“어디다 정신을 파는 겁니까.”

벽면에 부딪힐 뻔한 뒤통수를 거뜬하게 그러쥔 감촉이 감각적으로 다가왔다.

두피를 간지럽히는 것처럼 머리부터 시작된 자극이 세연의 심장까지 점령했다.

그야말로, 일시 정지.

선연한 충격은 그렇게 다가와 세연의 정신을 흔들어 놓았다.

단순히 간지럽다고 표현될 만한 감각이 아니었다.

온몸의 세포를 일깨우는 자극은 처음이었다. 세연은 뒤로 전해지는 손의 체온과 놓아주지 않을 것 같은 손아귀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괜찮습니까.”

아아. 세연은 물에서 나온 것처럼 헐레벌떡 숨을 내뱉었다.

두렵고도 강렬한 감각에 가까스로 헤어 나오자마자 보이는 그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왜, 저런 눈빛으로…….

그녀의 의식은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그의 손이 그녀의 머리에 내려앉았다.

어루만지는 손길은 더없이 조심스러웠지만 그랬기에 혼란스러웠다.

그의 손이 막고 있어 벽에 도로 부딪힐 리가 없을 텐데도 두피를 더듬는 손의 움직임은 작은 동물을 대하듯이 부드러웠다.

“놀라지 말아요.”

그가 전한 감각을 인지했을 때부터 움직일 수 없었던 세연은 도하의 손에 순순히 이끌렸다.

그녀와는 다른 신체를 여실히 느끼게끔 도하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부드럽게 그의 몸으로 받쳤다.

그렇게 껴안은 자세로 그가 그녀의 뒷머리를 꼼꼼히 살핀다.

내리꽂히는 시선에 세연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도하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렇지만 서로의 몸통이 밀착되어 있어 여과 없이 뛰는 심장의 소리를 들려 줄 수밖에 없었다.

차마 그에겐 보여 줄 수 없는 발긋한 눈을 세연은 지그시 감았다.

파르르 속눈썹이 떨린다.

어둠 속에 둘만 갇힌 듯한 상황은 나쁜 상상을 끌어당겼다.

그의 심장도 그녀 못지않게 뛰고 있는 듯하다고…….

“부딪힌 외상은 보이지 않군요.”

착각하지 말라고 알리듯이 그의 목소리는 딱딱했다.

차분한 음색이 들려오자 그녀는 그와 달리 떨리는 심장만큼 목소리도 흔들릴까 봐 숙인 고개만 저었다.

“정말로 아무렇지 않다면, 날 봐요.”

도하의 숨결이 세연의 뒷목에 닿았다.

살갗이 단풍잎처럼 붉게 물든다.

“잠시만요…….”

호흡을 가다듬을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세연은 제 몸에 낯선 불길을 지피는 도하의 얼굴을 태연하게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격동하는 감각을 한바탕 겪은 몸은 그녀의 뜻대로 따라 주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대로 호흡을 참았으나 그녀의 몸은 숨길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몸과 맞닿아 있었다.

거리를 두어야 했다.

세연은 도하의 팔뚝에 감긴 허리를 비틀었다.

불편한 몸짓을 알아차린 그가 그녀의 허리에 둔 팔을 치웠지만 두 다리는 한 자리에 박힌 듯이 끄떡도 하지 않았다.

반대편으로 멀어지는 그녀를 좇는 눈동자가 타들어 갈 듯이 새까맸다.

쭈뼛대는 몸으로 그의 시선을 받아 낸 세연이 더는 뒷걸음질을 할 수 없게 되자 이를 지켜보기만 하던 도하가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을 했던 겁니까.”

당신 생각을 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와 그녀는, 허심탄회하게 본심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다.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는 속을 들여다볼 것처럼 그는 그녀의 눈을 놓아주지 않았다.

피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하는 눈동자는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속내를 품고 있는 듯 새까맣기만 했다. 

본능적인 두려움이 밀려왔다.

뭐가 들어가 있을지 알고 싶어도 열면 안 되는 것을 마주한 기분이라. 세연은 갈등 어린 표정으로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때.

“알겠네요.”

“네?”

속을 간파한 듯한 목소리가 완벽하게 그려진 입술을 타고 새어 나오자 세연의 심장은 내리구르듯이 벌렁거렸다.

“세연 씨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확신을 가진 어조가 자신만만해 세연은 어지러운 속내를 수습할 새 없이 무작정 부정부터 하고 봤다.

“대표님 생각 안 했습니다!”

제 목소리의 파장이 제법 크게 울려 세연은 급히 입술을 깨물었다.

“아, 아니…….”

하지만 그녀의 본심은 그에게 고스란히 들킨 후였다.

“내 생각을 했군요.”

“하지 않았어요!”

어깨를 덮은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도록 세연이 고개를 저었지만 그녀가 애쓴 보람이 없게 그는 알아주지 않았다.

“했다는 말로 들리는데.”

“그건……!”

“나는 했습니다. 세연 씨 생각.”

세연의 두 눈이 확연하게 뜨였다.

무, 무슨……!

당황하는 세연을 보며 도하가 쿡, 소리 내어 웃었다.

열 기운이 뭉친 얼굴을 응시하는 그의 표정이 즐거워 보였다.

정말로.

“일단 나갈까요?”

도하의 고개가 돌려진 방향을 따라 보고 나서야 세연은 그와 있는 장소를 다시금 자각했다.

대화를 나누는 통에 닫혔는지 몰랐던 엘리베이터를, 그가 다시 열림 버튼을 눌러 열었다.

층에 다다른 엘리베이터가 개방되자 지하 주차장이 보였다.

도하가 움직이자 세연은 1층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서 그를 따라 내리고야 말았다.

앞서가던 등이 멈추자 그녀는 그의 그림자가 밟히지 않는 위치에 발을 두었다.

올려 봐야 하는 머리에 세연의 시선이 머무르자 도하가 고개를 돌려 웃는 낯을 보였다.

어둠침침한 공간과 지독히도 어울리는 눈빛과 정반대인 미소가 주는 부조화가 세연의 말초 신경을 자극했다.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봤던 그의 표정처럼, 다른 이에게 결코 보여 주지 않을 듯한 은밀한 표정에 세연의 입이 저절로 열렸다.

“저를 왜 생각하셨어요?”

저를 보는 눈빛의 정의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물어봤다.

제게 화가 난 걸로 보이던 언행이 그녀가 생각한 이유 때문이 맞는 건지.

저를 시험대에 올려놓은 듯한 눈빛의 진실을 알고 싶었다. 

세연은 자신을 번민하게 하는 그의 마음을 알 수 있다면 순간 저지른 충동의 값을 홀가분하게 받을 수 있다고 여겼다.

물음과 동시에 세연이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직시하자 선연한 마음을 품은 도하가 확인을 거쳤다.

“알고 싶습니까?”

알고 나면 마음이 편할 거라고 여겼는데.

도하의 말을 듣자 세연은 어쩐지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변덕스럽게 일었다.

그의 눈동자와 닮은 듯한 감정을 알고 나면 뒤집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알고 싶다면…….”

지이잉. 지이잉.

가방 속에서 들리는 진동은, 두 사람을 방해하는 것처럼 시끄러웠다.

세연은 서둘러 핸드폰을 꺼냈다.

진형에게서 걸려 온 전화에 세연이 도하의 표정을 살피자 두 마디 거리를 유지하던 그의 미간 사이가 바짝 붙었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세연의 손에 들린 핸드폰의 액정을 보는 눈동자에 명백한 적의가 서려 있었다.

받으면 큰일 날 것 같았다.

끊기지 않고 계속해서 울리는 핸드폰을 받지 못한 상태로 그녀가 굳어 있자 시린 표정을 휙 바꾼 그가 무성의하게 말했다.

“받아요.”

어서 받으라고 재촉하는 진동만큼이나 도하의 목소리에 강요가 은근히 실려 있었다.

“구진형 씨한테 전화 온 거 아닙니까.”

* * *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세연의 핸드폰은 잘 보였다.

구진형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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