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대표실에 올라가려고요?”
“아뇨. 내릴 겁니다.”
웃음이 깃든 물음에 허둥지둥 고개를 저었다.
묻고 싶은 게 많아도 그게 제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세연은 도하가 터 준 옆으로 황급히 지나갔다.
닫히는 문을 간신히 통과하는 그녀의 귓가로 돌아보게 하는 목소리가 닿았다.
“일 열심히 해요.”
상사로서 하는 말인데도,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그녀의 시선을 놓아주지 않는 표정이 무심한 결에서 벗어나 있어 속도를 올린 심장이 거세게 요동쳤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안쪽, 세연이 내리길 기다렸던 도하는 급히 손등으로 코를 막고선 숨을 내쉬었다.
* * *
좀 전의 일로 땀을 뺀 세연은 흐느적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운동해서 심장이 열심히 일하는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애인을 두고 딴 남자에게 한눈을 팔아?
연애한 지 며칠 되었다고, 나 그렇게 양심 없는 여자 아니야.
‘……아닐 거야, 아니어야 해.’
나도 나를 믿지 못하겠다.
세연은 깍지를 낀 두 손으로 이마를 받치고 심오하게 결론을 내놓았다.
“대표님의 얼굴 때문이야.”
개연성과 감정선을 말아먹는 도하의 얼굴 탓이었다.
마성의 얼굴과 제 동의 없이 행해진 그의 행위를 탓하며 세연은 자신의 감정에 당위성을 주장했다.
“에효. 뭔 뻘짓이야.”
일이나 하자.
업무용 PC 화면을 켠 그녀는 사이사이 들어오는 팀원들에게 인사하며 작업 문서 작성에 돌입했다.
“아침부터 열심히 하네요.”
정시에 간당간당하게 도착한 진형이 세연의 뒤에 서 있었다.
“오셨어요?”
“팀장님께 보고드리기 전에 내 메일로 초안 보내요.”
“예. 선배님.”
세연의 대답에 진형이 만족스러운 듯이 웃고는 그의 책상에 앉았다.
전담하던 업무를 빼앗겼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도 진형에게서 기분 나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 * *
현대 직장인들의 동력은 점심이었다.
가까워지는 점심시간에 팀 단체로 도시락 배달을 시켰다.
힘내서 일할 추진력을 얻은 세연은 제시간에 일을 끝내겠다는 신념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다닥. 다다다닥.
“끝! 겨우 하나 완성했네요. 점심 먹읍시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소리에 세연은 쥐 날 것 같은 손가락을 풀어 주면서 제 앞에 배달된 도시락을 깠다.
돈가스 하나를 입에 무니 육즙이 입 안에서 좌르륵 터졌다.
“차 키 잃어버린 분 안 계시나요?”
적당하게 배가 찬 세연은 이미 음식을 클리어 한 직원들이 어디로 이동하기 전에 물었다.
“차 키요? 어디서 주웠어요?”
“회식 장소 앞마당에서요. 어제 물어본다는 게 잊어버렸어요.”
“엠블럼이 뭔데요?”
“벤츠요.”
“벤츠 타는 사람 누구 있더라. 아, 혜선 팀장님. 팀장님이 벤츠 타신다.”
혜선은 다른 선약이 있어 점심을 함께하지 못했다.
“오시면 물어봐요. 근데 차 타고 가셨을 테니 아닐 수도 있겠다.”
혜선이 아니라면 차 키 주인은 기획부에 있을 것이다.
휴식 시간이 2분 남짓 남자 세연은 가글을 하고 돌아왔다.
그러자 책상에 못 보던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메모지를 뒤집어 보자 글씨가 적혀 있었다.
오늘 야근인데 조금 기다려 줄 수 있어? 레스토랑 잡아 놓았어.